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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서 경쟁력있는 삶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며 (1)

닉네임
윤강현
등록일
2021-06-04 00:17:25
조회수
485
이 글은 2015년에 등장한 기사 "왜 크리스천 청년들은 경쟁력이 없는가?"에 대한 필자의 두 번째 글입니다. 이 땅에서 크리스천들이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경쟁력있는 삶을 살고자 하려면 먼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어떻게 경쟁력있는 살 것인지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찾아 실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필요한 내용을 세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경쟁력 있는 삶을 위한 방안:
하나님 나라의 틀 속에서 창조 기사의 내용에 기초하여



윤강현 교수
Bible-Driven Marketing Institute
Email: bibledrivenmarketing@gmail.com



May 25, 2021

1. 논의를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 속에서 청년을 포함하여 모든 크리스천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땅에서 경쟁력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뒤 이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기대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결과가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이행되어야 할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찾아내는데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지금까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구원에 있다는 전제 하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지향적인 입장에서 말씀 해석을 위한 노력이 주를 이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3:17절에 기초한 구원 지향적인 말씀의 해석은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사이에 생기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한국 사회 속에서 상당수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을 받는다면 이후 나쁜 짓을 해도 천국에 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신학적으로 신학자와 목회자 사이에 칭의와 성화 사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구원은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에 등장하는 칭의에 대한 내용에 기초하여 왔는데 최근에 안용성 목사는 책 <로마서와 하나님 나라>에서 로마서의 핵심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임을 주장하였습니다. 구원 지향적인 입장에서 정통 교회가 제시하는 내용은 구원파라는 이단이 제시하는 내용과 차별화된 점도 문제가 됩니다. 교회에서조차 구원에 대한 내용을 기복적으로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구원 지향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져 온 말씀 해석의 결과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내용이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근본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땅에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돕기 위해서는 말씀과 삶을 이어주는 성경 해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요한일서 1장에도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구원 지향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다양한 상급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등한시 여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말씀이 삶으로 이어지는 성경의 해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상의 이슈들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과 편견을 내려놓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이 땅에서 삶의 운영의 토대가 되는 성경이 제시하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성경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창세기 1-2장으로 구성되는 창조 기사의 내용에서 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부분이 이 땅의 시작 또는 기원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기존의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 땅을 향한 큰 그림의 핵심이 과연 구원에 있는 것인지 재검토해야 합니다. 만약이 구원이 아니라면 말씀과 삶의 일치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이 내용에 기초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지 이를 위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찾기 위하여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 중심적인 시선 또는 렌즈를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입장으로 바꾸게 되면 위에서 제기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본 글의 목적에 따라 이 땅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삶을 살기 위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먼저 창조 기사에 담겨 있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 내용에 기초하여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조건 또는 가이드라인을 탐구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하는지 이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보려 합니다. 이 세 가지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 본 글의 목적입니다. 이 내용에 기초하게 되면 이 땅에서 크리스천들이 경쟁력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참고로 본 글의 내용은 독자 여러분을 위하여 필자가 준비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서” 성경공부 시리즈에서 핵심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많은 은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글을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섹션 2에서는 창조 기사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태초의 계획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섹션 3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소개할 것입니다. 섹션 4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고자 할 때 왜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이 필수적인지 탐구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글의 결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2.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태초의 계획을 찾아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첫 번째 과제로서 삶을 위한 토대가 되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구원 지향적인 생각과 편견을 내려놓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창세기의 히브리어는 베레쉬트로서 처음 또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미에 기초할 때 원역사에 해당되는 창세기 1-2장으로 대변되는 창조 기사에는 이 땅의 기원 또는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태초에 준비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그림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크리스천으로서 경쟁력있는 삶을 살려면 태초에 하나님이 준비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큰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고 이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에 담겨있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성경의 핵심 또는 중심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the gospel of Kingdom of God”에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지만 동시에 성경은 왕으로 오셨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는 말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진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가진 통치 또는 다스림에 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긴밀한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통치의 차원에서 성경을 바라보면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핵심적인 내용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성경은 이 땅에 사는 각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여주신 여러가지 사역을 답습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틀 속에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스림을 답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창조 기사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 탐구해봅니다.

태초에 일어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지금까지 크리스천들에게 잘 알려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피조물인 사람이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데 있습니다. 또 다른 의견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와 더불어 소요리 문답의 제 1 문답에 따르면 사람의 인생과 관련하여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본 글은 이사야 43:7절에 기초하여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내용은 이 땅에 사는 상당수의 크리스천들 마음 속에 이미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10:31절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 역사상 교회의 대부흥에 큰 영향을 끼친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논문을 통해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7, 개역한글)

이 땅에서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먼저 영광과 관련하여 크리스천 사이에 존재하는 오해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이 가진 한 가지 커다란 오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의미하는 바를 “하나님께 영광을”이 가진 의미로 오인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의 전체 맥락을 고려할 때 그리고 영광의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가진 의미인 무거움의 속성을 고려할 때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하늘에서 준비된 하나님의 영광은 이 땅에 임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크리스천들이 펼치는 다양한 노력은 영광이 가진 사전적인 의미와 배치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때때로 빛의 형태로 설명된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장이 보여주는 대로 태양에서 빛이 나와 어두움을 비추듯이 참 빛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각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방식 I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과정에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창조주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 과정에 대한 하나님의 의중이 잘 반영된 구절이 창세기 12:2절입니다. 아래의 말씀이 알려주는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한 사람이 이 땅을 향하여 복이 되는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한 사람이 이 땅을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에 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2, 개역한글)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매개체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가지 형태의 책을 주셨다는 점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이란 특별 계시의 형태로 주신 성경이라는 책과 일반 계시의 형태를 띤 자연이라는 책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하여 성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의 삶의 환경을 구성하는 자연 환경 속에 다양한 매개체를 세워 두셨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과 과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먹거리를 얻게 됩니다. 물과 공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을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또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빛이란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이 축복의 형태로 이 땅에 임하도록 창조 사역을 행하시고 삶의 환경을 구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는 한 사람은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창조 명령 또는 문화 명령으로 잘 알려진 창세기 1:26-28절에 등장하는 표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개역한글)

