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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 (Biblical and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Salvation)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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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등록일
2023-11-29 05:01:02
조회수
98
✝✝ ✝ [구원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 ✝✝✝ (0003)
(Biblical and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Salvation)

제1부 구원에 대한 성경적 이해
(Biblical Understanding of Salvation)

구원을 논하려면, 천지 만물과 인간에 대한 창조(creation), 그리고 인간의 타락(the fall of man)과 구속(redemption)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 외의 다른 어떤 서적이나 자료들은 인간의 구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없고, 다만 성경이 유일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기독교 신학에서는 성경을 구원론의 유일한 근거로 성경을 이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경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infallible/inerrancy) 경전으로 전제하지 않으면, 구원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능력을 알 수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적용된다.

그중에 하나가, 구조론적 접근방법(structural approach이고, 다른 하나가 존재론적 접근방법( ontological approach)이다. 전자는 출발점에서 확실한 전제가 없이, 개연성(probability), 즉 가능성(possibility)을 가정(hypothesis)하고 역사적 배경에서 수집한 문서들(documentation)을 귀납적으로(inductively) 연구하여 결론을 내리겠다는 태도이고, 후자는 확실한 전제(presupposition)에서 출발하고 연역적으로(deductively) 연구하여 전제를 증명하려는 태도이다. 물론, 구원에 대한 성경적 이해도 후자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의 시종일관 하나님의 절대성과 성경의 무오류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무나 아무런 예비지식도 없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언어와 일반적인 지식과 좀 더 구체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즉 전문적인 신학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I.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RIGHT UNDERSTANDING BIBLE)

이 부분에서는 성경이 어떤 책이며, 일반서적과 어떤 차이가 있고, 성경의 성격은 무엇인가? 성경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시각으로 보고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관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저술한 일반 서적과 달리 하나님의 성령이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모든 피조물과 인간 만사 특히 인간의 창조와 타락과 구속에 관한 내용을 특별계시로 기록하게 하신 특수한 책이다. 원론적으로 성경의 원저자(the Author)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제2차적 저자(the second author)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직간접으로 명하시고 모으신 신령한 책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사 34:15-16; 딤후 3:16; 벧후 3:16).

1. 성경과 일반 서적의 차이 (Differences between the TWO)

실존주의 해석학을 따르는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성경도 일반 문학작품과 같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 자체의 배경을 생각하며 읽는 방법으로 중심에 도달해서 인간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관련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실존주의 해석의 핵심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계시나 역사적 사건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러한 배경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실존적 의미에서 찾으려 한다. 실존주의 해석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시나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실존에 있다. 비유로,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목욕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죽어줄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중심 해석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해석으로 주관주의적 인본주의 사상이다.

불트만의 실존주의 해석학의 키워드(key word)는 “시간”(time)과 “의식”(consciousness)이다. 그는 성경을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역사성(historicity)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사건(existential events)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당대의 상황에 따른 문화적, 신화적 표현이라고 하여, 성경의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것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교훈인 케리그마(kerygma)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들을 신화(myths)로 간주하고, 그 신화의 옷을 벗겨서 실존적 의미를 찾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한다.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신화적 사건들은 비과학적이어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신화의 옷을 벗기는 비신화화 작업(demythologization)의 과정을 거쳐서 현대인이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 사건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을 양식사 비평(Form Geschichte/Form Criticism)이라고 한다.

이러한 실존주의 해석방법은 성경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방법 중에서 역사적 문화적 상황으로 접근(contextual approach)하는 구조론적 방법(structural methodology)으로, 절대자 하나님(God the Absolute)과 절대 오류가 없는 성경(infallible Bible)에서 출발하는 본체적, 존재론적 방법(ontological methodology)에 반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그 출발점(starting point)에서 확실한 결정을 보류하고 가정 즉 가설(hypothesis)에 의한 가능성(probability/possibility)을 전제(presupposition)로 하나, 후자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확실한 결정을 전제(presupposition)로 한다. 전자의 경우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전제할 때, 역사적, 상황적 접근을 통하여 도달한 결과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확률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해석방법 중의 하나가 불트만의 실존주의 해석방법인데, 이는 철학적, 과학적 방법으로 오늘날, 이 실존주의 해석방법의 영향을 받아 성경 말씀을 왜곡하는 사례가 많다.

구원론에서도 창세 전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작정(결정)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 작정에 의한 영원한 구원/심판을 하나님의 허용적 작정에 의한 현세적 구원/심판과 혼동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영육의 부활을 전제로 하는 영혼의 영원한 구원/심판을 의미하며, 후자의 경우는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다양한 생활 속에서 반복되는 구원/심판을 의미한다. 전자는 중생을 통해 단번에 이룬 영원한 구원/심판이라면, 후자는 성화의 과정인 신앙생활 속에서 반복적인 회개를 통한 구원과 심판을 의미한다. 원론적 의미에서 전자는 원죄에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자범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영원한 구원이라면 후자는 현세적 구원으로 후자는 전자에 종속되어 전자에 의해서 그 결과가 달라진다. 구원 문제는 전자와 후자의 상관관계(correlation)로 풀어나가야 한다.

