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사과는 미녀를 쏙 빼닮았고, 색깔과 맛, 향기는 백과(百果)중 왕으로, 따라올 과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질투와 매혹의 과일로, 때로 변혁과 도전의 상징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우리가 사과라고 말할 때, 단순히 먹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불러일으킨 파리스의 사과를 비롯, 스피노자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스위스 자유투쟁의 상징인 빌헬름 텔의 사과,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까지 이야기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근거로 사과는 과학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현대에는 애플의 벌레 먹은 사과까지 가세하여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과들의 이야기는 기독교와 헬레니즘, 근대 정치와 과학의 발전, 그리고 문학의 발전과 함께 회자 되어 왔습니다.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편집.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편집.

많은 사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폴 세잔의 사과입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은 사과 하나로 작가가 된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만하며, 40여 년 동안 사과 하나에만 매달려 그림을 그린 결과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폴 세잔과 동시대 화가였던 모리스 드니는 세계 역사상 유명한 사과 세 개가 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폴 세잔의 사과이다. 보통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폴 세잔은 20여 년 넘게 사과를 그렸지만, 빈번히 작품출품조차 거절당하므로, 은둔 생활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잔은 당시 당대 소설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친구, 에밀 졸라로부터 사과 한 개를 선물로 받은 후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라고 다짐하면서 사과를 그리고 또 그리며,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둘도 없는 친구, 에밀 졸라가 세잔을 주인공으로 하여 실패한 천재 화가(1886)”란 소설을 발표하여, 세잔을 큰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에밀 졸라가 쓴 소설의 주인공은 망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다 목숨을 끊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이후 세잔은 30년 지켜온 우정에 종지부를 찍고, 결별한 후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졸라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동지가 원수가 된 사람들 중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보다 드라마틱한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두 사람은 삼두정치를 하는 동지였지만,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로 인해 조국 로마를 버렸고, 옥타비아누스는 조국을 버린 안토니우스를 용서할 수 없어 벌인 전쟁이, 그 유명한 4대 해전 중 하나인 악티움해전입니다.

일부 사가들은 악티움 해전은 친구가 원수가 되어 일어난 전쟁이었고, 또한 한 여인으로 일어난 전쟁이라 기술하기도 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센티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다시 써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파스칼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싶습니다.

이후 세잔은 절치부심하며 더욱 사과에 집중했고, 때론 싱싱한 사과가 썩을 때까지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사과와 오렌지는 무려 6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터널의 끝이 있었고, 그의 나이 56세 때, 무명의 시절이 끝났습니다.

그는 단순한 빨간 사과가 아닌, 사과 본연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 차별화를 시도함으로 결국 그가 꿈꾸었던 파리를 정복하였습니다. 세잔은 이후 근대 미술 감상자들과 후대의 화가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습니다.

세계 최대 미술의 거장이자 입체파 선구자인 파블로 피카소는 세잔 앞에 고개를 숙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다.” 폴 세잔은 현대인들에게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할 수 있다.”란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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