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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진
행위구원론자.
신학의 한 사조인 개혁주의에선 정죄의 표현이다. 믿음으로만 아닌 인간의 행위와 구원을 연관시킬 때 주어진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하셨다. 자기를 믿는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형벌이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 즉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었다. 이는 실족도 그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란 말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행위다. 사함을 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
예수님은 구원 곧 영원한 구원과 행위를 연결시켜 말씀하셨다. 히브리서에선 예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하였다(히 5:9). 승천하신 예수님이 영원한 구원과 순종인 행위와 결부시켜 행하신다는 것이다.
행위구원자란 정죄에 예수님은 해당될까 안 될까? 당연히 해당된다. 신학사조인 개혁주의자들은 당당하게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이신칭의를 엉터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부정한 행위를 인간의 모든 행위로 읽고 믿음은 인간의 행위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라고 보는 잘못이다. 루터에서 출발하여 칼뱅을 이은 신학사조로서 개혁주의 세계에 나타난 잘못이다.
내가 신학사조인 개혁주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성경적인 개혁주의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에 입각하여 교리나 관습, 삶의 방식을 평가하곤 바른 내용은 더 온전히하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는데,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루터나 칼뱅을 맹종할 뿐이다.
루터나 칼뱅을 맹종하면 예수님을 행위구원자라고 정죄하게 된다. 이는 피할 수없다. 그럼에도 돌이키려하질 않는다. 그 배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성경에서 행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순종인 행위와 불순종인 행위다. 전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 믿음의 외형화다.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방편이다. 하나님을 의지함인 믿음과 순종이 함께. 이런 구분과 인식이 없이 행위구원론자라는 정죄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지의 결과이다.
예수님을 정죄하면서도 루터와 칼뱅을 따르겠다는 신자들.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심판주이신 주 예수님 앞에 서는 최종심판 때에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산상수훈중에 예수님의 말씀중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