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닷 이취임식 축사 2021.9.26

이성구 목사(코닷 설립준비위원, 이사)
이성구 목사(코닷 설립준비위원, 이사)

고려파 최초의 3대 목사라는 귀한 유산을 받은 저는 어릴 적부터 고려파라는 이름을 들으며 살았고, 부친으로부터 가장 믿음이 좋은 전통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자라면서 보니 한상동 목사님이라는 걸출한 믿음의 사람이 장로교회로부터 쫓겨나 고려신학교를 통해 고신교회를 시작하였고, 송상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놀랍게도 한국교회 절제 운동의 거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영창 선생, 장기려 박사와 같은 분들이 복음병원을 세우고 구제와 치유의 사역을 펼친 역사를 고신교회가 담고 있음을 확인하며 자부심이 넘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신교회는 고려신학교를 통하여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과 신학으로 무장하고, 절제운동을 통하여 신앙의 생활화를 도모하며, 복음병원을 통해 구제와 치유사역을 행하는 매우 아름다운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고신교회의 덩치가 조금씩 커지면서 교회의 핵심에 어두움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신총회 설립 10년이 되는 50년대 말 교회 안에 불협화음이 고조되어 고신신학을 형성한 박윤선 박사가 고신을 떠나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신학의 맥이 끊기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그 골을 메우고자 1960년 급하게 승동측과 합동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3년만인 1962년 고려신학교 존립문제로 승동측에는 합동측이라는 좋은 이름만 남겨주고 결별, 원점으로 회귀하는 부끄러움을 겪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고려신학대학 인가를 둘러싸고 사조 이사(私組 理事)’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때문에 고신교회가 분열되는 수치를 드러내었습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의과대학 설립 문제를 두고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의과대학 입학 부정 사건이 일어나 이사장과 병원장이 구속되는 비극이 발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갈등은 복음병원 원장을 세우는 일을 중심으로 이어져갔고 마침내 박영훈 원장이 65세 정년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에게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정관을 벗어나는 주장이 일어나면서 이사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3명의 이사를 해임해서라도 뜻을 이루려는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 거기다 복음병원 제5병동 건축에 문제가 발생하고 부덕스러운 모습이 노출되고 교회의 중진 목회자들이 깊이 얽혀들면서 고신은 그 본래의 경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1995년 소위 주차장 사건으로 드러낸 부스스하기 짝이 없는 고신의 얼굴은 쭈그러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그해 9월 광주 은광교회에서 제45회 총회가 열릴 때쯤은 어둠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학교법인 안에 있는 제반 문제 처리 전권위원회라는, 이사회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며, 다룰 사안조차 확정되지 않은, 일찍이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는 기상천외한 전권위원회가 출현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전에 전권위원회 구성을 모의하여 만들어진 명단을 담은 쪽지가 발견되어 총회 석상에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파들이 전횡을 막기 위해 급히 모의하여 투표한 한 사람 외에는 전부 그대로 뽑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총회가 아니라 속()총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19989월 울산시민교회에서 열린 제48회 고신 총회에서는 어둠의 본산 중의 하나였던 김해복음병원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용지재단과 학교법인 고려학원을 통합하자는 안건이 제출되었습니다. 그때 김해복음병원의 경영진단을 받은 후 통합하도록 하자40대 소장파 총대였던 본인의 제안이 덜컥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제안의 배경에 깔린 의도가 무엇인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주류세력들의 뜻과는 달리 정상화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듬해 열린 49회 총회는 놀라운 결정을 하기에 이릅니다.

복음병원 문제는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김해복음병원은 조속히 매각하기로 하고 송도복음병원은 경영혁신을 이루도록 하며 그 모든 집행은 학교법인 이사회에 일임하기로 가결하다.

우리는 이제 어두움의 때가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조속히 처리하기로 했지만 꿈쩍도 안 하고 한해를 보냈습니다. 일 년이 지난 다음 2000950회 총회에는 아주 엉뚱한 제안이 들어왔으나 총회는 199949회 총회의 결의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5,6,7호 김해복음병원을 학교법인에 흡수 청원

고신의료재단의 기본 재산인 김해복음병원의 매각 결정은 총회 헌법에 의거 2/3의 결의가 있어야 됨으로 잘못되어진 결정이며, 사실상 매각이 불가능한 현시점에서 학교법인에서 흡수 처리가 최선의 방안임을 감안 하시어 2/3의 결정으로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호 고신의료원 제도폐지 결정의 무효 확인 청원.

규칙을 변경 및 정관 변경 시에는 2/3이상의 결의가 있어야 함(이사회가 변경을 요청한 것과는 경우가 다름)에도 가, 부로 결의한 것은 무효임으로 확인 청원합니다.

11호 임의단체 고소, 고발에 대한 대비책 청원.

임의단체로 인한 교단과 복음병원에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의 보상을 청원합니다.

위와 같은 학교법인 관련청원 건(5,6,7,8,11)은 기각시키기로 가결하다.

