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선 선교사, "초창기 고신 영성의 맥" 계승한
한국적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김자선 선교사 은퇴 기념 문집 그 나라를 위하여
김자선 선교사 은퇴 기념 문집 그 나라를 위하여

이 글은 김사선 선교사 은퇴 기념 문집에 수록된 김순성 교수의 글이다. 김순성 교수는 "초창기 고신 영성의 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김자선 선교사의 영성을 "한국적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이라고 전한다. 고신 영성의 계승을 소망하며  김순성 교수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 - 편집부

 

주변성을 지향하는 자기부정의 영성과 말씀 선교

- 김자선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을 중심으로 -

김자선 선교사 은퇴 기념 문집 그 나라를 위하여 김순성1) 전,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Th.D), 신대원장 역임.
김자선 선교사 은퇴 기념 문집 그 나라를 위하여 김순성1) 전,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Th.D), 신대원장 역임.

I. 들어가는 글

김자선 선교사는 1986년 고신교단 선교부가 파송한 1호 여성 선교사이다. 그중에서도 독신 선교사이다. 선교사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남성 중심의 선교사 세계에서 그가 태생적으로 지닌 사회적 신분과 위상을 나타낸다. 오래전부터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필자가 김 선교사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교수직 은퇴를 앞둔 시점이었다. 현지 신학교 강의요청을 받고 이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필리핀 북단의 선교지 뚜게가라오(Tuguegarao)와 라굼(Lagum)을 방문했다. 선교현장이 범상치 않았다. 21세기 사도행전 역사가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사역의 질과 양, 깊이와 넓이는 물론 한국의 고신교단 선교사로서, 특별히 독신 여성 선교사에 의해2) 이루어진 사역 현장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선교지와는 확연히 차별성이 있는 선교지였다. 남자도 범접하기 힘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역이 일상처럼 전개되고 있었다. 매일 매 순간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역 현장이었다. 더욱이 독신 여자 선교사에 의해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선교현장은 오늘날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와 서구교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참된 선교란 무엇인지, 진정한 복음 사역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선교사의 영성과 삶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메시지는 안수받은 남자 목사가 아닌 독신 여자 선교사라는 신분의 그늘에 가려져 오랫동안 땅속의 보화처럼 묻혀있었다.3) 이번에 김선교사의 36년 사역은퇴를 기념하여 그의 생애와 사역의 신학적 의의를 간략히 조명하고자 한다.

 

. 펴는 글

1. 김자선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4)

1) 출신과 가풍(家風)

김자선은 19525) 56일 부친 김병율,6) 모친 강복연 사이에 23녀 중 셋째딸로 진영에서 출생했다. 딸로 태어났지만, 그는 보통 여자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특유의 강인한 기질의 소유자였고, 성격이 활달하고 터프해서 어린 시절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부친은 전통적 유교 가풍과는 달리 사고가 개방적이고 유독 정이 많고 남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했고 교육열이 높은 분이었다. 개방적이고 친절했던 부친에 비해 모친은 속정은 깊었으나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한 냉철한 분이었다. 1960년대 국가적으로 가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무척산 중턱 과수원으로 이주하여 도로, 전기가 없는 산간지대에서 살면서 외롭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중학생 나이의 김자선은 낮에는 부모를 도와 남아있던 절반이 넘는 땅을 개간했고, 밤에는 언니, 오빠들이 읽던 세계 명작, 한국 명작, 철학책 등 많은 책을 섭렵하며 주경야독의 세월을 보냈다.

 

