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근래에 새삼스럽게 생겨나지 않았다. 이미 2004년 6월에 개신교계 첫 노동조합인 '전국기독교회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각 교단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서 힘들게 활동하다가 소속교단으로부터 출교당한 이래로 교회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공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그러던 중에 2020년 8월, 교회노조설립에 관한 이슈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 시발점은 한 목사의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엄태근 목사는 세종시의 한 교회에서 3년 동안 교회에서 사역을 할 것을 구두로 약속받았으나, 담임목사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1년 만에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해고 당하는 과정도 일방적이었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엄태근 목사는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1심 2심 모두 패소했고, 대법원 마저도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종속적인 관계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취지로 엄 목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노조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교회노조를 설립하여 교회에서 겪는 부조리함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처음에는 민주노총에 가입할 계획이었지만, 주위에서 거센 반발을 경험하고, '심리적인 문턱'을 낮추자는 내부 의견이 많이 상급단체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는 함께 할 노조원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강령, 목표 등을 토론하고 있다. 8월 말이나 9월 초께 노조설립을 신고할 계획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교회 노조추진위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노조가 설립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령의 해석이 필요하다. 먼저 노동조합법 제1조(목적)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ㆍ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핵심은 교역자들이 노종조합법에서 말하는 '근로자'에 해당 되는지의 여부이며, 또 교역자들이 교회에서 노조설립을 하였을 때 '산업평화 유지'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먼저 노동조합법에서 말하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자. 노동조합법 제2조(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3. "사용자단체"라 함은 노동관계에 관하여 그 구성원인 사용자에 대하여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단체를 말한다.
4.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
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다. 공제ㆍ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1항에 따르면 '근로자'라고 함은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된다. 이를 보았을 때, 교역자들 또한 교회에서 일정한 사례(임금)를 받고 그 수입에 의하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판례를 살펴보면 법원에서는 교회의 고유의 목적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근로자로 보지 않았다.

2006년 4월, 서울 중앙지법 민사 25부는 '부목사와 집사는 근로자가 아니다.'는 판결을 했고, 같은해 12월 서울행정12부에서도 교회와 부목사를 사용자와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런 판례를 따라 법원과 노동위원회 모두 목사 등 사역자를 근로자로 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교역자들이 종교활동이 아니라 사무업무만 한다면 근로자로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교역자들의 본연의 임무는 말씀 선포와 양육, 전도 등 종교활동이며, 사무업무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엄 목사는 매주 사역보고서를 쓰고, 실시간 카톡이나 문자로 업무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사용주'와 '근로자'의 관계로 보아야 하고, 교회를 '사용자 단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이 교회내 실태를 제대로 안다면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군인들 관계보다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교역자, 특별히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의 목회 활동을 돕는 동역자의 역할이며, 동시에 담임목사로부터 도제식으로 목회를 배우는 수련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듯이 법적으로 부목사는 일종의 '부사장'이나 '임원'으로 보는 사례가 많다. 왜냐하면 부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 또한담임목사와 함께 교회의 방향을 의논하고, 결정한 것을 실행하기도 하며, 이를 위해 교회 내의 성도들에게 일을 부탁하고 협력을 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역자들이 '근로자'인지의 인정여부는 매우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의 개념도 모호하다. 2항에 따르면 '사용자'라고 함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의 경영담당자, 혹은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인데, 담임목사가 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담임목사는 복음의 실천과 성도들의 양육을 위해,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며 일하는 사람이고 이 역할은 모든 부교역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담임목사는 한 교회에서 그 일을 감당하도록 위임을 받았을 뿐이고, 부교역자는 개인의 상황이나 교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교회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에서의 사업의 경영담당자, 사업주가 명확하지 않다. 교역자의 사업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만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근로자' 및 '사용자'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역자=근로자'로 간주하여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노동조합법에 부합하지 않은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노조 설립의 목적이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인데, 교회에 노조를 설립하여 쟁의행위를 통해 어떻게 산업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기독교노조, 예배 파업한다면?(사진=GMW연합 블로그)
기독교노조, 예배 파업한다면?(사진=GMW연합 블로그)

설사, 교역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여 노조를 설립해도 문제다. 교역자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역자들도 근로자가 된다면 성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성도들의 고난과 아픔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입장에서 동등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성도들은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요 영혼을 돌보는 사역자로 인식을 했기에 교역자들을 존중해왔다. 하지만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헌신하며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 세상의 법을 따라 자신의 권익을 찾고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교역자로 존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과 다를 바 없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교역자들에게도 더 엄격한 잣대와 세상적인 요구를 해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대가 바뀜에 따라, 성도들은 세상에서 고생을 하는데 반해 교역자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인식이 점점 증대하고 있는데, 스스로를 '근로자'로 여김으로 성도들과 동등한 위치에 둘 때, 성도들은 교역자들을 향하여 '사명'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고, 말씀이 역사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 통로와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볼 때, 성도들과 교역자의 관계가 무너지게 된다면 바른 말씀의 전달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왜곡되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소를 설립 스스로를 근로자로 여기며 직업으로 교역의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소명을 붙들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받는 신실한 교역자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견지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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