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A가 주관하는 2021년 대학교수 단기선교학교 손승호 박사 강의안을 정리한 글입니다.

손승호 선교사
손승호 선교사

 

불교 이해와 불교권 유학생에 복음전달 방안

손승호(전 KPM & OMF 태국 선교사)[1]

 

<서론>

대학교수 단기선교학교 과정은 일반적인 선교학교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교수는 일반 선교사들과는 달리 복음을 전할 대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이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다. 혹시 결혼한 한생들이 있을 수 있어도 미혼인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일반 선교사는 선교지의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교수는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특정 연령층의 인텔리계층에 속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대상이 다른 두 부류의 그룹(선교사와 교수)을 위한 강의는 달라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기가 애매한 경우도 있다. 가능한 한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강의안을 준비하려고 노력하겠다. 주어진 강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다 언급하지 못할 것을 예상해서 강의의 내용 보다는 원고의 분량이 조금 더 많은 것을 용서를 구한다. 큰 그림을 그리기, 불교 이해, 불교권 선교의 장애물, 불교권 유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미국남침례교해외선교부(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가 불교권선교를 위하여 만든 최고의 전도법-C2C(Creation to Christ)을 우리말과 영어로 소개하겠다.

 

<본론>

Ⅰ. 큰 그림 그리기

1. 불교권에서 온 학생들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갖추어야할 사항들

  • 배경을 가진 영혼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갖추어야할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성장하였던 의 일반적인 환경(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지리 등). 둘째, 불교가 너무 복잡하여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첫째 부분 보다 종교적 영역은 더 세심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교를 세부적으로 나누면 더 다양하지만 상좌부불교(Theravada)[2], 대승불교(Mahayana), 밀교(Vajrayana)[3]로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즉문즉설(卽問卽說)[4]을 진행하는 법륜스님의 경우 선불교(禪佛敎-Zen Buddhism)를 하나 더하여 불교를 네 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2018년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한국 종교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무려 482개나 되는 다양한 불교 종파가 파악되었다[5]. 그러나 신라시대 때부터 불교를 선종(禪宗, 참선을 통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과 교종(敎宗,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깨달음을 중시)으로 대별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늘날까지 그렇게 대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 불교종파인 조계종이 선종에 속하는데 선종은 대승불교의 한 갈래에 속하므로 따로 분류할 필요가 없다. 셋째,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은 대승이다. 상좌부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이다. 상좌부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시작한 원래 불교의 형태라면, 대승불교는 불교의 창시자 코타마 싯다르타의 입멸 후 약 400-500년이 지난 시기에 혁신적인 출가승들과 재가신자(在家信者)들이 함께 불교 개혁 운동을 일으킨 결과 생겨난 것이다.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넷째, 민속불교(民俗佛敎, Folk Buddhism)를 이해해야 한다. 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혼합적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도교와 혼합하여 중국불교로, 한국에서는 무당종교(샤머니즘)와 혼합하여 한국불교로, 일본에서는 신도와 혼합하여 일본불교로 발전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반 대중들은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창시한 원래의 불교를 신봉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영원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종족은 자연발생적인 민간신앙을 가지고 있다. 불교가 전파된 모든 지역이나 종족은 조상대대로 전해오는 민간신앙이 후에 전래된 불교(상좌부불교, 대승불교, 밀교)와 섞여 그 종족 혹은 지역 특유의 불교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민간신앙과 혼합된 불교를 민속불교라고 부른다. 교수로서 사역할 때 배경을 가진 외국 학생을 받았을 경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 학생이 가진 돌연 변이된 불교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교가 얼마나 다양하게 카멜레온처럼 달라질 수 있는지를 예시하기 위하여 인도차이나반도 5개 불교국가(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민속불교를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불교권 배경을 가진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의 네 가지를 준비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부족한데 그것은 한 영혼의 회심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폴 히버트(Paul G. Hiebert)는 그의 책 『Transforming Worldviews』(2010:140)에서 인간 연구에 대한 계층적 접근을 하면서 종교에 해당하는 영적 영역은 인간의 가장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적 필요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초월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간섭하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권 배경을 가진 학생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복음 전달자가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할 수밖에 없다.

<인간 연구에 대한 계층적 접근>

인간 연구에 대한 계층적 접근
인간 연구에 대한 계층적 접근

 

2. 같은 뿌리를 가진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의 출발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선을 긋는 것은 분명하지도 않고 힘든 일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브라만교와 힌두교를 각기 달리 설명하고, 불교의 출발도 살펴보고자 한다.

 

1) 브라만교(바라문교 · 婆羅門敎 · Brahmanism)의 출발

기원전 25~20세기경 코카서스 지방에 인도유럽어를 쓰는 아리안이라 불리는 백인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초원의 풀이 사라지자 그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만 했다. 아리안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일부는 유럽으로, 일부는 지중해 바닷가로, 일부는 이란을 거쳐 인도 북부를 침입해 정복했다. 이들이 정복 과정에서 탄생시킨 종교가 브라만교다. 브라만교는 인도 토속종교와 결합해 오늘날 힌두교의 모체가 되었다.[6] 북부 인도에 침입해 온 아리안은 원주민을 평정한 다음 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바루나(Varna)라 불리는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바루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을 의미한다. 결국 피부색에 의해 신분이 구분된 것이다. 백인인 아리안이 지배계급이다. 그 뒤에 아리아인 중에서도 사회적 기능에 따라 구분됐다. 카스트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이 기원전 15세기경 인도를 침입하여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지배층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카스트제도에 따른 인도인의 신분은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일반백성과 천민) 등 4개로 구분되었다. 그 외에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인 달리트(Dalit)가 있다. 카스트제도의 목적은 아리안들이 선주민들인 혼혈족을 지배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주민들과 혼혈뿐 아니라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고자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제도화시킨 것이다. 초기 브라만교는 다양한 신을 숭배했고 그들로부터 구복을 바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현상의 배후에서 어떠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를 상정하고 그것을 인격적 주체로 구체화하고 불과 같은 요소를 숭배하여 장수와 다산 등을 바랬다. 곧 태양신 수르야, 어둠과 축복의 신 푸샨, 선의 신 미트라, 공기의 신 인드라 등 삼라만상의 존재를 신격화했다. 이후 브라만교는 <우파니샤드>라는 경전이 탄생하면서 우주의 근본원리 브라만(Brahman, 梵)과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atman, 我)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브라만교의 중심사상이 된다. 우주의 근본원리인 범(梵)과 불변하는 영원한 참 존재인 나(아, 我)는 하나라는 뜻이다. 그리고 기초개념으로 윤회와 달마(達磨)[7], 업(業), 해탈을 제시했다. 이러한 관념은 뒤에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의 근본개념이 된다. 특히 이는 훗날 불교의 중심사상이 된다.[8] 브라만교는 오늘날 힌두교의 전신이다. 브라만교라고 칭할 때는 명확히 규정할 수 있는 특정한 범위를 가진 한 종교 체계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인도의 전통적인 민족 생활과 사회구조에 기반하는 전통적 철학 · 사상 · 신학 · 제사의례 등의 종교 현상 전반을 총칭하는 경우가 많다.[9]

 

2) 힌두교(Hinduism. 사나타나 다르마 sanatana dharma-영원한 종교라는 뜻)의 출발

세계의 모든 종교 중에 힌두교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부르스 니콜스(Bruce J. Nicholls)는 말했다. 힌두교는 권위 있는 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으나 완전히 독보적으로 권위 있는 경전은 없다. 힌두교는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어떤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건물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서서히 성장해온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것이다.[10] 힌두교란 좁은 의미로는 8세기경에 재 부흥된 고대 브라만교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는 고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의 신앙적 유산을 포괄하여, 주전 15세기경에 페르시아 지역에서 침입해 들어온 아라안족(Aryan)의 다신관과 주전 8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우파니샤드[11]의 범신론을 포함한다. 또한 주전 6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단적인 육사외도(六師外道)[12]와 그 후에 정통사상으로 인정되는 육파철학(六派哲學)[13]과 현대적 힌두교 혼합주의까지 다신론, 범신론, 무신론, 유신론 철학을 다 포괄하는 개념이다.[14] 힌두교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 또는 일신숭배)로서, 교주(敎主) 즉 특정한 종교적 창시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15] 힌두교와 고대 브라만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브라만교가 <베다>에 근거하여 희생제를 중심으로 하며 신전이나 신상(神像) 없이 자연신을 숭배한 데 비해, 힌두교는 신전과 신상이 있으며 인격신이 신앙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16]

 

3) 불교(Buddhism)의 출발

인도에서는 브라만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사행위와 내세를 거부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나타났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사문(沙門)이라 불렸다. 그들은 출가자들로서 숲속에서 고행과 명상을 통해 인생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방식을 제시했다. 그들 가운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있었다.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17] 뒤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 불렸다.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 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18] 카스트제도는 브라만교에서 유래했는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적으로 신분이 정해진다는 것인데 불교는 카스트제도에 반발해 인간의 운명이란 각자가 행하기 나름이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상에서 유래하였다. 불교는 출생성분과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참선과 노력을 통하여 깨달은 자인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전파하였다.


<공통부분>

윤회(輪廻, 사라)

업(業, 카르마)

해탈(解脫, 모크샤)

 

 

Ⅱ. 불교 이해

1. 불교의 출발점이 고난인 이유[19]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출발점에 있다. 기독교의 출발점은 죄(罪)이고 불교의 출발점은 고(苦)이다.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죄가 들어와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은 죄에서 시작된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옴으로 고난이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는 인간에 대한 비관주의(悲觀主義, pessimism)를 표방한다. 인간에게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과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불교는 죄에서 시작하지 않고 고(苦, 영어 suffering, 팔리어 dukkha, 산스크리트어 duhkha)에서 시작된다.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樂觀主義, optimism)를 표방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인 고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교가 삶을 고통에 가득한 것이라고 이해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고통에 가득한 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라는 인식은 고대 인도의 지리적 영향과 기후적 영향에서 기인한다. 지리적 영향: 고대인도의 사람들이 고대의 서구문명이나 중국문명과는 다른 인도 특유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쪽은 벵갈만, 서쪽은 아라비아해, 남쪽은 인도양, 서북쪽은 힌두꾸시 산맥, 힌두라즈 산맥, 술라이만 산맥 등으로 막혀 있고, 복동쪽은 카라코람 산맥, 시왈리끄 산맥, 히마다리 산맥, 그리고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산맥이 가로 놓여 있어 외부세계와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다. 인도 북쪽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힌두꾸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 이 두 산맥은 폭 240km, 길이 3,600km, 높이 7,500m나 되는데, 이러한 자연적 여건은 인도와 대륙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기후적 영향: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다. 건기 때는 평균 섭씨 48라는 살인적 더위가 계속되고, 우기 때는 몬순이 몰고 온 폭우로 홍수를 일으킨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들은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안겨 주는 일차적인 요소들이다. 따라서 고대 인도인들의 철학이나 종교가 현실의 삶을 고통에 가득한 것이며, 삶을 옥죄는 환경 때문에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철학과 종교는 고통에 가득한 삶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기에 이르렀다.

