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좌경화 원인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본지에 기고되는 논문이나 나의주장, 칼럼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속한 교단의 목사고시 과목 중에 ‘논문’이 있다. 금년에 필자가 논문지도를 맡게 되어 ‘동성애와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주어 심사했다. 응시생들의 첫 표정은 ‘이 정도쯤이야’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힘겨워했다. 이유는 자료의 부족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뒤엎는 영적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논문을 끝낸 후 이구동성으로 ‘동성애 배후에 좌익 사상이 이렇게까지 역사하는지 몰랐다’는 고백이 줄을 이었다.

이것이 응시생들만의 문제일까? ‘성혁명’을 내세운 좌익의 공세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 역시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국내외의 영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답답한 좌편향적 직진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교인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왜 영적 지도자들의 고집이 철옹성 같을까? 한국교회의 좌경화의 원인에 대해 잠시 숙고하면서 시대를 분별하고자 한다.

 

1. 추락하는 그리스도인의 지성

매년 노벨문학상은 무척 기대하면서 책은 지독히도 읽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다. 2016년 OECD 평균 독서율이 76.5%일 때 한국은 74.4%로 OECD 평균 이하였다. 그나마 그 통계도 역대 최고치였다. 2017년은 어땠을까? 더 추락해서 59.9%다. 즉, 10명 중 4명이 한 해 동안 1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청소년들이 성인에 비해 독서율이 높은 것은 교과서와 자습서 때문이란다. 그 덕에 연간 9.1권을 읽는다. 미국은 어떨까? 무려 80권을 읽는다.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인은 50대가 되면 아예 책과 담을 쌓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주소다. 독서율은 그 나라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세계 최고의 고학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목회자와 교인들의 수준은 어떨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니 더 형편없다. 최근 <목회와 신학> 조사에 의하면 목회자의 연간 독서량은 11.3권이고, 교인은 3.9권이란다. 무엇을 의미하나? 책을 가까이한다는 목회자도 평균독서량 9.1권에 비하면 2권정도 더 읽을 뿐이다. 교인들의 3.9권은 평균 독서량의 2배 이하의 형편없는 수준이다. 교인들이 불신자보다 저급한 수준이라면 심한 자학일까!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세상의 영향을 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교인들은 영성이 있지 않냐고? 교인들의 경건생활이 어떤지 교인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이런 수준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약한 그리스도인의 지성이 혹시 한국교회의 좌경화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관계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세속 욕망

한국교회 좌경화의 또 하나의 원인으로 멈춤 없는 그리스도인의 세속 욕망을 들 수 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교회성장’은 내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러다보니 사악한 영이 이 시대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영적인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교인수와 예산의 증가, 예배당 건축과 부채, 교회정치라는 욕망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시대조망과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를 찾기가 힘들다. 온통 세상이 주는 유희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교회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 영적 군함으로 만들기보다 유람선처럼 꾸미려는 교회 지도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교회의 이런 모습에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어떨까? 좌파 정부는 서구 사회를 파괴한 PC(political correctness)를 본격적으로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를 위해 헌법개정을 포함한 다양한 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는데, 대부분이 기독교인 학부모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무지와 무감각에 답답해한다. 교회지도자들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대화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예배당이 전도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유는 지금은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인 세대들이다.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 잘 될 것 같아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성경적 원리와 본질과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롱런한다. 우리는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강퍅한 시대에 진입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계속되겠지만, 교회가 세속적 탐욕의 옷을 벗지 않는다면 초대교회처럼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알 될 것이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지독한 세속욕망 또한 교회의 좌경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3. 서구 좌익사상에 물든 그리스도인

오늘날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현상은, 보수적 발언은 정치적 발언이 되고, 친북 혹은 PC적 발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낙태금지법, 군동성애금지, 무슬림 난민문제 등을 언급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차별주의자로 취급받는다. 역으로 반대의 목소리는 세련된 지식인처럼 인식하는 어이없는 현상이 그것이다. 교회의 부패에 대해 그토록 열을 내던 이들이 이런 점에는 신기하게 잠잠하다. 따지기 좋아하는 신학교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신학논쟁에만 안주하려한다. 익숙한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왜 변하지 않고 엉뚱한 것에만 매달릴까? 필자는 68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출간한 프란시스 쉐퍼의 책에서 쉐퍼도 동일한 고민을 했음을 주목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거짓된 전제의 얼개와 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세속 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은 홍수처럼 교회를 삼켜버렸다. 교회 지도자들은 대개가 엉뚱한 곳에서 논쟁을 벌였다. 그래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전개해 나가는 일에 앞장서지 못하고 한탄스러울 정도로 뒤처져 버렸다. 이것은 실제로 오늘날 복음주의자들도 고치기 어려운 약점이었다. (쉐퍼, <거기 계시는 하나님>, 1968)

