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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논문2> 순종신학 연구다음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본 제5계명에 포함된 순종 연구

다음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본 제5계명에 포함된 순종 연구

<순종신학 연구>

현용수 교수(쉐마교육연구원)

 

 

 

 

초록(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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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다음세대가 위기다. 교회사적으로도 신약교회는 2000년 동안 어느 가문이나 민족도 다음세대, 즉 자손대대로 신앙을 전수하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유대인은 아브라함부터 현재까지 4000년 동안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전수하라는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창 18:19; 신 6:4-9)를 주셨고, 그들이 그것을 실천했기 잘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제5계명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필수 도구다. 하나님은 제5계명을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엡 6:2) 등으로 말씀하셨다.

왜 하나님은 ‘경외’ ‘순종’ ‘공경’이란 세 단어를 쓰셨는가? 왜 유대인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인정하는가? 왜 아버지의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로 여기는가? 하나님은 왜 불효자는 죽이라고 하셨는가?

이것이 제5계명은 단순한 윤리적인 효가 아니라 쉐마에 기초한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본 논문은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한다는 차원에서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논증한다. 1) 자녀는 부모를 하나님처럼 경외해야 부모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고, 부모의 권위에 순종해야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 받아 말씀을 맡은 자(롬 3:1-2)가 될 수 있다. 그래야 2) 부모공경을 실천할 수 있다. 전자는 구원론적 영역이고, 후자는 윤리적인 영역이다. 전자는 효자가 되는 과정이고, 후자는 그 결과의 행위다. 따라서 제5계명은 유대인 개개인과 유대민족 전체의 생존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계명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잃었던 구약의 지상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제5계명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살아남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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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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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문제 제기: 한국교회 다음세대의 위기와 제5계명

II. 구원론적 입장에서 본 순종 신학: 순종(제5계명)은 구약의 지상명령 실천을 위한 도구다

1. 하나님이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

2.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부모와 자녀의 의무

3. 제5계명과 순종의 관계: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다

A. 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인가·

B. 부모 경외와 순종의 관계: 부모를 하나님처럼 무섭게 여기게 하라

C. 아버지의 축복과 저주 =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D. 왜 부모에게 반항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것인가

4. 구약의 지상명령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불효자는 죽이라고 한 이유

III. 유대인의 순종(제5계명) 실천의 예

1. 효신학적 입장에서 본 이삭의 위대한 순종

A. 하나님은 아브라함 믿음과 이삭의 순종을 동시에 시험하셨다

B. 이삭의 순종은 아브라함 교육의 열매다

C. 이삭은 효의 모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이삭은 순종의 조상

D. 이삭이 순종한 결과 얻은 복

E. 하나님의 뜻에 반해도 순종해야하는가

2. 출애굽 후 요셉의 뼈를 56년간 메고 다녔던 유대인들

IV. 순종 신학의 요약 및 결론:

1.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제5계명의 발달 단계

2. 제5계명이 구약의 지상명령에 미친 공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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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열방교회(안병만 목사)의 가정식탁 예배 현장,부모들이 신앙교육의 주체가 되며 자녀들은 부모의 지도아래 순종하며 예수 제자로 세워져 간다.

 

I. 문제 제기: 한국교회 다음세대의 위기와 제5계명

 

제5계명은 ‘자녀의 순종’도 포함하고 있다. 순종의 반대는 불순중, 즉 반항이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크게 두 가지의 위기가 발생한다. 첫 번째 위기는 도덕적인 위기이고, 두 번째는 교육의 위기다.

 

먼저 도덕적인 위기를 살펴보자. 한국은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니와 공경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모를 상습적으로 때리는 자녀들도 많아졌다.

1997년 발표된 ‘청소년의 부모 폭행’에 관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모두 1백 5명에 이르는 전국 임상가(의사·전문 상담원)가 6개월간 맡은 전체 청소년 문제 관련 상담 2만2천4백68건 중 부모 폭력과 관련된 사례는 1천8백80건으로 전체의 8.4%에 달했다. 이 중 폭언·기물 파괴·위협 등을 포함한 부모 폭력 사례는 평균 17.9%. 지난 6개월 동안 임상가 1명당 평균 18건꼴로 부모 폭행 사례를 목격했다(시사저널, 청소년의 부모 상습 구타 의외로 많아…가치관 혼란이 낳은 패륜, 1997년 5월 8일).

