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목사(열방교회 담임, Th. D.) 사진@코닷 자료실
안병만 목사(열방교회 담임, Th. D.) 사진@코닷 자료실

지난 3년 동안 몇몇 목회자가 주축이 되어 고신 포럼을 개최했다. 2021325~26일 경주의 한 호텔에서 예배에서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 책자를 꼼꼼히 읽으면서 몇 가지를 지적해 보려고 한다.

첫째, 고신이란 이름으로 포럼을 해야 하는가? ‘고신은 고신교회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고유명사이면서 고신교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항구적으로 사용되는 교단 명칭이다. 교단 총회가 그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 포럼을 주도하는 몇몇 목사가 고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총회의 모든 목회자가 따라야 하는 지침을 내놓듯이, 그 내용을 책자로 만들어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배포하는 일은 너무나 무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사실 고신이란 이름을 붙여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총회의 동의와 허락을 받는 것이 행정적인 절차이다. 아니면 적어도 총회 임원회의 승인을 받아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동의나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유명사인 고신이라는 이름 자체를 사용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이며 법에도 어긋난다. 이 일에 대해서 총회 앞에 사과해야 하고 다시는 그 이름을 총회의 승인 없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회 임원회에서도 이러한 일이 공개적으로 벌어지면 당사자들을 불러서 시정을 촉구하고 교단지에 사과문을 내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몇 년 전에 고신 몰이라는 이름으로 농촌과 도시교회를 연결하여 유통 마진을 없애고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홈페이지까지 열었다가 총회에서 따끔한 질책을 받고 중단한 사례가 있다.

고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온라인 몰이 조금이라도 성도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 고신 총회 전체에 먹칠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 목적과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결국 동의를 얻지 못하고 접게 되었다. 여타의 좋은 이름을 가지고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은 누구나 어떤 그룹에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고신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몇몇 사람들의 신학과 목회의 방법론을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강사 선임은 문제가 없었는가? 고신의 신앙과 신학의 고유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다. 하지만 그 정신(개혁주의 신학)을 목회 현장에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성과 균형을 인정해야 한다. 꼭 자기가 목회 현장에서 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주장하며, 다른 목회자의 사역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단 한 번의 답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동은 자신이 총회의 대표나 심지어는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의 극치가 아닐까? 오늘 우리의 목회 현장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위기의 정점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지향적인 목회 패러다임만을 가지고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방법이다. 혹 그러한 방법이 먹혀드는 현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목회 현장에 그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 아닐까?

한국개혁신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몇 년 전 서울 서빙고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에서 '한국개혁신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몇 년 지난 이야기지만, 개혁신학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뜻깊은 학술대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날 '21세기 한국개혁신학의 진로 -열린 보수주의로서의 한국개혁신학'을 제목으로 기조 강연한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개인 내지 교단만이 온전한 교리와 신학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주의적 오만에 불과하다""성경은 절대적이나 그 외 인간의 종교회의나 교단이 결정한 교리와 규범은 절대적일 수 없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는 교리적 상대주의 내지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의 원리에 입각해 원리적인 면에서 성경을 가장 잘 해석해 주는 규범적이고 헌신할 수 있는 교리와 신학이 있다고 믿는다""그것이 열린 보수주의로서의 정통적 개혁사상"이라고 했다. 김영한 박사는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선 안 된다.”우리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중용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그 중용이란 교회친화적 신학이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사도와 교부, 종교개혁의 전통을 계승한 정통신학"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은선 박사(안양대 교회사)'한국개혁신학회 20년사' 라는 주제강연을 했다. 그는 "한국개혁신학회는 성경의 무오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통주의 노선에 서되, 근본주의나 세대주의가 가지는 교리적 폐쇄성이나 협소주의를 극복하는 열린 자세를 유지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개혁신학의 향후 과제에 대해서 이 박사는 "포스트모던의 새로운 문화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교회의 건전한 정체성을 지켜나가 건강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에 기초한 신학을 계승하고, 위기의 한국교회를 섬겨 새로운 도약을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우리는 두 신학자의 주장과 도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신포럼의 어느 강의자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지만(그 강사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함), 그 강사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다. 그 이유는 편협된 신학에 집착하고 목회 현장에 대한 무지와 교리적 폐쇄성에 사로잡혀 현미경식 관점만 고집하고 거시적(Macroscopic, 巨視的) 관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목회자는 숲을 보는 관점으로 성경의 정신과 개혁주의 신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다양한 목회 방법론을 적용하여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야 할 것이다.

셋째, 교단을 정치화하려는 의도는 없는가? 필자만 그러한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주제와 그 내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에서 합리적 의심을 하게 했다. 예배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었는가 그 내용을 살펴보니 첫 강의만 조금 주제를 터치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의식 있는 목회자들이 정치적 모임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교단 총회의 총회장이나 이사 그리고 각 위원회의 장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세몰이를 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00, 00파 하면서 자기편을 만들어 정치야욕에 이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쪽지로 화이트리스트(whitelist)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만약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면 교단의 큰 병폐임이 분명하다. 포럼과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름과 모임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기가 의도하는 바를 많은 사람에게 알림으로 자기 편을 만드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지만, 대다수 침묵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포럼을 주도하는 사람과 후원하는 교회 목회자 중에는 순수한 동기로 협력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혹 그 가운데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꼴불견이다.

고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순성 교수의 일성을 모두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개혁주의, 정통 신학을 앵무새처럼 외친다고 고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개혁주의 정통 신학을 말하는 자가 없어서 한국교회가 이 모양인가? 신학을 논하기 전에 먼저 삶이 따라야 한다.” 김순성 교수는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겉으로 바른 신학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그 모임이 정치화되고 교권과 결탁하여 교단 신학자들을 향해 신학 사상검증 운운하는 순간 이 땅에 고신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고 했다.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라는 말이 있다. 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처음에는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이 되어버려 이후 판단에 왜곡 또는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다. 처음 각인된 것에 고착되어 새로운 것을 수용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수정하는 정박효과는 이미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다.

우리에게도 정박효과는 유효하다. 교단의 현실을 보면 작은 것 하나를 바꾸기란 절대 쉽지 않다. 바로 정박효과 때문이다. 이미 항해를 멈추고 정박한 그 자리에서 수혜를 누리는 세력 때문이다.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세몰이와 금권선거는 더 이상 항구를 벗어나 대해로 나아가지 못하게 스스로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 변화와 개혁에는 안중에도 없는 소아적인 정치만 난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단의 정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읽어내는 소수의 정치꾼에 의해 교단 분위기가 좌지우지되는 서글픈 현실이다.

총회가 엄중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도 다가오고 있다. 물밑에서 여러 가지 미명으로 더러운 정치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속적인 정치노름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는데 이것을 걷어내지 못하면 교단과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고신교단마저 이러한 속 보이는 저급하고 얄팍한 정치를 한다면 정말 희망이 없다.

변화와 개혁은 제도 개선만으로 불가능하다. 인적 쇄신이 동반되어야 완성된다. ‘고신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모이려면 먼저 총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목회자가 공감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포럼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른 생각과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성도들의 헌금을 사용할 때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가는 교단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기고자의 '나의 주장'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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