자유주의신학(Liberal theology)에서는 성경에 대하여 본문비평(the textual criticism)인 하등 비평(lower criticism)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문서비평(the documentation criticism)인 고등비평 방법(the methods of higher criticism)을 채용하고 있다. 고등비평 방법은 불트만(Rudolf Bultmann) 해석학의 주장과 같이, 성경도 일반 책들과 똑같은 접근방식으로 들여다보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의 문화적 배경(상황)을 고려해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작업을 통해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출발점(starting point)과 결론(conclusion)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책(the infallible Book inspired by the Holy Spirit)이라는 절대 권위가 아니라, 문화적 상황(cultural context), 즉 성경의 역사성, 문학성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 따른 상대개념으로 접근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의 다양성(contingency)을 통해 그 안에서 통일성(coherency)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도 후회하신 것(삼상 15:11; 창 6:6-7)을 보면 절대자가 아니라 상대자라는 것인데, 이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상대자인 인간과의 교통(communication)을 위한 접촉 방식인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이라는 성경의 특수한 표현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그리고 성경도 절대적인 책이 아니라 상대적인 책인 이유는 인간이 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도 역시 성경의 특수성인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되어 기록했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원리(딤후 3:16)를 믿지 않고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딤후 3:16)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므로 절대로 오류가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사 34:16; 벧후 1:20~21)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신학 사상은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의 영향을 받은 하트숀(C. Hartshorne)의 과정신학(process theology)과 같은 자유주의신학(Liberal theology)에 관한 글들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론 성경의 원본에서 필사하거나 번역 출판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실수로 언어의 선택이나 문장에 있어서 완벽할 수 없으므로 각각의 역본마다 다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근본원리에 있어서는 같다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이는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의 상대적 다양성(relative diversity)을 통해 성경의 절대적 통일성(absolute unity)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성경을 마치 백과사전이나 수학책처럼 생각하여 성경으로부터 통일된 교리나 원리를 찾으려는 것은 잘못이며, 다양한 저자와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성경은 일차적으로 교리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도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살았던 각 저자들이 또한 특정한 시대나 문화와 상황에 사는 독자들에게 특정한 문학적 장르를 통해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언급은 잘못된 시각이다. 성경은 교리(doctrine)나 신학의 원리(principle)를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원천(absolute source)이다. 오히려 대부분 교리나 신학이 성경 소스(source)로부터 이탈하기 때문에 신학적 이설이나 이단(heresy)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영원불변의 통일된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비본질적인 다양한 문화를 수용(포용)하고 있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제1차적으로 ‘적용된 진리’(the Truth applied)이기 때문에, 그 당시 문화적 배경(cultural settings)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통일성(원리)을 벗어나서 문화적 상황(cultural contexts)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기 쉽다. 이러한 방법으로 말씀의 본질적 원리를 찾으려 할 때 상대적 진리로 변질하기 쉽다.

사실, 성경은 본질적 원리(essential principle)인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God's sovereignty and grace)를 전제로 문화적 상황(역사성, 시대성, 문학성)을 통하여 말씀하신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이므로, 문화적 상황에서 잘못 출발하여 대전제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훼손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고등비평 방법(higher criticism)은 물론, 심지어 하등 비평 방법(lower criticism)까지도 주의하지 않으면 성경 말씀이 변질하기 쉽다. 물론, 설교라는 제2차적으로 ‘재적용된 진리’(the Truth reapplied)를 찾는 과정에서, 성경의 각 권, 각 장, 각 본문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시대성, 문학성을 통해 접근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반드시 성경의 절대적 원리가 전제(presupposition)되어야 한다.

오늘날 구원론에서도 이 같은 방법론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언약의 결정이 인간의 행위에 따라 처음과 나중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견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다(히 6:17-18; 갈 3:15-17). 율법의 언약도 그리스도의 은혜 언약으로 승화시켜 그 언약을 완성하게 되었다(마 5:17). 이런 의미에서 옛 언약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지웠으나, 이미 첫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를 물려받아 출생한 죄인이라, 그 의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게 된 것이다(히 9:15).

첫 언약이 무흠했다면, 둘째 언약을 세울 필요가 없었겠으나(히 8:7),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첫 언약이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게 되므로, 새 언약을 세워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대속하게 된 것이다(히 8:6-13). 물론, 이 말씀은 첫 언약이 부실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언약을 지켜야 할 인간의 불순종으로 그 언약은 효력이 상실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마 5:17).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불문법(unwritten law), 성문법(written law), 성령의 법(law of the Holy Spirit) 등은 완벽한 하나의 법으로 모든 언약의 말씀이 모두 하나의 "하나님의 법"(Law of God)에 속한다.
작성일:2023-11-29 05:01:02 76.33.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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