2017년 3월 21일 경북 구미의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같은 반 친구와 다투자 담임 여교사가 서로 사과하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30대 담임 여교사의 얼굴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MBN, "친구와 화해하라" 말에 초등학생이 담임교사 폭행, 2017년 3월 30일).

오늘날 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하기가 힘든가? 대부분 자녀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나 교사들에게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도덕적인 위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두 번째 교육의 위기를 살펴보자. 특히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기독교교육의 위기는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다음세대가 위기다. 교회사적으로도 신약교회는 2000년 동안 복음을 다른 민족에게 전하는 세계선교에는 성공했는데, 어느 가문이나 민족도 다음세대, 즉 자손대대로 신앙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다(현용수,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제1권, 2006, pp. 44-48).

그런데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때부터 현재까지 4000년 동안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창 18:19; 신 6:4-9)를 주셨고, 그들이 그것을 잘 실천했기 때문이다. 구약의 지상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이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여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준비하라는 것이다(상계서, 제1권과 제2권 참조).

그렇다면 유대인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실천해 왔는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인 주제들을 알아야 한다. 제5계명(효신학), 제4계명(안식일 신학), 가정신학, 아버지 신학, 경제신학, 어머니 신학, 성신학, 자녀신학, 고난의 역사신학 등이다(자세한 것은 쉐마교육연구원 홈페이지 www.shemaiqeq.org에서 저자의 32권의 저서 참조).

 

본 논문은 이 중에서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데, 왜 제5계명(효신학)이 가장 중요한지를 다룬다. 효신학은 크게 윤리적인 측면과 구원론적 측면이 있다. 여기에서는 구약의 유대인을 모델로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특히 제5계명(효) 중에서도 ‘순종’이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논증하고, 그 열매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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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는 2000년 동안 복음을 다른 민족에게 전하는 세계선교에는 성공했는데, 자손대대로 신앙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는가?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때부터 현재까지 4000년 동안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데 성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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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구원론적 입장에서 본 순종 신학:

순종(제5계명)은 구약의 지상명령 실천을 위한 도구다

 

1. 하나님이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소원(Wish of God)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Hirsch, 1989b, pp. 274~275). 그 소원은 가정에서 부모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여 대를 이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천국의 확장 방법이다(마 6:10). 하나님은 세세토록 하나님의 말씀이 자손 대대로 전수되고 더 많은 인간에게 전파되기를 소원하신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저서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현용수, 쉐마, 2009), 제3권 제5부 제1장 II. 2. ‘왜 말씀 맡은자의 번성은 천국의 확장인가’ 참조]

 

특별히 유대인이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과 어떤 점에서 큰 차이가 나는지 그 차이점에서 찾아야 한다. 구원론적 입장에서 구약시대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바울은 그들이 이방인과 가장 큰 차이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롬 3:1-2). 따라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대를 이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손 대대로 조상들이 전 세대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 즉 다음세대에 전수해야만 했다. 만약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지 않았다면 이방인과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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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소원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가장 큰 차이는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롬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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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부모와 자녀의 의무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전수해야 한다는 투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도 부모의 뜻에 협조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해야 할 두 가지 사역이 있다. 첫째, 자녀를 주 안에서 잘 관리하는 일이고, 둘째, 자녀를 옳은 길로 갈 수 있게 교육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기 위해 부모에 대한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무엇인가? 순종이다. 따라서 성경은 누누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다(창 18:19; 신 21:18, 신 21:20; 엡 6:1; 골 3:20; 벧전 1: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

 

만약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부모의 관리와 교육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다음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전수 할 수 없다. 즉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없다. 이것이 제5계명과 순종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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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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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5계명과 순종의 관계: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다

A.자녀의 순종과 말씀 전수의 관계: 부모 무시는 하나님의 권위 무시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순종이 필수다. 그 순종은 어느 계명에서 나오는가? 제5계명, “내 부모를 공경하라”에서 나온다. 제5계명에는 여러 말씀들이 포함되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여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제5계명을 세 가지 주제로 정리하면, 1)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 2)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그리고 3)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엡 6:2) 등이다. 하나님은 왜 ‘경외(revere or fear)’ ‘순종’ ‘공경’이란 세 단어를 쓰셨는가? 제5계명에서 세 단어가 어떤 용도로 왜 사용했는지 알아보자.

