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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논문1>다음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교육신학적 입장에서 본 쉐마와 창 18:19 연구)

다음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

(교육신학적 입장에서 본 쉐마와 창 18:19 연구)

현용수 원장(Ph.D. 미국 쉐마교육연구원 원장, 쉐마교육학회 회장)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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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00년 동안 기독교교육의 문제점과 유대인 교육의 성공

II. 유대인에게는 구약의 지상명령이 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상명령과 목적

3. 구약 지상명령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성취의 조건

4.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완수한 방법

5. 하나님이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의 회수

6. 구속사적 입장에 본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 차이

A. 구약의 지상명령은 수직선교 vs. 신약의 지상명령은 수평선교

B. 아브라함은 일평생 몇 명을 목회했는가?

7. 기독교인은 아브라함의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가?

A.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는 사명과 방법을 본받아야 한다

B. 아브라함의 위대한 수직적인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8. 신약시대에 신앙명가가 없는 이유

A. 수평선교만 강조하는 사도행전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B. 너나 잘해!

III. 요약 및 결론: 다음세대를 위해 구약의 지상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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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00년 동안 기독교교육의 문제점과 유대인 교육의 성공

 

연구를 위한 질문: 기독교 2000년 동안 왜 세계 선교는 성공했는데, 자손 대대로 신앙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는가?

신약시대 기독교 역사 2,000년은 예루살렘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에서부터 시작되었다(행 2장). 그 후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사마리아-소아시아-로마-스페인-북유럽-영국-미국-한국 및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지난 2,000년 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촛대를 계속 간직하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거의 없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나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는 사라지고 없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가 터키에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하나도 없다. 유럽교회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 결과 이 지역들에 다른 지역 선교사들이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지나간 기독교 2,000년 역사는 한 곳이 복음화 되면 복음을 전했던 곳의 교회는 쇠퇴하다가 황폐되고 성령이 지나간 흔적만 남아 마지막에는 관광지가 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교회도 현재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이 쇠퇴기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1885년 4월 5일 미국의 두 젊은 선교사들,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 장로교)와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감리교)가 한국에 들어옴으로 시작되었다(Grayton, 1985; Hunt, 1980). 이후 한국교회는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하여 116년이 지난 2001년에는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를 보이기도 했다(Kim, Warner and Kwon, 2001).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나 미주 교포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90% 이상이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그야말로 ‘침묵의 탈출(the Silent Exodus)’이다(Song, 1997, pp. 23-34). 이것은 교회교육과 가정교육이 90% 이상 실패했다는 증거다.

왜 복음을 먼저 받아 타 민족에게 전해준 교회들은 사라지는가? 교회 역사가들은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했지만(Kane, 1991; Speel, 1960), 가장 큰 원인은 신약교회가 신약의 지상명령을 따라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에는 전력을 다 했지만, 자기 자녀와 자기 민족에게 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 데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어떻게 아브라함부터 현재까지 무려 4,00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자손 대대로 전수하는 데 성공했는가? 필자는 신약성경에만 지상명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지켜야 할 구약성경에도 지상명령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구약의 지상명령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이것이 어떻게 한국 교회의 다음세대 교육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보자.

[필자 주: ‘왜 유대인의 선민교육이 기독교인에게 필요한가?’라는 주제는 ‘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아라’(현용수, 쉐마, 2005) 제1장에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유대인의 쉐마를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만 다룬다.]

 

II. 유대인에게는 구약의 지상명령이 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적 입장에서 설명해야 한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이래로 하나님의 일관된 관심사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그 씨를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기로 작정하셨다(창 12:1-3; 마 1).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상명령과 목적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8장 19절에 특별한 명령을 주셨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 18:19, 표준 새번역)

 

필자는 본문을 구약의 지상명령이라고 명명했다. 이 말씀이 왜 구약의 지상명령인가? 이 말씀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왜 너를 선택했는지 아느냐?”라고 질문하셨다.

그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 네가 가정에서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charity) 바른 일(justice)을 하도록 가르치게 함이다(창 18:19a). 그리고 2) 너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내가 너와 맺은 언약을 이룰 수 있느니라”(창 18:19b).