 

2.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통해서 파악하는 불교의 핵심

불교의 기본교리를 설명하려면 내용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그러므로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불교의 가장 핵심적 내용으로 민간에 가장 널리 퍼뜨린 《반야심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반야심경》은 줄임말이고 원래 이름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반야(般若)란 지혜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뜻하는 프라즈냐 Prajñā라는 낱말의 중국어 번역이다(태국어로 지혜를 빤야라고 함). 바라밀다는 산스크리트어의 파라미타paramita라는 음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파라미타는 완성을 뜻하는데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을 의미한다. 심경은 핵심이다. 그러므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전체의 뜻은 큰 지혜의 완성, 그 핵심을 설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지혜의 완성이란 불교 자체를 말하는데 《반야심경》에는 불교의 정수가 들어있고, 이것을 이해하면 불교의 본질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반야심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반야심경》 해설서인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20]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반야심경》 속에 포함된 사상은 다음과 같다. 나는 깨닫는데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완벽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금 여기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야바라밀다를 깊이 수련하는 가운데 세상의 모든 것이 공(空-빌공, 부질없다, 헛되다)함을 이해하여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만사가 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해야 한다. 거기에는 8정도, 곧 여덟 가지 길이 있다. 《반야심경》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그리하여 행복을 얻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가 무명(無明)[21] 속에 있고, 거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 길과 방법을 설한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중시한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오류 없이 바로 아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깨달음의 반대 상태는 무명이다. 불교는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깨달은 상태로 옮겨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앎을 통해 나의 행동 방식, 곧 나의 삶의 방식을 바꿔가는 것이다.

현장법사(玄奘法師, 602~664)[22]가 불교 원문에서 한자어로 번역한 260자[23]로 된 《반야심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觀自在菩薩(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이) 行深般若波羅蜜多時(행심반야바라밀다시-반야바라밀다를 깊이 수행할 때) 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인간은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다섯 요소는 모두 실체가 없음을 확실히 알았고[조견])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일체의 괴로움을 극복했다). 반야심경의 세 가지 키워드는 괴로움, 공, 반야-지혜-이다.

 

1) 괴로움은 무엇인가?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Dukkha인데 원래 뜻은 차축과 차륜 사이의 틈에 탈이 생겨 잘 돌아가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무엇인가 잘 안 되고 있는 상태, 불만족한 상태, 어긋나 있는 상태, 조화롭지 않는 상태, 안정이 안 돼 있는 상태인데 영어로 suffering, unsatisfactory 라고 번역하지만 번역하지 않고 그냥 Dukkha라고 사용한다. 괴로움은 왜 일어나는가?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다. 무지한 상태, 알아채지 못한 상태, 무엇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가? 자신이 여러 가지 일에 사로잡혀 그것들에 쫓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되고, 이런 상태를 탐욕, 곧 탐내는 마음이라고 한다. 탐욕이 있을 때 우리는 무언가에 속박된 상태가 된다. 실지로는 나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닌 상태에 빠져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된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세 가지의 번뇌인 탐욕(貪慾), 진에(嗔恚), 우치(愚癡)인데 이 세 가지 번뇌를 줄여서 탐진치라고도 하며, '불선의 뿌리'라는 뜻에서 불선근(不善根)이라고도 한다. 탐욕(貪慾)은 탐애(貪愛)라고도 한다. 그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것에 대해 사랑하고 집착하므로 애(愛)라고도 한다. 진에(嗔恚)는 분노하는 것으로, 산목숨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하며, 시기와 질투, 증오까지 포함한다. 혹은 자신의 의사에 어그러짐에 대해 성내는 것, 즉,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과보에 대해 미워하고 분해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우치(愚癡)는 어리석음, 즉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으로서, 이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공(空-빌공)이란 무엇인가?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늘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그 힘에 늘 휘둘리며 살고 있다. 이런 상태를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실체가 아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것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독립된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실체가 아니다. 자아(自我)는 실체가 아니다. 자아는 공(空)하다. 불교를 자꾸 줄여 가면 공(空) 하나로 집약된다. 공(空)을 깨달은 사람은 불교를 깨달은 사람이다.

 

3) 반야의 지혜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화가 날 때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라고 알아차리고, 슬플 때 나 지금 슬퍼하고 있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매순간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아는 자각의 지혜가 반야의 지혜이다. 반야의 지혜를 알려면 강한 감정이나 집착에 사로잡히면 안 되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깨닫지못하고 있다.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4) 한글 반야심경 전문[24]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3.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타마 붓다 사후 100년경 불교 교단은 계율과 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말미암아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 Mahāsaghika)로 분열하였다. 이를 근본2부(根本二部)의 분열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가 활동하던 시기로부터 이때까지의 초기 불교를 원시불교(元始佛敎) 또는 근본불교(根本佛敎)라고 한다.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된 불교교단은 그 이후 상좌부에서 10파의 분열이 발생하고, 대중부에서 8파의 분열이 발생하여 B.C. 1세기경에는 총 20부파가 형성되었는데, 이 시기(A.B.[25] 100년경-B.C. 1세기경)의 불교를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한다.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는 교법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하였는데,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 교학이라고 한다. 각 부파는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모아서 기존의 경(經, sūtra), 율(律, vinaya)과 함께 성전(聖典)으로 간직하였다. 그리하여 경(經)·율(律)·논(論, Abhidharma)의 삼장(三藏, tri-piaka)이 성립되었으며, 삼장의 완성은 부파불교 시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26] 그러나 각 부파들의 삼장은 대부분 산실되고, 지금은 남방 상좌부의 삼장이 팔리(pāli)어 기록으로 남아 있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27]의 삼장이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없고 한역(漢譯)으로만 남아 있다. 부파불교 시대의 아비달마 교학은 고타마 붓다의 근본 교설인 아함(阿含)의 가르침을 체계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28] 하지만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쪽으로 치우침으로써 불교를 어렵고 무미건조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불교는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출가승(出家僧)의 것이 되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B.C. 1세기경 대중부 계통의 혁신적인 출가승들과 재가신자(在家信者)들이 함께 불교 개혁 운동을 일으켰고, 이로써 대승불교가 태동하게 된다. 이후 대승불교는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 많은 대승경전들을 편찬하면서 그 사상을 발전시켰고,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상좌부 계통의 불교는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상)개인수행: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열반(涅槃) 또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인 아라한(阿羅漢, arhat, perfected one (who has attained nirvana) or 나한(羅漢)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대)대중구제: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적인 보살(菩薩, bodhisattva)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내세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보살은 위로는 불교의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 받는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음(후자에 더 중점).

 

2) (상)불설(佛說):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아함경(阿含經)》인 근본불교의 경전만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인정함(4아함: 장아함, 중아함, 잡아함, 증일아함). (대)비불설(非佛說): 상좌부불교는 대승불교를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을 주장. 대승불교 쪽에서는 대승경전이 비록 고타마 붓다의 직설이 아니라할지라도 고타마 붓다의 참뜻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함.

 

3) (상)통일성(일관성): 고타마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대체로 교법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다양성: 몇 세기에 걸쳐 다양한 그룹들에 의해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고 그것을 담아낸 많은 대승경전들이 편찬되어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4) (상)무신론적 경향: 고타마 붓다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모든 것이 무상하고(諸行無常), 영원불변한 실체는 없다(諸法無我)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근본불교를 잇는 상좌부불교는 무신론적 경향이 강하다. (대)유신론적 경향: 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가운데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정토신앙, 미륵신앙과 같은 타력신앙(他力信仰)에서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한 인간의 구제를 말하고 있다.

 

5) (상)분석: 불교는 본래 분석적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현실세계의 구조와 성격에 대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인 십이처설(十二處說), 여섯 가지 인식기관인 육근(六根)과 여섯 가지 인식대상인 육경(六境). [육근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육경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대)직관: 존재를 직관적으로 통찰함. 오온은 일체 존재를 구성한다고 하는 다섯 가지 요소, 곧 색(色, 물질), 수(受, 느낌), 상(想, 생각), 행(行, 작용), 식(識, 식별)을 말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존재를 직관적으로 통찰하여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공한 것(텅빈 것)이라고 파악한다.

 

6) (상)표층의식: 인간의 인식 작용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6식으로 나누는데 6식은 그 작용이 마음의 표층(表層)에서 행해지는 표층심리(表層心理)이다. (대)심층의식: 대승불교는 제7식 말나식(末那識)과 제8식 아뢰야식 (阿賴耶識)을 더하는데 보통의 마음으로 그 작용을 지각할 수 없는 심층심리(深層心理)이다. 제7식 말나식은 제6식인 의식이 분별하는 빛깔과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의 경계에 대해 좋고 싫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말하고, 제8식 아뢰야식은 앞의 일곱 가지 의식을 일으키고 총괄하는 근본 마음이고, 모든 존재를 생기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마음을 말한다.

 

7) (상)이성(理性): 고타마 붓다는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일을 배격했으며, 교화 방법으로 음악과 예술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감성(感性): 대승불교는 초기 불교에 비해 인간의 감성에 중점을 둔 경향이 훨씬 강해졌다. 염불(念佛), 밀교의 진언비밀의 행법(行法)도 그러하다. 대승불교가 음악, 회화, 조각을 받아들인 것도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는 자신도 전혀 모르는 것이 숨어 있는 것을 잡아내어 가다듬기 위한 일환으로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수용하였다.

