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2017 컨퍼런스 - 세 번째 소식

마지막 날이다. 3일 간의 컨퍼런스에서 거창한 공치사나 종교개혁 500 주년과 관련된 구호를 남발하지도 않고, 어떤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고, 어떤 분위기를 조작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성찰적이면서, 본질에 집중하는 한편 현실과 미래에 대한 창의적인 모색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컨퍼런스 참가를 위해 많은 경비투자를 해야 했지만, 마음이 더 채워지는 걸 느끼며 감사가 풍성하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유쾌한 경험을 하였다. 고문서 경매 코너에서 책 한 권에 내 눈이 꽂혔다. 영국의 청교도 신앙 대가인 존 오웬(John Owen)이 1657 년에 저술한 “The Communion with God the Father, Son & Holy Ghost”의 1808년 판. 한국에서는 “성도와 하나님의 교제(생명의 말씀사)”로 번역출판된 책이다. 그 책을 보자 문득 한국의 김남준 목사님 생각이 든 것이다. 오웬에 대해 일가견이 있으신 김 목사님께서 이 책에 혹 관심을 보이지 않으실까? 약간의 객기를 담아서 $200 로 적어서 제시했는데, 최종적으로 내게 낙찰이 되다니! 이 책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부산에서 오래 전 함께 교제하던 한 목사님이 곧바로 예약함으로 김남준 목사님께는 아쉽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책값을 계산하러 가보니, 이 경매의 판매액은 모두 사역후원금으로 기부가 된다고 하였다. 이래저래 유쾌한 경매였다. 

존 오웬(John Owen)이 1657 년에 저술한 “The Communion with God the Father, Son & Holy Ghost”의 1808년 판

“다른 복음은 없나니! No Other Gospel"

▪ 갈라디아 5장 강해 - 타비티 안야빌리(Thabiti Anyabwile, 워싱턴 디씨의 아나코스티아 강 교회 담임목사)

그는 강해설교를 맡은 6 명의 주 강사 중에서 유일한 흑인 목사이다. 특히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직후에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복음연합(TGC)의 블로그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갈라디아 5장 강해를 통해 율법의 종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신 은혜의 복음을 믿은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세상의 유혹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날마다 찬양의 삶을 살 것과,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자발적 사랑과 섬김의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타비티 안야빌리(Thabiti Anyabwile, 워싱턴 디씨의 아나코스티아 강 교회 담임목사)

▪ 갈라디아 6장 강해 - 팀 켈러(Tim Keller, 뉴욕 리디머 교회 담임목사)

복음연합(TGC) 공동설립자인 팀 켈러 목사가 마지막 장을 맡았다. 그의 등장은 두 가지 점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 관련한 부분적 제한조치를 시행하고자 할 때에 팀 켈러를 비롯한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평소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소견을 드러내지 않는 뚜렷한 주관을 가진 그였기에 그 성명서는 강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둘째는, 최근에 그가 겪었던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아브라함 카이퍼 상’ 수상번복 해프닝 때문이다.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운동의 주창자인 카이퍼(Kuyper)를 기념하는 상의 명예로운 수상자로 발표되었지만, 켈러 목사(PCA 교단)에게 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일부의 강력한 항의로 학교 측이 수상자 지명을 철회해버린 것이다. LGBT 이슈 및 여성목사안수 등에 있어서 프린스턴(PCUSA 교단)의 입장과 반대되는 보수적 견해를 가르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후에 학교의 그런 조치에 대한 강한 비난 또한 쏟아졌다. 팀 켈러는 그런 수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퍼 기념행사에서 하기로 했던 강의를 취소하지 않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혹은 그가 금년에 담임목사직을 은퇴하고 주님의 몸 전체교회를 돕는 일과 신학교 강의를 시작할 것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드넓은 명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컨퍼런스에서 그가 마지막 강해자로 등단하는 것이 좀 더 특별해 보였다.

그는 특유의 굵고 차분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득력 있는 대화체 설교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의 지성을 터치하면서도 우리 인간의 교만과 죄의 뿌리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의 강해는 8500 여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소망을 붙들게 해주었다.