위의 구절에 담긴 두 단어인 형상과 사람이 가지는 히브리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조직 신학자 웨인 그루뎀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역할이 부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늘과 이 땅을 잇는 매개체로서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감당하는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과정 속에서 두 가지 형태의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에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방식 II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을 다스리는 절차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창세기 1:26절로 대변되는 창조 또는 문화 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 알려진 에덴 동산에서 그것을 다스리며 지켜야 합니다 (창세기 2:15).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음을 받은 한 사람을 하늘과 이 땅을 잇는 매개체로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다스리는 역할을 감당하는 노력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해야 합니다.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 개역한글)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세기 2:15, 개역한글)

이 내용은 성경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 나라가 가지는 의미와 긴밀히 연결이 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가지는 고려할 때 성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을 향한 다스림의 과정을 통해 하늘에서 준비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 땅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미 추측하시는 대로 성경의 핵심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둘 경우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특히 상당수의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다양한 상급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 이유는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되면 이 땅에서의 삶이 중요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가설을 제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가지는 다스림의 시각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게 될 때 이 땅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결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은 두 가지 형태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두 가지 축복이란 성경에 들어있는 약속의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영적인 축복과 자연 환경의 다스림을 통해 누리게 되는 물리적인 형태를 띠는 물질적 축복을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특별 계시의 형태를 통해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하는 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며 영원한 삶을 누리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의 존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누리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면 하나님이 어떠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을 알려주기 위하여 성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속에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구원 계획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다음으로 물질적인 축복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6-27절과 2:7절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가진 필요를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대표적인 필요 가운데 하나가 생리적인 필요로 대변되는 배고픔을 채우는 일입니다. 바로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창세기 1:29-30절에 먹거리로 대변되는 채소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 먹거리를 위한 각종 나무의 실과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마태복음 6장에 등장하는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이 등장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다양한 형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물질적인 축복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사람들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축복에 대한 큰 그림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한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나타납니다.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1-5, 개역한글)

이 땅에서 영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축복을 경험하려면 포도나무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비유 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담긴 하나님의 법칙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구절이 잘 지시하는 대로 농부는 하나님을,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그리고 가지는 이 땅에 사는 각 사람을 대변합니다. 이때 각 가지가 과실을 맺으려면 첫 번째 조건으로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사람이 서로 함께 동행하는 삶을 누려야 합니다. 만일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각 가지는 말라버린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가지를 대변하는 각 사람은 과실을 맺어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만약 과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면 각 가지는 불에 던져지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지가 맺은 과실을 취하는 최종적인 존재는 삼위일체 하나님도 아니고 가지도 아닌 포도나무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포도나무의 가지가 과실을 맺어야 하는 이유는 이웃 사람이 가진 필요를 채우는데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책을 집필한 리처드 미들톤에 따르면 고대 근동 시절 히브리인에게 주어지는 큰 축복은 먹거리로 대표되는 농산물의 경작과 전달에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물리적인 축복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을 다스리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두 가지 축복의 형태로 이 땅에 임하게 될 때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은 만족함과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의도한 큰 그림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족함을 누리게 되려면 무언가를 통한 채움이 일어나야 합니다. 만족의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무언가를 통해 빈 곳을 채울 때 만족이 일어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만족의 핵심은 채움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배 속에 있는 위가 음식물로 채워질 때 사람은 배고픔이라는 필요 또는 문제를 해결하고 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창조 기사의 내용을 잘 분석해보면 채움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린도후서 3:5, 개역한글)

다음으로 이 땅에서 풍성함을 누린다는 것은 수적인 측면에서 종류의 많음과 양적인 측면에서 각 종류의 넉넉함을 경험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풍성함의 원리는 이 땅의 삶 속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 내부의 모습을 관찰해보세요. 삶 속에서 여러분은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준비되는 식탁을 통해 다양한 음식의 종류와 더불어 각각의 음식의 넉넉함을 누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땅에는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이 땅에 사는 이들이 만족함과 풍성함을 누리도록 다양한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아담 스미스의 책 <국부론>이 의미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국부는 이 땅에 존재하는 개인과 기업들이 보여주는 만족함과 풍성함을 채우기 위한 여러가지 경제적 활동에 기초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또는 앞으로 언급할 마케팅 활동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고린도후서 9:10, 개역한글)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성경적 원리 또는 하나님의 법칙으로서 이 땅에 다양한 형태의 축복이 풍성하게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욥기 42:12-17). 또한 역사적으로 성경적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영적인 부흥과 더불어 경제적인 부흥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대한민국이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작성일:2021-06-04 00:17:25 98.162.2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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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21-06-05 17:22:23
윤 교수님 감사합니다. 글을 나의 주장 코너에도 올려서 많은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