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왜 사회주의를 배격해야하는가?

정양호 선교사(KPM 우간다 선교사)

옛날 주일학교 시절 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였는데 강사 목사님이 이해하기 힘든 공산주의에 대한 코멘트를 하셨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인데 그다음은 사회주의가 오고 그다음은 공산주의가 오고 그다음은 지상 천국이 온다”는 이야기가 암울한 뉴스를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자주 떠오른다.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정치 환경을 성경적 관점에서 분별하고 지혜스럽게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다.

 

Ⅰ. 기독교인,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것인가?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라고하면 마치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학술적 용어 또는 공산주의(막시즘) 반대 용어 정도로 거리감을 느낀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 공황에 따른 금융위기 역사가 되풀이 되는 상황이라 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그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개념은 많은 키워드로 설명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단순히 문자그대로 생산 수단인 자본(돈)과 돈을 가진 자본가가 이윤 또는 삶을 추구하도록 보장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라고 본다. 돈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가지로 말씀하신다.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6-21)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돈이라는 수단(手段)에 삶을 얽매여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물질(物質)의 축복(祝福)도 약속하셨는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자기집에서 훈련한 318명의 특공대 사건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부를 소유하고 있었는지 계산이 나온다.(창12장) 욥도 보통 부자가 아니었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인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자본주의 시스템 역시 개인의 자유(自由)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문제될 이유가 없다.

 

Ⅱ. 청지기로서 재산 증식및 이윤추구 (마25:14:30)

예수님의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은 종에게 맡긴 일에 대해 상당한 권한(權限)과 책임(責任)을 주었고, 종은 많든 적든 돈의 량(量)에 관계없이 자기 재량으로 최선을 다해 장사를 하여 주인에게 이윤을 보게 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허랑방탕한 것도 아니고 손해를 보거나 나쁜짓을 한 것도 아니고 본전(本錢)을 안전하게 잘 보관했지만 이윤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주인은 이 종에게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돈을 취리하는 자들(Bank))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것이니라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그종이 주인을 오해하여, “굳은 사람(포악자)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아주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을 모으는 데만 집착하며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소득(不勞所得)을 탐하는 파렴치한 포악한 강도나 독재자로 보았고, ”보소서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에서 그 돈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해서 자기가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하고 나아가 주인에게 “당신 것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교만하게 빈정거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 인간의 바른자세도, 바른 신자도 아니다. 주인의 관심이 돈 그 자체의 이윤을 얼마나 벌었나 하는 계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과 명령을 제대로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순종하는 청지기인가?(눅17:7) “착하고 충성된 종인지 무익한 종”인지 평가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 소유라는 관점에서 그 소명과 사명을 위해 사유재산증식나 이윤추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마땅히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것이다.(살후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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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병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은 UN의 각기구나 USAID같은 사회기업을 통해 전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에 앞장서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의 국내 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엄청 비싼 병원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사실상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낸단다. 의료단기팀에 의하면 약값은 아프리카보다 훨씬 비싸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병든 자본주의라 꼬짚는다.

인간의 본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부족함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시해주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利己的)이고 죄(罪)에 대한 욕심(慾心)으로 가득차 있다. “욕심이 잉태한 즉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경고하였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하느냐?”고 물었을 때 청년에게 요구하신 것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오라”고했을 때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다. (마19:) 재물이 많으면 많이 나눌 것 같지만 재물에 집착한 이기적 인생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영생 문제까지도 예수님이 아닌 내 자신이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남아공은 백인 정부때부터 전국 국립 병원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無料)로 치료해줄 뿐 아니라, 영세민들의 자녀들에게 자녀 양육비를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해주고 있다. 인종분리정책으로 비난을 받았던 기독교 정부이지만 밝은 한 측면도 볼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부족한 자본주의의 대안은 국가가 강제로 통제하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성경이 제시한 믿음에서 하늘의 상급으로 연결된 자발적 사랑과 나눔이 최선이다. 그러나 다수의 교회지도자들이나 성도들도 한국의 현정치계가 떠드는 것처럼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정답”인 양 분별하지 못하고 동조, 옹호하는 것을 보고있다. 다음은 “The Christian Post”의 기사에서 현재 우는 사자같이 전체 미국사회를 뒤흔들고있는 사회주의 이념 바이러스를 배격해야하는지 살펴본다.