2) 신앙과 신학교육

무척산 중턱 과수원에서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면서 김자선은 계속되는 가난과 외로움 등 부침이 많았던 부친의 노년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었고, 극도의 염세주의에 빠져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 몸부림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5년 당시 무척산 기도원장7) 명향식(明香植, 1910-1979)을 만나게 된다. 그의 특별한 사랑으로 197627세 청년의 나이에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어서 동생(김송하 장로)과 불교 신자였던 부모님이 예수를 영접했다. 명향식은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선구자였고 부흥 운동가였으며 1950-60년대 고신교회 형성기의 여성 지도자로서 고신교회 신앙과 영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8) 당시 한국교회의 영적 거목이었던 명향식의 생애 말년에 김자선은 그가 각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키운 마지막 제자였다.9) 명향식은 김자선의 영적 스승으로 무척산 기도원에서 김자선과 함께 생활하며 그의 신앙과 영성을 지도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게 되었고, 허무감에서 벗어나 신비로운 영적 체험과 함께 말씀과 금식기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10) 명향식의 권유와 배려로 197728세 늦은 나이에 고신대학 신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1984년 필리핀 마닐라의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the Philippines) 신학교육의 길이 열렸다.11) 유니온 신학교 재학 중 김자선은 특별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중생과 회심을 경험하며 여러 가지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12) 그 과정에서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 속에 담긴 신학적 비밀에 천착하여 매일 5~6시간을 성령에 이끌려 말씀과 기도에 몰입했고, 그 체험은 일 년 반 동안 지속하였다.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김자선의 하나님이 되면서 그 하나님께 자신의 삶 전부를 드리게 된다.13) 그 일련의 과정은 김자선에게 신학함(doing theology)의 길이자 이를 통해 자신의 전 존재가 변화되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중생과 회심의 과정에서 그는 언약신학,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성령의 인치심, 그리스와의 연합 교리를 온몸으로 체득했고, 그 영적 체험은 김자선의 전 존재와 인생을 바꾸어 놓는 변화의 원리가 되었다.

 

3) 소명과 선교사역

중생과 회심의 체험 후 김자선은 선교사역에 부르심을 받고 198681538세에 고신교단으로부터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받게 된다. 어학연수와 선교훈련 및 선교지 답사를 거친 후 필리핀 변방 최북단의 척박한 지역 뚜게가라오14)를 선교지로 정하고 1989년도부터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그곳은 가난과 무지에 찌든 곳이요, 그러면서도 겁이 날 만큼 사람들이 돈을 알며, 배타적이고 호전적이며, 여기에 공산 반군(NPA) 게릴라들이 출몰하는 위험하고 미개한 지역이었다. 카가얀(Cagayan) 주도(州都)인 뚜게가라오를 거점으로 하여 동서남북 먼 곳에서부터 안으로 전도해 오는 전략으로 사역지를 처음부터 넓혔고, 그 반경 내 지역은 도시와 농촌, 바닷가, 빈민가 정착촌, 산속 정글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영혼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그 지역은 카가얀 주() 외에, 이사벨라(Isabela), 칼링가(Kalinga), 아파야오(Apayao) 모두 4개 주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며 그동안 총 38개 교회(202212월 현재 장년 출석교인 2,363, 주일학교 3,208)가 개척되었다.15) 그중에서도 카가얀주 산지 정글 지역인 라굼과 칼링가주 따북(Tabuk)은 지형도 접근하기가 험난할 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호전적이고, 공산반군(NPA) 게릴라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복음을 전했고, 이후 3천 세대가 흩어져 사는 라굼은 곳곳에 지역 전체의 95%가 복음화되었다.

전도는 노방전도, 축호전도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고, 이와 함께 성경통신학원(Philippine Bible Correspondence Center)16) 성경공부 교재를 배포하여 관심이 있는 자들이 생기면 그룹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예배를 드렸고,17) 사람이 많아지면 교회를 개척하는 방식을 취했다.18) 국민의 80% 이상이 카톨릭 신자이므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호기심이 있는 그들을 위한 최상의 전도전략이었다.

김 선교사의 선교지는 지역도 방대하지만, 선교대상도 천차만별이다. 필리핀은 전통적으로 부족사회라 부족마다 언어와 생활습관이 다르고 지역에 따라 문화적 특성과 수준도 다르다. 선교거점인 뚜게가라오는 카가얀주의 도청 소재지로 중소도시 규모이지만, 대학과 병원, 대형쇼핑몰, 공항 등 상당한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어 문화적으로 앞선 지역이다. 따라서 뚜게가라오 장로교회에는 그 사회의 엘리트들이 상당수 출석하고 있다.19) 반면, 나머지 빈민가, 농촌, 산지 지역의 교회 구성원은 대부분 가난하고 무지한 계층들이며, 산지 부족 중 일부는 아직도 부족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20) 이처럼 경제, 문화적으로 간격이 크고 사회계층이 다양한 이들 모두를 선교대상으로 아우르기는 절대 쉽지 않을뿐더러, 흔치 않은 일이다.

