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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목사님의 1월 7일자 답변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토론방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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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 Jong Choi
등록일
2021-01-10 04:42:07
조회수
1076
작년 9월 17일자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저의 글 “로마서 7장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전목사님의 댓글이 실린 이후 저는 2개월 이상 일체의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바쁜 가운데서도 댓글에 대한 답변을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목사님을 존중하고 저의 글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 7일자에 실린 목사님의 글을 읽은 다음 목사님의 댓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론을 계속하는 것은 서로에게 무익한 것으로 판단되어 이 번 답변의 글로서 모든 토론을 끝내려고 합니다.
전목사님, 목사님의 댓글과 토론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무엇입니까? 최갑종교수는 결국 “성화 구원론” “행위 구원론” 주창자이며, 따라서 “톰 라이트와 김세윤 교수 내지 새 관점 지지자”임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목사님의 의도입니까? 저는 지금까지 제 책과 제 논문을 통해 구원에 있어서 성화의 중요성과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 번도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칭의와 믿음의 중요성을 배제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울러 제 책과 논문에서 제가 한 번도 칭의를 배제하는 “성화 구원론”과 믿음을 배제한 “행위구원론”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의 편견된 선입감과 흑백논리에 의해 저를 그러한 카테고리안에 묶으려는 저의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목사님이 지금까지 제가 출판한 책과 학계에서 발표한 논문들, 이를 테면 “새 관점의 바울 연구 다시 보기,” 『신약연구』 8/3(2009): 93-124; “새 관점의 바울연구의 핵심 이슈, 이신칭의와 율법,” 『목회와 신학』 240(2009): 218-227;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개혁신학』 28(2010): 38-103; “한국교회와 구원론: 새 관점에 대한 복음주의의 대응: 바울의 이신칭의 교훈을 중심으로,” 『성경과 신학』 55(2010): 1-40; “칭의와 성화 그리고 최후 심판,” 『목회와 신학』 (2016, 9): 142-149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읽어보셨더라면, 설사 그런 논문을 접하지 못했더라도 2016년에 출판되어 널리 알려진 제 책 『칭의란 무엇인가』 (서울: 새물결플러스)를 한 번이라도 자세하게 읽어보셨더라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고신 교단의 목사 아들로 출생한 것, 고신대학과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것, 거기서 제 신앙과 신학의 뿌리를 형성한 것을 자랑해오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한 제 선배, 후배 목사님들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는가를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 유학생활 기간 동안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고신의 신앙과 개혁주의신학에서 떠나 있다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은사였던 고 이근삼, 오병세, 홍반식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항상 감사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고신에서 배우고 익혔던 캘빈, 바빙크, 카이퍼, 벨코프, 메이쳔, 머리의 가르침을 항상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목사님, 설사 성경해석에 있어서 저와 의견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마치 전통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노선을 떠난 “성화구원론”과 “행위구원론” 주창자로 매도하하려는 것은 제 개인은 물론 저의 신앙과 신학의 요람이었던 모교와 저를 가르쳤던 은사들, 제가 한국에서 백석대학교 신약교수로서 지난 25년간 가르쳤던 수천명의 신학도와 배출된 수 많은 목회자들,제가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총무와 회장으로 역임했던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소속 교수님들, 그리고 제가 현재 소속된 학교와 제게 개혁주의신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전목사님의 설교를 곡해하여 목사님의 교회와 소속교단 목사님들과 성도들에게 목사님이 잘못된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공지한다면 목사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글은 한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학문을 대변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읽는 대중적인 매체에 글을 쓸때는 매우 신중하여야 합니다. 설사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만난다하더라도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나의 주장은 옳고 당신의 주장은 잘못되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독선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여러 저서와 학회 논문을 통해서 한결같이 주장한 것은 성경은 한편으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의한 칭의와 구원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또한 성화와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울은 구원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가르침 혹은 영생의 가르침처럼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구원의 시제를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시제를 시용하고 있는 점과 구원과 관련하여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는 직설법 문장만이 아니라 또한 내주하는 성령을 통한 신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명령법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현재와 미래 시제가 어느 순간에도 과거 시제로부터 독립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이미의 구원사역이 성령안에서 주어지는 아직의 사역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결국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갤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그리스도 인격 안에서 칭의와 성화가 어느 순간에도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어느 순간에도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가 배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받는 이중적인 은혜로 보는 것이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끝으로 제가 2016년 출판된 책 칭『의란 무엇인가』 (서울: 새물결플러스)의 결론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함으로서 제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 대한 제 입장은 제가 작년에 출판했던 『마태복음 산책』(서울: 이레서원, 2020)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분명 의와 구원의 방법을 말하는 직설법의 문맥에서는 율법의 행위를 포함하여 그 어떤 인간의 공로나 선행을—설사 그것이 성령을 통한 선행이라 할지라도—배제한다. 