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얼굴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는 현대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동물에게 의존

내가 키우는 애완동물도 함께 천국에 갈까?

모든 피조물에게 동등한 가치, 하지만 도덕률은 인간에게만?

과정신학과 복음주의가 접목된 동물신학, "전통신학은 이단적"이라고 주장

문제는 하나님보다, 동역자보다 동물에게서 더 많은 위로를 느끼는 교인이 늘고 있다는 점

고신 제70회 총회(2020)반려동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 정리를 요청하는 상정안이 올라왔었다. 당시 충청서부노회장 오병욱 목사는 오늘날 교회 내에도 반려동물 성도 수가 상당히 많다. 그로 인해 신앙 교육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의 반려동물에 관한 신앙 교육은 오롯이 목회자 개인에게 맡겨 두었다. 그러나 점점 늘어가는 반려동물 인구(성도)를 생각할 때 교회 안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과 문화로 인해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 갈등이 예견된다. 자칫 교회의 영적 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상정 이유를 설명했다. 오 목사는 이러한 때에 반려동물에 관한 고신총회의 통일된 바른 교육지침을 통해 교회 내의 혼란과 갈등을 방지하고, 바른 가치관을 위해 바른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라고 반려동물에 대한 신학적 정리를 요구했다.

20219월에 열린 제71회 총회에도 애완동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 정리안건이 다시 올라왔다. 71회 총회 신학위원회는 애완동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 정리-직전 총회에서 기각된 건과 유사한 건으로 기각이라고 결정했다. 최근에 일선 목회자가 본사로 전화를 했다.  애완 동물 때문에 교인들이 싸운다고 전했다. 교회 마당에서 떠돌이 애완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냐 마냐?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고 한다. 애완동물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아주 실제적인 문제인데 총회의 결정이 어떻게 되었냐는 문의였다. 그 목회자는 총회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걸로 압니다.’라는 대답에 실망하며 그러면 코닷에서라도 다루어 주세요. 현장 목회자들은 힘듭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코닷은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개혁주의신학 입장에서 본 동물신학 비판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한다, - 편집장 주

 

동물세례 이미지 (출처: 캐나다 한국일보)
동물세례 이미지 (출처: 캐나다 한국일보)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애완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인구는 약 1,448만 명이다. 가구 수로 환산하면 604만 가구이다. 대한민국 인구 10명 중 3명 꼴로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애완동물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는 원인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가 급격히 원자화 됨에 따라 외로움의 경제가 폭발한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친구도 돈을 주고 사는 시대라고 하니 ‘외로움 경제’라는 용어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이웃과 대면할 때라야 외로움이 해소된다. 타인의 얼굴에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대면의 욕망을 억압했다. 대신 인간의 얼굴을 동물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애완동물도 사람과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반려동물’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게 되었다. 애완동물의 가치가 얼마나 사람과 같은지, 우스갯 소리로 서구사회에서는 백인이 흑인을 적어도 자기의 애완견에게 하듯이 대하면 흑인 인권문제는 해결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백인 집의 개가 흑인보다 잘 산다는 오래 전 농담도 오늘날 부분적으로 유효하다. 소수자가 애완동물만큼만 살아도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는데 동물권은 더욱 신장되고 있으니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으로 다가와야 자연스럽다.

동물이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세련된 일일까? 그것이 윤리적일까? 과거에는 동물을 신의 형상으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여전하다. 적잖은 한국인들에게는 돼지가 아직도 지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인도에서 소는 신성하게 여겨진다. 고대 히브리인은 하나님을 송아지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동물과 인격적(?) 사랑을 나누는 동물성애자도 존재한다. 이처럼 동물의 내재적 가치가 인간처럼 높아질 때 그 종착지는 선명하다.

