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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하나님 나라

정주채 목사 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중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제 4장의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정주채 목사(본지 발행인, 향상교회 은퇴)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직결돼있다. 온전해진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알아야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설교의 주제는 단연 “하나님 나라”였다. 복음서에는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란 말이 100번 이상 나온다. 100번 이상 나오는 이 말의 대부분을 예수님이 사용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 사역에 나서시면서 첫 번째 한 설교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막 1:15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모든 사역과 가르침의 주제 역시 하나님 나라였다.

그가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면서 이것이 곧 하나님 나라가 임한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가르치신 수많은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였다. 대부분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가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의 주제도 역시 하나님 나라였다. 행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떤 성품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시고 전파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의 확장이요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심으로 그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마 6:10) 장(場)을 여셨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에이전트’와 같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심으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마 6:33).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가 되심으로 만유의 주가 되시고 만유를 충만케 하신다(엡 1:22-23).

 

1)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임금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주로 계신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독생하신 아들 그리스도에게 이양하셨다. 곧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그의 아들에게 주셨다. 시 2:1-6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하나님]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이어 12절에서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의 절대권을 가지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그의 우편에 앉히셨다고 하셨고,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그의 아들에게 모든 통치권을 맡기셨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 사도는 빌 2:9-11에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막 14:62에서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셨고, 마 28:18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를 확인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주님으로 마음에 모실 때 임하게 되고, 그는 그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을 여기에 적용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권위 아래 들어가서 그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2) 하나님 나라의 통치이념

통치이념이란 통치자나 어떤 통치체제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통치의 원리와 목적으로 삼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을 말한다. 한 나라의 성격과 정체성은 바로 그 나라가 가진 통치이념에 의해 결정된다.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이 그들의 통치이념이다. 그러기에 인민들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김일성의 일가로 이루어진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인민들이 총포탄이 되어 “민족의 태양이신 수령님”을 사수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은 무엇일까? 에이브러햄 링컨은 아주 간단히 핵심을 찔러 말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민주국가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이념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무엇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어떤 원리로 그의 나라를 다스리는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이념은 의와 사랑이다. 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요, 어디서든지

의와 사랑이 나타나고 의와 사랑이 온전케 될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시 89:14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 85:9-11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이고, 그에게서 인자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 맞출 것이라 하였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될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동시에 성취한 신비롭고 오묘한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 의와 사랑은 성경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그 형상의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의와 사랑이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의와 사랑은 인간의 양심의 저울이 되었다. 사람은 의롭게 살아야 떳떳하고, 사랑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들을 잃어버렸다. 부패하여 순수함을 잃어버렸고, 왜곡되었다. 고장 난 저울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란 속에 빠졌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었고, 온갖 비참과 고통이 인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1) 의(righteousness)

성경에는 의나 공의란 말이 수없이 나온다. 의라는 말이나 공의라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도 공의는 좀 더 공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들어있다.

첫째는 법적인 내용이다. 이 말이 법정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판사가 사람들의 시비를 가려 줄 때나 혹은 혐의를 받은 사람의 죄를 찾지 못했을 때 사용되었다. 신 25: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둘째는 윤리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도덕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직함과 진실함을 표현할 때도 이 말이 사용되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셋째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며 언약을 지키는 자들을 가리켜 의롭다 하였다. 즉 경건한 신앙인들을 가리켜 의인이라 불렀다. 노아와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할 때 “의인 10명만 있어도”라는 말을

했는데 여기서도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신약에서는 더욱 강한 종교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속량 사역으로 이루어진 의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없다함을 받아 얻은 의이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를 찾아 세우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가 실현되도록 의로운 삶을 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범

사에 정직하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개인이고 심리적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열심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같은 보수적인 교회나 신자 중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지만, 사회적이고 공적인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의를 세우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운 삶의 영역을 넓혀서 사회정의와 정치적인 의를 이루는 일에도 책임의식을 가지고 계속

헌신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강하다. 이들 중에는 다수의 힘으로 혹은 권력과 재물의 힘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 대해 저항하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사회정의 곧 사회적 평등을 이루어보려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일은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구할 것은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갖지 못하면 법적, 도덕적 의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곧 시들고 만다. 의란 포괄적으로 말하면 올바른 관계이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 있지 않으면 나무에서 부러진 가지와 같아서 생명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능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밖에 버려져 말라질 뿐이다.

 

(2) 사랑(Agape)

하나님 나라의 이념 중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의와 사랑은 공존한다. 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불륜일 뿐이며, 사랑이 없는 의는 생명을 얻게 하지도 못하고 풍성케 할 수도 없다. 의를 나무의 뿌리로 비유한다면 사랑은 그 줄기와 꽃과 열매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이념인 동시에 통치목표이다. 사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고 목적이다. 사랑을 이룰 때 인생은 온전함에 이르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사랑이라 하셨다. 강령이란 그물을 잡아당기는 밧줄이다. 아무리 넓게 친 그물도 이 밧줄을 잡아당기면 다 딸려온다. 율례와 법도가 많지만, 사랑을 이루면 이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참된 사랑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조건 없는 희생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신 사랑이다. 둘째는 보편적인 사랑이다. 좋아하는 사람,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사랑의 근거는 창조와 속량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다. 그리고 비록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그의 독생하신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저들을 속량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참된 사랑은 구체적이다. 마음의 동정심으로 끝나거나 말과 입으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나누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함께 있어 주는 사랑이다. 돈으로, 혹은 물질로 도와주기는 쉬워도 같

이 살아주기는 힘들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무한한 것은 그가 임마누엘로 오셔서 우리의 비참과 고통을 체휼(體恤)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악하고 더럽고 수준 낮은 사람들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

사랑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끝이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의 또 하나의 적용은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사랑받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요1서 4:7, 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딤전 6: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그의 사랑이 충만케 되기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찾고 구한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실천하고 세워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무한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런 적극적인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마음을 다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힘을 다하라고 명령하신다.