팀 켈러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하며 하나님의 평가로 안심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타인을 섬기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려고 들게 된다는 것을 거듭 경고하였다. 또한 십자가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걸림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라고 도전하였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복음의 선언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 없으면 우리는 유대인처럼 자신의 노력과 의를 자랑하게 되거나, 거꾸로 모든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십자가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팀 켈러(Tim Keller, 뉴욕 리디머 교회 담임목사)

그렇게 갈라디아 강해가 끝난 직후 8500 여 명이 한 목소리로 첫날 저녁에 불렀던 찬양을 다시 합창함으로 컨퍼런스를 마무리하였다. 500 년 전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마틴 루터의 바로 그 찬양, "내 주는 강한 성이요!"(위의 동영상)

컨퍼런스를 마치면서 3일간 사람들의 귀를 울렸던 외침들을 되돌려본다.

“여러분이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분명한 표시 한 가지는, 이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 존 파이퍼

“만일 여러분이 눈앞의 행복을 주는 것들을 따라서 선택을 해나가면, 여러분은 자신을 종으로 내다 팔고 있는 것입니다.” - 돈 카슨

“우리는 교리를 대변하는 것만 해서는 안 되며, 일치를 위해 또한 힘써야 합니다.” - 리건 던컨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여러분의 분명한 확신입니까? - 케빈 드영

▪ 르포 후기

이런 성격의 행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스런 현장이었다. 컨퍼런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프로그램 내용을 통하여 강하게 느낀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개혁신학과 신앙이 독선적이거나 오만한 교리주의가 아니라, 복음의 감격에 충만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성경의 권위에 자신을 던지는 열정의 신학이요 겸손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크리스천 속에 침투해 있는 율법주의 신앙과 번영의 복음의 문제를 아프게 직시하면서, 여전히 복음과 성경만이 그 해결책이며,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을 재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사회적 정치적 갈등 이슈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다루지는 않지만, 모든 강해와 웍샵 내용을 통하여 근본원리와 시각을 모색하는 것을 보며 과거와 고백 속에만 머무는 개혁신앙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들도 있다. 미국교회의 지난 역사 속에 있었고 또한 현재진행적인 과오나 악을 공동으로 회개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품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없는 것은 부흥회가 아니라 컨퍼런스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건 한국교회만의 집회문화일까?

컨퍼런스 찬양팀

▪ 참가자들에게 듣기

컨퍼런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컨퍼런스 때 만났던 한 부부였다. 서로 쫓기는 시간 속에서 제대로 인사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내가 르포기사 작성을 위해 던졌던 질문에 대해 솔직한 대답을 보내왔다. 그 내용을 옮김으로 이번 컨퍼런스가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남겼는지를 확인해본다.

▪ 손영준: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 롭 패더슨 : 안녕하세요? 저는 롭 패터슨(Rob Patterson) 목사입니다. 현재 호주의 은혜복음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복음연합(TGC)의 개혁신학을 공유하고 또한 이번 컨퍼런스의 강사들을 정말 존경하기 때문에 참석하였습니다.

▪ 손 : 이번 컨퍼런스에 참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입니까?

- 롭 : 우리 부부는 지금 영적 재충전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교회는 지난 2 년 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었는데, 교회가 배려하여 영적으로 새 힘을 얻어 오라고 제안을 하며 경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 손 : 컨퍼런스를 통해 받은 도전이나 깨달음을 나누어 주세요.

- 롭 : 제가 이번에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1-2장 강해를 통해서 '나 자신은 은혜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율법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율법적인 기준에서 부족한 것이 보이면 판단하고 무시하는 그런 경향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교만에 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6장 말씀은 우리가 사람들의 인정받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내가 자신의 평판이나 업적에 의지하게 되면, 정작 나의 성장에 필요한 책망이나 권면의 말을 들을 때는 힘들어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손 : 호주로 돌아가서 사역이나 삶에 적용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롭 : 갈라디아서 강해설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깨달은 것을 우리 모든 교우들도 함께 은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금년 10월부터 두 달 간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면서 종교개혁에 대해 좀 더 가르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체 교우들이 함께 은혜의 교리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칼빈과 루터가 우리를 성경으로 되돌아가게 해 준 분들이라는 것을 이번 컨퍼런스가 저에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 복음연합(TGC)에 대한 기대나 바람은 무엇입니까?

- 롭 ; 정말 유익한 컨퍼런스였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과 너무 피상적인 교제에 그치고 말았다는 겁니다. 프로그램 중에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활동이 포함되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이제 모두 현장으로 돌아갔다. 남은 건 각자의 삶과 사역현장에서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사역하는 일이 남았다. 복음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공의롭게 하는 능력을 맛보고 보여주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 500년 전의 개혁자들과 시대를 뛰어넘는 소통을 이루는 것이며, 오는 세대를 위한 복음의 환영 길을 활짝 여는 것이 되리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No Other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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