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종교정책으로 본 중국기독교의 중국화

글 순서

시진핑 시대의 지도자상 중국의 꿈

중국의 꿈 중화부흥

중화부흥의 백년 한 리유야쯔의 경축시 의미

중화부흥 마르크스주의 신앙 의식형태

의식형태공작에 의한 중국기독교의 중국화

시진핑 시대의 중국기독교의 현재

마무리 글

 

중화부흥 마르크스주의 신앙 의식형태

시진핑 시대 정치지도 사상은중국의 꿈이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황허’(黃河)의 찬란한 문명을 창쟝’(长江)의 기적으로 꽃 피웠다. ‘한강의 기적에 비교할 수 있을까? 경제적 수치로 보면 중국의 경제발전 잠재력을 가늠할 만하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한 ‘1978이래 세계 20개 주요국가 GDP정황비교표에 의하면, 1978년 중국은 세계 10(한국27), 그로부터 22년 후인 20006(한국 12),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인 201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한국14)를 차지했다. 경제성장률로는 단연 세계 1(1980-2010)에 올랐다. 개혁개방 후 중국은 불과 32년 만에중화부흥으로 전 세계를 긴장시킬 만큼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시점에서, 201319~20,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선전사상공작회의는 시진핑 시대의 정치지도 핵심 축()이 무엇인가를 가늠케 하는 회의였다. 회의는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실무진들이 대거 참석한 매우 중요한 회의, 이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은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으로의식형태공작(意識形態工作)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시진핑은 경제 건설은 당()의 중심 업무이고의식형태 공작당의 극단적 중요한 업무임을 강조했다. 시진핑은 기회 있을 때마다의식형태공작을 강조 해 왔는데, 2016219일에 있었던 당()의 신문여론 업무 좌담회에서도 다시 반복했다(中國共産黨新聞罔, 2016.3.30)의식형태 공작은 시진핑 시대 중국공산당의 기본노선이며, 당대 중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中國共産黨新聞罔, 2016.3.30)이기도 하다. 시진핑에게 의식형태마르크스주의 신앙이며, ‘공산당인영혼(靈魂)으로 표현된다. 그러면 시진핑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 지극히 중요한 의식형태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이념’ (理念 Ideology, Gr. δεολογία), 즉 마르크스 사상체계 확립을 뜻한다. 시진핑은 경제적 발전과 번영 혜택으로 인한 사회적 사상 기강이 다소 느슨해졌다고 느꼈음이었던지, 유독의식형태를 강조했다. 이런 시진핑의의식형태진작(振作)은 단순한 사상적 이념을 다잡는 차원을 넘어서 경제발전과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중국특색사회주의와 공산당체제 존립의 위험이 감지되었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과 중국의 명운을 한 손에 잡고 있는 시진핑으로서는 그 절박한 심정으로의식형태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의식형태는 마르크스 사상체계에 있어서 계급투쟁은 역사발전의 동력임으로, 인민을 계급 분화시켜 투쟁 제조에 힘을 쏟게 함으로써, 사회 진보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공산주의 원론에 충실을 다잡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은 사회죄악의 원천이며, 공산당인의 모든 노력은 다 사유재 소멸과 폭력혁명을 통하여 사유재산 제도를 뒤엎고,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재산평등을 통해서 사회평등을 기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의식형태는 관념적 논리에 의한 사상 체계인, 일종의 관념과학’(觀念科學)이라 말할 수 있다.

 