‘엉뚱한 논쟁에만 허비하는 지도자, 시대에 뒤쳐진 지도자.’ 헛다리짚는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쉐퍼는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분야가 철학이요, 가장 늦게 영향을 받는 분야가 신학이라 했다. 교회, 가정, 그리고 국가의 붕괴를 목적하는 네오 맑시즘도 철학자들의 장난질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젠더’와 ‘퀴어신학’이라는 이름의 신학적 장난질에서 끝을 맺으려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교회 지도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퀴어신학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만일 동성애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제외된다면 성경은 불법도서가 될 것이다. 이유는 성경만이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좌파는 성경적인 신앙을 법으로 불법화하고 금지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철없는 이들은 좌파의 손을 들어주며 교회의 좌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4. 북한의 좌익사상에 물든 그리스도인

오늘날 이 사회는 두 좌익세력의 파상공격을 받고 있다. 즉,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NL)과 맑스-레닌을 추종하는 세력(PD)의 공세가 그것이다. 이들 좌익은 건국 70년 이래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포기한 적이 없다. 1945년 해방 이후 박헌영의 남로당 세력은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대구, 제주, 여수순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6.25전쟁 이후에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당인 통혁당, 그리고 자생적 좌파인 인혁당, 남민전과 같은 남한 내 좌파에 의한 끊임없는 적화공작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는 앞서 말한 주사파와 맑스-레닌 추종자들에 의해 이 사회의 좌경화의 큰 흐름이 조성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멸망과 주체사상에 실망한 일부 주사파 출신들이 보수 우파로 전향하면서 뉴라이트 운동을 펼치기도 하지만, 이미 뿌리내린 좌경화의 물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 30년간 지난 지금 이 민족은 부지불식간에 좌익의 구정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보수정권이 잠시 집권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기득권에만 연연하고 무능만 드러냈을 뿐, 좌익의 주밀한 움직임에는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결국 사달이 나서 오늘의 보수 궤멸이라는 쓰디 쓴 잔을 마시게 된 것이다. 이번 6.13 선거에서도 보수는 또 다시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면에서 한국의 좌경화는 오래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현재 이 사회의 중추인 40대 후반에서 50대의 세대들은 80-90년대의 운동권 세대들이다. 그들은 70년대의 반공세대들이 아니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주체사상과 세계 좌익 사상에 물든 세대이기에 미래의 좌경화는 예견되었다. 설사 그들이 우익으로 전향해도 그들의 마음 한쪽 구석에는 여전히 좌익사상이 깊이 뿌리내려 있어 변질은 필연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동일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교회 지도자들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교회 역시 좌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보수적 가치에 분명히 서 있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상 한국근현대사의 간략한 흐름과 더불어 한국사회와 교회의 좌경화의 영향을 숙고해보았다. 이런 흐름 가운데 사회적 약자로서의 목회자의 형편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목회자 대부분은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층에 대한 적개심, 심각하게 왜곡된 역사의식 등이 합해져 뒤틀린 좌파적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인문학은 멀리하고 신앙과 신학만을 가까이 하려는 목회자들의 편협한 경향도 좌경화에 한 몫을 했을 수 있다.

이 나라가 향후 좌파 정권의 광신적 폭주를 이겨내고 소중한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려면 교회 지도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무지와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어쩌면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될지도 모르겠다. 교회의 좌경화를 막으려면 세상을 등지는 편협한 신학에서 벗어나 지성의 폭을 더욱 넓혀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한 맥을 짚고 있어야 한다. 공산사상을 포함한 좌익사상의 위험성을 숙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교회가 좌경화되면 이 나라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이유는 인본주의는 신본주의와 절대 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무신론적 인본주의인 공산사상은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를 파괴하려는 사악한 영의 역사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야 한다. 예수님의 귀한 보혈로 얻은 값진 유산을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제 이 사회와 교회는 깨어나고 일어서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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