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석의 절제 운동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202262410:30분 광주은광교회에서 2022 미포 2차 광주 포럼이 열렸다. 주제는 고신 70주년과 교회 정치였다. 2022년 올해가 고신 총회 70주년이기 때문에 미래교회포럼은 고신교회를 미래지향적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1차 포럼에서 고신 70주년과 신학교육이란 주제로 대구샘물교회에서 모였다. 목사 후보생이 격감하는 현실에서 신학교육의 과거와 현주소를 살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였다. 교회를 먹일 말씀의 봉사자를 이제는 교회가 길러 보내야 한다는 엄숙한 명령을 들었다.

2022 미포 2차 광주 포럼이 열린 광주은광교회 비전홀
2022 미포 2차 광주 포럼이 열린 광주은광교회 비전홀

2차 포럼은 최근 작년 총회와 올해 총장 선임이 육 개월간 지연되는 과정에서 노정되고 있는 교회 정치력의 부재와 정치 계파들의 갈등 양상의 현실을 짚어보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였다.

먼저 이상규 교수의 송상석 목사의 유산과 고신교회라는 주제 강의가 있었다. 한상동 목사와 더불어 고신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인물이 송상석 목사이다. 송상석 목사는 고신에서 면직까지 되는 일을 겪었고, 또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측면들이 있다고 하면서 시작하였다. 역사적 평가는 사후에 일어난다. 그 시대의 평가와 사후의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송상석 목사에 대한 사실이 아닌 조작된 악의성 소문들이 많이 있다. 한 사람은 역사 속에서 공과를 모두 가지고 있다.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송상석이 믿기 전에 경찰로서 2년 못 되게 복무하다가 23세에 욕지도의 원량학교 교원으로 부임하고 강사영 영수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후 통영진명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같은 교사인 김난출과 혼인을 한다. 김난출은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래서 후일 독립유공자 표창을 받는다. 송상석은 경남 YMCA운동을 하면서 절제 운동에 투신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목사가 되기로 다짐하고 평양신학교 29회 졸업을 한다. 1932년에는 조선기독교절제운동회를 조직하여 총무로 봉사하였다. 1920-30년대의 한국기독교회의 대표적인 사회운동이었다. 절제 운동을 복음화 방식의 일환으로 이해했다. 금주와 금연을 중심으로 운동하면서 1938년 미성년 금주 금연법이 제정되도록 했다.

절제 운동을 통일 공과에 게재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예수교장로회 50주년 역사 화보를 편찬하였다.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다. 또한 평양의 신광교회에서 이약신 목사와 동사 사역을 하면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도 헌신을 하였다. 반대운동의 결과 평양 감옥에서 육 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신사참배와 관련해서 목사직을 퇴임하고 은둔하며 지냈다. 해방을 맞아 평양에서 지내다가 김일성 폭탄 테러 사건 주범 7인 가담자 중에 장남 송병규가 있어, 송 목사는 19464월 초에 남하를 결심하게 된다. 서울에서 절제 운동을 전개하려고 하다가 거제도 옥포교회의 청빙을 받고 경남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교회 쇄신 운동에 가담한다. 고려신학교 설립 운동에 동참했고, 초대 교장인 박형룡 목사를 만주에서 모시고 온다. 이후 19481227일에 마찬문창교회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의 교회 역사에서 송상석 목사는 많은 논쟁들에 참여하면서 논객으로 참여하게 된다. 고신의 많은 문서들이 송 목사의 손에서 작성되었다. 총 노회 발회식 선언문, 합동의 취지 및 선서문도 작성하였다. 그리고 총회 1~10회 회의록, 11~20회 회의록도 편집 간행했다.

1960년 이후 교회 재산을 지키기 위한 소송전에 연루되었는데 교회 재산은 교인 총유의 것이란 논리로 건덕과 예배당 명도 건은 분리된다는 입장에서 소송을 감행하였다. 이후에 합동 측과 합동하는 과정에서도 반대했지만 결국 합동했고, 선언문 작성 과정에서 신학교의 단일화를 대신해서 일원화로 수정함으로 고려신학교의 존속의 길을 열었다. 이후 환원이 일어났을 때도 송 목사는 한 목사를 도와 변호하기까지 했다. 홍반식 교수를 설득하여 환원토록 하였다.

1970년대에는 사조 이사회 사건과 또한 이사 관련해서 법정 고소 건으로 갈등의 당사자가 되었다. 이런 갈등은 결국 1974924차 총회에서 특별재판국을 설치하고 1974124일 목사 면직을 하였다. 결국 교회 분열에 이르렀다. 197573일 은퇴하고, 19801220일 소천했다. 송상석은 절제운동가로 그리고 목회자로 교회쇄신운동에 참여하고, 교회행정가와 문필가로 활동을 하였다.