의식형태공작에 의한 중국 기독교의 중국화

시진핑의 중국종교 정책 방향은기독교의 중국화이다. 이 말은 중국특색사회주의 종교이론에 근거한 종교사업 실천을 지도한다는 포괄적 의미가 담겨있다. 2016 422~23,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종교공작회의는 국무원총리 리커창(李克强) 주제 하에 중공중앙총서기 시진핑의 연설, 이어서 전국정협(政協) 주석 유쩡썽(俞正聲)의 마무리 연설로 진행되었다. 동시에 중공중앙정치국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전국종교공작회의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 회의는 200112월에 열린 쟝쩌민(江澤民) 시대 이후 15년 만에 열린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를 다스리는(以黨治國) ‘당국체제’(黨國體制)이다. 종교업무가 비록 각급정부의 일상적 업무의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통일전선 업무 범위에 속하며, 당정치 노선의 지도를 받는다. 종교업무 유관기관은 자율 및 독립적 영역이 아닌, 통일전선부의 방침에 종속된 업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런 구조적 이유 때문에 종교업무 회기(會期)는 반드시 공산당의 통전공작에서 먼저 방침과 원칙이 결정된 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2년 제18차 회의부터는 사실상 시진핑 시대에 속한다. 20155,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래 제21차 전국통전공작회의가 소집되었다. 시진핑은 종교공작에 관한 네 개 필수임무를 강조했다.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지도, 반드시 종교의 중국화 방향유지, 종교공작 법치화 수준 제고(提高), 종교의 사회역할 취급에 대한 논증, 종교계인사의 역할발휘를 중시하여 종교가 경제발전 촉진에 노력하도록 하고, 사회와의 조화, 문화번영, 민족단결, 조국통일 업무에 매진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진핑 시대의중국의 꿈이 추진하고 있는중국기독교의 중국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중국기독교의 사회주의순응

중국대륙, 타이완, 마카오의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번띠화(本地化, Localization)라는 말은 지금까지 중국대륙 기독교 내부에서 사용해 온번투화(本土化),번써화(本色化, indigenous church),추징화(處境化, 상황화)라는 용어와는 차별을 갖는다.번써화(本色化)는 서방기독교에서 사용해 온토착화(土着化, Inculturation, 1988)라는 용어보다 훨씬 문화적 상황을 강조하는추징화에 가까운 뜻으로 이해된다.번써화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아편전쟁 후 당대 열강들과 맺은 각종불평등조약에 연유한다. 열강들은 중국과의 불평등조약에서 자유무역, 관세혜택, 선교와 조계(租界), 영사재판권, 중국영토점유권 등을 가지면서, 사실상 중국의 국권을 침탈했다. 이런 배경에 의하여 중국기독교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번써화쯔반교회(自办敎會, 1873) 운동이다.쯔반교회운동의 본질은싼쯔(三自; 自养自治自传, three-self principle, 1954)운동이다(중국기독교대회, 1922, 上海)。「번써화가 자립원칙이라면추징화(處境化)상황화’(狀況化), 즉 기독교 선교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지 문화융합과 문화순응을 강조하는 용어다.추징화의 대조적 용어는 국제화(國際化)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시진핑시대에서 기독교의 쫑꿔화(中國化)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 용어는 기독교 밖에서, 특히 공산주의자가 기독교 관리정책 방향을 설정하면서 구사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기독교의쫑꿔화는 기독교가 중국 전통문화와 민족 및 중국사회에 융화되어야 할 것을 전제하는 정치적 용어수사이다. 이 말에는 기독교는 현행 중국 정치체제와 의식형태에서 출발해하며,양교신분(洋敎身分)의 기독교가 중국종교로 신분 세탁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 덩샤오핑은 마르크스, 마오쩌뚱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중국 현대화, 세계화, 미래화 방향을 지향한 반면, 시진핑은 의식형태에서 공산주의 이념 강조, 중국전통 중시, 미국주도의 서방세계와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 이런 시진핑 시대에 처한 중국 기독교가 택할 수 있는 방향은 박해의 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중국화 개념은 쉽게 말해서 기독교의 중국사회주의 이념체계화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매체는 시진핑 시대를 마오쩌뚱 시대로의 회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중국기독교의 중국 전통문화동화

