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사용자이신 하나님을 상대로 노동조합을...

 

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라떼’(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야 하겠다. 우리가 어릴 적에 선생님은 거의 신성시 되어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 분으로 알았다. 그만큼 선생님을 존경했다는 말이다. 필자는 선친께서 평생 교직에 계셨기에 그런 환상은 없었고 오히려 교직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림을 꾸리시던 어머니를 고생시킨다고 생각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교사들은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그런 처우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를 들고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들고나왔을 때 학생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하였다.

영원히 스승님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던 분들이 가르치는 일을 노동으로 여기면서 스스로 스승에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어린 마음에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은 전교조가 익숙해졌고 교육 현장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변할 수도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목회 현장이다. 목사들의 목회는 노동일까? 물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르신 분을 위한 섬김이지 대가를 받기 위한 노동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부목사, 법률가, 노동운동가, 전도사(신학생) 등이 중심이 되어 소위 기독교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물론 부목사들이 자기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십분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적 논리와 이치를 가지고 교회를 논할 수는 없다. 교회의 직분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부여하신 신적 직분이며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평신도에게는 하나님이 그에게 합당한 직업을 주셔서 생활하게 하셨지만, 교회 일에 전념하는 교역자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기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하는지 참으로 이해 불가이다. 그러면 세상 말로 이치를 따져보자.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와 그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가 있어야 가능하고 비로소 노동조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누가 사용자인가? 누가 그들을 불러 신학을 하게 하고 목사가 되게 하며 교회의 사역을 맡겼다는 말인가? 담임목사가 아니다. 당회도 아니다. 물론 성도들도 아니다. 목사를 사용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야만 평생을 주의 종으로 자기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목사직은 혹 세상적으로 분류하면 직업이라 부르지만, 그것이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 아니다.

 

이런 신성한 직분자인 목사가 과연 사용자이신 하나님을 상대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처하겠다는 말인가? 모든 사람을 자식으로 품으신 하나님은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을 때마다 시마다 공급하신다. 하물며 다른 직업이 없이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부르신 목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일만 시키는 분이겠는가? 어떤 이는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죽기까지 자신을 주님께 드리다가 가신 분도 있으니 그것은 불러주신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여 그리하였을 것이다.

교회는 사람의 이익을 위한 사업체가 아니다. 하나님이 영혼 구원을 위해 세운 신령한 단체이다. 거기에 세상적인 것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교인들이 그렇게 하려 할지라도 목사가 앞장서서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그런 일에 앞장을 서다니 가당치도 않다.

물론 교회가 대형화되고 부목사직이 담임 자리보다 훨씬 많게 되면서 부목사에게는 이런저런 부당한 일들도 있고 처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당회)의 눈 밖에 나서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파리 목숨 같은 부목사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부르심에 응답한 주의 종이라면 그런 문제를 세상의 방법으로 풀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사탄의 이빨에서 영혼을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째로 사탄에게 내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각 교단들은 이번 가을 총회에서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 부목사뿐 아니라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어떤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제언을 드린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