 

4. 인도차이나 5개 불교국가의 민속불교(民俗佛敎, Folk Buddhism) 이해

민속불교는 민간신앙[29]에 불교가 혼합되어 정통불교의 형태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오늘날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30]라고 불리는 지역은 넓게 보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남부, 범위를 좁혀보면 인도의 동쪽과 중국의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학자들은 동남아시아는 인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며, 그렇다고 태평양 지역도 아닌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은 인류 문화의 양대 축인 인도와 중국이라는 대륙이 있으며 아프리카, 중동에서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로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양적 교통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인도의 영향: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 있으며 육상으로 맞닿아 있는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육상은 물론 해상으로도 자연스럽게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인도문화의 동남아시아에서의 영향은, 중국 문화의 경우도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우수한 문화의 상대적으로 열등한 문화에 대한 전파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인도 문화가 동남아시아에 미친 영향 중 큰 것들을 말한다면 문자언어가 아님와 종교로 표현할 수 있다. 주로 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남부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그 지역들인데 종교적으로는 힌두교와 불교특히 현대에는 스리랑카를 거쳐 도입된 상좌부 불교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중국의 영향: 중국은 주로 중국인들의 종교와 문화가 중심이 되었으며 유교, 대승불교, 도교가 이에 해당하며 일부 지역에는 언어의 영향도 있다. 동남아시아지역은 대륙부.반도.도서부로 이뤄져 있는데 크게는 대륙부와 도서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체 11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지리적 구분에 따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5개국은 대륙(大陸)동남아시아(Mainland Southeast Asia)에 포함되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동티모르, 필리핀 6개국은 도서(島嶼)동남아시아(Island Southeast Asia)에 포함되어 있다. 대륙동남아시아 국가 중 베트남은 대승불교를 받아들였고 나머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4개국은 상좌부불교를 신봉한다. 도서동남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은 힌두교, 가톨릭, 이슬람 및 기독교를 믿고 있다.

5개 국가의 사원과 승려의 통계는 다음과 같다.

미얀마: 17,000개 사원/ 승려 25만 명

태국: 24,000개 사원/ 승려 26만 명

라오스: 2,000개 사원/ 승려 2만 명

캄보디아: 3,000개 사원/ 승려 9만5천 명

베트남: 28,000개 사원/ 사제 5만3천 명

Total 약 74,000개 사원/ 약 68만 명 승려

사원과 승려들은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에 속한 약 2억 5천만 명을 떠받치는 불교와 잡다한 영적 세력들의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인도차이나반도 5개 국가들의 통계는 다음과 같다.

국가

영토면적

인구수

주요민족(%)

종교(%)

미얀마

676,590

56,590,071

버마족68;샨족9;기타(끼잉족,까친족,친족,몬족 등)

불교87.9;기독교6.2;

이슬람4.3;정령숭배0.8;힌두교0.5

태국

513,120

68,977,400

타이족97.5(중국인10포함);버마족1.3;기타소수부족

불교94.6;이슬람4.3;

기독교1

라오스

236,800

7,447,396

라오족53.2;카무족11;

몽족9.2

불교64.7;무교31.4;

기독교1.7;기타 2.1

캄보디아

181,040

16,926,984

크메르족97.6;짬족1.2;비엣족0.1;중국인0.1

불교97.9;이슬람1.1;

기독교0.5;기타0.6

베트남

330,957

98,721,275

비엣족(낀족)85.7;떠이족1.9;므엉족1.5;크메르족1.5

무교81.8;불교7.7;

가톨릭6.6;하오하오1.7;개신교0.9;이슬람0.1

총계

1,938,507

248,663,126

   

 

5개 국가의 주종족인 버마족, 타이족, 라오족, 크메르족, 비엣족(혹은 낀족)의 복음화율은 매우 낮다.

대륙동남아시아 5개국의 대표적인 민간신앙을 보면 미얀마는 낫 신앙, 태국은 피이라고 불리는 귀신 신앙과 왕권의 강화를 위한 브라만교, 라오스는 바이시 혹은 콴 신앙, 캄보디아는 네앜따 신앙,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상숭배가 불교와 혼합되어 있다. 지면의 제한으로 대륙동남아시아 5개 불교국가의 민속불교를 상세하게 논하는 것은 어렵지만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미얀마의 낫(nat) 신앙

역사가들은 미얀마에 불교가 공식으로 개교되기 이전에 이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밀교, 그리고 힌두교가 버마에 들어왔었던 흔적을 발견해 내고 있다.[31] 미얀마에서는 낫(nat)이라고 불리는 정령신앙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민간신앙과 유사하게 신령이나 귀신에 해당하는데, 낫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보은을 받거나 해악을 받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이런 낫 신앙, 정령신앙과 많이 결합하였다. 미얀마 최대의 축제인 띤쟌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사원에 들어가거나, 공덕 등의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이 쌓은 악업을 사하려 한다. 낫(nat)들 중 미얀마인들에게 인기 있는 존재는 역사적인 때로는 전설적인 인물들의 망령으로서, 이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며 낭만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낫 신앙은 한국의 무속신앙에서처럼 나름대로의 굿(nat pwe 낫브웨)이 있고, 무당(낫꺼도 nat kadaw)이 굿판을 주관하며, 낫을 위무하는 무가(巫歌 nat than 낫탕)가 있다. 미얀마의 낫브웨는 한국의 굿판처럼 신과 무당과 단골과 마을사람들이 어우러져 노는 하나의 축제이다. 낫 신앙은 엄격하고 비타협적인 윤리질서를 강조하는 미얀마의 불교 사회에 파격의 공간과 해방감을 제공한다. 37위(位)의 공식적인 낫이 존재한다. 낫 신앙에는 미얀마 토착의 정령신앙과 샤머니즘 외에도 인도의 영향을 받은 점성술과 연금술과 주술신앙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2) 태국의 귀신(피이) 신앙, 브라만교(힌두교 전신) 영향을 받은 신앙, 콴 신앙

피이(phi)는 강, 나무, 산 등에 거하는 자연의 정령, 죽은 자의 망령, 조상신, 지역신, 기타 타이인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든 초자연적 존재들을 망라하는 넓은 의미의 신을 지칭한다. 선한 피이와 악한 피이가 있다. 귀신집(사프라품)과 지신 (산프라품짜오티)이 있다. 락므앙은 지역의 수호신이며 산락므앙은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사당(힌두교, 잡신과 관련)을 말한다. 이미 죽은 유명한 왕들을 숭배하고, 브라만교는 왕실 브라만교와 민속 브라만교가 있다. 왕실 브라만교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던 캄보디아에서 유입된 것이다. 영혼을 부르는 의식인 콴 신앙은 브라만교와 관련이 있는데 태국인들은 32개의 콴이 있다고 믿는다.

 

3) 라오스의 바이시 혹은 콴 신앙

라오스는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출생, 결혼, 출가, 어떤 일을 위해 집을 떠날 때와 집으로 돌아올 때, 새해, 환영이나 초대 등 인생의 중요한 경우에 행하는 귀신(피이, phi) 의식이다. 수콴 신앙은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송별회, 환영회, 아기의 출생, 집들이, 승진, 추수기, 새 차의 구입 및 결혼식 에서처럼 다양한 경우에 행해진다. 수콴 의식은 정령숭배, 힌두교, 불교적 요소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의식으로 나타남으로 다른 종교적인 요소로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콴은 영혼(soul)을 의미한다. 라오스인들은 사회적, 종교적 믿음과 건강과 행복이 콴의 신앙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믿음은 라오스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이족, 버마족 및 메콩강 삼각주 지역에 거주하며 타이-라오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들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라오롬족은 콴(혹은 영혼)이 32가지가 있고 신체의 각 부분에 거주하면서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32라는 수자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인간 몸의 32개 중요한 부분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또는 코타마 싯다르타의 몸의 32가지 표식(marks)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한다. 학자들마다 32가지 목록이 다를 수 있지만 콴의 목록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두개골 이마 심장 폐와 간 어깨 어깨뼈(견갑골) 방광 겨드랑이 가슴 옆구리 허리 둔부(궁둥이) 엉덩이(고관절) 제비콴(swallow-khuan, 오랫동안 걸을 수 있도록 해주는) 용콴(dragon-khuan,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넓적다리 무릎 발바닥 발목 손목 발가락 손가락과 팔꿈치. 이처럼 콴은 인체의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내부에서 피부까지 포함이 된다. 콴에 대한 신앙은 불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32개 중 20개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나머지 12개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고 믿는다. 콴이 하나라도 부재할 경우 건강이 무너지기 쉽고 개인이 원하지 않는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콴 의식은 환자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하는 대상자의 콴이 육체(몸)에 돌아오도록 하는 의식이다. 어떤 콴이 부재할 경우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정상적인 수인 32개 이상의 콴을 소유하게 된다고도 믿는다.

 

4) 캄보디아의 네앜따 신앙

네앜따는 정치적인 유력자, 보통 주민들을 위해 숲이나 산의 나무를 자르고 개간해서 마을을 조성한 마을의 설립자,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죽은 장군들이나 지역을 다스렸던 귀족이 죽은 이후, 마을사람들에 의해 네앜따가 된다. 세 가지 종류의 네앜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과 연관된 영들: 산, 강, 나무, 논, 습지, 숲과 관련된 네앜따. 조상의 정령들: 남자와 여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네앜따. 브라만 종교 즉, 힌두교의 신들, 특히 쉬바신과 그의 부인인 흑색의 여신, 칼리로부터 나온 네앜따들과 신화속의 영웅들이 있다.

 

5) 베트남의 조상숭배 신앙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 다른 4개 상좌부불교 국가들(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과는 종교적 성향이 확연하게 다르다. 대승불교이기는 하지만 불교가 주 종교가 아니다. 미국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의 종교분포는 불교 10.5%, 천주교 9%, 호아하오교 2%, 개신교 0.8% 기타 및 무종교는 70%로 나타났다. 기타 70% 중 무종교의 일부는 도교 또는 유교적 성향이 높은 민간신앙으로 분류됐다. 베트남의 이러한 종교분포는 중국의 영향과 프랑스의 지배 그리고 인도차이나 2차전쟁(베트남통일전쟁)을 통한 역사 배경에 기인한다. 각국의 영향을 받으며 불교와 천주교 등이 한때 성행했지만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다시 일신숭배를 금지하는 사회주의 교육이 자리했다. 여기에 베트남의 종교는 전통적인 유교와 도교 사상도 결합되면서 여러 사상이 혼합된 신앙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이 크다. 조상숭배는 머우, 토꽁, 옹따오, 콴탄데꿘, 린선탄머우 등을 숭배해 왔던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각 읍이나 마을에서는 지금까지도 조상숭배 전통에 따라 마을의 모든 재난과 역병에서 지켜주고 보살펴 주는 영적 주체인 탄황(Thánh Hoàng)을 여전히 숭배하고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 신흥종교를 보면 다음과 같다. 까오다이교: 1926년 베트남 남부의 떠이닌에서 응오반쩨우에 의해 창시된 혼합적 유일신교로 세계 5대 주요 종교(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 이슬람교)의 신앙을 절충해 만들어졌다. 호아하오교: 불교에 바탕을 두었으며, 1939년 후인푸소가 창시했다. 두 가지 신흥종교 모두 200만 명 이상의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다.