20151120,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연구소에서, 중국종교학회, 베이징기독교 양회(两会, TSPM, 중국삼자애국운동윈원회, 1950.9.23; CCC, 중국기독교협회, 1980; 1988, WCC가입), 중국사회과학원 기독교연구중심이 주관한 기독교 중국화의 길(基督教中国化之路)이라는 주제 하에 국제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는 중앙통전부, 국가종교국, 중국사회과학원, 베이징 시 종교국, 쓰촨성 루저우(泸州)시 종교국, 베이징대학, 베이징사범대학, 싼뚱대학, 란저우(兰州)대학, 시베이사범대학, 베이징 시 기독교양회, 옌징신학원, 샹깡(香港), 타이완, 미국, 펀란드(芬兰, Finland) 등지에서 온 약50명의 전문가, 학자, 목사들이 참석했다. 이 세미나는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중국기독교협회(이하는 양회兩會’) 주관, 201485~6일까지 상하이(上海)에서 열렸던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설립60주년기념에 맞춰진 행사였다.삼자설립60주년기념 세미나주제는기독교 중국화의 길이었다(時代論壇, 2014.8.13).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거행된 세미나는 기념 세미나 후 첫 번째로 열린 대규모 학술대회였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삼자회60주년기념세미나를 기하여 1년 동안 같은 주제로 수 십차 례의 세미나를 가졌고, 이어서 국제규모의 세미나를 가진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 다이앤 오번체인 박사(Dr. Diane B. Obenchain), 타이완의 중화기독교 양안교류협회 이사장 웨이티샹(魏悌香) 목사, 샹깡중문대학 문화종교연구과 라이핀차오(赖品超) 교수, 샹깡문화갱신중심 량옌청(梁燕城), 중국기독교협회부회장 단웨이샹(單渭祥) 목사, 중국애덕예술원장 왕롱(王荣)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예술원장 왕롱은 기독교의 중국화를 상징하는 여섯 폭짜리 그림을 가지고 와서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림에는 중국인을 소재로 한 일단의 무리들이 예수와 함께하고 있었으며, 배경은 중국어를 손에 든 예수초상이었다고 한다(福音時報, 2015.11.23).삼자회60주년기념세미나에서 당시 국가종교사무국 국장 왕쭤안(王作安)은 연설을 통하여 중국특색신학사상정립을 강조하면서 합리적 성경 해석과 중국국정에 적응하도록 중국문화에 융합해야 할 것을 역설, ‘이로써 기독교 교의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 서로 융통하는 컨텐츠를 찾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왕쭤안의 연설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왕쭤안의 연설의 요지는 기독교 신앙의 표현과 생활이 중국전통 문화와 풍속에 부합해야 하며, 찬송가, 예배당 건축, 예배의식 등이 중국품격이 구현되어야 하며, 아울러서 조선숭배, 관혼상제 등의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기독교의 중국화는 바로 기독교의 중국문화동화(同化, Assimilation)를 뜻한다. 중국 상황에서 기독교는 양교’(洋敎) 이거나 외래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 원래의 본질을 벗고 중국 문화 토양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 56개 민족 중 한족(漢族) 이외 55개 소수 민족은 사실상 생존을 위해 한족문화에동화된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기독교는 현재동화정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기독교의 시진핑 시대진로

원저우(溫州)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인접한 저쟝 성(折江城) 동남해안에 있는, 예로부터 풍광이 빼어낸 곳이다. 1840년 아편전쟁(淸道光二十年) 발발과 함께 영국군이 띵하이(定海), 원저우(溫州)를 점령하면서 중국 근대사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곳이기도 하다.

 

중국의 예루살렘: 원저우는 중국 기독교 발전과정에서 중국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주어질 만큼 중국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원저우는 중국에서 기독교의 복음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그래서 중국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cf.1:8). 원저우가 기독교 선교에 접한 것은 1867(清同治六年) 11, 중국내지회(CIM, 1865. 6. 27 창립) 스코틀랜드 국적의 선교사 조지 스토트(曹雅直, George Stott, 1835-1889) 목사가 닝보(寧波)와 원저우에서 선교하면서 부터다. 이는 영국런던선교회(LMS)가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을 중국 광저우(廣州)에 파송(1807)한지 60년 후의 일이다. 조지 스토트는 스티븐슨(范约翰, J. W. Stevenson)과 혼인 후 3개월, 내지회 창립자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의 안배로 닝보(1866.2.10)에 파송, 22여년(1866-1888)간 원저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의 예루살렘기초를 다졌다. 스토트는 어릴 때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 탓에 중국인들에게 쪽다리 외국인’(獨腳番人, 당시는 외국인을 판르언이라고 함)이라는 비칭(卑稱)의 조롱과 서양 귀신’(洋鬼), ‘서양놈’(红毛番, 붉은 털을 가진 외국인)이라는 모욕을 감내했다. 선교사 면접 때 허드슨 테일러는 어떻게 한 쪽 다리로 선교지에 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스토트는 두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 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쪽다리를 가진) 내가 가야합니다.’(有着两条腿的人不去所以我必须去)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때는 외국인에 대한 중국인의 정서가 불안했을 뿐 아니라 원저우는 토속종교에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멀쩡한 몸을 가진 선교사들은 쉽게 지망하지 않았던 선교지 였던 것 같다. 스토트는 3년 간 현지인들의 서양인 배척과 기독교를 반대하는 강열한 초우양판지아오’(仇洋反教) 정서와 1870천진교안(天津敎案)으로 인한 박해가 가중될 때는 핑양(平陽) ()으로 옮겨 원저우 선교 기지를 확보하고, 후속 선교사들과 함께 중화기독교 내지회 교회를 설립했으니, 이 교회가 바로 현재 핑양시먼지아오탕’(平陽西門教堂, 1874)이다.