바울은 제5계명을 말씀할 때 먼저 자녀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엡 6:1), 그 다음에 공경할 것을 명령(엡 6:2)했다. 저자는 제5계명을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데 가장 필요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에 주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먼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할 때 부모에게 순종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권위는 누가 준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권위의 원천이시다(시 93:1~2, 104:1).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하여 권위를 스스로 가지셨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 93:1~2)

 

그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세세토록 권위를 가지시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신다(계 19:6). 그리고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통치하시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권위들을 주셨다(롬 13:1; 골 3:22). 물론 부모에 대한 권위 역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면 그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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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제5계명에 ‘경외’ ‘순종’ ‘공경’이란 세 단어를 쓰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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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부모 경외와 순종의 관계: 부모 경외는 하나님 경외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이 잘 순종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다. 그러나 이방인들 자녀들보다는 대부분 유대인 자녀들이 훨씬 더 부모에게 순종을 잘한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기에 그토록 순종을 잘 하는가?

먼저 유대인은 부모의 권위가 왜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한지를 가르친 이후에 하나님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fear)지를 가르친다.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분이신지를 아는 것만큼 그분에게 잘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들도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부모에게 하나님에게 순종하듯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내광야 40년 동안에 유대인에게 여호와 하나님 경외, 즉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교육을 철저히 시키셨다. [저자 주: 여기에서 ‘무서움(fear)'은 폭력배의 물리적인 위협 같은 것에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이 아니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최상의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마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언약을 어길 경우 혹독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출 19-24장; 신 28: 15-68). 실제로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한 번에 3천 명, 혹은 2만4천 명이 죽는 것을 목도해 왔다(출 32:26-29; 민 25 :1-9). 하나님에게 식량문제로 불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민 11:4-34).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역사서 및 선지서 참조).

이것이 유대인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지식)의 근본’임을 누누이 반복하여 가르치는 이유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1:10)

 

(자세한 것은 저자의 저서 ’신앙명가 이렇게 세워라‘, 제1권 제2장 I. 2. B. ‘왜 여호와 경외가 교육학적으로 유익한가’ 참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5계명과 관련하여 왜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명령하셨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누가 자녀들에게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곧 이 명령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인정할 때 가능하다. 자녀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를 하나님에게만큼 경외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부모에게 잘 순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은 레위기 19장 3절을 부모에 관련된 제2계명이라고 한다(Scherman & Zlotowitz, 2005, p.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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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인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지를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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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아버지의 축복과 저주 =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무엇으로 측정하셨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 그 정도를 보시고 측정하셨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Now I know that you fear God, because you have not withheld from me your son, your only son.). (창 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c). 무엇으로 아시게 되었는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창 22:12b).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중요한 분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가리켜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으로 표현하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그 분을 더 중요한 분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과 율법의 무게를 그만큼 더 무겁게 느낀다는 것을 증명한다(현용수, ‘신앙명가 이렇게 세워라’, 제1권 pp. 112-113).

따라서 자녀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여겨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을 육신의 아버지처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 63:16; 렘 3:19; 롬 8:15; 갈 4:6).

 

하나님은 부모에게 얼마나 큰 권위를 위임하셨는가? 성경은 부모 권위의 파워가 하나님 권위를 대신해 나타나는 사례를 많이 보여준다.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면 아들이 축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는다. 노아가 아들 함에게 저주한 결과 함의 아들 가나안이 그대로 저주를 받았다(창 9:25, 15:18~21). 그리고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해주고(창 27:28~29), 야곱이 12아들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준(창 48장) 내용대로 미래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자세한 것은 저자의 저서 ‘자녀의 효도교육 이렇게 시켜라’, 2010, 제2권 제3부 제2장 III. ‘가문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축복권을 사용하라’ 참조)

부모의 권위에 순종치 않는 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실로 처절한 최후를 맞게 된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게 된다. (잠 30:17)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위가 부모의 권위보다는 우선적이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더라도 항상 부모보다 더 크신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마음속에 두고 존경해야 한다(Lieber, The Fifth Commendment. 1998, p. 121). [저자 주: 권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유대인 아버지의 4차원교육’(현용수, 동아일보, 2006) 제1장 IⅡ. 2.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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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부모에게 얼마나 큰 권위를 위임하셨는가?