 

 

Ⅲ. 불교권 선교를 방해하였던 장애물

1. 불교도의 일치단결

  •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침투되어 그들의 문화, 언어, 교육 등에 흠뻑 젖어들게 되었다. 불교도들의 연대의식은 매우 강하여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면 왜 불교도들이 일치단결 하는 모습을 보일까?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인도차이나반도의 불교국가들로 하여금 스스로 뭉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태국을 비롯하여 내륙(혹은 대륙) 인도차이나에 속한 5개국들은 서양열강의 침입에 대항하여 집단주의적인 국수주의 성향이 형성되었고, 태국은 직접적으로 서양의 침략을 받지 않았음에도 다른 4개의 나라들(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 권력 다툼 한가운데서 눈치를 보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여야만 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서 베트남전쟁/월남전쟁[32](Vietnam War)은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2.19~1954.8.1) 이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11.1~1975.4.30일까지 전쟁이 벌어지게 하였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전쟁 양상을 띠었고, 1964.8~1973.3월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 이러한 전쟁들은 인도차이나반도 5개 불교국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종교, 문화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방어하도록 유도하였다.

 

2.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것

불교도들은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한다. 이제 서구사회는 기독교가 더 이상 주 종교가 아닌 후기 기독교 사회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차이나반도 5개 불교권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기독교가 서양종교라고 인식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태국인이 되는 것은 불교인이 되는 것이다.[33] 반대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민족을 배반하는 매국노가 되는 것이다. 태국에서 기독교를 부를 때 사사나 파랑[34](the religion of the foreigner)이라고 부른다. 불교는 동양종교이고 기독교는 서양종교라고 양분해 버린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사람이 불교가 중심이된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외국인의 종교라고 불리는 서양종교인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받아들였더라도 타인에게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한다. 가족 혹은 친구 중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면 자기의 민족을 배반한 매국노 정도로 인식한다. 불신자인 현지인들은 예수 믿는 현지인들을 보고 민족과 나라를 배반한 사람으로 본다. 불교인들은 한국선교사는 한국정부에서 돈을 받는 줄 안다.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기를 당신 예수 믿는 대가로 선교사가 돈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는 식으로 질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불교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은 정신적인 순교를 각오해야 가능한 일이다.

  • 출신의 선교사가 기여한 것은 기독교는 서양종교라는 등식을 깨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다. 특히 한국선교사들은 인도차이나반도 5개의 불교국가에 약 4,000명이 흩어져 사역하고 있으면서 기독교는 서양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심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세계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종족에 속한 각 개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3. 상좌부불교권 사람들의 문화가 불교와 동의어처럼 하나가됨

문화와 종교를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밀착되어 사회적 결속력의 토대가 되었고 동질성을 형성하고 있다. 상좌부불교권의 사람들은 사회 가운데 개인적 선택이나 결정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환경이 개인을 빚어낸다고 볼 수 있다. 문화와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남과 동시에 불가항력적으로 그 영향권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인생에 스며들게 된다.

하루 생활의 사이클이 불교에서 불교로 끝난다. 부인들이 새벽에 일어나면 목욕하고 밥을 지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자기 집 앞에서 먼저 시주를 한다. 불교 승려들은 새벽마다 하루에 한 번씩 자기들의 멤버들을 심방하여 불교만이 진리임을 은연중에 확신을 시켜주는 셈이다. 도시는 다르지만 농촌에서는 사람들이 승려들에게 시주를 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가족들이 식사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정문을 통과하면서 불상에 절한다. 아침 조회 시간에는 모든 학생들이 함께 아침 조례를 하면서 뜻도 알지 못하는 팔리어로 된 기도문을 외운다. 수업 과정에 필수과목으로 불교 과목이 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공작품을 만들면 불교와 관련된 것을 그리거나 만든다. 대부분의 절기가 불교절기 중심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절기에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절에 간다. 송끄란(Songkran) 축제는 매년 4월 13일~15일까지 태국의 설날이다. 원래는 순수하게 신년을 축하하는 행사이며 가족이 한 집에 같이 모여 불상을 물로 씻어 정화를 하거나 어른들이 가족들에게 거룩한 물인 성수(태국어로 남몬)를 부으면서 축복한다. 스승의 날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스님을 모셔서 설법을 듣는 시간이다. 어린이날도 승려들을 모셔서 먼저 불교식 행사를 한다. 심지어 개인의 생일날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바빠서 시주를 못했어도 생일날은 새벽에 승려들에게 시주를 한다. 그리고 절에도 간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두가 불교에서 시작하여 불교로 끝나는 생활불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개인의 실생활에 파고들어서 그들의 언어생활, 사고구조, 가치체계,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모든 부분에 불교의 영향력이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집, 학교, 직장 등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는 불상이 있다. 모든 곳이 불교로 흠뻑 젖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부르짖듯이 그야말로 불교 중심, 절 중심, 승려 중심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부르짖지만, 생활불교에 젖은 상좌부불교권의 사람들은 그들이 생활하는 모든 공간과 시간의 영역에 불상과 향을 태우는 냄새와 요람에서 무덤까지 눈에 보이게 불교적 분위기로 충만하다. 이들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것은 치열한 영적전투를 통하여 조금씩 진행될 수밖에 없다.

 

4. 불교의 절충주의적 성격

불교는 카멜레온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 카멜레온은 주위의 환경에 따라 색깔이 수시로 변한다. 불교는 종교문화적인 환경에 잘 적응하였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갔을 때 기존의 도교, 유교와 결합하였다. 일본에 들어갔을 때 신도와 유교와 조상숭배와 결합하였다. 한국의 불교는 샤머니즘과 유교와 결합하였다. 인도차이나 5개 불교국가의 불교는 같은 국가 안에서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왜냐하면 불교는 절대 진리를 외친다거나 독단적인 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포용하여 융합시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전파한 불교와 상좌부불교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형된 불교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괴물로 변한 모습이다. 아마 고타마 싯다르타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 그렇게 변형된 불교의 모습을 본다면 놀라서 기절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막무가내로 포용하는 불교의 절충주의적 성격의 결과 각 지역에는 민속불교(Folk Buddhism)가 만연하게 되었다. 상좌부불교권의 종교들을 살펴보면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인들이 종교적 영향을 받은 순서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가 진행된 이래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귀신숭배 중심의 민간신앙이 있다. 둘째, 인도 상인들로부터 받아들인 다신교적인 힌두교적 색체가 있다. 셋째, 대승불교가 들어왔다. 넷째, 13-4세기에 상좌부불교가 전래되었다. 현지인들의 종교적 색깔은 겹겹이 쌓인 모습인데 이러한 현상을 중층구조라고 부른다. 선교사는 그들의 언어, 문화를 비롯하여 무엇보다도 종교를 파악해야 하는데 역사적인 경로를 거쳐 현지인들의 마음에 녹아 들어간 각종 문화적, 종교적 현상들을 이해해야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알게 된다. 만약 그러한 현상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막무가내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복음전파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민속불교는 초자연전인 영적 존재들과 대상물들(바위, 돌, 사람이 세운 우상들 등)을 통해 도움을 받고, 사후세계에 대한 이상한 믿음을 혼합시킨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대상자가 정통불교도라면 정해진 불교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리대결이 가능하겠지만 온갖 잡신과 민간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있을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감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5. 신학적 장애물들

신학적 장애물들을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주제들인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을 불교와 비교하면 각 주제 당 설명해야할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교리상 기독교와 가장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가장 먼 거리에 존재하는 종교는 불교이다. 현존하는 불교 즉 상좌부불교, 대승불교, 라마불교 중에서 기독교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상좌부불교이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선교적 현실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하는 선교지는 상좌부불교권이라 할 수 있다. 불교권에 대한 선교는 그 역사가 비교적 오래되지만 열매가 미미한 이유는 선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불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교사들이 선교했기 때문이다.

  • 불교에는 인격적 신 개념이 없다. 업(業)[35] 혹은 업보(業報, karma-카르마) 개념으로 구원에 관하여 철저히 자기 의존적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업을 동일시한다. 업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구원을 받기 위하여 행위 구원을 시도하는 것이다. 태국인들의 업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장이 있다. ทำดีได้ดี ทำชั่วได้ชั่ว(탐디다이디 탐추아다이추아)라는 문장이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선업선과 악업악과 혹은 선인선과 악인악과, 善業善果 惡業惡果, 善因善果 惡因惡果). 인격적 창조주 대신 우주를 설명하는 배타적 원리로서 업사상(인과응보사상)을 지지한다. 업은 탈출할 수 없고 예외가 없고 철칙이다. 인과의 법칙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즐거운 결과가 따르며, 악한 일을 하면 고통스러운 결과가 온다. 그들은 인과응보 사상에 묶여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덕을 쌓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신, 인간, 죄, 구원, 사후의 세계 등에 있어서 불교의 교리는 성경의 진리와는 정반대이다.

이를 단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복음의 핵심인 요한복음 3장 16절[36]을 전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자. 상좌부불교를 신봉하는 태국인이 이 성경구절을 들으면 어떻게 이해를 할까? 태국인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프라짜오를 사용하는데 해, 달, 별, 왕족, 불교 승려, 특별히 신성시 하는 장소, 불상 등을 지칭할 때 프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그리스도인이 믿는 인격적인 하나님은 결코 상상하지도 못한다. 불교의 우주관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바로 사랑, 집착, 욕망인데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탈하기 전의 상태라고 폄하한다. 하나님이란 분이 아직도 욕망을 버리지 못한 부족한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하면 듣는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믿는다는 것도 불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반대이다. 상좌부불교에서 구원은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태국인들은 당신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어느 누구도 의지할 수 없다. 오직 당신 자신만을 의지하라고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란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은 결과가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태국 상좌부불교인은 영생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윤회의 사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영생일 것인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생이 아니라 윤회의 사슬을 벗어난 열반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디 태국 불교인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불교에 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음의 핵심인 요한복음 3:16절은 불교인들에게는 결코 원하지 않는 Good News의 반대인 Bad News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37] 불교권 복음전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의 실패(miscommunication)라고 할 수 있다.