 

3. 구약 지상명령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성취의 조건

1)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상명령이고, 2)항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따라서 구약의 지상명령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유대인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2)항은 조건부다. 만약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은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반드시 해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언약을 하셨는가? “너는 복의 근원(창 12:2)이 될 것이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더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의 씨가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는 것”(창 22:17-18)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구약의 지상명령을 주실 때에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 장차 될 일을 먼저 공개(reveal) 하신 것이다.

 

이 언약은 구약시대에 이루어지지 않고 신약시대에 이루어졌다. 신약시대에 유대인에게서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이 오셔서(요 4:22) 모든 족속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수 없이 많아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약시대 2000년간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수많은 국가의 이방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기독교인들은 영적 유대인이며, 천국백성이 되기 때문이다(갈 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 3:6-9)

 

아브라함의 시작은 지극히 미약한 아들 이삭 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은 실로 창대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욥 8:7).

 

4.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완수한 방법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창 12:2-3)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구약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완수했는가? 오직 하나뿐인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창세기 1장부터 11장 말까지 모든 말씀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잘 가르쳐 전수하였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대로 그의 아들 야곱에게 잘 가르쳐 전수하였다. 야곱은 12아들들에게 말씀을 전수했다.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 3대가 세대차이가 없으면 영원히 세대차이가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족장 시대를 아브라함과 이삭 및 야곱 3대로 정한 이유다.

그 후 650년 동안 창세기 말씀이 자손대대로 전수되어 모세의 손에게 들어갔기 때문에 모세가 모세오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를 쓸 수 있었다. 만약 한 세대라도 창세기 말씀이 전수되지 않았더라면 모세는 창세기 말씀을 전수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모세는 창세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진행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이 자손들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구약의 지상명령이다.

 

5.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의 회수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구약의 지상명령을 두 번 주셨다. 개인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민족적으로는 모세를 통하여 유대민족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이 바로 쉐마, 즉 신명기 6:4-9절 말씀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4-9)

 

7절 말씀을 주목해 보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다. (신 6:7)

 

아브라함이 이후 4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정통파 유대인은 입만 열면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강론한다. 초, 중, 고 학교에서 오전 내내 성경공부만 한다. 그래도 미국의 일류대학에 많이 들어간다(현용수의 인성교육 노하우, 제3권 pp. 132-135). 한국의 부모들은 입만 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주로 “공부하라”고 하지 않겠는가! 누가 더 성경적으로 살고 있는가?

 

6. 구속사적 입장에 본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의 차이

A. 구약의 지상명령은 수직선교 vs. 신약의 지상명령은 수평선교

예수님께서는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요 4:22)고 말씀하셨다. 유대인이 모세 이후 무려 1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자손대대로 전수되어 유대인에게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셨다(요 4:22; 롬 9:5; 히 7:14).

유대인이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여 그들이 말씀을 맡은 자(롬 3:2)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었다. 만약 모세 이후 한 세대라도 말씀이 전수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예수님이 오실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진행 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이 자손들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구약의 지상명령이다.

 

정리하면, 구약의 지상명령은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준비하는 수직선교이고, 신약의 지상명령은 오신 예수님, 즉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라(마 28:19; 막 16:15)는 수평선교다. 전자가 하나님이 구약의 유대인에게 분부하신 지상 명령이라면, 후자는 예수님이 신약의 기독교인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다. 전자가 가정 사역인 ‘쉐마’의 사명이라면, 후자는 이웃 전도와 세계선교의 사명이다.

그런데 신약교회는 구약의 지상명령은 잃어버리고 신약의 지상명령만 알았기 때문에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는 세계 선교에는 성공했는데, 자손대대로 신앙과 말씀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다.

쉐마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열방교회(안병만 목사)의 가정식탁 예배 현장,부모들이 신앙교육의 주체가 되며 자녀들은 부모의 지도아래 예수 제자로 세워져 간다.

