가정의 달 특집/2

오광일 (월드뷰 미디어팀장/ 성균관대학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교육, 출판업으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월드뷰>에서 미디어팀장으로 일하며 인천사랑침례교회에서 중고등부 설교 사역을 통해 청소년들의 믿음을 세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 어느 실존주의 철학자가 ‘삶이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의 일생 가운데 선택이 미치는 영향력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선택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어떤 진로와 직업을 정할지, 누구와 결혼하며 어떤 교회를 선택하고, 어떤 시민사회 활동(정치 활동 포함)을 하고, 어떤 문화 활동을 선택하며 살아갈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때 우리가 내린 선택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진리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이 선택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고전 10:31)이 되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번제 헌물 천 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린 후, 꿈을 꾸었는데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하라.’ 말씀하신 기록이 있다. 이 일은 솔로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달라.’는 선택을 한다. 눈에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재물, 명예, 오래 사는 것 등을 선택하지 않았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선택한 것이다. 야고보서 3장에서는 땅에 속한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를 비교하면서 말씀하신다. ‘땅에 속한 지혜는 관능적이고 마귀에게 속한 것이며 시기와 다툼과 혼란이 있으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순수하고 화평하며 부드럽고 간청을 잘 들어주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며 차별이 없고 위선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은 이런 두 종류의 지혜가 존재함을 알고 땅에서 난 지혜가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지혜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간절히 갖기 원했고 결국 그것을 선택했다.

 

성경에서 배우는 문제 해결법: 생명을 택하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사건은 간밤에 두 창녀 사이에 살아남은 한 아이가 있는데 누구의 자녀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선택을 한 솔로몬을 축복하며 그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뿐 아니라 재물과 명예까지 주는 아름다운 일이 있었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기록은 두 창녀의 친자 법정소송을 판결해야 하는 난제가 벌어지고 있다. 성경 기록을 보면 종종 이런 황당한 사건의 연속을 발견하게 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주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하며 증언이 기록된 두 돌판을 받아 내려오는데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뛰어노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이다. 다윗에게는 왕이 될 것이라는 기름 부음을 받는 아름다운 일이 있고 난 뒤에 장인어른인 사울이 자신의 목숨을 수년간 위태롭게 하는 일이 전개된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한 베드로는 그분께서 로마 병사들에게 잡혀가시자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배신한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기억해야 할 사실은 믿음의 삶이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죄의 영향력 아래 놓인 세상을 걸어가야 하는 실제적인 일이라는 점이다. 판단하기 어려운 갈등 상황들이 얼마든지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펼쳐질 수 있는데, 그때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안에 주신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기반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발휘해 어떤 행로를 선택하되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그런 자유 선택과 책임의 연속체가 우리의 삶이다. 성도들의 삶은 이 부분에 있어서 더욱 철저해야 한다.

다시 솔로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창녀들의 친자소송사건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두 창녀가 3일 간격으로 아이를 낳았는데, 어느 밤에 두 창녀 중 한 사람이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이고 상대방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우기면서 법정에 나오게 되었다. 서로 공방이 치열하니 솔로몬은 살아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주라고 한다. 그때 그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오 내 주여, 살아있는 아이를 그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결국, 생명을 택하며 용기 있게 이 말을 한 여자가 진짜 어머니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둘로 나눠질 수 있었던 그 어린아이도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복잡한 일들 가운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부모가 희생하는 것인가?’를 늘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것과 그 생명을 얻는 쪽으로 택할 것을 복음서에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크리스천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선택의 문제에 대해 교육할 때 선택의 기준을 ‘무엇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얻는 쪽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분별 있고 용기 있게 선택할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르치라.

그렇다면, 현시대 자녀들을 둔 부모세대에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양한 이슈들 가운데 생명을 선택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가치관이 해체되어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영적 사사기와 같은 시대이다. 학교현장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젠더 이슈들을 비성경적인 관점으로 배우고 있고, 정치권과 언론, 문화계는 성경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가정의 개념, 남녀의 성별 개념을 해체하고 파괴하여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 인류가 오랜 세월을 통해 지켜온 보편적인 가족제도를 통해 생명이 생명을 낳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해 왔는데, 현시대에 만연한 해체주의 사상과 새로운 전체주의적 흐름은 이러한 전통들을 단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억압하는 악한 것으로 취급하고 해방을 추구하는 절대적 자유를 위해서는 버려야 할 장애물로 여기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가 1930년대에 지은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를 반(反)유토피아적으로 풍자했다. 그는 아이들이 인공수정을 통해 유리병 속에서 자라며 사람은 지능의 우열에 따라 할당된 역할만 수행하며 심적인 고통은 신경안정제로 해소하면서 한계 없는 자유를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기로 선택한 암울한 모습을 그렸다. 이 소설에서 그린 모습을 우리는 현 시대에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표현 대신에 부모1과 부모2를 쓰고 교육기관에서 부모와 학생의 학습 선택권을 배제한 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성교육, 대중의 유희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르노, 차별금지, 혐오 발언 금지, 다양성, 포용성, 관용, 정의, 평등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들이 교묘하게 포장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으며 우리 자녀 세대들의 도덕적 기준을 공격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눈에 보이는 적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혀 있고 오랜 전통을 통해 학습한 도덕체계의 붕괴를 노리는 ‘악한 영의 세력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특히 크리스천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명을 택하는 용기 있는 발언과 태도이다.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의 이데올로기의 부산물들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분별력 있게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솔로몬이 창녀들의 친자소송 재판에서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처럼 일상에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무엇이 생명을 택하는 선택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슨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실시하는지, 교과서는 어떤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등등 관심 있게 봐야 한다.

 

생명 선택하기 훈련 미션

자녀들에게 생명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을 위해 실천해 볼 만한 것을 제안해 본다면, 얼마 뒤 실행될 우리 지역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를 활용해 보는 것이다. 각 당의 국회의원들이 어떠한 선거 공약을 가지고 출마를 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많은 유익이 있다. 어떤 후보의 공약에 편협한 소수자들만을 위한 인권공약, 다양성, 포용, 평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 유지 발전에 기여해 온 기존에 잘 뿌리내린 전통을 해체하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며 기독교의 확장에 저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주의 깊고 분별력 있게 살펴보고 자녀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볼 것을 권한다. 어떤 정당의 공약이 성 평등의 껍데기를 씌웠으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해 놓으신 남성과 여성의 기준을 해체하거나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생명을 죽이는 정책(예를 들면 낙태 합법과 같은)을 지향한다면 용기 있게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고 또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들의 지각이 자라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세우는 선택을 주저함 없이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기억하자. 인생에 펼쳐진 많은 문제 가운데 크리스천의 판단 기준, 그것은 ‘내가 지금 내리려는 선택이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 것인가?’, ‘이 선택이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인가?’, ‘내가 하는 이 선택이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 앞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것임을.

 

 

※이 글은 월드뷰 2020년 4월호에 기고되었고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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