 

6.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의 차이점

불교는 자비(慈悲)의 종교이며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것을 자비라고 말하고, 애착과 애욕을 뜻할 때 부정적인 의미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랑이란 불교에서 일종의 욕망이며, 번뇌에 지나지 않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법구경에는 사랑으로부터 근심이 나오며, 사랑으로부터 두려움이 나온다. 사랑을 멀리하는 사람에게는 근심이 없으며 두려움도 또한 없다.고 가르친다. 불교에서는 사랑을 집착하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사랑을 멀리 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사랑 대신 자비를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 자비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앞질러 불행 대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뜻한다. 자비사상은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까지 적용한다. 기독교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지만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자비사상은 처음부터 불교의 중심 사상은 아니었다. 대승불교가 전해지고 난 뒤부터 자비사상이 불교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르친 상좌부불교는 출가 중심의 불교이다. 출가한 개인의 구원을 가르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을 스승 삼아 성불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자비라는 사상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불교의 목적은 사람들이 이 강의 언덕인 차안(此岸-미혹의 세계, 중생의 세계, 번뇌의 세계, 불안한 세계, 괴로움으로 가득 찬 세계)을 건너 피안(彼岸-부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해탈의 세계, 평온한 세계)인 열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강 이쪽은 번뇌가 많은 이 세상이고, 강 건너 저 쪽은 깨달음의 세게, 삶과 죽음의 고통이 없는 무의 경지, 피안의 세계, 열반이라고 가르친다.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려면 옷을 벗어야 건널 수 있고, 짐 보따리를 짊어지고는 헤엄을 칠 수 없다. 가족들과 함께 건너는 것도 어렵다. 물살이 세기 때문에 자기 혼자 몸으로도 건널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다. 피안은 아주 멀기 때문이다. 속세의 옷을 벗고, 재물도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자기 혼자가 되는 것을 출가(出家)라고 한다. 출가하지 않으면 피안으로 건너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이 원시불교인 상좌부불교의 자력구원관이다. 출가자는 오로지 자기 혼자만 구원 받는다. 다른 사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대승불교가 형성된 후 상좌부불교를 독선이라고 비난했다. 가르침이 적다는 뜻으로 소승불교라고 불렀다. 바퀴가 작아 대중을 피안의 세계로 가도록 돕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커다란 배처럼 많은 사람들을 피안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대승불교는 출가하지 않은 재가신도도 피안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혹독한 수행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의 공덕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부처는 재가신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재가신도들이 피안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자비의 사상은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강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신론적이고 자력이 중심이 되었던 원시불교가 유신론 불교로 바뀐 것이다. 부처는 우주의 어느 곳에든 살고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편재). 각각의 부처마다 정토가 있으며 정토는 부처의 수만큼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토(淨土 · Pure land)란 불교에서는 낙원을 정토로 지칭하며 부처·보살이 가는 청정(淸淨)한 세상으로 곧 불교의 이상사회를 말한다. 한국의 불자들에게 잘 알려진 부처로는 아미타불, 지장보살, 약사여래불, 관음보살 등이 있다.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정토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나왔다. 결국 아미타불의 공덕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승불교가 생기면서 불교는 유신론이 되었고, 자비의 불교가 되었다. 보살도 강조가 되었다. 보살은 부처가 되기 바로 직전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살은 자비사상으로 나는 부처가 될 수 있지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다 부처가 될 수 있도록 깨닫게 하고, 그 다음에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다 구원하고 부처가 되고, 관음보살은 모든 사람의 소원 성취를 이루고 부처가 되고, 약사여래보살은 모든 사람의 병을 다 고쳐주고 부처가 되며 이것이 자비의 보살상이다. 불교의 자비의 산스크리트 원어를 보면 자(慈, 마이뜨리아, 인간에 대한 모든 중생에 대해 최고의 우정을 갖는다), 비(悲, 까루나, 신음 혹은 동정하다는 뜻) 이 둘을 합하여 자비란 타인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타인의 신음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자기를 완성하기 위한 수행과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의 행위 가운데 균형을 잘 맞추어 수레의 양 바퀴처럼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기애(自己愛)이고 인간은 타인을 사랑하며 속박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사랑을 욕망의 일종으로 본다. 이것을 욕애(欲愛)라고 부른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집착심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집착된 사랑을 갈애(渴愛)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랑을 부정한다. 불교도들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복음을 전할 때 큰 신학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7.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렵다.

상좌부불교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모든 분야에 종교적 덧칠이 심해 모든 언어나 관습도 불교식으로 되어 있다. 성경도 불교용어로, 왕실 용어로 번역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같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실컷 듣고도 기독교와 불교는 똑같군요.라고 반응을 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기독교와 불교의 다른 점을 강조했는데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복음 선포자의 좌절은 복음의 바른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것에서 온다. 무슨 내용을 전해도 청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버린다. 마치 유리컵에 물을 채워 젓가락을 넣으면 굴절현상이 일어나 곧은 젓가락이 꺾이게 보이는 것처럼, 그들은 달리 알아듣는다. 자신의 문화적 창살을 통해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Ⅳ. 불교권 유학생을 위한 복음 전달 방안

  1. 급속한 열매를 거두려는 유혹을 떨쳐버리라

불교권 유학생을 위한 복음 전달 방안을 논하면서 성급한 열매를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은 자칫하면 선교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닌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셔서 특별한 부흥을 허락하시면 상상할 수도 없는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선교지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좌부불교권에서 제대로 된 부흥, 오랫동안 그 지역 혹은 나라 안에 영향을 미쳤던 부흥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태국의 경우 얼마나 선교의 열매를 얻기 어려운가는 필자가 2020년 책으로 펴낸 『태국선교: 성령의 역사, 부흥으로』 52쪽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ABCFM(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미국해외선교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한 미국장로교회(PCUSA)는 1837년 교단 자체적으로 해외선교부를 조직하였다. 1840년 8월 미국장로교선교부에서 윌리암 뷰엘(William Buell)목사 부부가 파송되었으나 1844년 2월 본국으로 돌아갔다. 1847년 3월 스테펜 머톤 (Stephen Matton)목사 부부와 의사선교사인 사무엘 레이놀즈 하우스(Samuel Reynolds House)가 1849년 3월 방콕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1849년 4월 스테펜 부쉬(Stephen Bush) 목사 부부가 태국에 입국하였다. 1849년 8월 31일 태국에서 첫 장로교회가 머톤 목사 부부, 부쉬 목사 부부, 의료선교사 하우스 그리고 ABCFM에서 이적한 중국인 끼엥쿠아신(Ki-eng Qua-Sean)에 의해 개척되었다. 그들은 1859년 8월 3일 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심한 나이춘(Mr. Chune)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미국장로교선교부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첫 태국인 회심자를 얻는데 19년이 걸린 것이다. 교리적으로 기독교와 가장 멀리 있는 상좌부불교권은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기독교의 구원자에 해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모범을 보인 인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좌부불교권에서의 복음 전파는 숫자적 성장에 집중하여 많은 영혼들을 단시간에 복음화하려는 욕심부터 버리고 선교를 시작해야 정상적인 선교사역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더운 열기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메사에 조급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는 것도 느리고 결단도 느리다. 사시사철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겨울이 없어 미리 대비할 것도 없고 걱정도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결단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불교권의 사람들은 성숙한 사람일수록 화를 내지 않고 인내한다는 가치관이 있다. 그들의 문화적 특성, 국민적 특성, 날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불교에 찌든 그들이 기독교 복음으로 완전히 돌아서는데 장시간이 필요하다.

 

2. 능력전도

불교지역의 전도는 정통불교가 아니라 민간신앙과 밀착하여 민속불교(Folk Buddhism)화 된 곳이므로 귀신이 많은 지역의 전도와 같이 능력전도(power evangelism)가 요구된다. 불교는 무신론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신들과 각종 귀신들과 영들을 믿는 다신론 적이며, 힌두교와 같은 다귀론적(多鬼論的)이기에, 성령의 능력이 따르는 복음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선교사에게는 말씀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것에 더하여 필수불가결한 수단인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무장이 되어 치열한 영적전투를 수행한 후에야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로 그 영혼들을 사로잡고 있는 영적 요새를 무너뜨려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귀신에 대한 것이 많은데 통계에 의하면 어느 한 해 태국의 경우 전체 영화 중 60% 이상이 귀신에 관계된 영화라고 한다. 1년 동안 개봉된 영화 중 300편 이상의 영화가 귀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상좌부불교권의 사람들은 정령신앙과 관련되어 귀신이나 악한 영들을 두려워한다. 악령이나 영적 굴레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고 능력의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들은 옛날의 종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불교의 교리에 대한 변증적인 접근도 해야 하지만 능력대결이 필요하다. 마귀에 대한 심한 두려움이 상좌부불교권 영혼들 가운데 존재한다. 악령도 자주 역사한다.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으로 들릴 것이다. 선교사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성령의 권능을 드러내야 한다.

