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또 새삼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고신교회 지도자들의 파벌주의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민망하고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일반사회에서의 당파정치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까지 이런 정치파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이견이 있거나 신학적인 견해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다면 어느 정도 이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특별한 이슈도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영적인 문제들도 없는데 그저 인간적인 친소관계나 호불호에 따라 나뉘어 정치를 한다면 이는 너무나 수준 낮은 타락의 행태가 아니겠는가.

고신은 작은 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벌은 늘 있어왔다. 교단 초기에는 한ㅇㅇ파 송ㅇㅇ파가 있더니, 이어 돼지파” “부곡파가 생겼다. 교단 초기에는 중요한 정책이나 큰 문제들을 두고 의견이 달라서 대립하였다. 예를 들어 신학교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느냐 받지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 신자 간의 소송이 말씀에 합당한 일이냐 아니냐의 등의 일들로 다투었다. 그런데 돼지파나 부곡파는 무슨 문제로 다투고 나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는 나름대로 뭔가를 두고 다투었겠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나 부질없는 분열이고 대립이었지 않았는가 싶다.

그 후 개혁파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기에 고신정신잇기목회자협의회가 생기면서부터다. 당시 비교적 젊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고신의 도덕적 해이와 정치적인 타락을 지적하면서 교단이 초기의 설립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즈음 총회에서 교단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고() 한명동 목사의 권고를 받아 처음으로 교단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원들의 나이는 모두가 40대로 이루어졌는데 이것도 한명동 목사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미래정책연구위원회는 무엇보다 먼저 복음병원 문제를 다루었다. 복음병원의 운영목적이 설립이념에 맞지 않다는 것, 운영을 둘러싸고 계파 간 건건이 대립하는 법인이사회, 병원 안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시위와 소요, 그런 상황에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미래정책연구위원회는, 복음병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신의 미래를 전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많은 목사 장로들이 공감하면서 교단 개혁에 대한 여론은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당시 총회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던 목사 장로들로부터 강한 반감을 사게 되었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그러면서 복음병원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생기고,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총력전을 벌이듯 하여 김해복음병원은 조속히 매각 처리한다는 총회의 결의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당시 주도권을 가진 이사회가 총회결의를 무시하고 이를 이행치 않았다. 그 결과는 복음병원의 부도로 이어졌고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등 고신은 바벨론 유수라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남겼다. “진리의 수호와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내세웠던 교단정신의 붕괴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던 사건이었다.

이를 원통하게 여긴 일부 목사 장로들은 고신정신을 회복하고 발전시키려면 고신정신잇기목회자협의회와 함께 더 구체적이고 영구적인 활동기관이 필요하다는데 마음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론의 광장으로서의 미래교회포럼과 언론사로 코람데오닷컴사를 창립하였다. 두 단체의 창립목적은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과 갱신이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수면 아래서는 계파정치가 계속되었다. 앞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과 연관되면서 소위 개혁파와 보수파가 나누어졌고 역시 누가 총회의 주도권을 잡느냐는 문제를 두고 대립하였다. 긍정적이고 영적인 내용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저급한 계파정치 놀음이었다.

계파정치의 내용은 주로 누가 총회장이 되느냐는 것이 중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명예와 권세에 대한 욕망의 발로이다. 그래서 총회가 가까워지면 임원선거에 모두 마음이 쏠리고 선거운동은 암암리에 그러나 사실상 노골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소위 계파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총회 임원회나 이사회에 등에 자기 사람들을 세우려고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선거운동을 하였다. 이런 의미 없는 저급한 계파정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년 어간에는 그 계파의 수장들이 은퇴하면서 계파정치가 조금은 잠잠해지는 것 같은 기미가 보이더니 근년에 와서 다시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학교법인 이사회가 고신대학교 총장을 선출하려고 4차까지 회의를 소집하였으나 이것이 무산되면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금도 교단 안에 개혁파와 보수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파는 지금 무슨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개혁해야 하겠다는 것인지 드러난 게 없다. 보수파로 불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보수하겠다는 것인가?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내용은 무엇인가? 대관절 보수파와 개혁파가 무엇이 다른가를 묻고 싶다. 신학인가? 이념인가? 감정인가? 우리가 보기엔 무슨 의미를 가진 개혁파도 보수파도 없다.

특별히 지금 대학들은 이미 닥쳐온 인구절벽 앞에 서서 이를 어떻게 돌파하고 살아남느냐 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고신총회의 지도부는 신대원과 대학교 그리고 복음병원을 두고 무슨 노력을 하며 기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대학이나 병원이나 이를 맡은 사람들 - 개혁파든 보수파든 - 이 무슨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작 중요한 일들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저 인간적인 호불호를 따라 나뉘어서 대립하느라 되는 일이 없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한심한 일인가? 과연 고신의 미래는 무엇일까?

교회가 말씀에 합당한 이유 없이 서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다투는 것은 죄악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드린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에서 가장 큰 제목은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b,21,22)였다. 이 주님의 기도 앞에서 서로 각자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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