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한국 가요 백년설이 부른 번지 없는 주막이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굿은비 나리는 이 밤도 애절 구려.” 과거 한국에서는 객들이 쉬어 가는 곳을 주막이라 했는데, 이는 술도 마시고 잠도 자는 곳이란 뜻입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집을 떠나 길을 나서면 주막에서 먼저 술을 찾았던 습성이 있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몇백 년도 더 오래전에 한국의 반대편, 스페인에서는 술은 고사하고, 딸랑 봇짐 하나 등에 짊어지고, 구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나서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마다 않고 걸었습니다. 그것도 1천 년의 세월이 훨씬 넘는 동안 말입니다. 그 길이 바로 "순례자의 길"(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길입니다.

세상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 길인데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꼭 걷고 싶은 길이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 이 길을 꼭 걷고 싶어 하시는지 아십니까?

그림/ 김학우 목사
그림/ 김학우 목사

세상의 지성인들,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호걸 영웅들과 가난한 민초들이 함께 천 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닦아 놓았던 카미노 데 산티아고길을 어찌 와 보고 싶지 않겠으며, 어찌 밟아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지천에 깔려 있는 여러 올레 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산티아고의 길은 몇 종류의 길이 있지만, 이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프랑스 남부 국경 마을 생장 피데 포르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마교에서 주장하는 가운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에 이르는 약 800km 순례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지로 선포하면서 순례길은 속죄와 영혼의 평안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세계적인 베스트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산디아고 순례자란 책을 출판한 후 더욱 유명해졌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종교적인 목적보다 명상, 일상에서 벗어난 휴가 등의 목적으로 유럽을 비롯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Camino de Santiago, Spain/ Photo by Damien DUFOUR Photographie on Unsplash
Camino de Santiago, Spain/ Photo by Damien DUFOUR Photographie on Unsplash

더욱이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최고의 약은 길을 걷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과 음식보다 길을 걷기가 더 낫다.”라는 문헌과 책들이 소개되면서 특히 한국인들이 열광하였습니다. 스페인 관광청은 2019년도 기준, 한국인이 세계 9, 아시아 1위로 순례길을 많이 찾았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로마제국은 세계정복을 위해 약 372개 도로, 총연장 약 85Km에 달하는 마차 길과 도로 113개를 속국과 연결시켰습니다. 11세기 십자군 또한 빼앗겼던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약 32Km의 원정길을 만들었습니다. 칭기즈칸은 정복을 위해 유라시아를 거쳐 동유럽에 달하는 17Km의 길을 개척하여, 알렉산더와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가 정복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약 3,320의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반면,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이란 작품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며, 기꺼이 좁은 길을 택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곧 그 길이라 하시면서, 우리 또한 그 길을 걷기를 요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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