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의 통합의 키(민평련, 경기동부, 시민사회): 주사파 사상

김삼열 목사(고신대 신학과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영국 아버딘 대학교M.Th, 벨기에 루뱅카톨릭 대학교Pre-Doctoral Program, 한울교회 부목사)
김삼열 목사(고신대 신학과 B.A. 고려신학대학원 M.Div, 영국 아버딘 대학교M.Th, 벨기에 루뱅카톨릭 대학교Pre-Doctoral Program, 한울교회 부목사)

글의 내용은 유재일의 “문재인과 친노 죽이기”를 요약 및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내용을 첨가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과 친노 죽이기”를 참고.

 

친노 패권주의의 등장

정치판에 뛰어든 문재인 노무현의 사례를 통해 한 가지를 교훈을 얻는다. 좁게는 민주당 내 패권을 장악해야, 넓게는 진보 진영을 완벽하게 틀어쥐어야 레임덕이 오지 않는다는 교훈. 그러한 차원에서 2012년 대선에서 패배 후 재도전에 나서는 문재인은 먼저 민주당(당시 당명은 새정치 민주연합이다. 그러나 편의상 독자들에게 익숙한 민주당이라고 부르겠다)을 장악하기 위해서,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경쟁자는 동교동계의 박지원이었는데, 그는 “당권은 박지원, 대권은 문재인”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에 임한다. 동교동은 당권, 대권은 친노 이렇게 각자의 몫을 챙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양보하지 않는다. 대신에 당대표 공약으로 상향식 공천을 내세운다. 본디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상도동계를 중심으로 한 신한국당은 각각 민주화 거물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김대중, 민자당(신한국당의 전신)은 김영삼이 위에서 밑으로 공천을 내려 꽂는 형태였다. 즉, 보스가 내려 꽂는 하향식 공천이었다(예전부터 민주당 내에서는 이러한 하향식 공천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해찬이 김대중의 하향식 공천을 드러내놓고 비판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지원, 문재인, 이인영(사진=경인일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지원, 문재인, 이인영(사진=경인일보)

그러나 당시 김대중이 떠난 민주당은 하향식 공천을 할 보스가 없었다. 대신에 동교동계는 호남, 명사 집단은 수도권, 친노는 부산 이런 식으로 각 계파가 자신의 기반 지역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당대표 공약으로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서 민심을 통해서 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동교동계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그 동안 동교동계가 확보하고 있었던 호남 공천 지분을 빼앗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를 가진 친노가 호남의 공천을 대거 잠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친노의 대중적 인기는 다소 계파 색깔이 옅고, 대중 인지도가 중요한 수도권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문재인이 공약으로 내건 상향식 공천은 기존의 친노의 영남은 지키되, 동교동계의 호남과 수도권까지 영향력을 뻗치려는 시도였다. 민심으로 당심을 덮고, 당의 주도권을 동교동계에서 빼앗아 오려는 문재인과 친노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공천 개혁을 통해서 당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용어는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새정치 민주연합 시절 안철수와 문재인(사진=한겨례)
새정치 민주연합 시절 안철수와 문재인(사진=한겨례)

 

동교동계의 전략 그리고 안철수

이처럼 민주당 대표 선거는 동교동 vs 친노의 팽팽한 대결 구도였다. 그 와중에 김근태 계열의 민평련이 캐스팅 보트로 떠오르게 된다. 민평련 대표로 출마한 이인영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끝까지 독자 출마를 고수한다. 당시 문재인은 여론조사에서 크게 이기면서, 당심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메우면서 최종 승리한다. 이로써 당권싸움에서 승리한 친노와 문재인은 당권을 장악하고 공천 개혁에 시동을 건다. 반면 당권 싸움에서 패배한 동교동계는 마지막 수단으로 안철수를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당시 문재인과 친노의 대중적 인기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 였기 때문이다. 동교동계는 안철수를 내세워서 문재인과 친노의 당과 공천 개혁에 강력하게 제동을 건다. 특히 혁신안을 두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옥신각신한다. 이는 동교동계의 탈당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았다. 당대표를 넘겨준 마당에 공천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정계에서 뼈가 굵은 노련한 동교동계 거물들이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차례 옥신각신 하다가 안철수는 탈당을 선택한다. 그리고 동교동계는 즉각적으로 안철수를 따라 나서서, 국민의 당을 창당한다.

