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종교정책으로 본 중국기독교의 중국화

글 순서

시진핑 시대의 지도자상 중국의 꿈

중국의 꿈 중화부흥

중화부흥의 백년 한 리유야쯔의 경축시 의미

중화부흥 마르크스주의 신앙 의식형태

의식형태공작에 의한 중국기독교의 중국화

시진핑 시대의 중국기독교의 현재

마무리 글

 

중화인민공화국 제9대 국가주석,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시진핑(习近平, 1953)2013314일부로 임기 10년의 중국공산당 최고 통수권 직무를 시작했다. 19741, 21세 때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시진핑은 약40년 만에 중국공산당의 최고 실권을 잡은 것이다. 그의 애칭은 시따따’(习大大), ‘시 아저씨’(叔叔, Uncle Xi)라는 뜻, 겉으로 보기엔 이웃집 아저씨 같다. 산시 성(陕西省) 출신이다.百度(Baidu) 백과사전 인물관계 신앙난에는 공산주의’(共产主义)라고 적고 있다. 시진핑은 열렬한 공산주의 신앙인이다. 8대 주석 후진타오(胡錦濤, 1942) 전임자는 마오쩌뚱(毛澤東, 1893-1976),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쟝쩌민(江澤民, 1926) 등 삼대 영도의 핵심은 투명한 종교이론 관점에 기초한 종교정책을 폈다. 후진타오에게종교문제무산계급 혁명확산의 수단인통일전선(약칭 統戰’, 혹은 연합전선’)을 관장하는 해당부서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겨졌다. 통일전선은 중국공산당의 중국혁명에 필수적, 이른바삼대법보(三大法寶)통일전선,무장투쟁,당 건설중 하나다. 후진타오의 뒤를 이은 시진핑(习近平)의 중국종교정책은 개혁개방 후 중공이 실시해온 종교정책이 한층 강화되어가는 조짐이다. 시진핑이의식형태 공작은 당()의 지극히 중요한 하나의 업무(意識形態工作是黨的一項極端重要的工作)라고 한 말이 바로 시진핑 시대의 종교정책에 대한 핵심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종교정책, 특히 중국기독교정책을 집중 조명하려고 한다.

 

시진핑 시대의 지도사상 중국의 꿈

시진핑 시대 지도사상은중국의 꿈(中国的梦, The Chinese Dream) 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현실적인 환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20121129,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시진핑은 취임 열나흘 째만에 그의 시대의 지도사상집정이념중국의 꿈을 공식 선포했다. 시진핑은중국의 꿈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the great rejuvenation of the Chinese nation)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중화민족의 근대이래 가장 위대한 꿈(实现中华民族伟大复兴就是中华民族近代以来最伟大梦想)이라고 그 배경을 언급하면서, 이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一定能实现)이라고 힘주어 말했다.중국 꿈양 백년’(兩個一百年, Two 100s)의 목표를 갖는 것으로 개괄된다. 중국 꿈“2021년은 중국공산당 성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2049년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때까지 한 걸음씩 순리적으로 중화민족의 대부흥이 실현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진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중국의 꿈은 국가부강, 민족진흥, 인민행복이다. 이를 정리하면중국의 꿈은 중국의 국가 민족의 부흥의 길”(国家民族复兴之路梦想之路)로서, ‘중국의 길 지향’(走中國道路, 중국특색사회주의 노선), ‘중국정신 함양’(弘揚中國精神), ‘중국의 힘 응집’(凝聚中國力量) 이 세 가지로 집약된다(OCN)

 

중국의 꿈 중화부흥

중국의 꿈17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1840년 중국은 아편전쟁에 의하여 영국을 비롯한 당대 열강들에게 반식민적 굴욕 역사를 경험하면서중국의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 후중국의 꿈20세기 초 쑨원(孫文, 1866-1925)쩐싱쫑화’(振兴中华), 중화부흥사상의 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쑨원의중국의 꿈은 그 출구를 찾지 못했다. 이에 앞서 18941124, 쑨원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호놀루루(檀香山, Honolulu)에서中興會1차 회의(중국국민당 창당기원)를 가짐으로써신해혁명(辛亥革命, 1911)의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고, 쑨원의中興꿈은 20세기 초 그의 중화부흥(振兴中华)과 맥락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중화부흥은 마오쩌뚱(毛泽东), 덩샤오핑(邓小平), 쟝쩌민(江泽民), 후진타오(胡锦涛)에 이르기까지 중국 영도자들의 신성한 사명’(神圣使命)으로 계승되었으며, 특히 개혁개방 후중화부흥은 중국 대륙을 비롯한 화교들에게 이르기까지 적극적 공감대를 형성, 결국 중국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정신적 응집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공산당 성립 후 인민의 부단한 투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 꿈을 실현’(人民网, 2013.4.23)하기 위한 지도력과 노력이 인정된다는 견해도 있다.중국의 꿈은 중국에 있어서 하나의 정치적 이상일 뿐 아니라 모든 중국인의 꿈과 목표인 동시에 현실이며, 특히 중국인의 개인적 삶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중국 꿈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 바로 공산당이 추구해 온 투쟁의 목표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중국의 꿈,중화부흥이 어떻게 중국인을 응집시킬 수 있었으며, 중국민족을 결집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이 바로정신적 동력(精神动力), 중국의 꿈을 반드시 실현하고자 한애국주의정신력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신력이 한 편으로는 기독교 신앙으로 승화되어 거대한 몸부림으로 발전해 왔고, 현재도 부흥하고 있으며, 미래를 향한 거대한 응집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공산당이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신앙의 응집력은 그 어떤 정치력, 이념과 어떤 물리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중국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중화부흥의 백년 한 리유야쯔의 경축시 의미

