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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자범죄의 속죄 원리 (Redemptive Principle of Original Sin & Actual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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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등록일
2023-09-17 03:45:40
조회수
162
✝️✝️✝️ 원죄와 자범죄의 속죄원리 ✝️✝️✝️
(Redemptive Principle of Original Sin & Actual Sins)

아래의 글은 필자가 집필 중인 [구원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이해] (Biblical and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Salvation)라는 책 일부를 소개한 내용이다. 즉 아담의 원죄와 우리의 자범죄에 대한 속죄의 원리(Redemptive Principle of Original Sin & Actual Sins)이다.

(3)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의 관계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즉 마지막 아담의 관계는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그 핵심을 아주 간명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암시하고 있다. 먼저, 아담의 원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라고 해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시작되었다는 죄의 기원(origin of sins)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죄(original sin)라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서 이 원죄를 결사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둘째 아담 즉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원리 문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원죄를 부인하는 순간 그리스도 속죄의 필연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음에, 구원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에서 좀 더 자세히 논하게 될 것이다. 위의 성경 구절을 보면 초등학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문맥인데 부인하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 한 사람은 “아담”인데 말이다. 우리의 조상 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제시된 행위언약에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이 바로 죄의 시작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담이 범한 "원죄의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사망이라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3)는 것이다. 이어서 아담의 "죄의 유전"(inheritance) 혹은 전가(imputation)를 말하고 있다. 이 죄의 유전 역시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도 신학적인 이해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담이 범죄하는 순간 모든 사람이 그 범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함께 죄를 범했다는 의미로, 즉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범했다는 뜻이다. 아담의 죄가 곧 모든 사람의 죄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 출생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담의 범죄에 참여했단 말인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보기 때문이며, 디지털 방식에 따라 영적으로 들여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담이 모든 사람의 조상이며 대표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었고, 영육 간에 이 죄악의 영향 아래 있어서 죄 중에 출생했기 때문이다(시 51:5). 이 영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아담의 원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가(유전)되었다는 진리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cf. 요 3:6).

다음으로 인간의 "자범죄"(actual sins)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 5:13). 이는 아담에서부터 모세까지 즉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까지 모든 인류가 스스로 범한 자볌죄를 의미한다. 이 사람들의 자범죄는 법(율법)적으로 정죄할 수가 없었다는 것인데, 이는 그때까지는 적용할 법(율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죄를 범해도 사법적으로 적용할 법이 제정되지 않아 해당법이 없을 때는 처벌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의 한계로 혹 율법이 있어도 증인과 증거가 없을 때 적용할 구체적인 법이 없으므로 그 법의 효력이 없다. 그런데 모세 이전에는 정죄할 율법이 없었으므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롬 5:13). 이는 자범죄에 대한 언급이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으로는 정죄할 수 없지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로 이미 사망이 들어와 왕 노릇을 하고 있고, 아담은 오실 자(the One to come)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오실 자”가 곧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원형(archetype)이라면 아담은 모형(ectype)이다. 또한 옛 계명의 조건인 모세의 율법의 한계로 처벌할 수 없었던 우리의 자범죄는 사랑의 새 계명을 위한 조건인 "그리스도의 율법"에 의해서 드러나지 않은 죄까지 낱낱히 정죄한다. 즉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죄의 대상이 되어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결단코 거기서 나올 수 없다고 했다(마 5:26-28).

여기서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첫 사람 아담이 범한 원죄를 해결할 방도가 생긴 것이다. 바로 오실 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첫 아담은 땅에 속한 사람으로서 죄를 범했으므로 죽어 흙으로 돌아가서 썩게 되어 있으므로(고전 15:47-48), 하늘에 속한 신령한 분으로 살리는 영(life giving Spirit)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령인 아담과 그 후손을 살리신다는 뜻이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라고 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어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는 기록이 이루어진다고 했다(고전 15:54). 이에 주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심을 선언하셨다.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이같이 첫 아담이 범한 "원죄를 속량하시는 원리"에 대하여 바울은 로마서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했다(롬 5:15).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여 심판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다고 했다(롬 5:16).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5:17).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원리로, 그리스도의 속죄원리를 말하고 있다(롬 5:19). 한 마디로,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상관관계이다. 첫 아담의 원죄를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속량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원죄를 뿌리로 하여 연결된 자범죄까지 십자가의 공로로 해결하셨다. 그것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해결했다는 뜻이다. 이 또한 “과거와 현재의 죄는 속죄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미래의 죄는 아직 범하지도 않은 죄인데 어떻게 사해졌느냐?”라는 의문이다. 이것도 역시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본질과 죄의 성격을 알고, 우리의 조상의 원죄와 우리의 자범죄와의 관계, 그리고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와의 상관관계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말하면 “속죄의 굳건한 약속”을 의미한다. 디지털 방식에 따라 영적으로 들여다보면 “하나의 완성된 속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속죄는 물론, 시간과 공간적으로 아직 범하지 않은 미래 죄에 대한 속죄의 완성된 모습을 그리스도 안에서 본다는 뜻이다. 원죄와 자범죄가 아담 안에 있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속죄 은혜가 시공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속죄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고후 5:17).

그러면 자범죄는 어찌 되는가? 물론, 그리스도의 속죄 원리 안에는 인간의 회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마져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만일 구원의 조건이라면, 자신이 모르게 지은 죄는 어찌 감당하려는가? 물론, 모르고 지은 죄까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우리의 자범죄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가 따른다. 때로는 다윗과 바울까지도 그 징계가 평생을 따르기도 하여 고통스러워 한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인지라 육성에 끌려 넘어지는 때도 있으나,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아버지의 무서운 채찍을 맞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구원파의 구원론과 혼동하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원죄와 자범죄, 그리고 칭의와 성화를 오해하여 믿음과 행위를 분리함으로 야곱이 지적한 대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 매달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20).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니라”(약 2:26). 인간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한 행위는 불가능하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범하는 행동의 죄는 물론, 마음의 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알게 모르게 보응하신다. 죄와 싸움에서 피흘리기까지 싸우지도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히 12:4). 그래서 매일같이 주님을 의지하여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갈 5:16). 매일같이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고전 9:27). 매일같이 죽어야 한다(고전 15:31). 그리고 육신이 죽어야만 끝나는 영적인 전쟁이다. 그러나 아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아들의 신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매를 맞아가며, 고침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히 12:6-13).
작성일:2023-09-17 03:45:40 76.33.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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