민주당을 나와서 국민의 당을 창당한 동교동계의 총선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동교동계의 지역 조직을 적극 활용하고, 호남 홀대론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호남에서 문재인을 고립 시킨다. 그리고 호남에서 압승을 거둔다. 수도권에서는 안철수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을 사용해서 민주당 표를 잠식한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이끌어 낸다. 호남과 수도권을 모두 잃은 문재인과 친노는 영남 세력으로 몰락한다. 그리고 무주 공산이 된 민주당에 다시 복귀해서, 민주당을 완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꾸몄던 것이다.

이에 맞선 문재인은 호남에서 선택 받지 못할 경우 정계은퇴 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호남 홀대론으로 문재인을 고립시키려는 동교동계의 전략에 맞선 것이다. 그리고 동교동계가 탈당하고 난 빈 자리를 캐스팅 보트였던 민평련으로 메꾼다. 당시 비주류인 민평련은 문재인과 친노의 제안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다. 민주당의 주류 세력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운동권 주사파의 민주당 장악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민평련은 김근태, 인재근, 이인영, 우상호, 우원식 등으로 구성된 주사파 출신의 운동권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민평련의 당내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문재인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김종인을 영입하고 전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창출 공신이었던 김종인이 총선 지휘봉을 잡으면서, 김종인이 공천권을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문재인은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을 영입하면서, 국민의 당과 정치 투쟁에 골몰하는 대신에 경제와 민생을 앞세워서 승부하려고 한다. 또한 우파 정권 창출 공신인 김종인을 영입하면서 오른쪽으로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경제, 스펙트럼 확장, 민평련과  동맹을 축으로 2016년 총선에 돌입한다. 이처럼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좌우 균형이 잘 맞는 스펙트럼이 넓은 좋은 정당이었다.

민평련의 주요 인물들(사진=민평련 공식 홈페이지)
민평련의 주요 인물들(사진=민평련 공식 홈페이지)

 

2016년 총선: 문재인의 승리 그리고 주사파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 총선이 치뤄진다. 일반적인 예상은 야권의 분열로 인하여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승. 최대 180석 이상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 매체도 많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한다. 국민의 당은 동교동계의 기대대로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표를 잠식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나라당의 표를 더 많이 잠식해버린 것이다. 안철수의 중도 실용적인 색채가 예상보다 더 많이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와 버린 것이다. 따라서 호남에서 국민의 당이 압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만회를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부산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면서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다.

야권의 분열 속에서도 승리한 문재인의 리더십은 강력해진다. 그리고 동교동계가 없는 민주당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 결과, 민주당 내에서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대권후보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한 가지는 김종인의 축출이다. 김종인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세력을 넓힌다. 친노 친문 패권주의에 불만을 품었으나, 국민의 당으로 따라 나가지 않은 반문 세력들의(대표적으로 박영선) 비호를 받으면서, 친노 친문과 계속해서 트러블을 일으켰다. 그렇게 당내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키다가 민주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친노와 문재인의 민주당 장악력은 더욱 강해진다. 당내 주류인 친노의 우군은 민평련을 제어할 가장 큰 인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따라서 민평련의 당내 영향력은 확장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와 실용, 보수적 색채를 지닌 김종인이 밀려나면서, 민주당 내에서 이념적 빈 공간이 발생한다. 이 지점을 민평련은 파고 든 것이다. 그렇게 주사파의 색채로 민주당을 물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문재인과 친노는 왜 노무현의 친미 실용주의 노선 대신, 운동권의 주사파 사상에 기울었는가? 민주당을 주사파 색채로 물들이는 것을 보고만 있었는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노무현의 실패를 교훈 삼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몰락은 보수 진영의 공격이 원인이 아니라, 친미 실용주의에 대한 진보 진영 내부의 공격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던 것이다. 당내 반대 세력과 민노당, 시민 사회의 공격이 치명적이었다고 봤다. 그래서 문재인과 친노 세력은 진보 진영 내부의 통합과 장악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 진보 진영 통합을 위해 포용해야 했던 민주당 내 친노 이외의 주요 계파 민평련, 경기 동부 중심의 정의당, 시민 사회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운동권, 주사파였다. 주사파 운동권 출신의 민평련과 시민사회, NL 세력인 경기동부의 정의당을 한 데 아우르기 위해 주사파 사상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 결과, 주사파 세력이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을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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