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북한 선교와 통일을 위해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실제적인 준비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북한 선교와 통일을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김동춘 박사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장 주-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한 실체적 접근과 이해

국가 종교로의 북한 주체사상 이해

▲ 김동춘 목사 /SFC대표간사, 연변대 역사학박사, 경북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수료, 총회 통일선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리는 김일성,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 주민이 흘렸던 눈물에 대한 진정성 논의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 증언에 의하면 그것은 실제 눈물이었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군부대나 지역주민을 순시할 때 화면에 비쳐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강림한 교주를 대하는 듯한 그윽한 눈빛과 열렬한 박수가 있는데 이 또한 연출이 아니라 실제이다. 그것은 이미 북한은 단순한 사회주의 국가 이상의 종교국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극장국가"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말해 준다. 북한이 이렇게 된 것은 주체사상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주체사상은 주사파 운동권이 알고 있는 단순한 이론적, 세계관적 틀이라기보다는 수령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적인 통합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희구하는 유사종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북한의 주체사상은 주체종교이자 국가종교인 것이다. 이처럼 국가종교가 된 북한의 주체사상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제대로 이해해야만 북한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이루어 질 수 있다.

 

1. 김일성이 주체사상를 세우게 된 원 경험

1) 김일성의 만주 유격대 경험:  김일성의 유격대의 경험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지휘관에 대한 문제이다. 생사가 걸린 전투현장에서 유격대의 지휘관이 어떠한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 부대전체가 살아날 수도 몰살될 수도 있다. 유격대의 지휘관은 전체 유격대원들의 생명을 한 손에 쥐고 이끌어 가는 존재이다. 유격대원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의탁한 지휘관을 받들어 모시는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결국 만주 유격대시절엔 수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지금의 상황도 미국과 전투를 해야하는 전시체제로서 유격대와 같은 수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임을 이용한 것이다.

2) 김일성의 만주 민생단 경험: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 시기 김일성은 몇가지 경험과 사건을 통하여 주체에 대한 자각을 이루게 된다. 김일성은 1932년 일제 간첩이 공산당 내에 있다는 "민생단" 사건을 경험한다. 이 사건은 일본 제국주의의 간첩을 잡는다는 미명하에 중국인 공산당원들이 대다수의 조선인 공산당원들과 유격대원들을 간첩으로 몰아붙여 학살하게 된 사건으로 발전한다. 김일성은 비록 살아남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아무리 공산주의라고 하더라고 민족이 다르면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조선 특유의 공산주의를 세워야 겠다는 자기인식을 가지게 된다.

 

2. 김일성 수령숭배 : 유일사상체계의 확립

1) 수령숭배의 제1 신호탄은 1967‘5.25.교시이다: 김일성은 50년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국내파인 박헌영, 연안파인 무정, 소련파인 허가이를 숙청하고, 19568월 전원회의에서 개인숭배를 반대해 온 최창익(연안파)과 박창옥(소련파)을 숙청하고, 1967년 박금칠, 리효순 등 김일성계열과 항일 빨치산 동료였던 갑산파 김창봉, 허봉학을 숙청함으로써 유일적인 수령의 지위를 세워 나갔다. 바로 이 시기 모든 정적이 제거된 후 김일성은 ‘5.25교시를 통해 주체노선을 강조하며 수령숭배를 배경으로 깔아 놓았다.