문제는 하나님보다, 동역자보다 동물에게서 더 많은 위로를 느끼는 교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목사님께 자기의 애완동물이 천국에 있는지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동물신학은 내가 키우는 그 동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위한 축복식이나 세례를 주는 교회도 있다. 성경에 입각한 건강한 신학적 관점으로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계 동물권 선언의 날을 맞아 시위하는 한국동물보호연합 관계자들 (사진출처: 뉴스1)
세계 동물권 선언의 날을 맞아 시위하는 한국동물보호연합 관계자들 (사진출처: 뉴스1)

동물신학의 사상적 구조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함을 지적하는 것이 대개 인간의 의와 윤리 안에서만 다루어졌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비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였다. 칸트에게 동물에 대한 잔혹함은 오로지 인간에게 나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었다. 즉 동물에 대한 잔혹함은 다른 인간과 관련하여 윤리학에 매우 유용한 자연적 경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 비인간에 대한 의무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때는 1900년대 후반이다. 그 중심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있다. 싱어는 육식이 다른 종에 대한 억압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75년에 출간 된 그의 대표적인 저서 “동물해방”에 의하면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이어지는 행동이 옳다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기반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이익, 가령 고통받지 않는 것에 대한 이익의 파괴가 비인간의 기본적 이익의 파괴와 다르다고 가정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어 1978년 10월 15일에 파리 유네스코에서 “세계 동물권 선언문”이 공포되었다. 선언문의 핵심은 모든 동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비인간 동물들도 생명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윤리적 판단에서 동물들의 내재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의무라는 칸트적 관점을 기반하지만 동물에게는 도덕적 의무가 적용되지 않고, 그러나 동물의 기본권을 고려하여 윤리적 판단해야 하는 의무가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공리주의적 관점이 합성된 기형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동물권에 대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동물신학의 중심에는 앤드류 린지(Andrew Linzey)가 있다. 린지는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복음과 관련시킨다. 그는 동물을 도구로 보는 전통적인 동물 윤리에 반대하며 동물권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를 요청한다. 린지의 주장은 기존의 “세계 동물권 선언”의 형태에서 복음만 얹은 형태이다. 즉 윤리적 측면 안에서만 다루어진다. 그러나 최근 이슈는 여기에서 신론과 구원론으로까지 확장되어 동물의 구원까지 논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정신학의 영향이 크다.

앤드류 린지, [동물신학의 탐구] (사진출처: 교보문고)
앤드류 린지, [동물신학의 탐구] (사진출처: 교보문고)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에 의해 발전된 과정신학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존재를 '과정'으로 이해하는 신학을 의미한다. 화이트헤드는 세계를 위해 할 일이 없는 신이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항상 이 세계의 창조에 관여하고 있는 신이라는 관념을 채택한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따라서 과정신학 안에서는 하나님이 시간과 관계들과 상관 없이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전통적인 신학적 사고가 성립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는 크지만 피조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은 하나님의 몸이 형체화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범재신론’(panentheism)이라고 한다.

과정신학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은 동등한 신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도 인간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까지도 목적으로 한다. 과정신학과 접목된 동물신학은 하나님은 전적으로 인간에만 전념하신다는 것과 피조물은 단지 인간의 구원 시나리오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전통적인 인간중심적 신관에 특히 저항하고자 한다.

동물신학은 나름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동물신학은 요 3:16에 등장하는 “세상”은 온 우주 만물을 뜻하기 때문에 이 만물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주장한다. 또한 창세기 1장에서 피조물을 만들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 노아의 언약에는 동물들도 포함되는 것(창 9:9-10), 니느웨 왕이 회개를 공포하며 짐승들에게도 굵은 베 옷을 입힐 것을 지시한 것(욘 3:8) 등도 동물신학의 근거로 포함시킨다.

이화여자대학교 조직신학 장윤재 교수는 인간중심적인 “영혼 구원”이 초대교회 이단인 영지주의와 관련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지주의는 요일 4:3에서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이면서 전통적인 신관을 적그리스도의 영에 빗대어 비판했다. 그러나 이것이 정당한 성경적 비판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계속>

이화여대 조직신학 장윤재 교수 (사진출처: 국민일보)
이화여대 조직신학 장윤재 교수 (사진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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