 

원저우의 기독교인구: 원저우는 중국 개혁개방 후 미국과 유럽,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일대에 거주하던 화교와 화상(華商)들이 대거 귀향해 거대 타운이 조성되면서, 기독교 인구가 신속하게 증가되었다. 홍콩의基督敎週報(2412)에 의하면 원저우 인구의 약2%가 기독교인일 것이라고 한다. 전 베이징 영국 외교관 토니 램버트(Tony Lambert)의 자료를 인용한 한 매체에 의하면, 2004년 원저우 지역 기독교 인구는 75,000, 등록 교회당 2,000, 집회소 2,000, 현재 기독교 인구는 100만 명을 초과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베이징의에 의하면, 1949년 이전 원저우 기독교 인구는 전 중국의 1/107만 명, 원저우 상주인구는 915만 명(2010.11), 그 중 15%가 기독교 인구(신교 1,372,500)이며, 교회당은 400개로 각각 짐작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나온 통계는 확인이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원저우는 중국에서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기독교의 현재

중국기독교역사는 피눈물의 역사’(一部血泪史)인 동시에, ‘신속하게 발전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一部迅速发展的神迹历史)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지속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지하교회)의 발전은 이미 중국 사회 전반에 건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 중국기독교의 운신의 폭은 녹녹치 않은 것 같다.

 

중국기독교 박해 실태

미국의RFA가 한 특약 기자의 기사를 인용한 보도에 의하면,201410대중국기독교박해 사건이 시진핑 취임 이후 그의기독교의 중국화발언과 동시에, 공산당의의식형태로써 기독교를 개조하겠다는 시진핑의 정치적 의지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보도는 201410대중국기독교박해사건을 그 실예로 들었다. 저쟝성 원저우의 산쟝따지아오탕(三江大教堂, 2,000여명 신도수) 교안(教案, 2014.3), 저쟝성의 핑양지우언탕(平阳救恩堂, 1,000여명) 교안(2014.7.21), 원저우(温州), 닝보(宁波), 항저우(杭州) 교안 등을 적시했다. 교안을 주도한 저쟝성(浙江省) 정부는 이른바 산까이이차이’(三改一拆) 공작을 실시, 2013~2015년까지 관내 무허가 건물, 낡은 주택 등을 철거한다는 목적으로 교회당 옥외 십자가 및 유사한 무허가 시설물을 강제철거를 단행한 것이다. ‘산까이이차이목표와 원칙일부 지역교회의 신속한 발전과 집회장소 확장 및 활발한 활동을 시정, 종교의 건강과 질서 및 규범, 합리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이를 실시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허난성(河南省) 푸난쓰(濮阳市)의 난예(南乐), 광시성(广西) 장족(壮族) 자치구의 류저우(柳州), 광뚱성(廣東省) 광저우(廣州)의 푸산(佛山) 가정교회, 베이징(北京)의 통저우(通州), 산뚱성(山東省) 자오셴(曹县), 신쟝(新疆) 위그루자치구 가정교회 교안 역시 일련의 사건에 포함된다. 보도는 시진핑 시대 중국기독교가 처하고 있는 박해의 현장과 그 실상을 여과없이 밝혔다. 교안 과정에서 당국은 목회자의 구금은 물론, 신도들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집행했다. 이들 10대 박해사건은 2013년 보다 더 엄중한 것으로 비교된다. 그래서 매체들은 시진핑의기독교의 중국화정책은 바로 중국기독교에 대한 박해 선포적 의미라고 평했다.

