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쁨 부장판사 "마약중독자 처벌만 하면 출소 후 또 범죄…'회전문 현상'만“

"법원이 피고인의 치료과정에 적극적 개입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슈팀 = 마약류 사범을 보이는 대로 잡아들이고 높은 형량을 선고하면 마약 범죄가 해결될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게 여러 국가에서 입증된 바 있다.

마약 등 약물중독 사범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고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의 비롯한 여러 나라의 법조계에서 이미 형성됐다. 이런 사법 추세를 치료적 사법(therapeutic justice)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이슈팀은 최근 박기쁨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를 찾아 치료적 사법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박 부장판사는 사법정책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형사재판에서의 회복적·치료적 사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박기쁨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박기쁨 부장판사 제공]
박기쁨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박기쁨 부장판사 제공]

박 부장판사는 마약이나 알코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형벌체계가 따르는 전통적인 응보적 사법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응보적 사법은 범행으로 얻은 이익을 상쇄할 정도의 형벌을 가함으로써 범행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을 전제로 한다.

박 부장판사는 "개인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데도 전적으로 개인에게 문제해결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기계적으로 처벌만 반복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마약중독자 또는 중독 상태에서 다른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를 치료하지 않고 처벌만 하면 이들이 복역을 마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서 또 처벌받는 '회전문 현상'(revolving door syndrome)만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바로 치료적 사법이다.

박 부장판사는 이를 "법학에 머무르지 않고 심리학, 정신의학, 행동과학 등의 여러 기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행동변화 프로그램에 법 위반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서 이들이 자기변혁을 이뤄낼 수 있게 해 범죄 원인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법이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미국에서 치료적 사법이 본격적으로 대두했다.

미 행정부가 마약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며 벌인 '마약과의 전쟁'의 여파로 수사기관은 수사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에 시달렸고, 법원은 늘어난 형사재판 업무로, 교정시설은 과밀수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약물중독 자체를 해결해야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소될 것이란 인식의 변화가 있었고 이를 기초로 치료적 사법에 입각한 약물치료법원(Drug Court)1989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처음으로 설립됐다.

박 부장판사는 "약물치료법원은 약물중독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치료 등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서 법원 조직 내부에 마련한 특별한 법정 내지 절차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박기쁨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박기쁨 부장판사 제공]
박기쁨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박기쁨 부장판사 제공]

그는 약물치료법원이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만 전미마약법원전문가협회(NADCP)가 작성한 10대 핵심 구성요소 지침을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중엔 '약물치료법원은 알코올 및 기타 약물 치료서비스를 기존 형사사법 절차와 통합한다'(1요소), '약물치료법원에 참여가 적합한 참가자를 조기에 식별 신속하게 약물치료법원 프로그램에 참여케 한다'(3요소), '약물치료법원은 참가자의 프로그램 준수 여부에 따라 조정된 전략을 사용한다'(6요소) 등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법원이 판결과 선고뿐 아니라 피고인의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피고인이 약물치료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는 의지가 있고 그럴 만한 정신적 상태인지를 따져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재판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피고인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

법원은 치료기관과 다른 관계기관과 협력해 피고인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준수하는지를 관리·감독한다.

이 과정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인 등은 피고인의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 한팀처럼 움직인다. 검사는 피고인에게 최대한 높은 형량을 받게 하려고 애쓰고, 변호인은 피고인의 범죄혐의를 부인하려는 전통적인 법원에서의 관계와 다르다.

약물치료법원의 프로그램은 대개 12개월에서 18개월 진행된다.

피고인이 치료프로그램을 완료하면 그에 대한 기소가 철회되거나 무효가 되지만, 피고인이 치료에 실패하면 법원은 판결 절차를 진행한다.

박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치료를 권고하고 지속적인 치료여부를 관리한 후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할 수 있어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약물치료법원의 긍정적인 효과가 드러남에 따라 2014년말 기준으로 미국 50개주에서 3천여개 약물치료법원이 운영되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특히 청소년 마약사범에게 이런 약물치료법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 약물투약 사범은 대체로 호기심에 약물을 접했거나 투약 기간이 길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를 통해 약물을 끊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20대 이하 약물투약 사범이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을 무조건 처벌해 범죄자로 만드는 것보다 이들이 약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삶을 살 수 있도록 치료를 돕는 약물치료법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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