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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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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Temple
등록일
2023-08-30 03:37:32
조회수
168
▪️1. 오늘날 한국 개신교(특히 장로교) 안에 잘못된 교리들이 대량 유통됨으로 인해 누적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사라졌을까요?

▪️2. 물론 서구 기독교권 보다 짧은 역사를 가졌다는 태생적 한계로 자위를 해 볼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이러한 핑계만 대고 있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엄청난 양의 서구권 신학서적들을 이미 그리고 충분히 우리나라 말로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에 벌어진 재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3.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원죄(原罪)>에 대한 커다란 오해입니다. 먼저, 이 교리가 어떠한 잘못된 방식으로 설파되었는지(아예 가르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함)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죄에 대하여서는 일전에 가볍게 살펴본 바가 있었으나 이번에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4. 『『 칭의는 즉각적이며 단회적인 것으로 현재 진행형의 '과정'(process)이 아니며, 또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ce)에 속한 '선언'이다.
⬛️5. 이 후로 우리는 <원죄의 차원>에서는 죄인이 아닌 당당한 '의인'이 되어 구원이 보장되며, 그 보증으로 성령의 인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6. 물론 '중생'하여 의인이 된 후에도 육신의 소욕에 의하여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개혁가들 중에는 '의인인 죄인'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7. 그러나 이 죄는 원죄가 아니라 자범죄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해결된 원죄가 다시 살아날 이유는 없으며,
⬛️8. 우리가 종말까지 범하게 되는 죄는 '자범죄'로 이 죄를 가리켜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요일5:17)라고 해서 회개가 가능한 죄라는 것이다.』』
✔️출처:<⬛️4.~⬛️8.< 『현대 칭의론 논쟁(CLC)/공저 - 제6장_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 인터뷰에 대한 비판_장부영 > p.217 >



▪️9. 위 ⬛️4.~⬛️8.의 장부영 교수님의 주장이 오늘날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원죄론>의 대표적인 한 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10.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 요한1서 4:1 -


▪️11. 우리는 이러한 진리의 성경말씀에 입각하여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유통•범람하고 있는 신학적 주장들의 진위여부를 반드시 분별해 봐야만 합니다. 교회나 신학교 강단위에 선 거짓교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볼 수 있습니다.

▪️12. 저희는 백화점에서 아주 비싸게 주고 산 명품가방이 진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품일 경우엔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태세가 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정통교회에서 가르치는 영생을 좌지우지하는 성경교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엔 명품가방보다 훨씬 못한 취급(무관심)을 해버리는 오류를 우리는 아주 쉽게 범합니다(그만큼 하늘나라보다 이 땅에 우리의 시선과 만족이 얽매여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13. 먼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에 위대한 파트너였던 '멜란히톤'이 저술한 개신교 최초의 조직신학책인 『신학총론』 가운데 <제6장_원죄에 대하여>에 실린 <원죄>에 대한 멜란히톤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4. 『『 <원죄> 안에 있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때문에 정죄 당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이다.
⬛️15. 우리 안에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빛과 활동이 비참하게 상실되어 있으므로,
⬛️16. 또한 우리의 어두움【암매】과 하나님에 대한 의심,그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악한 성향 때문에 우리의 죄악으로 가득 찬 것이고, 정죄된 것이다.
•••<중략>•••
⬛️17. 인간의 이 손상, 즉 이 어두워짐【소경됨】,하나님께 대한 의심,하나님께 대항하는 악한 성향은 분명히 죄악에 가득 찬 것이고, 정죄된 것이다.
⬛️18. 따라서 사람은 '세례'를 받지 않고★¹·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계속적인 용서》를 받지 못하면 정죄된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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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¹·:보다 정확하게는 "'죄 씻음의 표'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이라 했어야 할 것이다. 세례는 이미 일어난 것을 외적으로 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멜란히톤이 이와 같이 표현한 데서 우리는 루터파 사상이 아직도 세례 행위 자체와 은혜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성향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_이승구 교수님).
✔️출처:< ⬛️14.~⬛️18. < 『신학총론(최종판)』(크리스챤다이제스트)/멜란히톤> p.182 >