 

3. 복음 전달자의 진실된 태도와 희생적 삶

상좌부불교권의 신자들에게 당신은 왜 예수를 믿었는가?라고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꿈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나타났다거나 불치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회심자들이 오랫동안 복음을 들어도 예수를 믿지 않다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나 현지인들이 그들보다 더 나은 도덕적 삶을 살거나 겸손하고 온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나타낼 때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다. 그 하나의 예로 필자에게 선교사 초기에 태국어를 가르쳤던 여자가 있었다. 서양 선교사들 여러 명에게 태국어를 가르쳤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 4-5년 동안 선교사들을 대면했고 가끔씩 복음을 들었다. 한 번은 자기 혼자서 버스를 타고 먼 곳의 병원을 여러 시간 가게 되었는데 필자의 아내가 시간을 내어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종일 병원을 함께 따라가 주고 친구가 되어 주고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그 후 그 여자는 자기와 함께 필자의 아내가 병원에 함께 따라가 준 것이 너무 감사하여 여러 번 고맙다는 말을 했다. 예수를 믿은 후 그녀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시간이 없는 줄을 잘 아는데, 그 먼 곳에 있는 병원에까지 따라가 주어서 예수 믿기로 작정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OMF 매월 정기 선교사 기도회에 참석하면 선교사들은 선교사역 중에 일어난 일들을 나누기도 했는데 서양 선교사들도 태국 불교인들은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태도에 감동을 하고 그것 때문에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간증을 자주 하였다. 그리고 시니어 선교사들은 태국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말로 복음을 전하여 귀로 듣는다고 예수를 믿지 않고, 눈으로 선교사들의 삶을 보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한다. 태국인들은 귀로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믿는다. 태국인들은 복음을 들었다고 머리로 바로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믿는 것은 소수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자기들의 삶 보다 복음 전달자의 삶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할 때 존경하기 시작하고 비로소 예수를 믿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신 것처럼 선교사는 말뿐 아니라 직접 구원받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복음전달자의 삶이 불교인과 다름을 분명히 보여주면서 스스로 비교하게 하고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하여야 한다.

 

4. 친밀한 인간관계 형성

선교사는 현지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도하기 위하여 급한 마음을 먹고 쉽게 전도하려고 달려들면 안 된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며 그들의 말(비록 불교에 관한 것이라도)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선교사가 불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멸시하는 시각을 고쳐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교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불교를 비판하여 상처를 주면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설교를 할 때 선교사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것 또한 금하여야 한다. 만약 선교사가 불교를 공격하면 태국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기의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기분 나빠 한다.[38] 외국인인 선교사가 태국인들에게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대상이 있다. 그것은 불교, 왕, 부모에 대한 것이다. 승려나 불교신자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복음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지 않게 보이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무조건 예수를 믿으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오랫동안 인내를 가지고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의 고백은 태국인들을 오랫동안 친구로 사귀다가 어느 날 복음을 전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그날부터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그 동안 수년 동안 쌓았던 인간관계가 다 무너져 버렸다는 말을 듣고 필자도 그런 경험이 많다.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적절한 하나님의 타이밍(카이로스)을 잡는 것이 절실하다.

 

5. 불교권에 맞는 적절한 전도의 기술과 교리적 전도가 필요

미국남침례교해외선교부(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가 불교권 전도를 위해 개발한 전도 내용이 있는데 C2C(Creation to Christ, 창조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이야기)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창조에서부터 구약의 제사제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회개, 예수 영접에 이르기까지 정리되어 있다. 하나님이 온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라는 창조주라는 사실로부터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원래 불교에는 인격적인 신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성급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먼저 이야기 하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전생에 죄가 얼마나 컸으면 저렇게도 끔찍한 죽음으로 생애를 마감하였나?라는 부정적인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복음전파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C2C 내용은 따로 언급하겠다.

직선적이고 비판적인 전도방법보다는 논리적이고 교리적인 전도가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서 불교의 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또한 다양한 불교가 존재하는데 상대가 어떤 형태의 불교인인지를 알아야 한다. 특히 내륙(대륙) 동남아시아의 민속불교적인 성격을 알고 그들을 설득시키는데 가장 적절한 성경의 내용들을 알아야 한다.

 

6. 전도, 양육, 제자훈련으로 소수 정예의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 양성

전도를 통하여 교회 안으로 사람이 들어와도 양육하지 않으면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1:1 양육이 중요한데 시간이 걸려도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양육하여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는 단순한 개종이 아니라 온전한 회심에 초점을 둔 선교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회심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인 선교사는 회심의 과정에 대한 명백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과정 과정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수술하는 의사의 손이 되어 하나의 실수와 틈이 없이 보조하는 간호사처럼 선교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회심과 결부되어 발생하는 문제와 경험에 대하여 안내하고 설명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상좌부불교는 기독교와 정반대적 위치에 있으므로 회심과정이 길다. 복음전달의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회심의 협곡이 깊고 많다는 것이다. 특별히 회심과정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전환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도와 양육을 통해 회심한 사람들로 형성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서 선교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을 선교의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상황화 작업이 문화 속의 여러 개념, 즉 신론, 기독론, 구속의 유비 등을 파악하여 그 개념과 형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회심선교는 문화 속의 신학적 개념이 얼마나 기독교의 복음과 거리가 있는지를 파악하여 그들의 영혼의 상태를 알고 신학적 장벽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장벽을 제거 하는 전략을 만들어서 점진적으로 회심하도록 사역하는 것이다. 상황화가 이해의 장벽을 극복하려는 시도라면 회심선교는 수용의 협곡을 넘어서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키도록 돕는 사역을 말한다. 선교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천국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뿐 아니라 지상에 온전한 회심자로 구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는 복음인 것이다. 제자 삼는 것을 충실히 장기간에 걸쳐 수행해야 한다.

 

 

Ⅴ. IMB가 불교권선교를 위하여 만든 최고의 전도법-C2C(Creation to Christ)

창조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이야기

The CREATION TO CHRIST Story

1 부: (딤후 3:16; 시 115:3-8; 대상 16:25-28)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요. 이 이야기는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이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인데, 이 책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사실이며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시며 가장 위대하시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은 국가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시고, 불의 신, 태양신, 용의 신 같은 다른 신들보다도 더 크십니다. 그리고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이 금이나 은 또는 나무로 만들어 섬기는 우상들 보다 더 크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능력이 가장 많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2부: (창 1:1 2:3; 느 9:6)

태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창조주 이십니다. 이분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셨을 때, 말씀을 사용하셨는데 그가 말씀하실 때 모든 것이 말씀하신대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는 또한 하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도록 아주 아름다운 천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모든 것을 만드셨는데; 하늘, 땅, 물, 산, 바다, 해, 달, 별과 모든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3: (창 2:4-25; 2:8-9, 16-17; 겔28:12-17; 사 14:12-15; 창 3:1-24; 사 59:2; 롬 3:23, 6:2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사람을 아름다운 동산에 살게 하셨는데 하나님과 그 사람은 너무나 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동산을 관리하고 그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지만,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실만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돕는 배필로 여인을 주셨고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동산에서 하나님과 아주 좋은 관계로 잘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천사를 기억하시지요. 그중에, 굉장히 똑똑하고 아름다운 천사 하나가 있었는데, 그 천사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천사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자신을 경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모든 경배와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나쁜 천사, 사단과 그 나쁜 천사를 따르는 다른 천사들을 하늘나라에서 추방시켰습니다. 이 나쁜 천사들을 귀신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사단이 동산에 와서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한 열매를 먹도록 유혹했습니다. (사단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정말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하셨느냐?고 하자 여인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동산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으나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 먹지 말라 하셨고 만일 우리가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 하자, 사단이 여인에게 너희가 죽지 않고,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사단의 말을 듣고 과일을 보니 먹음직도 하고 좋아 보여서, 그 과일을 먹고 남편에게도 먹도록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과일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은(따르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심으로 죄를 반드시 처벌하셔야만 했습니다. 죄의 처벌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하나님과 그 사람들의 관계는 아주 깨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은 영원히 분리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므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4: (출 20;1-17; 히 9:22; 례 1:1-3; 4:13-21; 사 1:11)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이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셔서 사람들도 완전하고 거룩해야만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말며, 부모를 공경하며, 거짓말, 도둑질, 살인, 간음 등을 하지 말 것을 기록하고 있음).

그렇지만 이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평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셔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회개하고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려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이 희생 제사는 흠 없는 첫태생 수컷동물, 예를 들면 황소나 수염소 피를 흘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회개와 피흘림이 없이는 인간의 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진심으로 회개치 않았고, 희생 제사도 하나의 형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희생제물의 피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과 피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5부: (요 3:16; 누 1:31-37; 마 5: 1 7:29; 막 4:35 5: 20; 6:30-44; 막 5:1-20; 요 11:1-4; 시 23:1-3)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가 창조하신 사람들을 사랑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속상하고 한편으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기에 슬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하나님과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입니다.

2. 예수님은 지혜로운 선생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와서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지 가르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3. 예수님은 능력의 기적을 행하는 분입니다.

  •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지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큰 바람과 폭풍이 있어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예수를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하자 예수께서 바람과 풍랑을 향하여 잠잠하고 조용하라! 꾸짖으시매 즉시 바람과 풍랑이 멈추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이 자연의 능력보다 큼입니다.
  •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또 한 번은 예수께서 많은 귀신이 들려 힘이 세고 위험한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그에게서 귀신을 내쫒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마귀보다 훨씬 크심이라).
  • 예수님이 5000 명 이상을 먹이심 (다른 한번은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왔습니다. 저녁때가 되었지만 먹지 못하여 배가 고팠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두 마리의 물고기와 빵 다섯 조각을 이용하여5000명 이상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친한 친구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친구 집에 온 날은 이미 죽은 지 3일이나 되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으로 매우 슬펐던 예수께서 친구의 무덤 앞에 다가가 친구여 나오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음) 예수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십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며, 모든 사람들을 사랑 하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5. 예수님은 완전 하시며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6: (벧전2:22; 히 9:14; 요 1:29; 눅 23:20-25, 30-48; 계 5:9; 롬 5:8; 사 53:6; 벧전 1:19; 눅 24:1-50)

6.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희생제물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믿고 따랐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미워하는 어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질투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이 십자가는 두 개의 큰 나무를 십자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그의 손과 발 그리고 몸에서 흘러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말로 표현 못할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제물입니다.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의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죄인들인 우리들의 죄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죽으셨던 예수님은 돌아가신지 삼일 후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7부: (눅 15:11-24, 3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어느 날 둘째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상속할 몫 중에서 저에게 속한 것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나눠주자 그 몫을 받아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허랑방탕하여 모든 재물을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가 가진 것을 다 쓰고 나니 필요가 생겼습니다. 먹을 도 없고 살 곳도 없어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돼지먹이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음에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 집 일군들은 먹을 것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고하기를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아들이라 불릴 자격도 없으니 종의 하나로 써주세요 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아버지께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본 그의 아버지는 달려가 그 아들을 껴안고 입 맞추며 그가 살아 돌아왔음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때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의 하인들에게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 내 아들에게 입히고, 그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그 발에 신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찐 소를 잡아 잔치하며 즐거워하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들이 죄를 회개할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이 작은 아들과 같습니다.