그는 오히려 인종, 신분, 성별, 품성,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요,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바울은 신자의 삶을 말하는 명령법의 문맥에서는 순종의 믿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없이는 의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와 구원이 결코 싸구려가 아니며, 신자가 이 세상에서 제 멋대로 살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경계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이 양자를 인위적으로쉽게 조화시킬 수도 없고, 조화시켜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양자를 인위적으로 조화시키려 할 경우 둘 다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후자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바울의 가르침을 행위구원론으로 볼 수 없는 것은,우리가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그가 말하고 있는 믿음의 순종,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사랑의 삶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사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고전 15:10; 롬 3:2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 아무리 우리의 선행과 삶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임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성경 본문의 뒷받침을 받는다하더라도, 라이트와 던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성경 전체가 혹은 사도 바울이 현재의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최종적인 심판을 거쳐 주어지는 미래의 칭의는 선행에 따라 주어지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고 도식화 시킬 수 없다. 이것을 도식화시킨다는 것은 또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 성경의 다른 교훈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사역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격및 사역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칭의와 성령의 인격 및 사역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성화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고(고전 1:30),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가지신 하나하나에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동시적으로 이 모든 것에 참여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된다. 물론 이 닮음은 단회적인 ‘이미’의 것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 계속 충만하게 되어가는 ‘아직’의 것이다(엡 5:22-25; 고후 3:18)”(pp. 273-275)

.....필자는 “칭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칭의’/‘구원’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필자의 글을 읽은 독자들 중 필자의 논지와 의도에 공감하거나 의견을 같이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곡해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본다. 즉 필자가 전통적인 기독교 구원론의 교리를 이탈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필자가 전통적인 “이신칭의 구원론”을 포기하고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가르치자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장로교회에서 성장하여 장로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배운 자로서 장로교회나 개혁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등을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으로 여전히 보전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통적인 신학적 유산과 함께 성경이 다른 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우리가 다소 소홀이 취급해왔던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도 똑같은 비중으로 보존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정신뿐만 아니라, 또한 “전체 성경으로”(Tota Scriptura)의 정신에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독자들 가운데 “이것이 옳으면 저것은 틀렸고, 저것이 옳으면 이것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필자의 “이것도 성경의 가르침이고, 저것도 성경의 가르침이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성경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가진 교리를 찾아야 한다는 조직신학적 관점에 익숙해 있거나, 전통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보려고 할 경우, 필자의 양면적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경신학자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때때로 그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수긍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고수하고 싶다. 필자는 예수가 제자도를 강조하는 마태복음서나 신자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읽을 때는,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강조하는 바울의 서신을 의식하지 않고 본문을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도 영감된 그리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믿음과 은혜의구원을 말하는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는, 마태복음서나 야고보서의강조점을 의식하지 않고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본다. 이들 역시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양자를 조화시키려 할 경우 오히려성경 저자의 강조점과 메시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자세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가르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는개혁신학의 원리와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pp. 283-285).
작성일:2021-01-10 04:42:07 73.122.2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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