 

시진핑이 두려워하는 중국기독교 발전

화치아오(華僑) 매체인民報(2015.9.10)시진핑은 왜 기독교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시진핑의 중국기독교 정책은 비실제적인 환상’(不切實際之幻想)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저쟝 성 내에서 강제 집행된 대규모의 박해 사건은 시진핑의 종교정책이 마오쩌뚱 시대의 종교정책으로의 회귀와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독교 박해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주목했다. 중국기독교 박해사건은 결국 시진핑의의식형태발언과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하는 것이다. 박해 사건현장 대부분이 저쟝 성인 이유는 저쟝 성에서 중국 기독교가 가장 신속하게 발전·부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매체는 홍콩의 안더리에(安德烈) 학자의 말을 인용, ‘저쟝 성은 기독교 역사가 오랜 성()이며, 원저우는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한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저쟝 성은 시진핑의 정치적 효용가치가 높은 그의 심복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진핑의 정책을 솔선수범하는 시진핑 지지파의 정치적 동지가 요직을 차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 시진핑 막료 11명 중 과반이 저쟝 성에 포진하고 있다고 한다. 매체는 이들이 결국 저쟝 성의 교회당 십자가 강제 철거에 앞장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보도는 정치적으로 이미 사면초가’(四面樹敵)백방으로 정적’(八方開戰)에 둘러싸인 시진핑으로서는 중국기독교를 표적으로 그의 정치적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중국 기독교 인구는 이미 중국공산당원 수를 초과했다. 이는 중국공산당에게 더할 수 없는 위협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인 추세다. 그래서 시진핑이 그의 시대에 이런 위협적 단체인 기독교를 표적삼아 강수를 둔다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 그런가 하면 1966년판紅旗(第十二期)를 인용한 매체는 마오쩌뚱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칭호(尊號)위대한 지도자偉大的導師위대한 영수’(偉大的領袖)위대한 통수권자’(偉大的統帥)위대한 영도자’(偉大的舵手)라고 전제하고, 이들 존칭을 네 개의 모자’(四頂帽子)에 비유하여, 시진핑 역시 이런 역사의 위치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주를 달았다. 프린스톤대학교 역사학 교수 유잉쓰(余英時) 박사는 시진핑을 2의 마오쩌뚱이 되고싶어한다’(習近平要做毛澤東第二)고 했다(BBC). 평론 매체들은 시진핑 시대가 개막될 당시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이 거의 탈진상태였다고 지적하고, 이런 상황을 간파한 시진핑이 기독교 탄압에 칼을 뽑아들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중공왕조의 시황제마오쩌뚱 정치 노선을 견지할 것인가, 아니면 견제할 것인가의 딜렘마에 빠진 조짐을 보인다고 하면서, 공산당 내 보수파의 반기를 잠재우기 위해한 정치적 융통성을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보였다. 그렇다면 시진핑 시대가 마오쩌뚱 시대를 상기시키는 정책시행이 정치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일게다.

 

중국기독교의 중국화는 비기독교화

시진핑 시대의중국의 꿈의식형태를 진작시켜,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과 현대화 과정을 지나면서 이완된 중국공산당의 이념적 결집과 함께기독교의 중국화라는 명분을 걸고 벌이는비기독교화(非基督教化) 정책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중국 근·현대사에서비기독교화는 탈서방화(脫西方化)를 뜻한다.비기독교화19세기 말 산뚱성(山东省)에서 시작된 의화단사건’(义和团事件, 1899-1901; 义和拳, 庚子事变拳匪, 拳乱, 庚子拳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사건의 목적은 청 제국을 도와 서양을 멸한다’(扶清灭洋)는 이른바 중국의 민족주의적 반제국운동’(反帝爱国运动)과 함께 중국 전역으로 확대된 반교’(反敎) 운동, 무신(無神) 사상 조류(潮流) 등을 포괄하여비기독교운동(1922-1927)이라고 한다. 중국공산당은 반교운동이 뜨겁게 진행되는 과정인 1921년에 창설되었다. 이 운동은비기독교학생동맹(非基督教学生同盟, 1922.3.9) 결성과교육회수권운동(收回教育权运动)으로 구체화되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비기독교화는 19세기 말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1920년대를 전후하여 운동의 성격과 방법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시대의 기독교의 중국화는 중국 땅에서 서방의 색채를 완전히 제거하는 정책이다. 이런 역사와 사상적 배경에서 중국공산당은 기독교가 서방의 색채 농도가 가장 짙다고 보고, 중국 땅에서 이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시진핑이 선포한 중국의 꿈을 이루는 의식형태, 기독교의 중국화라고 보는 것이다.