부모의 권위에 순종치 않는 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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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부모에게 반항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이제 제5계명과 관련하여 부모 경외와 순종의 관계를 살펴보자. 제5계명에 속하는 율법 중에 하나님은 자녀가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다(출 21:15, 17; 레 20:9; 신 21:18-20; 마 15:4). 즉 불효자는 사형이라는 극형에 처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을 때리거나 저주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가 죽지 않고 살려면 부모를 경외(fear)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골 3:20)고 말했다.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반면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은 주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부모를 저주하고 때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때리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부모나 육신의 상전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되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다(골 3:22).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고 했다.

실제로 유대인은 현재에도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경외) 분이신지를 토라를 가르치며 교육시킨다. 유대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면 이렇게 반문한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니?”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부모를 경외하며 부모에게 순종도 잘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녀교육의 문제들 중 하나는 대부분 자녀들에게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부모나 교사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경외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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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면 이렇게 반문한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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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약의 지상명령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불효자는 죽이라고 한 이유

만약 자녀들이 제5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들에게 전수될 수 없다. 다음세대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말씀 전수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제5계명인 효의 중요성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더 높게 그리고 더 무겁게 여길수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무게가 있게 들리고 권세 있게 들린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판에 잘 박힌 못처럼 새기게 된다(전 12:11).

반면 부모의 권위를 하찮고 가볍게 여기면 여길수록 부모가 가르치는 교훈이 자녀들의 마음판에 잘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라고 강하게 명령하셨다. ‘부모를 경홀히(degrade) 여기는 자’란 뜻은 ‘부모를 모욕하거나’ 혹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를 뜻한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 받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맡은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도 없다.

그런 자녀는 들사람이나 짐승 같은 사람이 된다(창 25:27). 설사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 49:20). 그러면 살려둘 가치가 없다. 제5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죽이라’(레 20:9; 출 21:17)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하나님은 부모를 통하여 말씀이 자손대대로 전수되기를 소원하신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제5계명(순종)을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주셨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맡은자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딤후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제5계명이란 율법을 지키는 효자를 말한다. 여기에서 성경의 효도교육이 유교의 효도교육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유교는 단순히 윤리적인 효에 그치지만, 기독교의 효는 유교의 윤리적인 효의 차원을 넘어 부모가 자녀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수하는 데, 즉 영혼 구원을 위한 필수 계명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기독교인의 효를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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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 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녀는 말씀을 맡을 수 없다. 그러면 살려둘 가치가 없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제5계명(순종)을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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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유대인의 순종(제5계명) 실천의 예

 

[저자 주: 이글은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쉐마’(현용수, 쉐마, 2009) 제1권 pp. 104~116의 내용인데 본란에 꼭 필요하여 일부를 보완하여 중복 게재한다]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은 대를 이은 순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상명령을 주실 때 그의 자손들이 여호와께 순종하게 할 것을 명했기 때문이다(창 18:19b, 표준새번역).

그 결과 유대인은 얼마나 순종을 잘했는지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하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애굽에서 죽은 요셉의 뼈를 가나안으로 이장하는 사건이다.

 

