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선 연구원(카도쉬아카데미 교육위원회)
안지선 연구원(카도쉬아카데미 교육위원회)

영화 속 히어로(히로인)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초능력을 자랑한다. 어떤 이는 하늘을 날고, 어떤 이는 거미줄을 뿜고, 어떤 이는 순간이동을 하면서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구한다. 그런 히어로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진짜 초능력으로 지구를 구하고 인류를 살리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들의 이름은 바로 엄마이다. 필자는 지금부터 그녀들의 놀라운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태초부터 그녀들은 초능력자로 태어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창조주께서는 그녀들을 매우 특별히 생각하여 그녀들을 믿고 인류의 미래를 구할 놀라운 능력을 허락한 것이다. 그녀들이 아니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이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그녀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영화 속 다른 초능력자들처럼 그 특별한 능력이 제때 발휘되기까지 충분히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15살이 되기까지 어떤 능력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몸의 변화가 뚜렷해질 때 자신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히어로들이 제아무리 놀라운 초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영혼을 지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그런 능력은 브라운관에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 능력은 그 어떤 능력보다 창조적이고 경이로운 능력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인류의 역사 이래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 능력을 통해 훌륭하게 인류를 지켜내는 중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 몸에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영화 속 초능력자들이 그 능력을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때가 되기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초능력이 오히려 심각한 파괴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히어로는 스스로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때론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미 그렇게 죽은 아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뱃속에서 스올로 내려간다. 그렇게 스올로 내려간 아이들은 2019년 한해에만 지구 곳곳에서 3,000만 명이 넘는다. (worldometer, 2019년 통계)

 

이처럼 엄마들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당이 되어 자기 아기를 죽이라고 종용하는 세력들은 오늘날 강력한 힘을 얻고 있다.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낙태죄를 폐지하려는 법안들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며 줄지어 발의된 상황이다. 그중에는 임신 주 수에 상관없이, 그 이유를 묻지 말고, 친부의 의견도 무시하고, 산모의 의사만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외)도 있다. 그들이 앞세우는 논리는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자기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앞세워 낙태죄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태아는 몸에 붙은 세포덩어리이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창조적 능력은 쾌락적인 성생활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기능일 뿐이다.

 

낙태가 과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부합하는 행위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태아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수정될 때, 이미 독립적인 생명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수정되는 순간 두 사람의 유전자 결합으로 태아만의 고유한 유전자가 생성되어 그에 맞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아가 비록 그 연약함 때문에 여성의 자궁 안에서 38주 동안 보호받으며 영양분을 공급받고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일지라도, 태아의 몸이 곧 여성의 몸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주장에 태아의 몸이 포함될 수 없고, 태아는 엄연히 타인이다.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를 살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인위적인 낙태는 살해 행위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발달한 생명공학의 힘으로 태아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고유의 형질을 가진 생명체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백번을 양보하여 그들의 주장과 같이 태아를 여성의 몸에 부속된 신체조직으로 본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낙태는 임신초기, 중기, 말기 중 어떤 시기에 행해지든지 여성의 몸을 망가뜨린다. 약물에 의한 낙태 시 화학적으로 연약한 자궁벽을 허물고 태반과 함께 태아의 몸이 자궁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는데, 다량의 피를 쏟을 수밖에 없다. 또한 자궁외임신인 줄 모른 채 사용했다가 사망에 이른 사례가 있다. 태아와 태반이 모두 빠져나오는 데 실패하여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약물에 의한 낙태가 아닌 물리적 낙태 수술을 하게 될 때는 자궁경부를 억지로 벌리게 되므로 자궁경부의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훗날 원하는 임신을 했을 때 아기를 붙들 힘이 없어서 유산될 위험이 높아진다. 그리고 낙태 수술에 사용되는 날카로운 도구들로 인해 자궁벽에 수많은 상처가 생기게 된다. 한번 착상되었던 위치에는 착상이 불가능하게 되어 여러 번의 낙태경험이 있는 여성의 자궁은 유산되기 쉬운 환경으로 바뀐다. 즉 낙태는 난임 및 불임여성이 되는 지름길이다. 다른 모든 수술과 마찬가지로 마취와 출혈과 염증의 위험에도 놓이게 되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가 낙태이다. 이것은 자기 몸을 공격하는 것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공격하는 행위를 우리는 자해라고 부른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살해이자, 자기 몸을 심각하게 공격하는 자해인 것이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성관계를 즐겼던 여성과 그의 파트너는 낙태를 경험하면서 대부분은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낙태의 과정은 신체에만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다. 자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 나를 통해 심장이 뛰는 살아있는 존재를 죽이는 일에 우리의 본성이 어미로서의 양심에 호소하며 울부짖기 때문이다. 이별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깊은 심리적 절망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 여성이 된 듯 자기결정권을 발휘하여 아기를 죽인 여성이 얻는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주체적이며 당당한 여성이라면 좀 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자기결정권을 발휘하여 죽이지 않고 살림으로써 세상은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넌 살 가치가 있다며, 자기 자신과 아기에게 진짜 희망을 심어주는 여성 말이다. 여성들이여, 살리는 자기결정권과 함께 임신과 출산과 모성이라는 초능력도 발휘해주기를, 그래서 진짜 영웅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덧붙여 우리의 법과 사회가 여성들이 태아의 진짜 영웅이 되는데 필요한 실질적 안전망과 든든한 지지대로 역할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남성책임법, 산모와 아기를 위한 시설의 확충과 예산투입, 건강한 가정의 입양문화확산, 미혼모지원확대, 생명중심의 성교육 정책 등이 필요하다.

 

사랑의 초능력으로 아기를 살린 용감한 그대들에게 아기는 크게 외칠 것이다.

엄마는 나의 울트라 캡숑 슈퍼 히로인! 날 살려준 엄마! 사랑해요!”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