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이슬람” 책 분석

현직교사, 교과서에 이슬람 내용 많아..!

이만석 목사
이만석 목사

 

며칠 전 어떤 학부모가 문자를 보내왔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세상을 바꾼 이슬람(이희수, 세상을 바꾼 이슬람,다른:2015)”이라는 책을 학교 도서실에 비치해서 학생들이 읽게 하려고 하는데 그 내용이 학생들이 읽어도 좋은 내용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먼저 그 책의 저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한양대학교의 이모 교수라는 것이었다. 저자를 보니 이는 읽어보나 마나 이슬람 미화용 홍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매스컴의 인터뷰에서 “이슬람의 대중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고 했던 사람이다.(오마이뉴스 2006.1.9.)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양심과 윤리의식을 초월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숨기려 한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이슬람 신자냐고 묻자 “자신은 유교적 가문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서 “이슬람은 내겐 신앙이 아니라 문화적 이해 차원의 문제다”고 말했다.(조선일보 2001.10.19) 그러나 2007년 기독교방송의 대담 프로에서는 “자신은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유교와 카톨릭이라는 두 종교의 영향 아래서 자랐고 중 3때는 절에서 학교를 다녀 금강경과 천수경은 웬만큼 다 외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인터뷰가 이루어지기 수십 년 전부터 그는 확실한 무슬림이었다.

 

1981년 5월2일 동아일보의 아랍어 무료강좌 광고에 보면 “이슬람청년회 회장 이희수”라고 공개하고 있다. 95년 11월18일 동아일보에 보면 한양대 이희수 교수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사무총장의 직책을 가지고 이슬람과 평화라는 주제로 한국이슬람 전파 40주년 기념세미나 강사로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이슬람신자가 아닌 사람이 이슬람 청년회장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이슬람중앙회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는 당연히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정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옳겠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고 본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슬람에서는 타끼야(Taqiya)라는 교리가 있다. 이 교리의 취지는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는 거짓을 허용하는 것”이었는데,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일단 해 놓고 “그때는 내가 위험하다고 느꼈다”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꾸란 2:225절에 보면 “너희의 맹세 중 비의도적인 것은 책망치 않으시나 진심으로 한 것은 책망하신다”고 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습관적으로 맹세를 잘한다. 아무리 맹세를 해도 속으로 “이것은 진심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알라께서 용서하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최고의 이슬람 학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주 이슬람 사원의 한국 국적을 가진 모 이맘은 “이슬람에서는 한 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이혼이 안 된다”고 전주 MBC방송의 “시선집중”이라는 프로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사실은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이혼은 두 번까지(꾸란2:229)”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심지어는 꾸란에는 한 장 전체가 이혼문제를 다루는 “이혼 장(꾸란65장)”도 있는데도 이렇게 확실한 거짓말을 자신 있게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세상을 바꾼 이슬람”의 몇 쪽을 읽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확실한 거짓말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부분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지극히 미화시켜 소개하고 있는데 그렇게 독자들을 속여 놓고 결론적으로 “이러한 무함마드의 진면목을 이해하지 않고는 오늘날 이슬람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충고하고 있다.(22쪽) 그 책에 보면 우리가 무함마드를 존경해야 하는 이유 여섯 가지를 들었는데 모두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첫째는 무함마드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전례는 이슬람 사회에서 유산 대부분을 국가와 가난한 이웃에게 환원하고 최대 3분의 1 이하만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 상속의 전통이 되었다”고 주장했다.(21쪽) 그러나 무함마드 역시 자신의 딸 화티마에게 상속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들과의 평화협정의 대가로 화닥(Fadak)이라는 마을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는데 무함마드는 이를 자신의 딸 화티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화티마의 소유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친족들은 행정적으로 구제(자카트)를 받지 말고 거기서 나는 소산으로 생계를 충당하라고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죽자 첫째 칼리프로 등극한 아부 바크르는 파티마에게 화닥을 빼앗았다. 아부 바크르의 주장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 자신의 가족들에게 유산을 상속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말했단다. 물론 이는 아무도 함께 들은 사람이 없는 혼자만의 주장이었다. 권력을 잡은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딸 화티마에게 상속의 증인을 요구했다. 화티마는 자신의 남편 알리(Ali)와 무함마드의 가사 일을 돕는 움 아이만(Umm Aiman)이 함께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부 바크르는 그 증인들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무함마드의 딸 화티마는 자신의 억울함을 공개 연설을 통해 무슬림들에게 밝혔고 이에 성질 급한 우마르는 아부 바크르의 명을 받아 화티마의 집을 습격하여 아부 바크르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일행은 화티마를 구타해서 멍들게 했고 이 충격으로 그녀는 낙태를 하게 되었고 결국 무함마드 사후 6개월 후에 숨을 거두었는데 그녀는 유언을 통해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는 자신의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반면 화티마 외의 다른 부인들은 많은 유산을 상속 받았다. 특히 무함마드의 어린 아내였던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는 메디나의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으며 바레인에서도 재산을 받았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제외하면 가장 권위 있는 자료로 알려진 부카리의 하디스에도 아이샤가 무함마드에게 땅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Sahih Bukhari Volume 3, Book 39, Number 521) 그러므로 무함마드가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든지 이슬람 사회에서 유산 대부분을 국가와 가난한 이웃에게 환원하고 최대 3분의 1 이하만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 상속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거짓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교의 심장, 모스크 전경. 사진출처_뉴스파워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교의 심장, 모스크 전경. 사진출처_뉴스파워