 

Ⅳ. 그리스도인은 사회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과 맞서고 궁핍 한 사람들에게 나눌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가 사회주의를 지지 한 것인가? 점점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조사(Reason-Rupe Survey)에 따르면, 더 많은 미국인들이 성경의 예수가 자본주의를 선호한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14%). 나머지 62%는 확실하지 않거나 확실하지 않았지만, 여론 조사는 여전히 혼란스런 경향을 나타낸다.

기독교 작가이자 팟 캐스터인 미카 코클링 (Mika Conkling)은 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회주의야말로 황금률(黃金律)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코클링(Conkling)은 미국에서 가장 친 사회주의 세대인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이다. 최근의 Reason-Rupe 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미국인의 53%가 30세 이상 미국인의 3 분의 1 미만에 비해 사회주의를 호의적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갤럽(Gallup)은 30세 미만의 69%가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밀레니얼 세대가 왜 현재 시스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이해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제를 목격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당파적인 시대 중 하나인 쌍둥이 빌딩의 타락, 그리고 결코 발견되지 않은 대량 살상 무기에 관한 전쟁을 보면서 누구나 우리의 정치 체제가 필사적으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정답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사회주의는 다음과 같이 성경의 가르침과 모든 것이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사회주의는 물질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같은 사회 주의자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富)의 불평등분배(不平等分配)를 꼬짚는다. 그의 웹 사이트는 "부와 소득 불평등 문제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덕적 문제이고, 경제적 문제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정치 문제"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적인 세계관을 배태(胚胎)하며, 이는 사회주의의 기초를 말한다. 사회 주의자들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질 세계이다. 사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칼막스(Karl Marx)는 “변증법적유물론”이라는 개념, 즉 물질 자체에 창조적 힘이 포함되어 있다는 신념을 발명하였다. 이로 인해 마르크스는 창조자란 불필요한 존재로 지구상에서 지워 없어버려야만 하는 존재로 보았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인간의 고통은 물질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발생하며 그 구워(救援)은 물질의 재분배에 의해 달성되는 것으로 본다. 영적(靈的)인 문제에 대한 인정은 전혀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물질이 주어지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어떻게든 잘 해결 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출발한다.

이 세계관은 물질적 세계와 비물질적(非物質的)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확인하는 기독교 세계관과 대립, 모순되며 기독교의 세계관은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의 본질이 바로 영적(靈的)인 것임을 말한다. 성경은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물질이 아니라 죄(罪)이며 그 구원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대신 지불함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심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죄의 이기적속성(利己的屬性) 때문에 부(富)에는 항상 불평등(不平等)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마25)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훌륭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축적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조차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설령 부를 축적 할 수 없더라도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삶의 질(質)은 우리가 가진 어떤 보이는 물질의 량(量)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믿음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2. 사회주의는 미덕(美德)을 처벌(處罰)한다

사회 주의자들은 미덕(美德)에 관계없이 필요에 따라 개인에게 부를 분배하려고 한다. 칼 마르크스 (Karl Marx)는 "각각 자신의 능력(能力)에 따라, 각각 자신의 필요(必要)에 따라" 분배(分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원리에 따른 보상(補償)과 본질적인 결과물(結果物)을 갖도록 디자인하셨다. 사회주의 정부기관이 어떤 도움을 준다고 할 때, 이 창조주의 설계 원리에 의한 상(賞)과 그 결과를 제거해버리고 대항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을 위해 공짜 돈을 지불함으로써 부지런한 사람들을 게을러지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지런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노동과 노력의 열매를 빼앗아 줌으로 소위 평등보상(平等補償)을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가 하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사회주의 주창자였던 마르크스는 평생 동안 많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나 자기 가족, 아내와 자녀를 전혀 부양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s)는 "남자는 그들의 가정사적 삶과 연관된 이유 때문에 삶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성경은 도움을 받는 것 (후원,원조)은 책임(責任)과 뗄 수없는 관계로 묶여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사실상 도움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일하기를 원치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사도 바울은 불신자가 악 한자라는 것을 전제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한자"라고 말했다(딤전3:4,5 : 8, 엡6:4). 또한 교회는 도움를 받아야 하는 과부에 대해, "선한 일로 명성을 얻도록"요구 하였다(딤전 5:10). 따라서 교회는 구제(救濟)를 하더라도 미덕(美德)에 대한 상(償)을 가르쳤고, 일하지 않는 게으른 악(惡)에 대하여 결코 격려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사회주의는 성경 말씀과 정반대이다.

