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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설립 70년을 넘어서 두번이나 바뀐 세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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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공사
등록일
2023-03-07 14:52:57
조회수
255
<부목사제도>
고려신학교의 졸업생의 수가 그 해에 개척되는 교회수보다 많다면 그 졸업생들은 갈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매년졸업하는 신학교졸업생수혹은 목사안수받은 목사수의 누적을 해소하는 방안이 한교회에 여러명의 목사를 배치하는 것이다.
앞서이야기한것과같이 교회를 목사에게 위임했으나 교회가 커지면서 한명이 그일을 담당하기어려우니 여러면의 목사를 채용하게되었고 이런 상황은 교회내에 여러명의 목사가 있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생기게된다. 이런상황이 지속되면서 교회에서 필요해서 필요인력(목회자)을 충원헸으나 급기야 충원된 목사들의 역할을 위해서 교회가 다양한 일을 하게된다. 이 주장이 다소 억측이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과거 부목사가 없던 시절에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이 교회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지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교회내에 많은 부목사들의 일을 하기위한 교회라는주장의 근거가된다.
부목사제도의 또다른 문제는 목회자들의 서열화이며 교회내의 직분자들의 서열화이다.
서열화! 이 용어 자체가 세상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다. 세상과 더불어살아야하는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도외시하거나 극단적으로 염세적인 태도를 취해야한다는 것은 옳지않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영적인 일이외에도 행정적인 사무도 상당히 있기떄문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구별되어야한다는 의무를 저버릴수는 더더욱없다.

군에서는 다른 군인들을 수사(혹은 조사)할수있는 헌병대가 비교적 권력기관이라고 할수도있다. 수사권과 정보력을 함께 갖고있는 보안사(기무사)가 권력의 중심이었던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않다. 회사에서 중요한 보직 중에는 인사를 감당하는 인사부서이다. 그들은 고급정보를 생산하기도하고 관리하기도 하니 그도 그럴것이다.
교회에서 당회장인 담임목사는 부목사들의 채용과 관련된 인사문제에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이것은 누가 강제하지않아도 부목사들이 담임목사에게 복종할수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이로인해서 교회내에서는 목사들의 서열화가 나타난다. 심지어 부목사들사이에도 누가 더고참이니 신참이나 하는 식으 서열화를 가지며 그것이 그드르이 정체성인냥 암암리에 인정한다. 지극히 프로페셔널한 경우이다. 그렇다 이런것들은 소명의식으로 안수받은 목사들에게 직업의식을 고취하는 처사이다.

부목사제도는 교회의 대형화로인해서 파생된 제도이라는 이야기는 교회의 대형화 내지는 교회의 출석교인수의 증가 지상주의에서 나온 제도이다. 이와같은 병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않겠다.


<신학교>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학교는 하버드대학교일것이다. 영국의 최고명문인 캠브리지는 세계최고의 물리학자인 뉴튼을 배출한학교로도유명하다. 이와같은 대학들은 학문과 지성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와같은 대학들은 모두 신학교로 개교한 학교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학교들이 개교할달시에 최고의 학문을 신학이었다 아니 더정확하게는 학문은 곧 신학이었다. 따라서 당시 최고의 인재들이 모두 신학교로 모였고 자연스럽게 성직자들은 사회의 최고 엘리트였다.

교회는 앞서이야기한것과같이 신학교를 졸업한후 목사안수를 받은 목사에게 위임되어 꾸려진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속한 장로교에서는 교회이 영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 최고회의체인 당회의 당회장을, 교회행정에 대한 제직회의 제직회장을 위임(담임)목사가 맡는다. 사회에서는 3권의 분리를 통해서 권력간의 견재를 제도화했지만 교회는 그렇지않다. 그렇다면 교회의 담임목사는 교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교인들이 감화할수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하다.
70대의 은퇴장로도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권위에 복종한다. 그가 비록 아들같은 년령이라도 그렇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학교의 교육과정(커리쿨럼)에 반영되어야할 요소를 찾을 수있다.
신학교에서 훌융한 영성교육과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기위한 신학문에 대한 학업을 게을리할수없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에서 목회하기위한 인성교육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하다. 세상이 바뀌고 사회가 다양해져서 하버드나 캠브리지대학에 신학과보다 더 인기 많은 학과가 생기고 우리나라 대학에서 신학과를 입학하는 것이 다른 경쟁력있는 과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즉 신학생들이 다른 인기학과의 학생들보다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교회에서만큼은 막강한 카리스마를 가져야하는 역할을 수행해야하기에 적어도 인성만큼은 더 뛰어나야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중에는 그 교회 담임목사와 동창생도있을것이며, 그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칭찬 받았던 사람들도 있을것이다(물론 그렇지 못함 사람들도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감화시킬수있는 자질이 목사에게는 필요하다.
목사의 영적인 능력? 이건 어느 누구도 의심하거나 측정할수있는 것이아니며, 필자는 개인적으로 목사가 되려고 신학생이 된것이나, 안수받게 된 그 모든것은 범상치 않은 그의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교회문화에 대한 문제
문화는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해간다. 우리가 흔히 세대차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변한 문화에 대한이야기일것이다.

