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같은 교회(사람)는 흠도 많고, 탈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엄청난 그 보배 때문에 신음하면서도 깨어질 수없는 특성을 가진다.(고후4:7) 상처의 회복과는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이야말로 더 깊은 상처를 줄 뿐 성경적인 개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과 기득권에 위험을 느꼈던 바리새인들은 그 생명을 살리신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개혁이라고 믿었었다. 이것이 예나지금이나 어두운 영에 사로잡힌 자들의 전형적인 발상이다. 한국 교회는 정의를 가장하고 설치는 나르시즘 환자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아마도 기자나 신학자의 몫일지 모르나 보혈의 공동체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 질서의 하나님은 구속의 동력기관인 교회가 너무 많이 부족해도 질서 가운데 하나 되길 원한다. S 교회는 사탄이 좋아하고 이용하는 “폭로, 선동, 마당싸움, 소모전”을 즉시 중단하고 그럴듯한 욥의 친구들 같은 외부인들의 립써비스에 부화뇌동할 필요가 없다. 성경적 송사 원리와 절차 정의를 따라 교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제 기회가 없다. 더 늦기 전에 S교회는 성경적 진리 문제가 아닌 한 서로 타협하고 감싸고 회개하고 용서함으로, 하나 되어 갈등 해결의 좋은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작성일:2013-12-10 03:09:17 105.228.59.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