▪️19. 위 장부영 교수님의 글과 멜란히톤의 글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장부영 교수님은 <원죄>가 이미 '단번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멜란히톤은 여전히 우리가 <원죄>에 대하여 《계속적인 용서》 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확실한 것은 두 분 중에 한 명은 사기(詐欺)를 치고 있다는 뜻이지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20. 위 ⬛️18.의 글 중 새겨볼 만한 점을 꼽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계속적인 용서》를 받지 못하면 '정죄된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다."를 통해 살펴볼 때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였으니 <원죄>에 대하여는 이미 '단번에' 완전하게 초월적으로 용서받았다고 착각하여 주님께 <원죄>에 대하여 《계속적인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정죄된 상태'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그 결과의 처참함은 너무나 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21. 혹여나 <원죄>에 대하여 독일 개혁파측과 스위스 개혁파측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란 합리적인 질문이 도출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가상적인 질문에 기초하여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보면 이렇습니다.



⬛️22. 『『 하지만 결국 루터는 영주와 스위스 대표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골방에 들어가 독일어로 공동 신앙고백을 작성했다.
⬛️23. 신앙고백은 모두 1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으며 내용은
⬛️24.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위격, 그분의 죽음과 부활,<원죄>,이신칭의,성령의 사역,성례들에 관한 복음적 교리들에 관한 것이었다.
⬛️25. 양 진영은 <14개 조항>에 '합의'했고, 심지어 성찬을 다룬 제 15조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출처:<⬛️22.~⬛️25.< 『교회사 전집_제7권 독일 종교개혁』(크리스쳔다이제스트)/필립 샤프 > p.538 >



▪️26.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야만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톨릭 진영에서의 <원죄>에 대한 입장말입니다. 그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27. 『『 405항 ..... '세례'는 그리스도 은총의 생명을 줌으로써 <원죄>를 없애고 .....』』
✔️출처:< ⬛️27. < 『가톨릭 교회 교리서』(한국천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제 405항 >



▪️28. 즉, 저희가 육신의 굴레안에 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원죄>가 초월적으로 사면된다고 주장하는 곳은 '종교개혁 진영'이 아니라 '가톨릭 진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루터'의 <원죄>에 대한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29. 『『 루터는 우리가 어떻게 <원죄>와 싸워야 할지에 대하여 처방을 해주고 있다.
⬛️30. 우리는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명상하고 성례전에 참여하고 (원죄의) 독과 부패를 깨끗이 하여야 한다.
⬛️31.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며 그래서 우리는 깨끗해지고 죄의 독에서 정결해지기를, 우리가 참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깨끗해지기까지 해야 한다.
⬛️32. 이 일은 최후의 심판에서 생기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무덤 속에서도 계속된다. 이것은 매우 좋은 의견이다.』』
✔️출처:< ⬛️29.~⬛️32.< 『종교개혁과 칭의』(고신대학교-개혁주의학술원)/공저_1권 <루터의 칭의론(김용주) >> p.30 >
®️원출처:< ⬛️30.~⬛️32.< Luther, Studienausgabe, Band,> 5, 204-207.>



◤゚33. 요약: ◤゚

★1. <원죄의 초월적 사면 시점>에 대한 16세기 종교개혁 진영의 입장은 <최후의 심판대>이므로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계속적인 사면》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주님께 겸손하게 구해야 합니다.

★2-1. 그러나 김세윤 박사님을 비판하는 상당수의 개혁진영(대표적으로 미주 총신대학교 조직신학의 장부영 교수님)에서는 오히려 '이미 사면 완료'만 강조하여 "원죄에 대하여는 이제 당당한 의인"이라는 <가톨릭의 원죄 사면론 교리>를 채택합니다.

★2-2. 즉,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순간에 '이미' 원죄에 대한 사면은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펼치나 이것은 이단 or 이교도나 마찬가지인 <가톨릭 교리로의 회귀>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3. 고로 항시 종교개혁의 원본교리와 잘 대조함으로 '영 분별'을 잘하셔서 <최후의 심판대>에서 책망받거나 멸망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작성일:2023-08-30 03:37:32 58.228.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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