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어제 종일 우리나라의 뉴스와 SNS를 달군 한 사건이 있습니다. 일명 황제 의전논란을 빚은 강성국 법무부 차관 브리핑 사건입니다.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떨어지자 아프간에서 우리나라를 조력한 사람들과 그 가족 등 377명이 국내에 들어와서 진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하는 것을 환영하는 행사 시간에 하필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브리핑하는 법무부 차관을 도와주기 위해서 법무부 직원이 뒤에서 우산을 들어 주었는데 그 자세가 비가 쏟아지는 아스팔트에 두 무릎을 꿇은 채 10분 넘게 우산을 쳐들고 벌 받는 모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뉴스를 통해 공개되자 전 국민이 동시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매체들뿐만 아니라 SNS와 유튜버들은 이 뉴스를 한없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더욱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켰습니다. 우리 집 식탁에서도 예외 없이 이 사건이 반찬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자마자 탁 떠오르는 사진이 한 장 있는데 그것은 2014년 팽목항에서 사발면 하나 먹고 황제 라면이라는 구설에 시달리다가 결국 경질당한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의 모습입니다. 서남수 전 장관은 지금, 일명 황제 의전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모두가 알고, 흥분하고 화내며 비난하는 이 사건 속에 적잖은 교훈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황제 의전 사건과 2014년에 있었던 일명 황제 라면 사건이 머릿속에서 중첩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사건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는, 사건의 발단은 엉뚱한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사가 강성국 차관을 비난하고 뉴스에 달린 댓글 대부분도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청도 한 지방 신문의 기자가 자칫 강성국 차관을 두둔한다고 오해받을 만한 기사를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자는 자신이 지방 신문 기자라서 평소 법무부 분위기를 전혀 모르며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다고 전제하면서 현장에서 지켜본 사실을 진솔하게 묘사했습니다.

그 기자에 의하면, 당시 직원을 무릎 꿇린 것은 강 차관의 지시가 아니라 기자들의 요구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 직원은 차관의 옆에서 우산을 들어주었는데 기자들이 사진이 잘 나오도록 자세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직원이 차관의 뒤에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본 전체 동영상 장면과 비교해 보면 이 기자의 설명이 조금은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가 나오자 이 장면이 발생한 원인 제공자가 기자들인데 또 그 사진으로 고발성 기사를 쓴 것도 기자들이라는 비난 댓글도 올라온 것을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황제 라면 장면과 쌍둥이입니다. 서남수 장관이 사발면을 먹을 때, 맞은 편에 박준영 당시 전남지사가 있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준영 지사의 그릇은 이미 비어 있고 서남수 장관은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비교해서 지사가 먼저 먹으면서 장관에게 먹자고 권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오로지 서 전 장관의 모습만 담아서 기사를 내보냈고 장관은 큰 곤욕을 치렀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황제 라면은 지사가 먼저 먹으면서 같이 먹자고 권한 것이 발단이고, 황제 의전은 기자들이 요구해서 생겨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엄청난 사건의 발단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둘째는, 군중은 사실성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남수 전 장관의 황제 라면 사건 때도 나는 개인적으로, 국민들이 지나치게 충동적이고 가학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발면 하나 먹었는데, 하다못해 라면에 계란도 하나 넣지 않았는데 어떻게 황제 라면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그것을 혼자 먹은 것도 아니고 먼저 먹던 전남지사의 권유에 분위기를 맞춰준 것인데 혼자서 속칭 독박을 쓴 장관이 안쓰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기에 따라서 그 사건은 장관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포장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장관이 밖에 나가서 값나가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얼마나 바쁘면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는가 라고 칭찬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금번 황제 의전 사건도 강 차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한 가지 중요한 것에 집중하면 주변을 일일이 챙길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법무부의 부하 직원이 매우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힐끗 보면서 안쓰럽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얼른 브리핑을 끝낼 테니 잠깐만 고생해 달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문제가 되자 당황해서 본인이 시키지 않았다, 미처 몰랐다 하고 둘러대다가 더 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어쨌든 전체 영상을 보고 지방 신문의 기자의 증언을 보니 차관이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것은 비난 받을 만하지만 차관이 시키지 않았음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분노한 국민들은 그때나 지금에나 사실을 정확하게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황제 의전’, ‘황제 라면이런 자극적인 용어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셋째는, 결과는 최고 책임자가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사건의 경위가 어떻든,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지 그 일로 생기는 이익이나 손해는 결국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할 사람, 책임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좀 다른 예로,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사건으로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언제나 최고 책임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갑니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때로는 그 직책을 내려놓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 책임자의 자리는 부러운 자리이면서도 가장 위태로운 자리입니다.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덕이 필요합니다. 브리핑을 멋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무리 심취했더라도, 부하 직원이 양복을 입을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물에 젖은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벌 받는 자세로 우산을 들고 있는 것에 대해 무심한 차관의 인성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이 문제가 되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반응에 더욱 흥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덕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 표현으로는 운()이고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그 순간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는 뻔히 보이지만 당사자는 오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훈수(訓手)는 고수(高手)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일에 책임자이고 그래서 한순간의 판단이 뜻밖의 큰 것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매 순간 주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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