1. 효신학적 입장에서 본 이삭의 위대한 순종

A. 하나님은 아브라함 믿음과 이삭의 순종을 동시에 시험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창 22:1~19). 번제(a burnt-offering)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이 사건은 유대인이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범죄케 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의 믿음을 확증케 하기 위함이었다(창 22:1). 이것은 아브라함을 시련하기 위한 마지막 불 시험(벧전 4:12)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교육학적 그리고 효신학적 입장에서 아브라함의 교육을 받은 이삭의 순종을 주목해 보자.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믿음만 좋아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아들 이삭의 협조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 성장한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뜻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거나 도망가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유대인에 의하면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고 사라의 나이는 127세(죽을 때의 나이)였으며 이삭의 나이는 37세였다(Scherman & Zlotowitz, The Chumash, 2005, p. 100).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의 순종도 함께 시험하는 큰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시험의 난이도가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이삭의 순종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삭은 순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믿고 따랐던 아버지의 손에 의하여…. 뿐만 아니라 당시 이삭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따질 수 있거나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B. 이삭의 순종은 아브라함 교육의 열매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순종교육을 얼마나 잘 시켰는가? 그 교육의 열매를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 두 사환과 이삭을 데리고 떠났다. 목적지는 모리아산인데 현재의 예루살렘이었다. 훗날 이곳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고(삼하 24:16,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솔로몬 성전이 건립된 곳이기도 하다(대하 3:1). 현재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법적 이름은 모슬렘의 ‘오마르 사원’)에 가면 그 현장의 바위를 볼 수 있다. 출발지에서는 무려 80km(200리)의 여행길이었다.

성장한 어른이 된 이삭은 아버지의 슬하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설득을 한다고 해도 따라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걸어서 3일을 가는 길이었다. 요즘 자녀들 같으면 자동차를 타고 가자고 해도 잘 순종하지 않을 텐데 어찌 걸어서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갈 때 번제에 쓸 나무는 쪼개어 사환들이 지고 가게 하였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사환과 나귀는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이삭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우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었다(창 22:5~6). 여기에서 무거운 짐은 누가 지고 올라갔는가?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아들이다. 즉 가벼운 것은 아버지가 운반하고 무거운 짐은 아들이 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손들은 아버지에게 효를 행하기 위하여 무거운 짐은 아버지 대신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도 요즘 자녀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힘든 일들을 노인들이 하는 것으로 당연시 하는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짓는 농촌이나 물고기를 잡는 해변에서도 거의가 노인들이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자녀들은 놀게 하거나 학교만 보낸다. 분명 자녀교육을 잘못 시킨 결과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르렀을 때 그는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 앞의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밧줄로 묶을 때에도, 그리고 그를 나무 단 위에 뉘일 때에도 일체 반항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할 때(창 22:10)에도 그는 도살자 앞의 순한 어린 양처럼 순종하였다. 물론 이때 하나님의 만류로 이삭은 살아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으로 제사를 드렸다(창 22:11∼13).

 

이삭은 어떻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는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하나님처럼 경외했고, 경외한 것만큼 아브라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무겁게 여겼기 때문이다. 누가 이렇게 교육시켰는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부자(父子)의 관계는 동등한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가 분명한 수직적 관계라는 점이다. 오늘 날도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직도 이런 부자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수 될 수 있다.

 

C. 이삭은 효의 모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이삭은 순종의 조상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칼을 겨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했다고 말했다(히 11:17,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19)

 

따라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롬 4:11~12, 16)이 되고 이삭은 순종의 조상이 되었다.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한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를 지며 죽기까지 순종하셨다(사 53:7; 요 1:29; 행 8:32; 빌 2:8). 따라서 이삭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삭은 너무나 효자라서 아브라함이 그를 묶은 후 죽이려 할 때에도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버지, 내가 죽었다고 엄마한테 얘기하려면 엄마가 웅덩이나 지붕에 있을 때에는 얘기 하지 마세요. 엄마가 놀라서 떨어져 죽을까 두렵습니다.”(Wax, The Ten Commandments, 2005, p. 266). 그래서 유대인은 이삭의 행위를 효의 모델로 삼는다.

누가 이삭을 이렇게 잘 순종하게 교육시키었는가? 물론 아브라함 부부였다. 교회 목사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가정의 부모였다. 따라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교육은 먼저 부모 몫이라는 점이다.

 

요즘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밧줄로 묶는다면 가만있겠는가? 눈치를 채고는 힘센 젊은 아들이 늙은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치거나, 아니면 아버지를 미쳤다고 폭행하지 않겠는가? 더 심하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지 않겠는가?랍비의 유머

 

D. 이삭이 순종한 결과 얻은 복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은 무엇이 다른가? 동일한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키우는 과정이 다르다. 아브라함은 첫 번째 선민의 조상으로서, 열 번씩이나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면서 그의 믿음을 더 큰 믿음으로 키워나갔지만, 두 번째 조상 이삭은 다르다. 아브라함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2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을 첫 번째로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다.

