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최광희 / 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Th.D.)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입니다.”

어떤 방송국에서 흘러나온 발언입니다. 참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문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고 세상을 무너뜨릴 함정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사랑과 용서가 효과 있다 하더라도 이 말은 자칫 처벌 무용론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에는 범죄자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닌 다른 중요한 목적도 있습니다.

처벌의 목적은 우선 죄지은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당연하게 여겼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의 범죄를 줄이는 기능도 했습니다. 또 피해자를 대신해서 국가가 벌을 줌으로 피해자가 직접 응징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당한 처벌을 정죄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사법 기관이 합법적 처벌을 시행할 때 온 사회가 처벌 담당자를 처벌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판사들은 범죄에 비해 지나치게 약한 형량으로 판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SNS에는 판사 당신 가족이 피해를 보았어도 이렇게 판결하겠느냐는 항의가 종종 올라옵니다. 하지만 판사들은 그런 글에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형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의 형 집행을 수십 년간 미루고 있습니다. 남의 인생과 가정을 망쳐놓은 살인자도 공짜 밥 먹으며 몇 년간 쉬고 나면 버젓이 사회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형 집행의 목적이 처벌보다 교도에 있다면서 처벌을 약하게 하면 피해자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 줄까요? 피해자가 직접 응징하지 말라고 사법 기관이 있는데 국가는 가해자 인권 타령만 하고 있으니 피해자 인권을 누가 보호해 줄까요? 국가가 가해자 인권만 챙긴다면 법과 질서도 없던 고대사회처럼 피해자의 가족이 직접 가해자 응징에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죄지은 사람에게 정당하게 처벌하지 않는 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베풀어야지 무슨 처벌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3대 표지(標識, Marks)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말씀의 참된 전파, 성례의 정당한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세 가지 모두에서 낙제 점수입니다.

먼저, 말씀의 참된 전파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標識)입니다. 이 말은 말씀 전파가 성경대로 진실해야 하며 신앙과 행위에 지배적인 영향(感化)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강단에서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전하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또한, 성례(聖禮), 즉 세례와 성찬은 말씀의 유형(有形)적 전파입니다. 성례는 말씀의 합법적인 사역자들에 의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따라 신자들과 그 자녀들에게만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로마교(천주교)가 매번 성례를 집행하는 것과는 달리 기독교회는 번거롭다는 이유로 고작해야 연간 4번 성례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징의 신실한 시행도 참된 교회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교리적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위해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권징(勸懲, Discipline)을 통해 교회의 불순성을 배제하고 시정해야 합니다. 물론 권징의 목적은 범죄한 사람을 교정하여 그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데 있기에 권징은 온유한 마음과 사랑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징을 조심스럽게 시행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포기해버렸습니다. 삼발이의 한쪽 발이 짧으면 한쪽으로 기울게 되고 한 발이 부러지고 없으면 완전히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교회의 3대 표지 가운데 말씀과 성례는 부실하고 권징은 사라져버렸으니 오늘날 한국교회는 참된 교회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엄격하던지 범죄한 인류를 그냥 용서할 수 없기에 그 죄를 대속하려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무조건 죄인을 용서하려고 하니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아서일까요? 교회가 이처럼 인본주의를 따르는 것은 사랑이 많은 것도 아니며 참된 교회를 허무는 사고방식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참된 교회의 3대 표지를 회복해야 합니다. 특히 권징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국가도 악해 빠진 사법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피해자도 보호할 수 있고 사회의 범죄도 줄일 수 있고 나아가 범죄자 교화도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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