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1988, 서울 하계올림픽 공식 주제곡 손에 손잡고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하고 코리아나가 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듬해인 1989년 발트 3, 200여만 명이 무려 620Km나 되는 도로 위에서 실제로 손에 손잡고노래와 함성을 지르며, 인간 띠를 만들어 소련을 굴복시키고 독립한, 믿기지 않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통 발트 3국이라 하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세 나라를 지칭합니다. 발트 3국이 독립하기 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나라였으며, 세 나라 인구 모두를 합쳐도 약 70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국토 면적도 한반도의 4/5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발트 3국은 노른자위와 같은 지정학적인 특성 때문에 강대국들의 쟁탈 대상이 되어 빈번히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중세 이후에 독일,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그리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강대국들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약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1차 대전 직후 세 나라는 잠깐 독립하였지만, 2차 대전 때에 다시금 소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39823, 히틀러와 스탈린이 동유럽의 분할을 전제로 상호불가침 비밀조약을 맺은 후 91일 독일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소련은 이듬해 19406월 발트 3국을 점령하여 소련에 합병시켰습니다.

비록 발트 3국이 소련 치하에 있었지만, 전쟁 후 독소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발트 3국은 1989823, 오후 7, 독일과 러시아가 비밀협약을 맺었던 날로부터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날, 인간 띠를 만들어 총 궐기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인도의 등불 간디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약 384km 인도 해안의 소금 행진을 했던 것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그림/ 김학우 목사
그림/ 김학우 목사

발트 3국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시작하여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연결하는 약 620Km 도로 위에 인간 띠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발트 3국 인구 1/3에 해당하는 약 200여만 명이 인간 띠를 만들어 자유를 달라15분간 외쳤습니다. 소련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하였지만, 발트 3국의 독립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발트 3국의 인간 띠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면서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1989103일 동독이 무너지면서 동서독이 통일되었고, 이어 소련마저도 12월 인민대회에서 독소 비밀 조약문서가 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하므로, 독립의 정당성을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1990311일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820일 에스토니아, 821일에는 라트비아가 각각 독립하였습니다. 반면 소련은 19911226일 영구 해체되었습니다. 한편 발트 3국의 인간 띠는 기네스북에 올랐고, 유네스코 또한 발트 3국의 인간 띠의 가치를 인정, 2009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제하였습니다.

영국총리를 두 차례나 역임한 파머스턴우리에겐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그대로 적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전에 발트 3국을 모질게 괴롭히고 침략했던 독일,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은 거꾸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발트 3국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갖고 있었지만,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은 형제처럼 강했으며, 특히 발트 3국의 인간 띠는 오늘날 자유 평화운동의 모델이 되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소련을 무너뜨리고 오늘의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오직 인간 띠와 노래와 함성으로소련을 무너뜨리고, 독립을 쟁취한 발트 3국의 승리는 마치, 기원전 1,400년 전 여호수아와 병사들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7일간의 행진과 함성으로 승리한 것과 유사하여 21세기 여리고성 전투의 승리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발트 3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일로, 다시금 러시아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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