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천상소망노인요양원 고명길 목사
울산 천상소망노인요양원 고명길 목사

이민진의 원작 파친코가 애플TV에서 드디어 8부작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비평가들이 예술성, 우아함, 감동적, 매혹적인 작품이라며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또 하나의 한류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파친코(Pachinko)‘는 예일대 출신 이민진 변호사가 구상부터 탈고까지 장장 30년이 걸렸고, 출간 3년 만에 30개 언어로 번역, 교보문고 외국소설부문 1위였다. 이미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감동과 찬사를 받아 온 작품이다. ‘파친코750여 쪽이나 되는 장편으로 1910년부터 1989년까지 부산 영도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파친코'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놀랍게도 이 책의 배경이 일제 치하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1. '파친코'의 주요 내용

파친코1900년대 초 부산 영도에서 하숙업을 하는 양진이와 언청이 남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선자가 어렸을 때 아빠마저 죽자 모녀는 힘겹게 하숙업으로 살아가는데 백이삭이라는 청년이 일본 가기 전 며칠간 머물겠다고 찾아온다. 일본에 있는 형이 재일한인교회를 소개해서 부목사로 가는 중이었다.

이때 선자는 자갈치 시장에서 만난 재일교포 사업가 고한수에게 속아 임신한 상태였다. 백이삭은 버림받은 이런 선자를 대뜸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 일본 오사카로 향한다.

형 요셉 집에서 두 가족이 함께 살면서 선자는 노아모자수‘(모세)를낳는다. '노아'는 고한수의 아이였지만 이삭과 선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던 중 남편 이삭이 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신사참배 문제로 투옥되고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된다.

선자는 자신들을 위해 빌린 시숙의 사채를 갚기 위해 부산서 고한수에게서 받았던 값비싼 스위스제 시계를 전당포에 판다. 파친코계 대부였던 고한수가 그 시계의 비밀을 알고 이때부터 조용히 선자와 노아를 돕는다. 그러나 선자에게는 오직 백이삭만이 남편이었고, 고한수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와세다대학을 다니던 노아가 자신을 돕는 고한수가 친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그 충격에 학교를 중퇴하고 16년간이나 소식을 끊고 숨어 버린다. 파친코에 취직, 일본인 리사와 결혼해서 잘 살아가던 어느 날 친부 고한수가 자신의 소재를 알고 찾아온다는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서 듣는다. 고한수가 도착하기 전날 권총을 꺼내 자살을 하고 만다. 노아에게는 오직 백이삭만이 자신의 아버지였다.

한편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솔로몬도 일본의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모자수의 파친코사업을 물려받는다.

파친코 홍보 포스터
파친코 홍보 포스터

2. ’파친코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의식 있고 매력적인가를 보여준다.

파친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행성 게임기 이름이다. ’파친코'는 재일한국인이 대우받으며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직업이었다. ‘우연에 맡기는 파친코야말로 필연적 행복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일제 치하 조선인들의 삶에 빗대어 파친코를 책 제목으로 차용했다.

파친코는 그토록 일제 치하에서 고통과 수난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았어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고 올곧게 살아낸 끈질긴 민족임을 곳곳에서 보여 준다. 선자가 고한수를 끝까지 거부하고, 아들 노아마저도 고한수의 방문을 앞두고 자살을 해 버리는 장면에서 한국인의 절개와 올곧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저자의 말대로 한국인들은 비록 비극적 극한 속에서도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희생하며, 얼마나 끈기 있고 매혹적이며 로맨틱하고 영웅적이며 강력한(Powerfull) 서사시 같은 민족인가를 보여 준다.

수많은 세계인이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일본이 얼마나 잔혹하고 차별적인 나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견디어내고 오늘의 영광된 대한민국을 이루어낸 한국인들이 어떤 민족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존경의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일본의 침략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는 파친코이 한 권이면 충분할 정도이다.

 

3. 파친코에 담긴 기독교적 가치와 주옥같은 신앙 이야기들

1) ‘파친코는 목사 가족의 이야기다.

백이삭은 초창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이다. 평양신학교는 주기철, 이약신, 한상동 목사 등이 졸업한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산실이었다. 이삭의 아버지 또한 독실한 기독교 장로였고 애국자였다. 자기 사재를 털어 개척교회를 건축해서 섬길 정도였다. 큰아들 사무엘도 평양신학교를 나온 목사였다. 1919년 기미년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교를 했다. 그래서인지 둘째 형 요셉은 목사가 되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직장생활을 하며 재일교포로 조심스럽게 생활한다.

