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지난 1026일에 개최된 고려신학교 설립 70주년 학술대회에서 허순길 박사(은퇴교수)[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고려신학대학원은 대학원대학교로 독립되어야 한다.”고 유언하듯 비장하게 호소하였다. 그는 고령에 병환까지 겹쳐 이런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으나 휠체어를 타고 산소호흡기까지 낀 모습으로 등단하여 이런 호소를 하는 바람에 청중들이 숙연해졌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오래 전부터 계속 거론돼온 내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는 허 박사의 말대로 고신교회 지도자들의 관심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담론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교대학원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주장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대학 측 당국자들은 대학을 흔든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신대원 분리 독립은 신학적인 차원에서 논의해야

그러나 단순한 구조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무엇보다 먼저 신학적, 교회론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신학교는 교회이고 교회에 속해 있다. 교회 안에 있는 기관 중의 하나가 신학교다. 즉 주일학교가 있듯이 신학교가 있는 것이다. 주일학교가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기관이라면 신학교는 교회지도자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일반 학교들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각 종 기독학교들이 있어서 교회가 이런 기관들을 설립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운영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학교들은 교회 옆(para church)에 세워진 교회에 속한 기관이지만 교회는 아니다. 그러나 신학교는 교회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신학교를 구태여 정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제는 고려신학교가 대학인가를 받으려고 했을 때도 논란꺼리가 됐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충분한 신학적 검토와 정리 없이 추진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진지한 신학적 논의 없이 정치적인 방법으로 결정돼버렸던 것이다. 만약 그 때 좀 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면서도 고려신학교의 정체성과 전통을 보존함에 혼란 없이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신중한 검토 없이 대학인가를 받고 보니 그 다음에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종합대학교로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는가?

그러면 오늘의 상황에서 신대원 독립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대학원대학교로 독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신대학교를 신대원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신교회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신대원의 대학원대학교 설립도 불가능하고, 또 고신대학교를 신대원 중심으로 개편하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으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그러니 갈 때까지 가 보는 수밖에.”라며 체념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질 사고방식이 아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라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옳은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불가능하게 보여도 해내야 하는 것이 신앙세계의 정신 아닌가? 교회는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쉬우냐 어려우냐?”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이냐 아니냐?”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어렵다고 안 할 수는 없다. 주의 일이란 다 그렇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이 가능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고려신학대학원의 독립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을 독립시키는 것이 옳다면, 고신대학교가 신대원 중심으로 개편되는 것이 더 낳고 옳은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못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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