 

B. 아브라함은 일평생 몇 명을 목회했는가?

아브라함은 일평생 몇 명을 목회했는가? 오직 이삭, 한명이다. 이삭은 일평생 몇 명을 목회했는가? 오직 야곱, 한명이다. 야곱은 일평생 몇 명을 목회했는가? 오직 12명이다.

구약에는 원칙적으로 이방선교가 없다. 물론 요나서와 같은 예외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여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10년을 목회해도 20년을 목회해도 교인은 오직 한명이었다.

아브라함은 몇 만 명씩 큰 목회를 하여 유명해졌는가? 총회장을 역임하여 유명해졌는가? 아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말씀의 제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자손대대로 모든 믿는 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가정의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면 미래에 유명해질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7. 기독교인은 아브라함의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가?

A. 부모가 자녀를 말씀의 제자 삼는 사명과 방법을 본받아야 한다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과 생활을 본받자고 한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아브라함의 무엇을 본받자는 말인가? 예수님께서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안다고 하셨다(마 7:16-20). 아브라함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최종적인 열매는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에게 자신의 믿음과 자신이 수집한 말씀들과 자신이 친히 하나님과 경험한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전수하여 말씀의 제자 삼는데 성공한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의 총 결산은 아들 이삭을 통하여 나타났고, 이런 그의 행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웃에게 전도를 한명도 하지 않아도, 세계 선교를 하나도 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행위를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칭찬하고 축복하실 것이다.

 

B. 아브라함의 위대한 수직적인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한명 목회를 했던 아브라함이 만약 현재 살아 있다면 만 명 목회하는 목사와 만났을 때 열등감을 느끼겠는가? 아니다. 당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큰 교회 목회나 선교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커뮤니티 처치 이상으로 가정목회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당시에 유명했는가? 아니다. 야곱은 70명 자손과 애굽에 동냥하러 갔었다(출 1:5).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유명해졌다. 650년 이후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탄생한 이후에 약간 유명해졌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그리고 2000년이 지난 현재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오직 그 이외에는 모두 우상을 섬기는 자들뿐이었다. 만약 우리 주변에 교단이나 신학교도 없고, 지도해 줄 목사도 없고, 구역장도 없고 오직 ‘나’ 한 사람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나머지가 모두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아브라함처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나의 자식 세대(이삭 세대)는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나의 손자 세대(야곱 세대)는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500년 후에, 1000년 후에, 2000년 후에도 나의 후손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어떻게 4000년 동안 신앙과 말씀전수가 가능했는가? 답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히 11:1)

 

아브라함은 오늘은 하나님의 백성이 나 혼자일지라도, 1) 장차 650년 후에 출애굽을 한 이후 자신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약 300만 명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라는 신본주의 국가가 탄생할 것을 믿음의 눈으로 확실한 증거처럼 보았기 때문에, 2) 2000년 이후에 자신의 후손 중에 예수님이라는 인류의 구원자가 오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3)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온 열방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음으로 자신의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아질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당시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8-9), “믿음으로 이삭은”(20), “믿음으로 야곱은”(21), “믿음으로 요셉은”(22), “믿음으로 모세는”(23) 등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그런 믿음 때문에 엄청난 고난도 능히 믿음으로 견딜 수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히 11:36-38)

 

필자는 아브라함과 같이 먼 훗날 되어질 사건을 오늘 현재 되어진 사건처럼, 즉 그 실상을 증거로 믿는 믿음을 ‘수직적인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 그 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을 것을 믿는 믿음(주로 기복신앙), 즉 현세적인 믿음과 대조된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수직적인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구원을 받는 데 필요한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기독교인의 믿음이나 동일하다(갈 3:6-9).

 

나에게 적용: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졌다면 오늘은 나 혼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세상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더라도, 장차 650년 후에 자신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과 같은 신본주의 국가가 이루어질 것을 믿음의 눈으로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면, 오늘날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가 넘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 주제를 4아들들과 현가(玄家)네 신앙명가에 적용하여 토론한 적이 있다. 필자가 아브라함세대, 너희가 이삭 세대, 너희 자녀들이 야곱 세대가 되는데, 몇 세대까지 주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전수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했다.