 

마무리 글

시진핑 시대의 중국공산당 종교정책은종교생태의 균형(宗教生态平衡) 정책이다.종교생태의 균형관점에서 기독교의 중국 선교는 엄연히 중국문화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문화침략이다. 중국공산당과 보수층은종교생태의 불균형(宗教生态失衡)을 바로 잡기 위해중국기독교의 중국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 깐쑤성(甘肃省) 통전부 부부장 마후청(马虎成)기독교가 현재 중국대륙에서 신속하게 발전하는 원인분석(基督教在当今中国大陆快速发展的原因辨析)이라는 주제의 종교생태 불균형에서 기독교의 발전을 제한해야 한다라고 한 주장(時代論壇)과 관련, 중국 내외 학자들이 이례적으로 예의 주시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후청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종교생태균형을 유지한 것으로 보았다. 즉 마오쩌뚱의 종교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이다. 현재 중국기독교의 신속한 발전은 마후청을 비롯한 지식인들 세계에서 중화민족의 문화 다원성과 주체성 및 국가 안전성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가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조짐이다. 이들이 언급한생태생물계통과 자연환경의 상호관계에서 유지 발전된다는 점에서, 종교가 처한 그 역사와 사회적 환경과의 조화로운 관계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중국종교생태연구가 중에는 중국사회과학원세계종교연구소소장, 기독교연구가 쭈오신핑(卓新平, 1955, 湖南人)을 비롯하여 중국사회과학원세계종교연구소의 뚜안치(段琦, 1944, 上海人), 중앙민족대학교 철학·종교학 교수 무쭝지앤(牟钟鉴, 1939, 山東人)과 같은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기독교가 최근 유일하게 발전한 이지아오뚜따’(一教独大) 현상은 중국종교생태의 불균형위협이라 보고, 중국전통종교를 가지고 기독교의 발전을 억제해야 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진핑의중국기독교의 중국화정책은 바로 기독교 소멸을 위한 전문가들의 학문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1950년 대 중국삼자애국운동 발기 때 중국 자유주의 신학자와 목사들이 신학적으로 중국공산당이 중국에 안착할 수 있게 뒷받침한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종교생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의 수정, 기독교의 개조, 중국 전통문화와 공산당 정권에 위협이 안 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博訊). 말하자면 기독교가 중국의 사회주의 생태, 마르크스주의 생태, 전통종교 및 문화의 생태를 파괴하거나 교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시진핑은중국기독교의 중국화정책을 강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현재 중국 학술계에서는종교생태론(宗教生态论)이 이슈가 되고있다(中國民族新聞罔, 2010.7.27) 홍콩의 차이싸오치(蔡少琪, 建道神學院) 박사는 중국기독교가 전반적으로 안정된 발전을 갖게 된 것은 천안문사태로 알려진六四事件(八九民運, 1989년에 있었던 민주화운동) 이후로 보았다. 차이 박사는 당시 중국 북부 일부 농촌지역은 기독교인이 사회주류를 이루었고, 도시 교회가 급성장세를 보였으며, 많은 대학생과 전문직 인사들이 매일 그리스도인으로 증가했으며, 이런 현상은 서방과 일부 해외 기독교인들이중국의 기독교화의 꿈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 이와 때를 같이하여 중국 학계와 정가에서 나온 말이 바로종교생태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논증들을 종합해 볼 때 시진핑 시대의중국기독교의 중국화정책은 곧중국의 기독교화에 대한 억제 정책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런 박해와 시련속에서도 중국기독교는 성경대로거침없이발전을 거듭하며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기독교(특히 지하교회)는 마오쩌뚱과 문화대혁명 시대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견지하기 위해 선택했던 길이 바로 박해였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기독교 역시 이 길을 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1)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