 

3)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을 떠나야 들어갈 수 있는 내세의 나라가 아니라 현세와 내세를 다 포괄하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나라이며 영원한 나라이다. 나라라고 할 때 곧 나라가 나라로 성립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주권과 백성과 영토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일반 민주국가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가장 간단히 정의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고 그의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고 그의 통치를 받아들여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영역이 하나님 나라이다. 주기도문에 보면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아니라 하나의 제목이다.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어느 한 곳에 고정되거나 제한된 나라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나라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을 말씀하시고 있다. 여기 “안(εντοσ)”이란 “within(안에)”과 “among(중에)”으로 다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곧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씀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영광과 축복이 온 세계 위에 나타나고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4) 영적이고 도덕적인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영적이고 도덕적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치명적인 오해가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세속적인 국가와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란 말은 그리스도가 처음 사용하신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계시요 비전이다. 선지자들은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그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메시아로 말미암아 세워질 하나님 나라는 유대민족의 비전이요 소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방 나라인 로마제국의 지배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민족적인 염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가 오셔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세울, 로마제국을 압도하는 세계 최대의 왕국, 최강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나님 나라는 먼저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는 나라이다. 유대인들의 원수는 당시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하던 로마군대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죄악이었다. 그리고 이 죄를 통해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탄이었다. 그리스도는 이방 나라의 왕들을 물리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로 오신 분이시다.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다.

또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풍성한 나라였다. 가난과 곤고함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 모든 것을 마음껏 먹고 누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을 때 군중들은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랬기에 마귀도 예수님이 40일의 금식으로 굶주려 있을 때 찾아와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며 떡 문제로부터 구원 사역을 시작하라고 유혹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를 단호히 물리치신 것은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과 성령으로 의로움과 성결을 얻고 그 가운데서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나라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라고 하시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33)라고 하셨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항상 경제문제를 우선시하고 경제문제에 목을 맨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지고 부요해지면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가? 잘 먹고 잘 입으면 행복해지는가? 3-40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왜 자살자 수는 세계 1위인가?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심령에 임한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변화되어야 한다.

 

5)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 “이미 그러나 아직”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already) 임하였으나 아직(yet) 임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1)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많이 강조하셨다. 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셨고, 또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셨다.마 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탄의 권세가 꺾이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으므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에게 순종하는 백성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골 1:13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것을 바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렇다. 죄와 죽음의 종이 된 우리를 속량하셔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죄의 권세, 어둠의 권세, 마귀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이다.

 

(2)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일 뿐 아니라 미래적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 이 나라는 성도들이 종말론적인 구원을 받고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천국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들이 아주 많다. 특히 계시록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계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

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우리의 구원이 완전해진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나라에서 누릴 참된 평화와 은혜를 보여주고 있다.

 

6)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하나님 나라는 “벌써(already) 임하였으나 아직(yet) 완성되지 않았다”라는 말은 모순되는 말 같으나 하나님 나라에는 현재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미래적인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 라와 교회의 관계에서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즉 “교회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말 역시 모순된 말 같지만 둘 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질적으로 다르다.

 

(1) 교회는 하나님 나라이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최고 통치자가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임금은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 그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가 되게 하심으로 만유의 주가 되

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시다(엡 1:20-22).

둘째로 교회의 회원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내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가장 간단히 정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한 성도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자들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그분의 은혜와 축복받고 누리는 자들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인가? 역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가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같다.

셋째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그 추구하는 이념과 목적이 같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사랑을 통치원리로 삼고 있으며, 이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의와 사랑으로 다스림을 받는 곳이며, 이 공의와 사랑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군대, 성령의 전, 진리의 기둥과 터” 등등이다. 이와 같은 속성들로 보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같다고 할 수 있다.

 

(2) 교회는 아직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교회는 아직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도상에 있으므로 아직은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건물로 비유한다면 교회는 공사 중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연약하다. 그리고 때로는 타락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둘째로 지상 교회에는 알곡이 아닌 가라지도 있고, 또 알곡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도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 할 수 없다. 즉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지만, 아직은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인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등식으로 놓을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진정한 성도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미성숙하고 온전치 못한 사람들도 많으므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셋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지상 교회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 나라가 망하였는데 교회도 이런 경우가 있다. 교인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좇아 행하며 우상숭배 하듯 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할 수 없다.

 

(3)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대리하는 기관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서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에이전트’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고 이를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리점과 같다.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미션을 가진 성령공동체이다. 곧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대사명을 받은 선교공동체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 복음 전도로 사탄의 나라를 정복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사역이 교회가 받은 사명이다.

둘째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세상에 흘러가게 하는 축복의 통로이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윌리암 템풀은 “교회는 교회 자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동체”라고 했다. 그렇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그는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섬기는 자로 사셨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가져다주셨다.

예수님의 존재,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교회의 존재 목적이고, 교회가 해야 할 사역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흘려보내셔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

셋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복음과 복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풍성함을 열방 가운데 드러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엡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곧 교회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찬송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일찍부터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었다. 시 57: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정주채  juchai2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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