 

8. 신약시대에 신앙명가가 없는 이유

A. 수평선교만 강조하는 사도행전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에는 단 기간 몇 세대까지는 신앙전수가 가능했지만, 구약의 아브라함의 가문처럼 4000년 동안 이어지는 신앙명가는 없다. [필자 주: 필자는 구약을 구원론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학적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유대인에게 구원이 있느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아라’(현용수, 2005, 쉐마), 제1권 참조]

신약시대에 12사도의 후손들이 어떤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나 칼빈의 후손들이 어떤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존 웨슬레의 가정은 없어졌다. 순교신앙의 모델이었던 카타콤의 후손들을 찾기 힘들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신약 교회는 주로 ‘Acts 29’을 주제로 한 사도행전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을 요약한다면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라”(행 2:42, 5:42)이다(인터넷 한국교회 표어 참조, http://blog.naver.com/wo2kj/220296766485). 여기에는 가정이 빠졌다. 이 구호를 잘 표현하는 유명한 복음성가가 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이 가사가 맞는가? 물론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열정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정신학적으로는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바울은 가정이 없는 분들이었다. 따라서 그분들은 식사 시간 이외에 모든 시간을 전도에 몰두해도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자신의 아내와 자녀에게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일 많이 하는 사람은 가정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가? 가정이 지옥이어도 되는가? 아니다. 천국이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딤전 5:8).

 

따라서 이 가사는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구약의 지상명령의 원조는 아브라함이고 신약의 지상명령의 원조는 바울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유대인처럼 자신의 가문을 신앙명가로 만들기 위하여 잃었던 구약의 지상명령을 되찾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바울처럼 수평선교도 해야 한다.

 

B. 너나 잘해!

필자가 교육부 주최로 한 대형교회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주일학교 교사만 1000여명이었다. 집회를 마치고 약 20여명 되는 교육부 임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분들은 하나 같이 한국교회의 앞날이 암울하다고 했다. 이유는 주일학교에 소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부 부장 장로는 자신이 주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고등부 학생들에게 전화하여 잠을 깨우는 일이라고 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새벽 2-3시까지 잠을 안 자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거의가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팔베개를 하고 자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날리며 킥킥거리며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즉 청소년들이 너무 수평문화에 물들어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분에게 유대인처럼 그들의 부모에게 성경을 가르쳐 그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그랬더니 장로들은 “요즘 젊은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을 학교나 교회에 맡기기 위해 데려다 주는 것은 잘하는 데, 자신들이 직접 자녀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회에 와서 자신들이 배운다는 것은 더 힘들어 한다고 했다.

따라서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잘못되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필자는 그러면 교사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들은 약 1000여명의 교사들은 매우 열심이라고 했다. 대부분 초중고 교사들이거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각 대학 교수들이라고 했다.

필자는 그들에게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일단 1000명의 교사들이 살아있다니 그들만 생각하자고 했다. 결혼한 교사 한명 당 4인 가족이라고 하면, 모두 4000명이 된다. 그들이 “모두 유대인처럼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여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린다면 그 교회에 소망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에게 이것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르쳐 주었다. “너나 잘해!” 그렇다. 이제 남 탓할 것이 아니라 모두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자녀들은 자신이 책임지고 가르치는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할 때다. 자신의 가문부터 살릴 생각을 해야 한다.

 

III. 요약 및 결론: 다음세대를 위해 구약의 지상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필자는 서두의 문제제기에서 왜 신약 교회는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는 성공했는데 자기 자녀와 자기 민족에게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내고 오늘날 교회가 취할 대안을 제시했다. 이제 그 내용들을 정리하며 결론을 지으려고 한다(도표 참조).

 

구약과 신약 지상명령을 그 목적과 대상 면에서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구약의 지상명령은 초림 메시아 예수님을 준비하기 위함이고, 신약의 지상명령은 초림하신 예수님(복음)을 온 이방 민족에게 전파하여 재림하실 예수님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전자가 하나님이 구약의 유대인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라면, 후자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기독교인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유대 민족을 사용하셨고, 후자를 위해서는 초창기에는 일부 유대교회도 사용하셨지만 주로 이방교회를 사용하셨다.