창세기 26장 1절은 이삭 인생의 시작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때(창 12:10)처럼 흉년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아버지처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을 처음부터 권고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미리 이것을 알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였다. 하나님이 이삭이 드린 순종의 제물을 온전히 받으셨기 때문이다(Scherman & Zlotowitz, The Chumash, 2005, p. 129).

가나안에 아무리 흉년이 온다고 해도 거룩한 그곳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가나안은 교회 및 천국을 뜻하고(히 9:24, 10:1), 애굽은 세상을 뜻한다(출 4:22~23).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당연히 어려운 시험이 올 수 있다. 그 때마다 애굽, 즉 세상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졌지만 너는 이기라는 뜻이다. 이것이 언약(창 26:3~4)의 조건이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 26:1~5)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시험에도 성공하였다. 그 순종의 결과 일평생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창세기의 전체 50장 가운데 38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이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쓸 얘기가 많다는 말은 그들의 인생이 그만큼 기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야곱은 바로에게 이렇게 고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그런데 이삭의 인생은 창세기 26장 한 장에 다 쓸 정도로 순탄한 삶을 살았다. 더 이상 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생활을 했다. 사막 지역에서는 우물을 가진 자가 부자다.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면 물이 콸콸 솟았다. 그리고 이삭이 농사를 지으면 씨앗의 100배를 거두었다(창 26:12).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100배는 얼마나 많은 수확인가? 성경은 수확을 3단계로 나눈다. 최소가 30배, 중간이 60배, 그리고 최상이 100배다(마 13:23). 이삭은 항상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셔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창 26:13). 이것이 자녀교육에 있어서 순종이 하나님 앞과 부모의 앞,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교훈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열 번째 시험을 합격한 후 남은 여생에 큰 복을 받았지만, 이삭은 한 번의 큰 시험(순종)에 합격했기 때문에 나머지 긴 인생이 순탄하였다.

 

따라서 순종은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실천 덕목 중 제1순위다. 왜 가정교육이 힘든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학교교육이 힘든가? 학생들이 선생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은 옷의 첫 단추와 같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이면 나머지 단추들이 모두 잘못 꿰이는 것처럼 기독교인에게 순종이란 덕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머지 신앙생활이 제대로 됐다고 할 수가 없다.

 

E. 하나님의 뜻에 반해도 순종해야하는가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이 부모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이해할 수 있을 때 따라 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순종이 아니다. 설사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의 말씀이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다. 또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는 순종을 잘 한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녀들에게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령 부모가 주일날 교회 대신에 세상 공부를 시키기 위하여 학원이나 학교에 가라고 한다면 순종해야 하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순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물론 유대인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유대인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시킨다고 해도 토라의 말씀과 반대 될 때는 순종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부모공경이란 계명과 토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Greenwald, Respectfully A Children's Guide to the Halachos of Honoring Parents, 2003, p. 36).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 자신이 언제나 아브라함처럼 자녀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삭이 그처럼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만큼 평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자녀가 잘못되었을 경우 무조건 그들만 탓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부모되기는 쉬워도 부모다운 부모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출애굽 후 요셉의 뼈를 56년간 메고 다녔던 유대인들

여기에 소개되는 이야기는 애굽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요셉이 죽은 후 그의 유해가 약 416년 만에 가나안에 장사되는 사건이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4대손이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서 이렇게 유언한다. [저자 주: 416년이란 기간은 요셉이 출애굽하기 전 360년 전에 죽었다(110세에 죽었음, 창 50:26)는 사실과, 40년 광야 생활 그리고 16년의 가나안 정복 기간을 더한 수치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 50:24~25)

 

요셉은 죽으면서도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것을 말했다(히 11:22). 하나님이 유대인을 반드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다. 얼마나 큰 수직적인 믿음인가! 요셉이 110세에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다(창 50:26). 즉 요셉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관에 넣었다. 그리고 요셉이 죽은 후 유대인은 바로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359년 동안이나 요셉의 유해를 보관하는 데 성공하였다.