8부: (요 14:6; 롬 10:9-10; 막 16:15; 마 28: 18-20; 사 52:7; 롬 15:11-15)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 되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돌아 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갈수 있나요? 그것은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시인)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모든 가족이 그분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당신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제물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예 또는 아니요.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저는 범죄했습니다. 제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제물로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회개하오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 지금 저는 예수님을 저의 구주와 생명의 주로 영접하오니 오늘 이후로는 주님을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좀 전에 말한 것이 당신의 마음과 같다면, 조금 전 제가한 것처럼 지금 하나님께 그 분을 믿는다고 말하십시오. 제가 옆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한절 한절 말할 때 저를 따라 해주세요. 하나님, 저는 범죄했습니다. 제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제물로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회개하오니 저를 용서해 주세요. 지금 저는 예수님을 저의 구주와 생명의 주로 영접하오니 오늘 이후로는 주님을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너무 잘하셨어요. 이제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당신이 가족들을 사랑하는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족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셔서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기쁜 좋은 소식을 전해야합니다.

당신은 자원하는 맘으로 그들에게 가서 전하시겠습니까?

 

  •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C to C 번역판인데 필요한 경우 제공할 수 있다.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라오스어, 네팔어

 

The CREATION TO CHRIST Story

PART1

I want to tell you a story. This story is from a book called the Bible. Men did not make up the Bible. It is the word of the Most High God. These stories are true and reliable because they are the words of the Most High God.

 

Man & woman in garden. Good relations with God. Disobeyed God. This is sin. Broken relationship

There is only one God, and He is the Most High God. The Most High God is more powerful than men and kingdoms. The Most High God is more powerful than other gods such as the fire god, sun god, or dragon god. He is also more powerful than idols made by men. The Most High God is the most powerful.

 

 

PART2

In the beginning the Most High God existed. The Most High God is the Creator. He created everything on earth and in heaven and is all powerful over everything. His name is God.

When God began to create things, He just used His words. He spoke and everything came to being. He created angels to worshipandserveHim.Theywereverybeautiful.

 

True story. God’s word. Most High God’s is most powerful.

 

 

PART3

God placed the man and woman in a beautiful garden to live. They had a very good relationship. He told them to take care of the garden and enjoy everything. He gave them a special command: they could eat from every tree in the garden except one. If they ate from that one tree, they would die. Man and woman listened to God and had a wonderful relationship with Him in the garden. However, do you remember the angels God created? One of the angels was very smart and beautiful. This angel became very proud. He wanted to be like God and to have the other angels to worship him instead of God. Only God deserves all the worship and service. Therefore God cast the bad angel, Satan, and the other angels who listened to him out of heaven. These bad angels are known as demons.

One day, Satan tempted the woman to eat the food from the tree that was forbidden. [Satan lied to the woman. He told her that if she ate of the tree, she would be just like the Most High God.] The woman listened to Satan and ate the fruit. Then she gave it to her husband to eat. Both of them disobeyed Gods command. Disobeying Gods command is sin. God is righteous and holy. He must punishsin. God cast the man and the woman out of the garden, and their relationship with God was broken. Man and God were now separated forever and would suffer eternal punishment in hell.

 

Most High God is Creator. Made everything. It was good.

Like them, all people since then have sinned by not listening to Gods commands and are separated from God. The result of sin is eternal death. We cannot live with God forever.

 

PART 4

  1. time, the number of people on earth multiplied. God loved them very much and wanted them to have a relationship with Him. He gave them 10 commandments to follow. Remember God is perfect and holy, so we must be perfect and holy to live with him. [The 10 commandments teach man how to relate to God and how to relate to people. Some of the commands were: do not worship other gods or make idols; honor your parents; do not lie, steal, murder or commit adultery.] However, no one was able to obey all of these commands. So, each time they sinned, God allowed them to repent of their sins and offer a blood sacrifice to take the place of their punishment. This sacrifice was shedding the blood of a perfect animal. If they would repent and offer the blood sacrifice, God would forgive them. Only by the shedding of blood can mans sin be forgiven. However, man kept sinning and the sin sacrifice became a ritual rather than something from their heart. God became tired of the blood of animals. The shedding of animals blood was never sufficient to bring men back to God.

 

People multiplied. 10 commands. Sacrificial system: blood. Men kept disobeying and insincere sacrifices.

 

 

PART 5

Remember that God loves man whom He created very much. He is angry that they disobey Him, and is sad that they cannot come back to Him. Therefore He gave man a perfect way to reconnect to Him.

God sent Jesus to show us the way back to Himself. Who is Jesus? Jesus is Gods son, His one and only Son.

Jesus was a wise teacher. [Many people would come to hear Him teach about how they could return to God.]

Jesus was a powerful miracle worker.

Jesus calms the storm. [On one occasion, He was with some of His students crossing a large lake on a boat. It was late at night. While Jesus was sleeping, a powerful storm arose on the lake. Jesus students were very afraid. They awakened Jesus and said, We are about to die! Jesus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waves, Quiet! Be still! Immediately the wind and rained stopped.] Jesus power is greater than natural powers.

Jesus fed over 5,000 people. [On another occasion over 5,000 people came to listen to Jesus teach about God. When evening came they had not eaten and were hungry. Altogether they only had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Jesus used the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to feed over 5,000 people.] Jesus power is able to satisfy mans needs.

Jesus cures a demon processed man. [Another time, Jesus saw a man with many demons inside him. The man was very powerful and dangerous. Jesus loved the man and cast the demons out of him.] Jesus is more powerful than demons.

Jesus raised the dead. [Jesus good friend became sick and died. Jesus was not with him. Four days later Jesus arrived at His friends house. Jesus felt very sad. His friend was already in the tomb. Jesus went to the front of the tomb and said, Friend, come out. His friend was resurrected. He walked out of the tomb alive!] Jesus power is greater than death.

Jesus was the good shepherd. He loved and cared for people.

Jesus was perfect. He never sinned.

 

Out of love, God sends Jesus. Son. Miracle worker. (storm, 5000, demonized man, dead friend) Good shepherd. Perfect.

 

PART 6

Jesus was the Lamb of God.

People loved Jesus. However, there some leaders were jealous of Jesus. These men grabbed Jesus and decided to kill Him. They placed Jesus on a cross. A cross is made from two large pieces of wood formed together in the shape of a large cross. They took His hands and His feet and nailed them to the cross. His precious blood flowed from His hands, feet and body. Jesus suffered much pain on the cross.

Jesus is the perfect sacrifice. Jesus was perfect and did not deserve to die. Instead, Jesus died for all mankind. God loves us and allowed Jesus to die on the cross in our place. Only through the shedding of Jesus precious blood was God able to forgive our sin. Jesus death demonstrates Gods love towards us. However this story doesnt end here. On the third day Jesus rose from the dead! He was spent time with his followers for many days and then went back to His Father in heaven.

 

Jesus = Lamb of God. Crucified. Perfect sacrifice. Rose from the dead!

 

 

PART 7

[Before His crucifixion, Jesus told a story to his followers about a father and his sons.

The father had two sons. The younger one said to his father,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inheritance. So he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them.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After he had spent everything, he began to be in need. So he went and hired himself out to a citizen of that country, who sent him to his fields to feed pigs. He longed to fill his stomach with the pods that the pigs were eating, but no one gave him anything.

When he came to his senses,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hired men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I will set out and go back to my father and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make me like one of your hired men.'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We are all like the younger son.] We all have left God and are forever separated from Him. We all must repent and return to God. Jesus can lead us back to Gods side. Jesus said,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We must go through Jesus to return to God. How can we go through Jesus? You must believe in your heart and with your mouth confess that Jesus is Lord. Do you want to go through Jesus and return to Gods side?

 

Prodigal Son shows us how to come back to God. Go through Jesus only! Do you want to do this?

 

 

PART 8

The Most High God wants you and your whole family to return to Him. To do this, you must go through Jesus. Jesus is the perfect sacrifice. Only through Jesus can your relationship with God be restored. Do you want to go through Jesus to return to Gods side?

If you want to, you must believe in your heart and confess, I have sinned. I have left God. Jesus is the perfect sacrifice for my sin. I believe and trust in Jesus. I want to repent; please forgive me. I trust Jesus to lead me back to God.

In the same way I just talked with God, now you talk to God with me. Ill say each part and you repeat after me.

Great! Now your relationship with God is restored.

I know you care about your family. God is waiting for your whole family to believe in Him. Go home and tell your family and friends this good news. God loves them too!

 

How to accept Christ. Pray together. Youve now been reconnected to God!

<결론>

불교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믿음의 체계이다. 불교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자력(自力)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타력(他力) 종교이다. 두 종교는 내용에 있어서 극과 극인 셈이다. 불교는 무신론(無神論)의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절대적 신(神)을 의존적인 바탕에 둔 종교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데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불교는 인간의 존재를 일체고(一體苦)인 고통의 존재로 보며,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불교의 구원은 자기 밖에 어떤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자아(自我)를 찾아 깨달음을 얻어 불타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罪人)이라고 보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자력으로 죄(罪)의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罪)가 깨끗하게 씻김을 받고 사망(死亡)의 권세에서 구원 받는 타력(他力)적인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자신이 죄인(罪人)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구원은 절대적인 신인 삼위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영생(永生)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한다(요한복음 5:24).

반면 불교는 인간의 존재를 일체고(一體苦)인 고통의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생의 존재가 업보(業報)에 따라서 윤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통(苦痛)의 존재인 윤회(輪廻)의 속박에서 해탈되어서 없어지는 공(空), 무(無)의 종교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해탈(解脫)의 세계인 무(無)존재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方法論)에서 석가는 임종하면서 제자들에게 그대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 처로 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라고 유언했다. 석가는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너 자신에 의지하라 했고 그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불교의 이상세계인 해탈은 자기 밖에 어떤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잘 조화된 마음을 찾아 깨달음을 얻어 불타(佛陀)가 되는 것이다. 불교의 구원은 전적으로 구도자 자신의 윤리적 수행에 달려 있다. 이처럼 너 자신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불교의 자력신앙은 기독교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思想)을 가진 종교(宗敎)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자신이 죄인(罪人)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반면, 불교는 자신이 고통(苦痛)의 존재(存在)라는 것을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불교는 내 힘(마음)에 의해서, 내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고통(苦痛)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상(思想)이기 때문에 불교의 창시자 석가(釋迦)는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속죄자도 아니고. 심판자도 아니며. 중보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개개인의 성불을 위해서 실천(수행)하는 자율적(自律的)이며 인본주의적인 종교이다. 성철스님[39]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다.고 했다. 불교에서 인사 할 때 성불 하세요 하고, 기독교는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 하는 것은 서로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지 못한 불교신자는 생의 마지막 길에서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극락에 간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업보윤회의 굴레 속에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로부터 오는 참된 기쁨과 소망과 완전한 평화와 안식이 함께 한다(마태복음 11:28; 요한복음 3:16).

