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신학대학원 2022년 2학기 설교실습 설교문

본문: 요한일서 47-13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설교자: 조은향(고려신학대학원 3학년 재학)
설교자: 조은향(고려신학대학원 3학년 재학)

 

◆ 설교 제목: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항아리는 밑바닥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물을 드리면서 이 항아리에 물을 좀 채워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리면, 여러분은 물을 채우실 수 있겠습니까? 뭐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겠죠. 항아리 바닥을 메꾸려고 노력도 해볼 거고요. 전래동화 콩쥐팥쥐의 콩쥐처럼 두꺼비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 항아리에는 밑바닥이 빠지고 없으니 물을 콸콸콸 부어도 결국 다 빠져나가겠지요. 이런 상황이 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아니겠습니까? 큰 힘을 들여 애쓴 만큼 보람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을 그 항아리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제가 드린 물이 이제 제 사랑이 됩니다. 이제 밑 빠진 여러분의 항아리에 제 사랑을 부으면 어떨까요? 아마 차려야 찰 수가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헛수고라는 말이죠. 항아리도 밑이 빠져있고, 제 사랑도 제한적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밑 빠진 독입니다. , 부을 물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사랑을 받는 자도, 사랑을 주는 자도 모두 불완전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갈망하죠. 원하는 상대의 사랑을 받으면 기뻐하고, 또 내게 매력적인 상대를 사랑하며 만족감을 느낍니다. 연인 간의 사랑을 대표적으로 생각해볼까요? 사랑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아시겠지만, 여러분은 상대방한테서 사랑할 만한 구석을 찾았을 겁니다. , 이 사람의 이런 모습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는구나.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여러분이 정의 내린 사랑으로 사랑했을 겁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죠. 사랑할 구석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었듯이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요한은 사랑에 대해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도 요한의 편지, 요한일서를 받은 소아시아의 한 교회는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고 있었거든요.

사도 요한의 제자의 제자, 이레니우스의 책 이단논박에서는 그때 요한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는데요, 에베소는 당시 아시아의 무역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로, 우상 숭배와 미신이 팽배했어요.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종교 산업이 물질적인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동시에 영적 타락의 원천이기도 했죠. 설상가상으로 교회에는 거짓 교사와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부인했고,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형제 사랑을 소홀히 하게 했던 겁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을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다고 말씀하고는 있습니다. 즉 이 이단들과 거짓 교사들이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에는 이미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에는 문제가 있었죠. 여전히 성도들을 유혹하고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한은 성도들을 믿음으로 견고하게 만들 필요를 느꼈습니다. 다름 아닌,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면서 지내는 게 쉬울까요? 그렇지 않겠죠. 밖으로 눈 돌리기도 쉬울 거고요, 또 의심스럽기도 할 겁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말을 애매하게 하면 저 사람 이단 아니야?” 싶을 거고요. 분열이 일어나면 당파도 생길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 맞는, 내가 사랑할 구석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지요. 이단이나 눈에 보이는 위협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금은 항상 큰 균열을 만들죠. 작은 계기로도 저 사람은 나랑 생각이 다를 거야하면서 선을 긋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어 척을 지는 그런 일이 생깁니다.

이런 일은 사실 낯설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또 우리 눈에 차는 것만 원하죠.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제대로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한다 한들, 그 사랑은 너무 작고, 조건적입니다. 하물며 우리 형제자매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사랑보다 미움이 익숙합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나보다 더 가진 것 같으면 질투하고, 추악한 욕심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부터가 그렇습니다. 스스로에게서 그 어떠한 소망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요, 부을 만한 사랑도 없고 밑바닥 없는 독과 같아서 사랑을 받아도 모조리 쏟아 내버리는 것 같죠.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태초부터 우리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주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시키신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까? 말씀 가운데서 힌트를 찾아봅시다. 47절입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아멘.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부을 물, 즉 사랑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랑이 뭔지 알아야 사랑할 수 있죠. 그럼 사랑이 뭡니까? 하나님 그분이 곧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4:10).” 아멘. 한 마디로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고백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한분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곧 우리는 사랑할 때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 그분을 알며 그 사랑을 아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번에는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아멘.

무엇을 사랑하라 하십니까? 세상을 사랑하라 말씀합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라 말씀합니까?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옆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라고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하는 말을 그냥 족족 믿습니다. 그것이 진리인양 말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진리는 굳건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즉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은 형제 사랑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아닌 것에 눈 돌릴 틈이 없습니다. 미혹되지 않죠. 한 마디로, 가짜 사랑에 속지 않습니다.

 

여기서 왜 제가 형제 사랑이 불가능한 명령이 아니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어마어마한데, 우리가 어떻게 형제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버리셨듯이 목숨을 당장 바칠 수 있을까요? “전도사님, 우리는 밑 빠진 독과 같다면서요?”

. 맞습니다. 우리는 밑 빠진 독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쏟아 부어지는 물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 그분이시라고요.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십시오. 그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사랑이 내 안에 쏟아 부어지고 있음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태초부터 작정되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님 그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죄인의 죄를 모두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 대신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서 끝입니까?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에게 사망선고를 내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이 깨진 독과 같은, 밑바닥 없이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은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어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알게 되면 우리도 우리를 버리고, 자기 사랑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아낌없이, 모조리 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우리 지체를 절로사랑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쏟아부으셨잖아요.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일을 우리를 위해 먼저 행하셨습니다. 내 옆의 형제자매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으십니까?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땠겠습니까? 우리로서는 사랑을 받을 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친히 자격이 되어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던 우리 존재를 깨닫게 되고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거듭난 자는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완전한 그 사랑이 부어지면 마침내 우리가 통로가 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우리 안에 생명수가 폭포수 같이 쏟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살아 역동하는 사랑으로 형제자매에게 먼저 손 내밉시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 우리 안에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늘 말씀 가운데 누리십시오. 설교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고, 오이코스 모임 때 나누시며 많은 유익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열매가 부서 섬김으로, 공동체 사역으로 맺어지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또 매일 여러분이 정한 시간이 있죠? 그때 만큼은 기도와 말씀 묵상의 시간을 지킵시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 묵상이 너무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처음부터 너무 큰 계획을 세우지 마시고, 5분이라도 기도하고 1장이라도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또 체험한 사랑과 받은 은혜를 형제자매에게 반드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형제를 향해 미움을 품는 자마다 그는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미움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나누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때, 그 사귐이 풍성해집니다. , 나눔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나누어주고 저 사람에게는 주지 않으면 세상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주신 사랑을 모든 형제자매와 나누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명령은 멱살잡고 사랑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 사랑을 맛본 자가 기쁨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에게 사랑을 억지로 요구하지 마십시오. 대신 먼저 여러분이 행동으로 보이십시오. 먼저 사랑할 때 형제자매가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쏟아 부어주시는 그 사랑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자동으로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이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한 자입니다. 이제 이전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말씀도 부담이 아닌 기쁨이 됩니다. 이미 착한 일을 시작하신 성령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교회인 여러분을 통해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밑 빠진 독인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사랑이 세상을 향한 독생자의 사랑임을 기억한다면, 나나 우리 소수에 집중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미 실현되었고, 우리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명령을 무거운 짐처럼 여기지 마시고, 얼마나 복된 말씀인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그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시기에, 우리도 우리를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구조도

본문 주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설교 목적: 이 설교를 통해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아낌없이 나누며 행동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설교 주제: 조건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으니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다.

설교 구조: 내러티브 구조 강해설교(평형깨기-갈등심화-하나님의 역전-복음 경험-비전 제시)

설교 제목: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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