1966년까지 북한에서 김일성에 대한 공식적인 호칭은 내각수상이었다. 그러나 19675월초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수령 체계의 확립이 공식 선언되고 김일성에 대한 호칭이 수령으로 바뀌었다. 수령은 곧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한 명 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1967년 김일성대학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당시 김일성대학 총장이던 황장엽이 <사회발전의 동력>이라는 논문에서 '인텔리 역할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권력실세였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당시 사회주의 일반 사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옹호했다. 당시 김영주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김정일은 황장엽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론투쟁으로 격화되었고, 1967525일 김일성이 직접 나서서 양쪽을 모두 비판하고 주체노선의 관점에서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것이 바로 5.25교시였다. 김일성은 양 쪽을 모두 비판했지만, 사실 비판의 칼날은 친중국 계열 김영주를 비판하는 것이었고, 인텔리 중의 인텔리인 수령유일론을 강조한 황장엽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결국 이 때로부터 북한식 공산주의인 수령주체사상이 북한 전역을 강타했다. 5.25교시 이후 북한의 인텔리들은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북한 주민들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서적들을 불태우거나 도서관에 기증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도서정리사업은 비단 철학 역사서적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각종 서적이 파괴되었으며, 문제가 될 만한 글의 내용과 어투, 인명을 삭제하는 작업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모두 검열할 정도로 철저히 행해졌다. 세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리키 등 문학서적들은 물론이고 희랍철학, 중국철학, 독일고전철학 등의 서적들이 이 시기에 모두 불태워지거나 회수되었다. 북한의 교과서에 이순신, 을지문덕, 세종대왕 등이 사라지게 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소련음악, 비너스 석고상, 서양화가 금지되고 찢겨지고, 예술가들은 추방되어 농사군이 되었다. 심지어는 마르크스 관련 서적도 개인소장은 금지되고 도서관에서 조차 제한적으로 열람이 허용되었다. 결국 중국 문화대혁명을 벤치마킹한 북한판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2) 북한에서 김일성주의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4년 김정일의 이른바 “219일 선언에 의한 것이다: 이 선언에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한다. 김정일은 1974414일 김일성의 62회 생일에 즈음해 당의 유일사상 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발표하였다. 10대 원칙은 이후 헌법을 능가하는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 원칙의 제8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을...”을 통하여 김일성 만이 정치적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이 시기 국제적으로는 1969년 중·소 국경분쟁이 일어났다.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급격히 가까워 졌고, 중국은 미국보다는 소련을 주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김일성으로서는 새로운 노선을 간구해야 했던 시기이다. 북한은 한국에 제스쳐를 표하면서 1972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내었고, 남한은 박정희에 의한 유신시대, 북한은 김일성 수령유일체계가 확립된 것이다.

 

3. 주체사상의 종교화 과정

1980년대에 들어오면 주체사상은 종교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때로부터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수령을 교주로 한 수령교의 교인이 되는 것이다.

1) ‘개인의 영생과 민족의 시조=수령: 김정일은 1982331일 김일성의 탄생 70돐에 즈음하여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체사상을 통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형성하며 인간의 운명문제는 수령을 통해 영생한다는 종교적 틀을 제공하였다.

이윽고 19891228일에는 주체사상이 개인의 영생을 넘어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조선민족주의를 등장시켰다. 이것은 김일성민족’ ‘김일성조선으로 공식화되는데 이것을 위하여 단군이 동원되었다. , ‘단군조선이 조선민족의 혈연적 시조이듯이, 사회주의시조인 김일성조선은 정치적 생명적 시조임을 밝힌 것이다. 김일성은 199310월부터 단군릉 개건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단군릉의 개건을 통하여 당시 신화적 인물인 단군을 역사상 인물로, 민족의 시조로 승격시켰다. 또한 고조선의 발생지는 만주가 아니라 평양임을 강조하면서, 평양에 태어난 김일성을 제2의 단군, 즉 새민족의 창시자임을 드러낸다.(북한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노코맨트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주체사상의 설명에 의하면, 김일성 수령은 정권만이 아니라 민족사적인 정통성을 계승하는 인물로 김일성민족을 탄생시켰으며, 조국은 곧 수령이고, 수령은 곧 조국이라는 것이다. 또한 민족은 곧 수령이고 수령은 곧 민족이라는 것이다.

2) 수령숭배의 제도화: 김일성은 199478,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리고 북한은 빠져나오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북한 지도부로서는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의 사망 이후 주체사상이 제기한 인간의 운명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수령의 영생"에 대한 논리적인 보충을 해야 했다. 그것을 수령유훈통치와 영생 김일성, 후계 세습으로 삼았다.

먼저 김정일은 김일성을 근엄한 모습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태양상을 만들고, 김일성 운구차를 생전에 쓰던 승용차를 사용하여 인민들 가운데 김일성이 살아있음을 강조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영생탑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678일자 평양방송을 통하여 김일성민족의 정식화를 선포하였다.