평양에서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기독교 신앙은 아들 이삭과 이삭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모세), 손자 솔로몬에게까지 이어진다.

 

2) 이삭은 임신한 선자를 고멜로 받아들인다.

임신한 선자를 받아들이는 이삭의 포용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부남과 간통으로 임신까지 한 처녀와 결혼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키 어렵다. 하물며 목사이랴!

그러나 백이삭은 구약성경 호세아서 말씀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선자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사랑하심이면 자신도 선자를 사랑치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기독교 용서의 신앙을 따라 행동하는 목사였다.

 

3) 이삭과 신 목사와의 이성을 초월한 신앙적 대화

이삭/ “선지자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하여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양육하셨죠? 주님께서 자신을 배반하는 백성들을 교훈하시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를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신 목사/ “그렇지 호세아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지

이런 수준 높은 대화들을 통해서 창녀 고멜과 결혼한 호세아 선지자를 자신과 치환시킨 이삭은 선자와의 결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신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한다. 임신한 선자와 결혼하는 백이삭 이야기야말로 간음한 여인을 정죄치 않은 예수님의 사랑과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이 책의 백미이다.

 

4) 이삭은 일본에서 순교의 제물이 된다.

그는 신사참배 반대의 산실 평양신학교 출신이다. 자신의 형 사무엘 목사도 일제에 항거하다 순교했다. 이삭은 가난한 재일한인교회를 섬기면서도 신사참배를 인정치 않았다. 강제적인 신사참배 대열 속에서 사찰로 일하던 중국인 가 주기도문을 암송한 것이 발각되어 와 담임목사와 부목사였던 백이삭도 같이 투옥되고, 결국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순교에 이른다.

파친코는 주인공 선자의 남편 백이삭의 일본에서의 목회와 순교 이야기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다.

 

5) 등장인물들이 전부 성경의 이름을 차용한다.

이름은 부모의 신앙고백이며 그렇게 살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자식들도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이름이 자신의 인격이 되고 신앙이 되고 정체성이 된다.

사무엘’,‘요셉’,‘이삭’ 3형제의 이름은 그 아버지의 신앙고백이었다. 이 이름들 속에는 사무엘처럼 기도하고, 요셉처럼 가족을 살리고, 이삭처럼 제물이 되기를 소망했다. ‘노아모자수’(모세)는 이삭과 선자의 신앙고백이다.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구원과 해방을 그토록 사모했던 신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손자솔로몬도 마찬가지다.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분단된 남북통일과 번영된 조국의 소망을 그 이름 솔로몬에 담았다.

고명길 목사 제공
고명길 목사 제공

6) 남편을 통해 전승된 선자의 아름다운 신앙

소설 내내 선자의 신앙이 겉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마지막 남편의 묘지 앞에서 선자의 맑은 신앙이 확인되며 안도케 된다. 선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이삭은 하나님 곁으로 가야 할 때 진짜 몸()은 천국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므로 남아 있는 육신(죽은 몸)은 어떻게 되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묘지 앞에) 절을 할 필요도 없다. 남편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선자에게는 룻처럼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셨다. 선자도 천국 신앙을 가졌고, 차별적인 일본에서, 동등한 존재인 천왕에게 절할 필요도 없음을 빗대어 고백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남편을 따라 자신도 그렇게 찬양하며 살 것을 천명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가!

'파친코'에 이런 기독교적 신앙과 배경들이 가득한 것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록 저자가 소리높여 기독교를 강조하고 내세우지 않아도 책 곳곳에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과 용서, 인내와 끈기, 충성과 헌신, 가족사랑 이런 주제들을 가득 담고 있다.

 

7)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도 크리스천이다.

작가 이민진은 할아버지가 평양신학교를 나온 목사였다. 작가의 신앙은 작품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이민자의 삶을 묘사한 영화 오스카상에 빛나는 '미나리'도 정이삭 감독의 신앙이 모니카’, ‘’, ‘미국인 교회등을 통해서 잘 표현되었었다. ' 파친코' 역시 저자 이민진의 기독교 신앙이 잘 투영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인 선자의 남편을 목사인 백이삭으로 등장시킨다. 파친코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성장한 환경이 아니면 도무지 쓸 수 없는 책이다.

파친코는 길고 질긴 일제 치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독교 신앙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고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백이삭의 신앙이야말로 작가 이민진이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설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이야기다.

애플TV에서 1천억 원을 들여 8부작으로 방송을 시작한 '파친코'는 한동안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최소한 가족들에게, 교인들에게 파친코의 기독교적인 의미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울산 천상소망노인요양원 고명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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