구약과 신약 지상명령을 목회 사역적인 입장에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쉐마’에 기초한 가정사역의 사명이라면, 후자는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이웃 전도와 세계 선교의 사명이다. 전자가 부모가 가정이라는 성전에서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여 말씀의 제자 삼는 사역이라면, 후자는 목회자가 교회 공동체라는 성전에서 구원받은 이웃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말씀의 제자 삼는 사역이다. 구약의 쉐마가 혈통적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가정사역이 본질이라면(창 18:19; 신 6:4-9), 신약의 지상명령은 구원받은 교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 사역이 본질이다(마 28:19; 사도행전 2장 이후). 전자가 수직전도라면 후자는 수평전도다.

 

현재까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못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종말론적 입장에서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받을 만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롬 11:25). 왜냐하면, 신약시대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한 지역이 복음화 되면 복음을 전한 지역 교회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시대 교회들이 신약의 지상명령인 수평적 선교에는 성공했지만,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라는 구약의 지상명령인 수직적 말씀전수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약교회는 2,000년간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 신 6:4-9)과 신약 지상명령(마 28:19-20)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현대 목회자들도 우선 자신의 첫 번째 목회 현장은 가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를 제자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목회의 첫 번째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그 다음이 교회 공동체다. 순위로 볼 때 내 자식이 먼저이고 남의 자식은 두 번째다. 구약의 지상명령이 먼저이고 신약의 지상명령은 그 다음이다. 물론 이런 논리는 평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짝을 이루어 완수될 때 온 세계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이 짝을 이루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처럼, 사역도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 즉 가정사역과 교회사역이 짝을 이루어 행할 때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 신약시대에 모든 기독교인은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취해 나가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 비교

 

구분

구약의 지상명령

신약(예수님)의 지상명령

두 지상명령의 목표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것

지상명령의 목적

자손 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라

(창 18:19; 신 6:4-9)

땅 끝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마 28:19-20; 행 1:8)

지상명령의 목표

오실 예수님을 준비

오신 예수님(복음)을 전파

최초

지상명령의 시작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가정 사역으로 시작

사도행전 2장 이후(예: 예루살렘교회)

교회에서 타인과 외국인에게

복음 전파로 시작

구원의 방향

가정에서 수직적 선민교육

교회에서 수평적 전도

교육의 장소

가정이란 성전

교회란 성전(건물)

교사(목회자)

가정의 부모

교회의 목회자

학생(교인)

가정의 자녀

교회의 교인

교육의 내용

구약성경

복음(신약)과 구약성경

교사의 의무

가정에서 말씀으로 자녀 양육

교회에서 말씀으로 교인 양육

가장 중요한 계명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만방에 복음을 전파하라

- 성령의 사역 -

교육의 결과

가정에서 자손 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 데 성공

교회에서 이방선교에 성공

교육의 단점

예수님을 영접치 못해

이방선교 못함

가정이나 민족이 자손 대대로

말씀 전수에 실패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의무

먼저 가문과 민족교회가 자손 대대로 생존하기 위해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쳐 자녀를 말씀의 제자로 양육하는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 신 6:4-9)과 수평적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마 28:19-20)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의 지상명령이 짝을 이루어 완수될 때 더 많은 민족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한국이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면 또 다시 중국이나 일본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에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근세에 중국이나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한국 민족이 다시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면 주변국으로부터 혹독한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세계선교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가 살기 위하여 가정의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구약의 지상명령이 더 중요하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주님 오실 때까지 하기 위해서도 한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여야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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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한국교회 표어 참조, http://blog.naver.com/wo2kj/220296766485

현용수. (2005). 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아라. 제1권, 서울: 쉐마.

______. (2005). 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아라. 제2권, 서울: 쉐마.

______. (2009).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 제1권, 서울: 쉐마.

______. (2009).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 제2권, 서울: 쉐마.

______. (2009).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 제3권, 서울: 쉐마.

______. (2006). 유대인 아버지의 4차원 영재교육(아버지 신학). 서울: 동아일보, 쉐마.

 

현용수  yongsh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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