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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음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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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등록일
2007-10-20 09:28:37
조회수
15450
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는 그리스도인의 한 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술은 언약의 하나님의 언약적 복의 하나입니다. 홍수 후의 노아 생활에서 포도주나 술(독주)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바르게 살피면 그러합니다. 제사에도 술이 들어갑니다. 비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도 술을 드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술을 마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먹고 마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마신다는 것이 물을 마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마 11:19, 눅 7:34). 그것은 포도주였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포도주가 물의 대용품일 수는 없습니다. 목마름의 해갈이라는 차원에서 포도주는 오히려 더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잔치에 참여하셔서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술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초래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술을 마셨지만 술에 취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술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술은 언약적 복입니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인간관계나 일에 있어서 윤활유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 복을 바르게 누리지 못하면 짐승과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열매인 절제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술 취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당시 한국 사회의 상황과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대응으로 술을 금지시킨 것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보다 스스로를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행태를 모르셔서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교회는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데서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초기부터 술을 마시되 절제하여 술 취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지체를 섬겼다면 지금은 정말 신앙적인 술 문화가 성도들에게서 만이라도 정착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행태를 생각할 때에 술은 강력한 복음 전파의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 절제하는 모습, 그들이 술로 인하여 해를 입지 않도록 지혜롭게 선을 그어주는 역할, 술로 인해 짐승과 같이 되어질 때에 그들을 책임지고 가정으로 이끄는 섬김 등등.

위험성 때문에 금지를 말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가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접근한다면 성경에서 허용되는 많은 것들이 금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것이라도 도에 넘치면 해가 될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함이 하나님 사랑보다 더 앞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위험성 때문에 결혼을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돈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위험성 때문에 돈 소유를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위험성 때문에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의 위험성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금지를 말하면 편리하기는 합니다.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하지 않도록 세워가는 섬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라고 하더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많은 경우에 술 취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기 쉽습니다. 술에 중독되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합니다. 더 성숙한 누군가를 통하여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당사자를 위한 눈물과 좋은 본을 통한 섬김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이 성경적인 원리를 따르는 목회입니다.

술 마시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형성된 좋은 통념으로 굳이 깨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 전통, 통념으로 인하여 술을 마셨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많은 신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는 정죄에 빠져 고통을 겪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바를 앞세워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면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만 부정적인 요소가 뒤따르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말하고 개개인이 지키도록 섬겨야 합니다.

술을 마셔도 됩니다. 즐겨도 됩니다. 다만 절제하여서 술의 지배를 받는 방탕한 자리에 나아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함께 술을 마셔도 됩니다. 좋은 관계의 방편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방편으로 삼아야 합니다. 절제와 섬김으로.
그렇지만 스스로를 살펴서 절제의 열매를 맺지 못하겠다고 여겨지거든 더욱 힘써 처절하게 기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절제의 열매를 맺는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 성숙한 지체와 교제하며 도움을 받으면서 절제의 열매를 맺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술을 포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자신을 위하여 말입니다.
작성일:2007-10-20 09:28:37 211.216.13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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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j5016 2007-11-17 15:32:38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바 안에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즐기고 그 삶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이 옹골찬 것 아닐까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유형보다도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닌 모든 것에서 절제의 열매를 맺으며 자신 안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신자.
진정 세상 속에서 옹골찬 그리스도인이 어떤 것인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생활하는 옹골찬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데, 사람이 문제가 많아서 지금과 같은 상황의 교회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pcj5016 2007-11-09 11:51:25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대전제에 대해서는 100% 공감합니다.

계시역사적인 진행을 따른 술에 대한 마지막 진술은 엡 5:18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첫 술잔을 가진다는 의미의 취하지도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get drunk 입니다. 술의 지배를 받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술취함이 곧 방탕이 되는 것입니다.

술 마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술 자체를 금지하였을 것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술을 마시셨다는 것은 명약관화하고요.

술의 위험성도 무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타내신 바를 넘어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있어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운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운데 주어지는 음식 즐기는 것 자체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운데.

그리고 술이든지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무슨 음식이든지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즐기면 그것이 곧 증인의 삶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밥의 과식이나 폭식과 술의 과음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paulchung 2007-10-30 20:41:06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으나 지극히 경계해야 할 논리이다.

성경에는 음주에 대해 금지("Don't get drunk on wine...엡5:18)도 있고 절제를 말한 경우도 있고 아주 강력한 경계경보 (잠23:)를 말한 곳도 있고 술을 약으로 사용할 것을 긍정적으로 권고한 곳도 보인다. 대전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전10:31)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두고 술 정도가 아니라 독주(毒酒)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허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 취하고 실수만 안 하면 되겠지” 하면서 인간적인 계산만하고 중독성이 있는 알코올을 홀짝홀짝 들이키면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히려 심각한 문제이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훈은 “술취함= 방탕” 이라고 정의하고 새 술인 성령에 취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음주 쾌락을 즐기더라도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는 정신력과 절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세상적인 차원의 윤리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알코올(의학용어:중추신경마비제)이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마비시켜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 음주 문제를 일반적으로 내적이고 영적인 관계를 도외시하고 그저 외적으로 고상해지거나 도덕적으로 죄(실수)를 안 짓는 차원에 국한 시키기 때문에 신앙의 형식적 경건주의를 비판하는 논리로 음주를 은근슬쩍 옹호하게 된다.

비록 음주가 소극적으로 죄가 아니고 또 구원에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명히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