3. 사회주의는 도적질을 옹호 지지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한 소녀의 예를 들며, “큰 피자를 가진 사람이 피자가 없는 친구에게 한 조각만 조금 줄것인가?”라면서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돈이 적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책을 옹호했다. 그리스도인은 당신의 풍요로움을 아무것도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듯이 이 말은 마치 보통 기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오바마는 사람들이 자발적(自發的)으로 자기 재산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지지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마치 정부가 초코파이를 가진 한 사람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만약 어떤 사람이 자동차 3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웃이 만약 자동차가 없다면, 정부(政府)는 자동차 3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한 대를 빼앗아 이웃에게 줄 권리(權利)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경적 세게관이 아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양심도 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을 공개적으로 동조,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부 성경을 바르게 믿지 않는 사회주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실제로 성경도 그렇지 않다고 터무니없는 엉터리 주장을 털어놓는다. 구약과 신약 모두 명명백백하게 사유재산(私有財産)을 확인한다. 우리는 사적 소유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제 8 계명을 따를 수 있겠는가? 또한 개인의 사적인 부(富)가 아니라 그나라, 국가(國家)가 돈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면 성경의 명령대로 자기 재산을 결코 관리 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이 기독교(基督敎)적이 되려면 개인소유권(個人所有權)을 인정하고 보호해야하며, 개인의 양심에 따라 마땅히 자기 소유 자본을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4. 사회주의는 질투(불평, 불만)와 계급 전쟁을 독려한다

사회 주의자들은 부자들을 갑질하는 금수저로 악마화하고 사회의 모든 문제를 비난한다. 한번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자신의 페이스 북 페이지에서, "월스트리트와 그 밖의 곳에서 억만 장자와 기업 지도자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전쟁을 벌이자! 정책과 탐욕으로 미국의 중산층을 파괴하자!"라고 하였다. 여기서 샌더스는 칼 마르크스를 흉내 내고 있다. 칼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일련의 계급투쟁(階級鬪爭)으로 보았고, “지배 계급을 전복시켜야” 라고 주장했다. 이에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부자(富者)들을 강력히 경고하였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언 14:31)

그러나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다른 좌파 운동가들은 불의(不義)의 특정 행위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단순히 부(富)를 소유 한 것 그 자체에대해 비난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표를 몰아 이 제도를 전복 시켜야한다고 부추긴다. 실제로 클린턴은 한 때 미국 경제의 가장 부유 한 1%의 축출 할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부자들이 미국 사회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훔쳐서 이익을 얻지 않는다. 그들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성경은 비록 가난할지라도 “가진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쳔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그리스도인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感謝)하고 불평이 아닌 만족(滿足)하는 공부를 하라고 도전한다.

5. 사회주의는 결혼과 가족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로브시의 폴 켄 고르 교수 (Grove City Professor Paul Kengor)는 자신의 저서인 “굴욕” (“Takedown: From Communists to Progressives, How the Left Has Sabotaged Marriage and Family“)에서 공산주의자로부터 소위 진보주의자까지, 좌파가 결혼과 가족을 파괴한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본질적으로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국가 정부가 가족(家族)을 대체(代替)하는 것이다. 그렇게하면 좌파적사고방식(左派的 思考方式)으로 아이들을 세뇌교육(洗腦敎育)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과 그 종교에 대한 개념을 깔그리 제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의 마르크스와 공동 저자 인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자신이 계획 한 사회가 "단독 가족이 사회의 경제의 단위가되는 것을 멈추는 곳이 될 것"이라고 썼다. 개인적인 가사(家事)는 사회 산업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보살핌과 교육은 사적(私的)인 일이 아니라 공무(公務)가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육아(育兒)에 대해 정부(政府)가 6주 이하의 어린이부터 유아 (세뇌)교육을 제공 할 수 있도록 "유아혁명("Revolution in childcare”)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동성결혼(同姓 結婚)을 자랑스럽게 지지 한다. Kengor는 "공산주의의 트로이 목마"("Communism's Trojan Horse)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결혼의 최종 중단을 요구한다. 사회 주의자들에게 버니(Bernie Sanders)가 묘사 한 것은 유토피아(Utopia,이상향 地上天國)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디스토피아(Dystopia, 암울한미래 역유토피아)일뿐이다. 사회주의는 성경의 예수그리스도가 절대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참그리스도인이 그곳에 설 자리가 있을수 없다. 이것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반성경적, 반기독, 반가정, 반경제 사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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