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는 전원호 목사(코닷 자료실)
설교하는 전원호 목사(코닷 자료실)

좌담회 당시 국기배례 거부 사건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빈곤함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논의될 때에 언급되는 이름이 있었다. 당시 군종장교 후보생이자 동시에 신학대학원생이었던 전원호 라는 이름이었다. 당시 전원호 전도사가 기고했던 글은 교단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다시 꺼내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광주 은광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전원호 목사에게 당시 기고한 글과 연관되어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글을 쓰게 된 배경과 동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당시 제5 영도교회 교육전도사였습니다. 주일 오후 고등부 성경공부 시간에 부산여고 다니던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반에 장로님 딸이 있다. 국기 경례를 거부한다. 그래서 퇴학당하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국기 경례하면 안 된다. 그 때문에 퇴학시키면 퇴학당하면 된다. 주님께서 그 인생을 인도해주실 거다.” 저의 단호한 대답으로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날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국기 경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서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배를 타고 조국을 떠나는 사람이 조국 땅을 바라보며 경례를 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인가?” “개나 인형에게 사람 이름을 붙이고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과 행동으로 감정 표현을 하거나 경례로 인사를 한다면 그건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 개나 인형에게 절하면서 신처럼 섬긴다면 우상숭배가 되겠지만..” 그래서 저는 인격화와 신격화로 나누었습니다. 국기 경례는 국기를 인격화한 것이므로 괜찮고, 국기 배례는 신격화한 것이므로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므로 글의 맨 마지막에 잘못된 것은 질정(叱正)을 바란다고 썼습니다.

 

 

2. 어떤 각오를 가지고 글을 쓰셨는지, 그리고 예상한 반응과 실제 반응은 어떻게 달랐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각오도 하지 않았고 반응에 대한 예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신학적인 해석이나 국가관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숭배냐 아니냐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른 답을 찾고 싶었고,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글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나는 군대에서 두들겨 맞으면서 국기 경례 거부했는데 그러면 그게 허사란 말이냐고 편지로 항의를 해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잘 정리했다.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주장에 대해 말이나 글로 반박하신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제 의견에 동조하지만 겉으로 말은 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대선배 목사님이 글을 한편 쓰시긴 했지만 이론적인 반박이라기보다는 꾸중에 가까운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구와도 대등한 위치에 서서 토론 한 번 못해본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노회는 저를 교육부로 보내서 제 주장을 철회하도록 압박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말씀을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총회 결정 사항이라는 정답을 내어놓고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느꼈던 모욕감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신학교육 계속허락청원건은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요.

 

 

3. 글의 요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관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이기에 국가관에 대한 신학적 논쟁으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글을 썼던 때가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저는 국기 경례 문제를 국가관과 연결시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노회 본회의에서 어떤 목사님이 약간 그런 관점에서 설명하시는 것을 들었던 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단순히 국기 경례가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글의 양도 두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오랜 시간 연구한 글도 아니었습니다. 주일 밤에 집에 돌아와서 단숨에 썼던 글입니다. 글의 제목도 국기 경례 문제 일고(一考)”였으니까 그야말로 짧은 칼럼이었습니다. 국가관이나 신학적 수준을 논할 글이 못됩니다.

글의 요지는 전술한 바와 같이 경례는 인격체를 향한 것이니까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4. 그 당시의 주장과 비교해서 생각의 변화가 있습니까?

저는 고신대학 교련 시간이나 그 외 시간에 국기 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입대해서 훈련받을 때 국기 경례를 하지 않았더니 같이 훈련받던 어느 목사가 왜 경례하지 않느냐고 묻길래 우리 교단 결정 사항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군목이 되어서는 국기 경례 순서가 있는 행사에 참석할 때는 그 직전에 오늘은 한다, 오늘은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가서 그대로 했습니다. 제 자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후로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직접 접할 기회도 없었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국기 경례를 거부한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동질감도 느낍니다. 그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의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셨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저의 주장을 바꿀만한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국기 경례는 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5. 최근에 이 사건을 다시 조명하는 시도의 일환으로서 좌담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시도가 더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주십시오.

제가 코닷의 시도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가 먼지 쌓인 창고에서 보물 하나 꺼내어 닦아 보면서 감동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다른 보물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배와 후배 세대가, 고신과 다른 교단 지도자가 함께 하는 좌담회라든지,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포럼 같은 것을 시도하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로 그치지 말고 거기 담긴 보배로운 신앙정신을 찾아서 시대마다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 좋겠습니다.

 

 

6. 젊은 신학생들이나 목사들은 이 사건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을 젊은 세대가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주었으면 하는지요?

맞습니다. 지금 국기 경례 문제를 끄집어내면 다들 뜬금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신사참배 문제와도 연결점이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우리 교단이 대단히 중요하게 대했던 문제임에는 분명합니다. 어린 학생들은 어른들의 가르침에 따라 국기경례를 거부했습니다. 고난을 예상하면서도 순종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그 역사를 기억하면서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순종의 길은 고난의 길이라는 것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지금의 신학생들이나 목사들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추후에 일어날 문제까지 예상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들의 결정에 순종함으로써 어려움을 겪게 되는 성도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7. 마지막 질문입니다. 고신교단이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면 좋을까요?

지도자들은 결정만 했고, 실제 전투는 어린 학생들이 치러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겪은 어려움의 깊이에 비해서 어른들의 결정과 집행은 너무 얕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국기 경례하면 안 된다는 말만 했을 뿐입니다. 지도자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설득력 있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어야 마땅합니다.

지금 고신교단에는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도 별로 없을 겁니다. 글도 쓰고 어려움도 겪었던 저 같은 사람도 아무 관심없이 수십년을 살아왔으니 다른 분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굳이 이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면 좋을까 질문하신다면 저의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교단이 결정했으니 교단이 마무리지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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