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교수(코닷 사설위원, 죠지뮬러 바이블 칼리지 교수, 칼빈대학 대우교수)
홍성철 교수(코닷 사설위원, 죠지뮬러 바이블 칼리지 교수, 칼빈대학 대우교수)

고신총회는 설립 70주년을 맞으면서 70일새벽기도, 전도동력세미나, 기타 포럼 등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과연 고신영성에 반영된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약간 의문이 생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고신영성을 새겨보고 그 정신에 적합한 고신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필요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신영성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체험적 성격이었다. 고신영성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건 신앙인들이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 부재의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했다. 고신은 정통적으로 부흥사경회의 형식으로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고신영성 운동에 지속되었다. 자신과 죄고백과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회 역시 부흥사경회의 중요한 요소였다. 주목할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님의 임재 체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신 목회자들이 기도와 말씀에 생명을 걸고 있고 체험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초창기 고신의 지도자들은 세상적인 명예나 자리를 결코 탐하지 않았고, 삶의 최고의 가치와 영광을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곧 십자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신영성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부정이다. 죄로 부패한 자기중심성을 십자가에 못 받는 영성이며,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부정하고 포기한 영성이다. 바울 당시 로마는 영예를 존중하고 심히 추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반해 바울 사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복음 핵심을 전달한다. 보수와 개혁이 나누어진 채로 지금도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고신의 정신인가? 또한 오늘날 고신은 어떤가? 총회장과 임원이 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지는 않은가? 선배 기수에 따라 총회장으로 이어지는 정신은 사라지고 서로 총회장이 되려 한다. 이런 정신은 로마 시대 영예를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무엇이 다른가?

초창기 고신의 지도적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비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차원의 친교를 경험했다. 한상동은 자신이 신비주의는 배격하지만, 신앙의 세계에 신비가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

고신영성이 지향하는 방향에 있어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회개와 신앙부흥을 통한 성화이었다. 고신영성을 추구했던 교회들은 회개에 열심인 교회였다. 회개는 해방 후부터 6.25 전후까지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시된 가치였다. 또한 고신영성에서 강조된 회개와 부흥의 초점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중심의 공동체 회복이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회개를 잃고 있다. 회개를 상실하니 성령 하나님의 임재도 약해진 채, 형식적 기계적 예배로 이어지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 일은 누구의 몫인가?

고신 정신의 시발점이 일제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었다는 것은 신앙적 투쟁의 일차 대상이 세속 국가와 시대정신이었음을 보여준다. 고신 정신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로서의 고신영성은 6.25 전쟁 직후 난민들과 병자들을 구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전영창에 의해 시작된 복음병원(, 고신의료원) 사역과 고아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조수옥의 복지사역에서 잘 나타났다.

고신 정신은 회개와 성령체험, 기도 말씀으로 세상 속에서 저항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고신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현재 70주년을 맞는 고신은 이 정신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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