선교사역의 종류와 범위도 영혼 구원 중심의 교회개척 사역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의료, 복지 사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하다. 그동안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Global Reformed University-Theological Seminary)와 교육기관인 국제기독교 학교(Little Jesus Christian Academy, 초중고 과정)와 유치원(15), 캠퍼스 사역과 청소년사역(SFC), 육신을 치료하는 의료진료 팀, 그리고 빵을 만들어 공급하는 공장(King's bakery)까지 운영되고 있다.

 

2. 실천해석학적 관점으로서의 주변성(周邊性, marginality)

지금까지 김자선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을 간략히 고찰하였다. 본 장에서는 앞서 고찰한 김선교서의 선교사역과 실천 그리고 그의 영성과 삶을 분석하기 위한 해석학적 틀로서 실천해석학적 관점인 주변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선교와 상황

선교란 목회와 함께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말씀으로 교회에 세운 직분자들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돌보는 하나님의 실천행위(praxis)가 선교이다. 인간 선교사와 목회자는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동역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프락시스가 진공상태가 아닌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인간 실존이 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인종적 상황은 다양한 권세들(powers)의 집합으로서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조종하며 인간에게 반응을 요구한다.21) 인간 의식의 심층에 형성된 왜곡된 자아상, 대인관(對人觀) 및 신관(神觀) 그리고 왜곡된 사고(思考)와 가치관은 이 권세들이 인간의 생각과 상상력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신앙과 영성도 그 영향권에서 예외가 아니다. 파워 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타락한 권세들의 요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한 마디로 세속 권세의 중심(center)을 지향한다. 그 중심이란 권력과 부와 명예의 자리이자, 소위 안정과 안전의 자리이며, 그 중심을 지향하는 경향성, 즉 중심성(centrality)이 곧 죄의 뿌리이자 우상이다.2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프락시스는 현상태(status quo)와는 전혀 다른 새 질서’(new order),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신자 개인과 신앙공동체의 실천 원리는 전적으로 이 새 질서와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세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와 신앙공동체에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는가? 다시 말해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활동이 실천적으로 임하는 자리는 어디인가?

 

2) 신앙공동체와 주변성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에서 특별한 위치에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죄로 타락한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공동체이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Bonhoeffer)에 따르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중심이며, 이 중심은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세상 역사에 대해 감추어진 중심이다.23) 여기서 본회퍼가 말하는 중심이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중심, 즉 신학적 중심을 뜻한다. 그에게 세계사의 위대한 사건들은 아래로부터, 버림받은 자들, 혐의자들, 학대받는 자들, 힘없는 자들, 억압받는 자들, 욕먹는 자들- 요컨대 고통받는 자들의 관점에서조망(眺望)된다.24) 본회퍼에 의하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주변에 위치한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역사(役事)주변성이야말로 주목되어야 할 실천해석학적 관점이다. 한국계 미국인 신학자였던 Jung Young Lee(이정영)는 이민자로서 그의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성의 신학”(theology of marginality)을 논한 바 있다. 그는 타락한 세속 권세의 관점에서 정의된 주변’(margin of centrality)이 아닌, ‘주변성의 관점에서 정의된 새로운 주변’(the margin of marginality)"창조적 핵심"(the creative core), 새로운 중심”(the new center)이라고 표현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바로 그 창조적 핵심이며, 성부, 성자, 성령이 임재하는 자리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진정한 중심"(the authentic center)이다.25) 이를 중심으로 모인 새로운 주변공동체”(new marginal community)가 바로 교회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탁월한 주변인”(the marginal man par excellence)이었다.26)

 

3) 하나님의 임재와 실천의 자리로서의 주변성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역사의 주변성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은 인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주변을 향해 계속 이동하시는 하나님”(deus mobilis: a moving God)으로 나타난다.27)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로, 가나안에서 다시 바벨론 포로로 이끄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와 실천이 기존질서의 중심에서 탈중심화의 역사, 즉 주변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8) 애굽의 압제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오시는 하나님(3:7-10), 세속 문명과 단절된 광야에서 거룩한 백성에로의 신적 소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19:6),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상실하고 가나안의 풍요에 안주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로 내모는 하나님의 프락시스는 자신의 구원역사의 주변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주변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계시의 정점에 이른다. 베들레헴의 말구유 탄생, 나사렛에서의 성장,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사역, 죄인과 세리의 친구,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죄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 사역이 철저히 주변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말씀의 중개(仲介)행위로서의 선교와 목회사역