고신총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들은 앞선 총회 결정을 완전히 뒤집어엎기 위한 시도를 벌였으나 총회는 제안 전체를 기각시키는 지혜를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어둠에 묻힌 것 같았으나 여전히 한 줄기 빛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들의 뜻은 형식적으로 기각되었으나 방향은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주류세력이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에게 불리해 보이는 김해복음병원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운영해 가고 있었습니다. 총회의 방향을 오랫동안 고민해 온 우리 젊은 총대들 몇몇은 사실 이런 결과를 일찍 예상하였습니다. 힘과 돈을 가진 세력이 쉽게 물러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48회 총회가 끝나고 49회 총회를 앞둔 19996월 말 안성수양관에서 옥한흠 손인웅 전병금 윤희구 목사 등 장로교 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 섬김을 위해 조직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주최 14개 교단 연합 목회자 수련회가 열렸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 고목협(고신정신잇기목회자 협의회)’ 회원 76명은 교단별 모임 시간을 이용하여 고신 총회가 가진 복음병원에 대한 태도를 확실하게 바꿀 수 있도록 마지막 도전을 하기로 결의하고 복음병원 바로 세우기 운동본부(본부장 정주채목사)’를 결성하였습니다. 19963월에 고목협을 결성한 것도 복음병원의 부도덕성, 경영부실등의 문제 때문이었고, 김해복음병원 청산이라는 총회 결의를 이끌어낸 것도 고목협회원들이 노력한 결과였으나 여전히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절망감에 젖어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마지막 노력을 경주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두 차례의 총회를 통해 김해복음병원 청산이라는 물리적 결의는 이끌어내었지만, 끝내 청산되지 않은 영적 어두움의 세력이 빚어낸 1,050억 원에 달하는 부채는 마침내 고신교회를 삼켜버렸습니다. 2003년의 일이었습니다. 총회는 혼란에 빠졌고 부도에 따른 관선이사 파송에 대한 비난은 일그러진 경영진, 그동안 단물을 빨아간 교단 인사들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복음병원을 바르게 세우자고 운동을 벌인 고목협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으며 사명을 다한 것으로 판단한 고목협은 해체를 선언하였고, 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치적 도전으로는 교권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우리 몇 사람은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당시에 막 열리기 시작한 인터넷 언론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코람데오 닷컴은 탄생하였습니다.

정주채 목사를 비롯한 장희종 박은조 안용운 이성구 오병욱 목사 등이 해체한 고목협대신 그래도 우리의 개혁신학적 생각들을 논의할 장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미래교회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논의과정을 알릴 매체를 만들기로 하고 코람데오닷컴 kscoramdeo.com”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초기에 방향을 잘 잡지 못하여 허둥대던 가운데 천헌옥 목사가 편집장으로 부임하면서 코닷은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주도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걷어내고 성경적인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오래전 가정교회 논쟁의 경우처럼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면서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축하는 본래 외부 사람이 하여야 진정성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후배들의 헌신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고며 살아가는 상황이라 저도 축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합니다. 생각보다 길게 역사를 살폈고 이제 몇 가지 축하를 하고자 합니다.

1. 작은 시작이었으나 큰 울림을 주고 있음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천헌옥 목사가 뜻이 있어 목회를 접고 인천으로 올라왔으나 하나님이 주신 남다른 재능을 묻어둘 수 없음을 알고 한 달 활동비 단돈 50만 원을 주면서 그에게 맡기므로 시작된 코닷이 이제는 어엿한 정식 인터넷 신문이 되고 널리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문으로 성장하였으니 감사하고 축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작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아름다운 결과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2. 후원교회와 후원자들이 함께하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축하합니다.

별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향상교회를 비롯한 몇몇 교회들이 후원을 시작하고 권봉도, 조득정 최영석 김영수 장로 등 개인들이 꾸준히 협력하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믿고 헌신해 주신 여러 교회와 개인들에게 감사하며 기대에 맞는 결실을 보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3. 지속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사역해 온 것을 축하합니다.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15년 이상 계속 진행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축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세대가 이어지게 됨을 축하합니다.

몇 사람이 굳세게 마음을 먹는다고 일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마음먹은 사람들만 열심을 낸다고 일이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를 책임질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김낙춘 안병만 목사 등이 합류하고 그 뒤를 새롭게 이어가는 분들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이번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가 일을 맡아갈 수 있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5. 코닷의 지경을 지속적으로 넓혀가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이제 코닷은 고신 총회에 그 영향력이 머무는 매체가 아닙니다. 천헌옥 목사가 편집장을 맡으면서 많은 교계 신문들, 잡지들과 기사를 공유해 왔고, 고신 뿐만 아니라 널리 일반 교계로 지경을 넓혔으며 지금도 선교지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읽고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축하드립니다.

신학도 흔들리고, 교회도 흔들리며, 개인의 신앙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때에 실력을 갖춘 발행인 김대진 목사와 운영위원장 이세령 목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지켜보며 할 말을 감당하는 정주채 이사장께서 마음을 같이 함으로써 코닷이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을 토대로 바른 교회를 세워는 일에 쓰임 받을 것을 믿고 축하를 드립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절 더러 욕을 많이 들은 사람이라고 하고, 오늘 참석해 주신 정경두 국방 장관도 재임 중에 제법 욕을 들은 분이신데, 가능하면 코닷이 좀 더 교회와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도록 자기희생을 더해가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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