이상규 교수는 75세의 송상석 목사에 대한 치리회의 행사는 과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교수는 당시 송상석 목사 재판에 대한 특별재판국의 활동, 회의록, 판결관계문서, 당시의 신문보도 기사 등을 완벽하게 수집하였고, 이를 출판 공개할 예정이기에 당시 재판의 공정성의 문제를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송상석 목사가 남긴 것은 절제운동을 통한 국민정신 계몽이고, 조선예수교장로회 50주년 역사 화보 편찬을 통한 사료의 수집과 역사편찬이다. 또한 고신교회의 역사편찬에도 깊이 개입하였다. 고신교회의 행정법규 등 교단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고신교회의 정당성을 변호했으며, 산하 교회의 재산을 관리를 했다.

논찬에서 김성균 목사는(세계포도원교회) 절제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승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한상동과 송상석의 평가와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의 폭을 좁히는 노력의 방식이 무엇일까를 물었다. 2008년 총회에서 송 목사의 면직, 사면을 결의하였는데, 고인의 치리가 정당한가? 잘못되었으면 사면이나 복권이 아닌 취소를 해야 하지 않는가를 제기한다. 또한 회심 이전의 경찰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질의하기도 했다.

2022 미포 2차 광주 포럼 참석자들과 함께
2022 미포 2차 광주 포럼 참석자들과 함께

둘째 강의는 배아론 교수(고신대) 고신총회록 전수조사에 기반한 선교전도분석을 하였다. 1차 포럼 시 이현철 교수의 방법론을 수용하여 일관성있게 전도선교부분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분석 자료의 가치는 향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자료분석에 근거한 해석도 계속 성숙해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장 중심과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다.

셋째 논의는 현실 교회 정치에 대한 목사와 장로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전달되었다. 목사의 입장에서 곽창대 목사가 장로의 입장에서 서일권 장로의 강의가 있었다.

곽 목사는 한상동과 송상석으로 드러나는 부산노회와 경남노회의 대결과(1956-1975) 이어 돼지파와 부곡파의 대결(1976-1995)과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결(1995-현재)로 교회정치 현실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교신의 각 계파들의 구호가 일관되게 고신정신의 회복과 구현이다. 그런데 실제 고신 정신이 퇴보하고 계파정치가 발흥했다고 주장했다. 계파 정치의 폐해는 이념이나 정신이 간곳없고 총회 임원이 되기 위한 권력 싸움이고, 교회와 성도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국장로회연합회가 고신의 계파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곽 목사는 계파정치의 대안으로 계파의 해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고신의 현안을 신학과 현실의 관점에서 활발하게 논의하는 토론의 장을 자주 열어주고, 이것을 정제된 안으로 노회와 총회에 제안하고, 치리회에 순복하도록 요구했다. 치열한 논의의 과정을 계파들이 수행해 주기를 부탁했다.

서일권 장로는 고신의 교회 정치 현실을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함으로 이해하였다. 고신대 총장 선거의 육 개월 지연에서 드러난 계파 정치와 진영논리와 소통과 신뢰의 부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총회 결의 준수와 재판국 불복 문제를 언급하였다. 또한 총회장을 끝으로 은퇴하는 총회장 선출의 문제를 지적하고 미숙한 행정 처리와 후속 조치의 미흡도 갈등의 요소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실에서 서 장로는 교단의 장단기 발전 로드맵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총회 표어를 3~5년 지속성을 가지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목적에 합당한 정치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신대학교의 송재영 교수는 고전3:10-17절을 주해하면서 분열된 교회를 향한 바울의 경고로 건축자의 비유를 해석하였다.

송 교수는 상과 상급은 다르다고 하면서 상급의 개념은 개혁파 전통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참된 상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세운 집 자체가 즉 교회가 상급이라고 보았다. 이는 고전9:1절에서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공적)이 너희가 아니냐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공적은 바로 고린도교인 개개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심고 물을 주지만 불에 타지 않는 보석으로 된 집을 얻기 위해서는 듣는 청중들인 교회가 분열과 같은 시험을 잘 극복해야 한다. 나무나 짚으로 된 집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교회가 청중들이 스스로 분열과 음란과 같은 일들에 연루되어 영적인 어린아이로 육에 속한 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해한다.

2차 광주 포럼은 광주 은광교회(전원으로 목사)의 따뜻한 환영과 식사대접 그리고 분위기 또한 전라노회를 중심한 참여가 인상적이었다. 미포가 대구에 이어 광주에서 가지고 3차 포럼은 부산 송도제일교회(김형렬 목사)에서 9월 말에 가질 예정이다.

3차 포럼에서는 고신의 70년과 고려학원 혹은 복음병원이란 주제로 모일 예정이다. 장기려 박사를 조명하면서 고신의 70년과 미래를 지향하고, 총회록 분석은 행정 법규 부분을 다룰 예정이고(김길호 목사), 그리고 현안은 복음병원을 다룰 예정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복음병원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루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성경주해를 한다. 그리고 본 포럼 전국 포럼은 부곡에서 125~6일에 가질 예정이다. 계속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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