우리교회에도 그 주축 세대가 바뀌었고 또 바뀌었다. 지금의 주축은 아마도 50대의 목사들일것이다. 그들은 아마 대부분 개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일것이며, 교단의 총회나 노회등에서 중요역할을 수행하는 주축 맴버로 활동하는 목사들이다. 그들은 대내적으로는 개교회에서는 자신이 거느린 부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끼칠것이며, 대외적으로는 총회히나 노회등에서 후배목사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끼칠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그들도 역시 선배 목사들로 부터 그렇게 배웠을것이다.
문제는 이런 프로세서가 교회문화를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와같은 장이 좋은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라면 더할나위없겠으나 그렇지 못한경우가 발생되고있다는 것이문제인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교회성도들간에 위화감을 이르킨다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안에서 연합되어야하며 서로 협력하여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교역자들이 가지는 기형적인 선민의식은 교회내에서 성도와 교역자간의 말못할 감정을 키운다. 교회에서 고신 대학교 동창회모임을 공공연히 광고하고 교회행사에서 담당교역자와 성도들간의 대결을 부축기고 심지어 교인과 경쟁하려는 듯한 행태는 교회의 분란을 차치하고하도 개인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수준이다.
교회의 목사의 위치와 권위는 구약시대 제사장이나 에수님의 제자인 사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심지어 일부 목사는 모세에게 반기를 든 제사장 아론을 빗대어 목사의 권위를 주장한다. 이와같은 생각은하나님을 빙자해서 자기의를 앞세우고 자신의 이권을 가지려는 것과 다르지않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를 결속시키는 즉 교회에 덕이되지 않는 소치이다.

추가로, 우리교회가교인수의 증가를 최대의 지상목표로 하는 교인수 증가 지상주의다.
이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은 으슥하게 하고, 그렇지 못한 교회목사들은 주눅들게까지한다. 이것 역시 일부 목회자들의 사욕이하고 해야한다. 내가 담임하는 교회에는 내가 거느린 당호원수가 몇명인가에 따라서만 명예심을 느끼고, 내가출석하는 교회가 큰교회라서 우리 교회목사님이 TV 에도 출연하고. 우리 교회성가대도 유명하고, 우리 교회교인수가 대단많고, 교회에서 하는 행사가 다양하고, ....를 자랑하는 성도가많아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소속감보다는 대형교회의 교인이라는 소속감에 더 우쭐합니다.

우리교단목회자들사이에 로마 카돌릭의 사제들이 복식인 로마 칼라를 착용하는 것은 우리교단에 비해서 수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타교단(예, 통합)목회자들에 의 복식을 모방한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교단의 세력이 다른 교단에 비해서 열세하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컴플랙스에 의한 발로이다. 이예는 필자가 겪은 지극히 일부목사의 행태일 뿐이며, 일반적인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면의 경건함이 없으면 그걸 포장하기위해서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젊은 남녀가 성당의 성스러운 결혼식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성당에서 결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도 로만칼라를 착용하는 목회자들의 마음과 다를것이 없다.

이와같은 교회의 잘못된 제도들은 교회가 가지고있는 가치파난의 에 대한 개념의 오해이다. 우리는 흔히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서 더 작은 가치를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 각자는 더 큰 가치 혹은 더 작은 가치에 대한 생각이 같지않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슈들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충돌하는것이다.
그러나 기도교인들은 그 가치의 판단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를 생각해야한다. 즉 인본주의에 근거해서 더 중요한 가치와 덜 중요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일함에있어서 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꼐 충성하는올바른 마음으로 충성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의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봐야할것이다. 우리가 가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꼐 받은 사랑하는 마음이며, 지금 내가 하는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꼐 받은 그대로의 사랑인지를 생각해야한다. 이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것이 겸손한 마음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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