긴 밤에는 빛을 보기 어렵다라는 뜻의창얘난밍(长夜难明, a deep night without a lamp.)은 중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매우 의미심장한 사자성어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의 일이다. 1950101, 중국공산당(1921)의 대륙 점거 1주년이 되는 때, 공산당은 대륙에서 시짱(西藏, 티베트)과 국민당의 타이완성(臺灣省)을 제외한 전 중국을 해방’, 소수민족 역시 경축 분위기에 고조되어 있었다. 그해 103, 중앙인민정부는 베이징에 있는 쫑난하이(中南海) 내의 화이르언탕(怀仁堂)에서 전국 158명의 소수민족 대표를 초치한 가운데 장엄한 경축행사를 가졌다. 행사에 참석한 마오쩌뚱과 당대 걸출한 시인 리유야쯔(柳亞子, 1887-1958)는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축하 공연을 함께 관람하고 있었다. 시인 리유야쯔는 축하 공연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경축의 뜻을 담은환시싸오(浣溪沙)라는 제목의 시구(詩句)를 마오쩌뚱에게 전했다. 이 시구에 나오는 말이 바로长夜难明,긴 밤 등불 없는 적현(赤县, 중국의 다른 이름 华夏를 지칭) 하늘에, 백년간 요귀 (이방인)가 춤추며 나풀거리더니, 5억 인구가 어찌 다시 모이지 않으랴(长夜难明赤县天百年魔怪舞翩跹人民五亿不团圆). 정말 간담이 써늘해지는 느낌이다. 이 시구에서긴 밤(长夜)은 아편전쟁 해인 1840-1949년까지, 100여 년간 외세에 의한 중국의 암울했던 역사를 가리키며,투안위앤(团圆)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인다는 뜻, 100년 간 외세의 지배아래서 전 중국민족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함께 힘을 모았다는 뜻이다. 그 어두운 역사를 마오쩌뚱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일거에 광명한 중국이 되게 했다는 뜻일 텐데, 중국국민당 내 좌파로 분류된 리유야쯔 시인의 권력 앞에서 부린 객기(客氣) 처신이었는지는 역사가들이 판단할 문제로 남겨둔다. 유물주의 사관에서 볼 때 중국이 과연 경제발전에 의하여 어두웠던 역사의 긴 밤이 걷혔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건전한 인간존엄의 시각으로 볼 때 중국은 아직도 긴 밤에 묻혀있다는 평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권력지향적인 시인의 눈에 비친 영국과 미국, 당시 열강들은 다 요귀’(妖鬼)로 보였을 것이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 열강들의 줄을 타고 중국에 건너간 기독교 선교사들 역시 요귀였다는 점이다. 201371일 중국공산당 창당 92주년을 맞은 해 중국공산당원은 8,500만 여명(2012년 말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BBC). 시진핑 주석 취임 당시 공산당원은 8,260만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소폭으로 증가한 셈이다.중국의 꿈밝은 현실이 과연 이들 당원들에 의하여 실현될 것인가? 창얘난밍(长夜难明)은 아직도 진행 중인지 모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벅(Pearl S. Buck, 1892-1973, 중국 명 사이쩐쭈賽珍珠) 여사는 생후 4개월 만에 미국 남장로교(PS) 의 저명한 중국 선교사 부친 시든스트라이커(Abalom Sydensticker, 1852-1931, 賽兆祥)를 따라 중국 항저우(杭州, 1883)와 수저우(蘇州), 쟝수성(江蘇省) 쩐쟝(鎭江) 등지에서 전후 40년 간 중국문화 속에서 살았다. 그의 노벨수상작북경에서 온 편지(Letter from Peking, 1657)사랑과 문화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작가의 어린 시절 중국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 자랐던 문화적 충격이 언급되어 있다. 19세기 중국인들에게 외국인은 요귀로 보였음을 반추케 하는 대목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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