19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를 맞아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연호로 제정하고, 생일인 4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로 선포하였다. 이것은 결국 주체사상의 영생이요, 김일성의 영생이요, 김일성종교의 탄생인 것이다. 또한 주체사상이 김일성정치종교, 김일성국가종교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수령을 민족과 국가의 존재와 절대적 유일자로 내세움으로써, 수령을 신격화하고 동시에 신격화된 수령을 통하여 역으로 민족과 국가를 신성시하는 순환논법적 신흥국가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3) 주체사상의 교리화: 주체사상은 수령을 최고의 존재로 신격화시키는 수령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수령을 영생하는 영생의 부여자로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종교인 주체사상에서 수령관은 신론에, 영생관은 구원론에 각각 해당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주체사상의 수령관과 영생관은 주체상의 교리적 차원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종교화 되었다는 것은 인민들의 경험 속에 그것이 신화화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수령님께서는 희랍신화에서 나오는 아폴로나 플로메테우스와 같은 모든 신들을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분입니다....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수령님을 예수로 뿐 아니라 한울님으로 받들어왔습니다.”(백보흠 송상원, 영생,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8. 266-268)

김정일은 북한의 종교인들이 김일성을 예수로 뿐 아니라 한울님으로 숭배한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주체사상은 이미 종교로서 북한 인민들에게 자리잡혀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4) 주체종교의 교인인 북한주민의 통제: 북한은 주민들을 핵심군중, 기본군중, 복잡군중 등 3계층 51개 부류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다. 핵심군중은 인구의 약23%정도를 차지하는 성분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로 입당, 직장배치, 교육, 승진시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기본군중은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입당이 허락되기도 하고 하급관료로까지 진출이 가능하지만 핵심군중으로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구의 약27%를 차지하는 복잡군중의 경우에는 상승이동 통로가 완전히 봉쇄되어있다. 복잡군중은 강제이주를 통한 격리수용의 대상이 되는 제재대상, 동태를 감시당하는 감시대상, 집중적인 교양학습을 통해 체제순응적인 대상으로 포섭되는 포섭대상 등으로 구분되어 관리한다. 복잡군중의 자녀들은 군입대와 대학진학시 많은 제약이 따르고 대개 고등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현장 배치되며 그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북한은 주민들의 성분을 조사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는데, 조사를 통해 적발된 사상범들은 특별독재대상으로 분류되어 특별독재대상구역에 수용하였다. 특별독재구역은 점점 늘어났으며 수용인원도 20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탈북자들의 중언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완전통제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화 구역이다. 완전통제구역은 종신수용소로서 여기에 한 번 수용되면 다시는 일반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수용자는 광산, 벌목장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은 수용소 내에서 죽게 된다. 혁명화 구역은 가족구역독신자 구역으로 구분된다.(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획일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이런 것은 북한사회가 한마디로 수령을 유일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계급사회임을 설명한다. 북한의 정치종교인 주체사상은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히 결합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공동체에 굳게 결속되어야만 개인은 영생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는 가를 중심으로 하여 그 공동체의 윤리가 구성되어 진다.

 

4. 결 론

북한의 주체사상은 내용적으로는 민족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으나 민족의 대표단수로 수령을 내세움으로써, 형식적으로는 개인의 카리스마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실상은 수령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을 주고받는 특별한 민족공동체가 북한임을 보여준다. 북한은 수령안에서 북한의 정치문화 모든 사상이 존재하는 유사종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북한의 국가종교, 김일성 세습종교가 된 것이다.

본고를 통하여 북한의 주체사상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았다. 본고를 통하여 확인한 것은,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독특성이 있으며 이런 맥락을 이해해야만 북한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었는데도 북한 사회는 건재하며, 어린 김정은이 아무런 통치적 부담없이 북한을 다스리고 있는가? 그것은 주체사상, 주체종교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북한사회가 평양을 중심으로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신분적인 공간적인 구분이 북한 사회 통제의 핵심이 되는 이유 또한 주체사상에 대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북한 방문기와 북한 수용소에 대한 다른 목소리로 한국사회가 시끄러웠다. 이것은 북한 사회에 대한 특수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며, 북한에 대한 보다 실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알려 준다. 아울러 통일이후 기독교선교를 제대로 이루어 내기 위해서도 북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분석이 더욱 필요하다는 교훈을 던져 준다.

(계속 연재되는 글- 왜 북한은 동서독 통일과정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가?

통일에 대한 모델과 단계적 접근

한국교회의 통일에 대한 역할과 준비)

 

- 참 고 문 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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