드디어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할 때가 왔다. 유대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그 긴박한 와중에서도 요셉의 유골을 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출 13:19). 요셉이 359년 전에 유언한 것을 기억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출 13:18~19)

 

그뿐인가? 유대인은 그 관을 짊어지고 홍해를 건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간 광야에서 유랑할 때에도 그 무거운 관을 매번 짊어지고 다녔다.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도,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쟁을 치를 때에도 그 관을 짊어지고 다녔다. 마침내 여호수아는 요셉의 뼈를 가나안 북쪽 야곱의 우물이 있는 세겜에 장사 지냈다(수 24:32, B.C. 1383년). 요셉이 죽은 지 약 416년 만의 일이다. 유대인은 요셉의 뼈를 출애굽 후 세겜에 이장할 때까지 56년간 메고 다녔다. (저자 주: 56년이란 기간은 40년 광야 생활과 16년의 가나안 정복 기간을 더한 수치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 24:32)

 

가나안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기로 예비하신 약속의 기업의 땅이다. 그곳은 영원한 본향, 즉 천국의 표상이다. 안식의 땅이다(창 12:1, 15:18~21; 17:8; 출 6:4, 13:11; 레 14:34, 25:38; 행 13:19; 히 4:3, 11:13~16).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들은 가나안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다만 믿음으로 약속의 성취를 확신하면서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히 11:13~16).

약속의 성취는 출애굽 사건을 거쳐 여호수아에 의해 이루어졌다(여호수아기 참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요셉의 유해도 그 무덤에서 안식을 얻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열조가 묻힌 안식의 땅 가나안에 묻히기를 소원한 것이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들어간 후 유해가 되어 가나안에 묻힌 것은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횃불 언약을 체결(창 15:1-21, B.C. 2082년)하신 지 실로 699년 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사 대 만에 나올 것을 약속하셨다(창 15:13-16). 즉 약속의 성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창 15:13∼16)

 

여기에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유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야곱도 애굽에서 죽었기 때문이다(B.C. 1859년). 물론 야곱도 자신의 유해를 가나안에 묻어줄 것을 부탁하였다(창 49:29). 그 때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높은 관직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허락을 받고 가나안에 건너가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밭 굴에 장사 지냈다(창 49:29~50:1~14).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부부와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의 유해가 묻혀 있는 묘지다(창 49:29~32).

 

 

IV. 순종 신학의 요약 및 결론

 

1.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제5계명의 발달 단계

 

앞에서 구약의 지상명령적 입장에서 제5계명(순종)을 설명했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인 효가 아니라 구원론적인 입장에서의 효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한다는 차원에서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한 마디로 다음세대 교육을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순종이 선택의 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제 전체 내용을 요약하며 다시 정리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에게 제5계명을 주셨을 때 다양한 용어로 명령하셨다.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엡 6:2) 등이다. 왜 하나님은 ‘경외’ ‘순종’ ‘공경’이란 세 단어를 쓰셨는가? 이 말씀들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정리하면 제5계명의 시작은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하는 데(롬 13:1; 골 3:22)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가 얼마나 무서운(네 부모를 경외하라, 레 19:3)지를 알아야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다(엡 6:1).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창 18:19; 신 6:4-9) 말씀을 맡을 수 있다(롬 3:2). 유대인 자손이 말씀을 맡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딤후 3:15-17),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효자가 된다. 그리고 효자가 되면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어 부모를 공경한다(엡 6:2). 즉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

제5계명을 지킬 경우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복은 “네게 준 땅[가나안]에서 생명이 길고, 잘 되고, 복을 누리게 될 것”(출 20:12; 신 5:16; 엡 6:2)이다. 바울은 효자가 받는 이런 복을 근거로 제5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고 결론지었다. (자세한 복은 저자의 저서 ‘자녀의 효도교육 이렇게 시켜라’, 제1권, 제2장 V. ‘제5계명은 왜 ‘약속 있는 첫 계명’인가‘ 참조)

 

종합적으로 제5계명에 포함된 전체 키워드들을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발달 단계 형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단계: 자녀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함(롬 13:1)

제2단계: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부모를 경외함(레 19:3)