둘째: 무함마드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으며 혈통보다는 능력과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말이다. 무함마드는 마지막 순례를 마친 후 귀환 길에서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가디르 쿰(Ghadir khumm)이라는 연못가에서 연설을 했다. 거기서 모였던 동행자들을 앞에서 자신의 사위이자 조카였던 알리를 후계자로 임명했다. 무함마드는 누구든지 나를 지도자(Mawla)로 생각하는 사람은 알리(Ali ibn Abi Talib)를 지도자(Mawla)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았고 알리는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죽고 나서 후계자를 선정하는 데서는 무함마드의 혈통(banu Hashim)과 종족이 모두 빠지고 당사자 알리도 없는 가운데서 소수의 무리들에 의해서 아부 바크르(Abu Bakr)가 칼리프(무함마드의 후계자이며 모든 무슬림들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가디르 쿰 연설에서 사용했던 지도자(mawla)라는 단어를 ‘친구’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알리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위이며 조카였는데 왜 죽음을 앞둔 마지막 연설 중에 무함마드는 “나도 너희의 친구이며 알리도 너희의 친구”라는 말을 했을까? 지금도 전 세계 시아파 무슬림들은 알리를 후계자로 임명한 “가디르 쿰”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를 지키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이슬람 공동체가 아부 바크르를 따르는 순니파와 알리를 따르는 시야파로 나누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두 번째 주장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셋째: 무함마드는 순수한 인간이었으며 그는 어떠한 기적도 행하지 않았으며 결단코 신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사실 유대인들이 무함마드에게 “당신이 진짜 신의 사도라면 기적을 행해 보라”고 요구하자 대답할 말을 찾던 무함마드는 “기적은 알라께서 행하신다. 나는 오직 경고자일 뿐이다(꾸란29:50)”고 대답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후624년 이후 무함마드는 자신의 세력이 커지자 “나에게 복종하는 것은 곧 알라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나에게 거역한 자는 곧 알라를 거역한 것이라”고 하며 자신을 알라와 동일시 했다.(Sahih al Bukhari 7137) 또한 꾸란에 보면 “진정한 무슬림이란 알라와 그의 사도(무함마드)를 믿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알라를 위한 전쟁)하는 자”라고 하여 자신을 알라와 동일한 믿음의 대상으로 선포했다.(꾸란49:15)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무함마드를 모독하면 “신성모독”이라고 처벌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 무함마드를 알라와 동일한 신의 위치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심지어 이슬람권에서는 “알라(Allah)를 모독하는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넷째: 무함마드는 적에게 관용을 베풀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낮춤의 자세를 보였으며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의 가족은 물론 적의 가족까지 헌신적으로 보살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슬람 초기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시작했을 때는 힘이 없었고 따르는 사람들도 적었기 때문에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라”(꾸란2:256)고 관용적 태도를 보였으나, 주후 622년 메디나로 이주(히즈라)한 후에 18개월 만에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어 권력과 힘이 생기자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는 어디서 발견하든지 그 자리에서 죽이라.”(꾸란9:5)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슬람에 심취하게 되면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더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잔인한 테러를 감행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이 없는 것은 이것이 진정 꾸란과 무함마드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다섯째: 무함마드는 종교적 열정과 온화함을 조화롭게 행동으로 보인 지도자였으며 무함마드는 박해의 진원지인 그의 고향 메카를 설득과 용서를 통해 재정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핍박을 피해 메카를 떠난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이주하여 18개월 만에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어 힘과 권력이 생기자 대상 무역 상단을 공격했고 자신의 고향 메카의 상단도 공격하고 탈취했다. 메카의 상단을 공격한 첫 번째 전투를 바드르(Badr) 전투라고 하는데 거기서 승리를 거두고 탈취물을 나눠주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메카의 군대들과 우후드 전투, 참호전투 등을 통해서 여러 차례 전쟁을 해도 힘으로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메카의 지도자들과 후다이비야(Hudaibiyah)에서 만나 10년간의 평화조약을 맺었다.

