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화(전국입양가족연대 수석대표)
오창화(전국입양가족연대 수석대표)

얼마 전에 네이버에서 양부모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사전에 뜬 예문은 아무리 양부모가 극진하다 해도 친부모 하나와 양부모 다섯을 바꿀 수 없었다.’라고 되어 있어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양부모의 사랑이 생부모의 사랑에 절대 미치지 못할 거라는 편견과 왜곡이 보편적 인식으로 작동하는 나라다. 친생자녀와 입양 자녀를 함께 키우는 입양 가족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차별하는 가정을 보지 못했기에, 이와 같은 세상의 편견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아마도 그건 가슴으로 낳은 우리 자녀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당당하게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인식의 문제이다.

어느 사회복지사가 필자에게 아주 흥미로운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미국, 중미, 아프리카, 일본, 한국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생모 생부와 분리되는 아동이 항상 1% 정도라는 통계였다. 물론 기아와 전쟁 등이 있으면 더 늘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서 원가정과 분리되어 자라는 아이들은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분리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부모와 분리된 요보호아동이 가정에서 자라지 않고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비율이 무려 60%로 세계 최고였다. 또한 시설에서 머무르는 기간도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대개의 아동심리학자들은, 아동이 시설에서 자라면 그들의 삶에 끼치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력 때문에 시설에서의 단기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 미국의 경우 1년 미만으로 보호하는 임시 보호 시설 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전체 요보호 아동 중 60% 아동이 평균 10년에 가까운 시기를 보육시설에서 보내고 있다. 시설 퇴소인이 제게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은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아동을 위한 감옥에 갇혀서 영유아기에서 청소년기까지를 오로지 시설에 갇혀서 보내야 했다며, 그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고통스럽게 말했다. 그가 말한 아동 감옥이라는 표현이 너무 과한 표현이라고 제가 말하자, 그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이 밥 먹고, 같은 생활을 하다 같은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그래서 개인의 공간과 삶이 전혀 없이 자유가 배제된 고아원 공동체 생활이 대체 성인 감옥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필자는 그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0년쯤에 실시했던 보육시설 퇴소인 실태조사에 서울 근교 약 30여 곳의 18세 여성 퇴소인들 60%의 첫 번째 주거지가 강남 3구였다고 한다. 당시 자립지원금 200만 원을 가지고 강남 3구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없었기에, 그들이 대체로 유흥업소에서 일할 거라는 분석이 있었다. 또한 서울 근교 4곳의 교도소 수감자 중 보육시설 퇴소인 비율이 절반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시 시설에서 퇴소한 청년들의 자살 시도율은 같은 나이의 일반인에 비해서 19배였고, 가정을 이루며 살 비율이 겨우 7%였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는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부모를 찾는 방송을 가끔 접하게 된다. 그들의 외국에서의 삶이 어려웠던 내용도 부각이 되고, 그들이 자신의 생모를 그리워하는 것에 함께 눈물 흘리며 안타까워한다. 어떤 분은 자신의 생모를 만나서 함께 끌어안고 기뻐 울고 어떤 분은 생모가 만나기를 거부하여 양부모가 있는 자신이 자란 나라로 쓸쓸히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해외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는 온 국민과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지만, 18만 해외입양인보다 4배가 더 많은 70만의 보육시설 퇴소인들의 부모 찾기에는 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왜 우리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해외입양인들에게는 그토록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가지면서, 정말로 외롭게 자랐고 사회에 나와서도 외로운 보육시설 퇴소인들의 삶에는 이토록 관심이 없을까?

심지어 많은 시설 퇴소인들은 사회에 나와서 당하는 차별과 편견으로 자신의 출신을 철저히 숨기면서 살아야 한다. 필자가 아는 60세가 넘으신 여성분은 당신이 50세까지 남편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폭행을 젊어서부터 당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집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고아원 출신이라는 낙인으로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 차별과 편견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매년 약 3천 명의 시설 퇴소인들 이 사회로 나온다. 옛날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월 30만 원의 용돈도 지급되고, LH공사를 통해서 전세자금도 대출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의 삶을 주도적으로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방법을 시설에서 경험하지 못했다.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얻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그저 오락과 값싼 유흥에 빠지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내상이 깊이 각인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주도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기 힘겨워하는 게 시설 퇴소인 들의 현실이다.

Photo by Jude Beck on Unsplash
Photo by Jude Beck on Unsplash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 반복해서 부탁하고 명령하는 것은, 고아와 과부 즉 미혼모를 돌보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육시설에는 약 3만 명의 아동들이 부모와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8만 개가 넘는다고 하며, 천만 명의 성도 즉 예수님 보혈의 값으로 하나님께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다. 250만 크리스천 가정이 있다고 가정하면 100가정 중 한 가정이 시설의 아동을 입양하고, 나머지 99가정이 그 한 가정을 후원하고 지원한다면 시설에서 자랄 아이는 단 한 명도 없게 된다. 결코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늘나라 백성이 이 땅에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 옛날 로마시대 초대교회는 종교탄압이 심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보안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려면 무려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일대일로 말씀을 배우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삶의 모습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증명해야만 드디어 예배 참석이 가능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 만연했던 영아유기 문제에 관해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수많은 아기들을 구해서 자녀로 양육하였기에 일반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지금 세상 가운데 손가락질을 받는 대한민국 교회가 해야 할 믿음의 순종과 반응은 어려움에 처한 고아와 미혼모와 미혼부를 돌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새로운 부흥이 있는 줄로 믿는다. 그렇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며, 고아와 미혼모분들과 함께 기쁨의 파티가 우리 삶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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