제3단계: 부모를 하나님처럼 경외할 때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부모에게 순종함(엡 6:1)

제4단계: 부모에게 순종할 때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씀 맡은자가 됨(롬 3:2)

제5단계: 말씀 맡은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효자)이 됨(딤후 3:15-17)

제6단계: 하나님의 사람(=효자)은 율법을 지키어 부모를 공경함(엡 6:2)

제7단계: 효자가 받는 복: 하나님이 주신 땅[가나안]에서 잘되고 장수함(엡 6:3)

 

제1-3단계는 제5계명(순종)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이다. 제1단계는 제2단계, 제2단계는 제3단계의 원인이 된다. 제4-5단계는 유대인이 순종을 실천한 결과다. 제6단계는 순종을 실천한 결과로 얻은 열매, 즉 효자(말씀 맡은자=하나님의 사람)가 부모에게 행한 행위다. 제7단계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제5계명을 전체를 지켰을 경우 약속하신,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보상, 땅의 기름진 열매와 신령한 영적 열매를 포함한다.

제6단계(부모공경)는 제5계명의 윤리적 행위이고, 제7단계는 자녀가 제1-6단계를 실천한 것에 대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이다.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제5계명의 발달 단계

 

제7단계: 하나님이 주신 땅[가나안]에서 잘 되고 장수함(엡 6:3)

제6단계 하나님의 사람(효자)은 부모를 공경함(엡 6:2)

제5단계 말씀 맡은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이 됨(딤후 3:15-17)

제4단계 부모에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씀 맡은자가 됨(롬 3:2)

제3단계 부모를 하나님처럼 경외할 때 하나님에게 하듯 부모에게 순종함(엡 6:1)

제2단계 부모 권위를 하나님 권위로 인정할 때 부모를 하나님처럼 경외함(레 19:3)

제1단계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롬 13:1)

 

결론적으로 신약교회가 2000년 동안 어느 가문이나 민족도 다음세대, 즉 자손대대로 신앙과 말씀을 전수하지 못한 것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5계명을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할 수 없었고, 실천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제5계명은 유대인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필수 도구라는 것을 발견했다. 유대인 개개인과 유대민족 전체의 생존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계명이다.

한국교회가 쇠퇴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다음세대에 희망이 없다.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잃었던 구약의 지상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제5계명을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살아남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다.

 

2. 제5계명이 구약의 지상명령에 미친 공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

여기에서 잠시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유대인의 자녀와 현재 우리의 자녀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요즘 자녀들에게 애굽에서 죽은 아버지의 관을 그 먼 가나안에 묻어달라고 유언한다면 이를 지킬만 한 자손이 있을까? 그것도 2대나 3대 후라고 해도 지키기 힘들텐데 무려 359년 후에 애굽에서 탈출할 때다.

그리고 출애굽한 후에는 무려 56년 동안이나 요셉의 무거운 관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그 관을 요즘처럼 비행기로 사뿐히 나르는 것도 아니다. 강도 건너고 바다도 건너고 사막도 건너며 광야 40년 동안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더구나 가나안에 진입하는 과정이나 정복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전쟁들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유대인은 토라의 말씀을 613개의 율법으로 자세히 분류하고, 각 율법에 수많은 코드를 정해 놓고 현재까지도 그것들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민족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시고 훈련시키셨기 때문에 이에 순종하는 것이다. B.C. 1446년경에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의 율법이 2010년 현재까지 무려 3,456년 동안 변개되지 않고 내려올 수 있는 이유도 서기관들이 매번 대를 이어 양피지에 베껴 가면서……. 유대인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기 때문이다.

유대민족! 그들을 더 이상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역사가 바로 성경이다. 그들의 고집스런 수고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갖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을 지키기 위해 제5계명을 지킨 결과다.

 

결론적으로, 유대인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데 제5계명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결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는데 성공했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 18:19, 표준 새번역)

 

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구약의 지상명령을 잘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2) 자손들에게 잘 가르쳤고, 3) 그의 자손(유대인)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잘 실천했다. 4) 그 결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2000년 후에 성취하여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수 있었다.

1-3항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주신 조건이고, 4항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그 조건을 성취시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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