 


▼미주

1) <학력> 고려신학대학원 (M.Div.), Moorlands Bible College(Diploma in Missiology), University of

Stellenbosch(M.Th. cum laude & D.Th.) <경력> KPM(이주민지역부) & OMF DRM(디아스포라귀국자사역) 협력선교사, KPM선교정책위원 & 고신세계선교후원교회협의회 정책기획전문위원, 전 태국선교사(KPM & OMF소속), 고신선교훈련원장, 고려신학대학원 객원교수, 국내목회

2) 흔히들 소승불교’(小乘佛敎, Hinayana Buddhism)라고도 부르지만 이 명칭은 대승불교’(大乘佛敎, Mahayana Buddhism)쪽에서 자신들은 대중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하고 뛰어난 탈것'(great vehicle)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 Theravada)를 폄하해서 비교적 적은 탈 것’(smaller vehicle)이라는 의미로 불렀던 것이므로 소승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주의해야 한다. 테라바다(Theravada)라는 말은 장로(長老)들의 길이란 뜻으로 상좌부(上座部)라고 한역되었다. ‘상좌부는 고승이 앉는 자리를 뜻한다. 테라(thera)는 장로(長老), 상좌(上座)란 뜻이고, 바다(vada)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직역하면 '장로/상좌들의 가르침'이다. 장로는 승단(sangha)에서 비구들(bhikkhu)을 지도하는 사람들이고, 상좌는 비구들 중에서 윗자리에 앉는 비구들을 말한다. ‘상좌부불교는 불교의 창시자 코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수행을 하고 개인적으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중시한다.

3) 티베트불교 혹은 라마불교가 이에 속한다. 탄트라불교(Tantric Buddhism), 금강승불교라고도 불린다.주된 분포 지역은 중국(중국령 티베트 자치구 포함), 부탄, 몽골(중국령 내몽골 자치구 포함), 러시아의 몇몇 공화국(칼미크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등이다.

4) ‘즉시 묻고 즉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며, 달리 말하면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종류와 무관하게 묻고 대화하는 자리이다(https://namu.wiki/w/즉문즉설(2021.9.2. 접속)

5)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437(2021.8.30. 접속)

6) http://kor.theasian.asia/archives/177631(2021.8.26. 접속)

7) (진리·본체·궤범(軌範교법·이법(理法) 등의 뜻.

8) http://kor.theasian.asia/archives/177633(2021.8.26. 접속)

9) https://ko.wikipedia.org/wiki/브라만교(2021.8.26. 접속)

10) Anderson, S. N. 세계의 종교들, The World’s Religions. 민태운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5), 200.

11)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귓속말로 전해듣는 (진리)" 이라는 뜻(https://namu.wiki/w/우파니샤드)(2021.8.28. 접속). 우파니샤드(산스크리트어: उपनिषद् Upaniṣad, 영어: Upanishads)는 힌두교의 이론적 ·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문헌들의 집성체이다. 우파니샤드는 또한 베다의 끝 또는 베다의 결론이라는 뜻에서 베단타(Vedanta)라고도 불린다(https://ko.wikipedia.org/wiki/우파니샤드)(2021.8.28. 접속)

12) 육사외도(六師外道)는 붓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베다(Veda)의 전통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바라문교의 지배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이들을 육사가 아닌 육사외도라 한 이유는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단의 사상가들이었기 때문이다(http://encykorea.aks.ac.kr/ Contents/Item/E0078343)(2021.8.26. 접속)

13) 힌두 철학(Hindu philosophy) 또는 힌두교 철학은 여섯 정통 학파로 나뉘기 때문에 육파철학(六派哲學) 또는 인도 육파철학이라고도 한다. 힌두교 종교 철학의 여섯 정통파는 삼키아 학파(Samkhya) · 요가 학파(Yoga) · 니야야 학파(Nyaya) · 바이셰시카 학파(Vaisheshika) · 미맘사 학파(Mimamsa) · 베단타 학파(Vedanta)이다. 이들은 모두 베다를 신의 계시에 의해 성립된("슈루티") 가장 권위 있는 경전으로 받아들였으며 베다 시대 말기인 기원전 700-500년에 집성된 우파니샤드의 발전적 산물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https://ko.wikipedia.org/wiki/힌두_철학)(2021.8.28. 접속).

14) 이동주, 아시아 종교와 기독교(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118.

15) https://ko.wikipedia.org/wiki/힌두교(2021.8.26. 접속)

16) http://kor.theasian.asia/archives/177637(2021.8.26. 접속)

17)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한 연대는 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등 북방에서는 B.C. 1027년을,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방에서는 B.C. 624년을 싯다르타의 탄생년으로 정해 왔었다. 근래에 불교학자들이 다각적인 방법으로 싯다르타의 탄생연대를 산정하였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B.C. 566, 564, 563, 463년 등 여러 설이 제기되었다. 그러므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 연대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고, 대략 B.C. 6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불교계에서 세계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공통 불기는 서기 1956년을 불멸후 2500년으로 보는 것이다. 이 연대에 의하면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 연도는 B.C. 624년이고, 그의 사망 연도는 B.C. 544년이 된다. <동국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학개론5(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1993), 20.>

18) http://kor.theasian.asia/archives/177635(2021.8.26. 접속)

19) 성열(강남포교원장), 고따마 붓다: 역사와 설화(서울: 도서출판 문화문고, 2010), 18-20.

20) 야마나 테츠시(山名哲史) 지음, 최성현 옮김, (서울, 불광출판사, 2020)

21) 무명(無明)[무지, 모른다, 알지 못하는 상태]

22) 중국 당나라의 승려였던 현장법사를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삼장(玄奘三藏)으로도 부르는 이유는 불경의 3요소, 즉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을 모두 통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https://ko.wikipedia.org/wiki/현장(2021.9.3. 접속).

23) 제목을 제외하고 260, 제목을 포함하면 270자로 구성되어 있다.

24)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318(2021.8.30. 접속)

25) 불기(佛紀, A.B.=After Buddha)는 고타마 붓다가 세상을 떠난 해를 원년(元年)으로 한다. 공통 불기는 B.C. 544년을 원년(元年)으로 하며, A.D. 2021년은 불기 2565년이 된다.

26) 동국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학개론5, 96.

27) 부파불교 시대의 종파 또는 부파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파이며,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파이다. 줄여서 유부(有部)라고도 한다(https://ko.wikipedia.org/wiki/)(2021.9.3. 접속).

28) ‘아함(阿含)’이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음역한 말로서 전승된 가르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불전(佛典)을 가리킨다. 현재 전하여 오고 있는 한역 4아함(漢譯 四阿含)은 인도의 여러 부파에서 전해져 온 것들을 중국에서 끌어 모아 정리한 것으로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雜阿含), 증일아함(增壹阿含)이 있다. 한역 4아함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거의 산실되어 오늘날에는 겨우 몇 편만 남아 있다. 그러나 남방 상좌부의 팔리어로 기록된 경전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 한역 4아함에 해당하는 경장(經藏)으로 5(, Nikāya)가 있는데, 장부(長部, Dīgha-nikāya), 중부(中部, Majjhima-nikāya), 상응부(相應部, Saṅyutta-nikāya), 증지부(增支部, Aṅguttara-nikāya), 소부(小部, Khuddaka-nikāya)가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하라. 고익진,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0), 30-34; 홍사성 주편, 불교상식백과(서울: 불교시대사, 1993), 259-260; 미즈노 코오겐(水野弘元), 원시불교14-18.

29) 민간신앙(民間信仰, 영어로 popular belief, folk religion, folk belief)이란 종교적 체계 없이 민간에서 전승되는 주술적인 종교용어를 말한다. 민간신앙이라는 말은 아직 학문상으로는 정확히 규정을 내리기 어려운 술어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민속종교는 범세계적인 종교와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민속종교는 민족적 전통의 종교라는 의식이 강하다. 외래종교의 요소가 많이 혼합되어 있어도 비교적 자기 민족적 고유한 종교라는 특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둘째, 흔히 미신이라고 불릴 만큼 아직 원시성이 많은 종교라는 점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보아 신자나 신앙 종사자들이 지배계층이 아닌 서민 또는 대중이라는 점이다. 서민 또는 대중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민속종교는 민간신앙 또는 민중신앙이 되는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민간_신앙 (2020.8.25. 접속)

30) ‘동남아시아란 지명은 1839년 미국인 목사 하워드 맬컴(Howard Malcom, 1799~1879)이 쓴 여행기에 ‘South-Eastern Asia’로 처음 등장했다. 그 후 이 지명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세계 제2차 대전 중이었다. 전후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둔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이 지역을 단순히 전쟁 중의 전략적 단위(strategic unit)로만 간주하지 않고 문화적인 단위(cultural unit)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31)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 =CP_THE004&cp_code=cp0433&index_id=cp04330789&content_id=cp043307890001&print=Y (2020.8.25. 접속)

32) https://ko.wikipedia.org/wiki/베트남_전쟁(2021.2.12. 접속)

33) 미얀마인이 되는 것은 불교인이 되는 것이다. 라오스인이 되는 것은 불교인이 되는 것이다.

34) ‘파랑은 서양 백인을 일컫는 말인데, 프랑스인들이 처음 태국에 들어왔을 때 태국인들의 발음이 프랑스가 아니라 파랑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들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뜻의 콘에시아라는 말을 사용한다.

35) 원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쇄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https://ko.wikipedia.org/wiki/)(2021.2.13. 접속).

3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7) Davis, J R, Poles Apart?(Bangkok, Thailand: Kanok Bannasan-OMF Publishers, 1993), vi-viii

38) 그러나 태국인 설교자는 선교사 보다는 더 자유롭게 불교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설교하는 것이 용납되는 분위기가 태국인들 사이에 있다.

39) 1912219~ 1993114. 7대 조계종 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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