 

무함마드 군사들과 메카의 군사들이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0년간의 평화조약을 맺은 후 무함마드가 두 번째 성지 순례를 평화롭게 마치고 메디나로 돌아가자 메카 군사들은 무함마드가 평화조약을 지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10년 평화조약을 맺은 지 18개월 만에 1만 명의 잘 훈련된 군사들을 동원하여 메카를 급습하자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하고 메카군은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무함마드는 카아바 신전을 열고 360개 우상들을 깨뜨려버리고 지금부터 이 신전은 오로지 알라의 신전이라고 외쳤다. 메카를 무혈입성한 무함마드는 자신을 심하게 대적하던 몇 명 외에는 죽이지 않았다. 여기에 설득은 없었다.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여섯째: 무함마드는 여성에 대한 지위와 인식을 혁명적으로 바꾼 이슬람의 페미니스트였으며, 여성을 완전한 인격체로 존중하라고 명했으며, 미래의 어머니인 여성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여성관은 남성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아들보다 딸은 절반만 상속을 받아야 하며(꾸란4:11) 법정에서 남성 한 명의 증언은 여성 두 명의 증언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꾸란2:282) 무함마드는 주변 마을을 점령할 때 무슬림 병사들에게 여성 포로들을 마음대로 성폭행하도록 허락했으며 자신도 전쟁을 통해서 많은 유대인을 죽이고 남편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여인들 중에서 아내들(라이하나(Raihana)와 싸피아(Safiya) 등)을 취하기도 했다.

 

또한 아랍 여인들을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눠주자 병사들은 그 여인들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하고 말이나 무기와 바꾸기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여성 포로들을 팔 때 임신을 하면 제 값을 못 받으니까 무슬림들이 피임을 위해 질외사정을 했었는데,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에게 이에 대해 묻자“그렇게 하지 않는 게 더 좋다. 부활의 날까지 태어나기로 작정 된 자는 다 태어나도록 되어 있느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5, Book 59, Number 4138) 이런 교리를 가르친 무함마드가 여성들을 존중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 책에서 말하는 무함마드를 존경해야 하는 여섯 가지 이유는 모두 사실과 매우 다르다.

 

학자라면 아무리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것일지라도 편향적으로 미화시키지 말고 정직하게 가르쳐야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기관에서는 대중의 학식을 넓히기 위해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나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교과서나 참고도서 등에서 이런 거짓으로 미화된 자료들을 잘 분별해서 배제 시켜야 할 것이다.

※나의 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으로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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