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우리가 가끔 쓰는 두고 보자라는 말은 그 의미와 용례가 좀 특이합니다. “두고 본다라는 말은 둔다라는 말과 본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둔다라는 말은 어딘가에 물건을 놓는다는 본래의 뜻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두고 본다는 어떤 결과가 될지를 일정 기간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두고 보겠다고 말할 때는 상대방의 일이 잘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실패를 예상하거나 실패하기를 갈망하며 그렇게 되기까지 지켜보겠다는 부정적 느낌이 강합니다. 이 경우 두고 본다는 말은 저주에 가까운 말이 됩니다.

두고 본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이는 한자(漢字) 말에 예의주시가 있습니다. ‘예의 주시하다라는 말은 마음을 단단히 하여 살피다라는 뜻인데 이 말은 어떤 일을 잘하려고 단단히 차리는 마음을 의미하는 예의(銳意)’와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을 의미하는 주시(注視)하다가 합쳐져서 매우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 역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한 예로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이단(異端)성이 짙을 때 예의주시할 대상으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예의 주시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은 사무엘상 18장에 등장하는 사울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 현장에 키가 3미터나 되는 장수 골리앗이 등장하여 이스라엘과 사울은 물론이고 여호와 하나님까지 모욕했지만 온 이스라엘에 맞서 싸울 용사가 없었습니다. 그때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앳된 청년 다윗이 나서서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골리앗의 칼을 뽑아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 사건은 신자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 덕택에 사울 왕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 이후,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가 다윗을 대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습니다. 먼저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아니었다면 사울과 세 아들은 모두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 요나단은 자기가 입었던 겉옷과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모두 다윗에게 선물했습니다. 당시 그 물건들은 값이 비싸고 귀할 뿐만 아니라 왕자의 상징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물건들이었습니다. 또 그 후에 나오는 요나단과 다윗의 대화에서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며 자기는 신하가 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러한 요나단 왕자와는 정 반대로 사울은 구국의 영웅 다윗을 원수로 규정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아낙네들이 춤추며 군인들을 환영했는데 그때 이런 내용으로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은 수만 명이로다.”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은 마음이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고 그날부터 다윗을 주목(注目)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아인 עָוַן)본다라는 뜻이지만 그 말은 두고 보는것이며 예의주시한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두고 보기로마음먹은 이후 사울은 인생을 걸고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기를 힘썼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애쓰고 국력을 낭비했는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 예산과 군사력을 이스라엘을 세우는 일에 사용했다면 이스라엘 역사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다윗 역시 사울을 주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아무 죄 없는 구국의 영웅을 죽이려고 수없이 시도하는 것에 화도 났겠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울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다윗도 생애와 영성과 정서까지 모두 망가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주목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주목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동안 사울을 간단히 제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윗은 사울 대신에 하나님을 주목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이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랬더니 결국에 하나님이 사울을 제거하시고 다윗을 높여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울이 있습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고 나를 주목하는존재가 있습니다. 그때 가장 쉬운 방법은 똑같이 그 사람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수를 예의주시하면 원수가 나를 좌우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됩니다. 원수가 나를 괴롭히는 것도 속상한데 그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다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은 그렇게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 어디나 존재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누구를 주목하고 무엇을 주목해야 할지 다윗은 정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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