선교와 목회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프락시스(praxis), 인간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믿음으로 이 신적 프락시스에 참여한다. 그렇다면 그 사역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화란 신학자 J. Firet에 의하면 목회사역에 있어서 목회적 역할성취의 핵심은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중개자(intermediary)로서의 목회자의 공적 사역을 통해 말씀 속에서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다.29) 선교사역과 선교사의 역할도 이와 동일하다. 사역의 대상이 자국인이 아닌 타문화권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원리를 선교에 적용하면 선교사역이란 말씀을 통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을 선교사가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30) 이 중개 행위는 세 가지 양식(modus)을 통해 이루어진다. 선교사(목사) 직분을 통해 수행되는 설교(kerygma), 교육(didache), 상담(paraklesis)이라는 실천행위가 그것이다. 이 세 양식을 통해 말씀의 중개역할이 올바로 수행될 때, 청자 속에서 말씀의 역동이 일어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이 체험된다.31)

Firet에 의하면, 말씀의 역동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두 가지 모멘트로 일어난다. 한 가지는 해석학적 모멘트로서 청자의 마음(지성)에 새로운 차원의 의미전달과 함께 새로운 이해와 깨달음을 일으키는 순간을 말하며, 다른 한 가지는 인도적(引導的) 모멘트로서 청자의 마음(감정과 의지)에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motive force)이 역사하는 순간을 말한다.32) 이 과정을 통해 청중이 회심, 치유, 성화 등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역의 핵심은 인간적인 열심이나 인위적 기교, 프로그램 또는 방법이 아니라, 말씀의 바른 중개역할이다.

그렇다면 말씀의 바른 중개역할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가? 선교사에게 임하는 말씀의 주도적 역사에 대한 신앙적 반응으로서의 사역자의 기도를 통해 일어난다. 인간의 기도행위 그 자체가 말씀의 중개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선교자에게 말씀의 중개역할 수행을 위한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주도적 역사에 대한 믿음의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이다.33) 그렇다면, 말씀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반응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말씀의 주도적 역사를 향한 전적 개방과 수용의 태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믿음으로 바라고, 사모하고, 갈망하고, 간구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영의 상태가 바로 능동적 수동성(an active passivity)”으로서의 참된 기도의 자리이다.34) 요컨대, 선교사의 바른 기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씀의 중개역할이 수행되며 여기에 말씀의 역동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프락시스가 회중에게 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도는 여러 사역 중 하나의 실천행위가 아니다. 선교와 목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구원의 프락시스, 즉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을 가능케 하는 길이요, 하나님 나라 사역의 정수(精髓)이다.

 

4. 주변성에 기초한 김자선 선교사의 영성과 말씀 선교

본 장에서는 앞서 고찰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주변성과 말씀의 사역원리에 비추어 김자선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을 신학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1) 주변인 김자선 선교사

독신 여성 선교사 1호로 고신교단의 파송을 받은 김자선은 흥미롭게도 여러 면에서 주변인의 특성을 두루 지닌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그는 태생적으로 주변인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고유의 인권과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요, 주변인으로 존재해 왔다. 이 점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는 보수 교단의 풍토 속에서 그는 평신도 신분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남자 선교사도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헌신과 열매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례식을 인도할 수 없는 차별을 받아야 했고, 이로 인해 사역에 많은 제약과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35) 여자 중에서도 그는 평생을 홀로 살아가는 독신 여성이다. 눈에 보이는 보호자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약자 중의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다. 그렇다고 그에게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교육 배경이나 지도자적 자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문제아, 중학교 때는 반항아,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아웃사이더였다.36) 기독교 배경도 전무하다. 불신 가문에서 자라나 27세 성년의 나이에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인의 권유에 이끌려 기독교에 입문했다. 그는 신학교육도 정규과정을 제대로 수료하지 못했다.37) 그뿐 아니라, 왜소한 체구에 늘 병과 함께 살 정도로 몸이 약하디. 사교성도 없고, 음치에 무뚝뚝하고 다른 사람과의 친화력도 부족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도 변변찮다. 남들을 앞서 이끌어 갈 지도자적 자질도 그에게는 없다.38) 오히려 자신의 과거 자화상을 패잔병으로 고백할 정도로 그는 사회적 부적응자에 가깝다.39) 심지어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자기합리화나 하는 그런 불출(不出),” “천하의 무능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같은 모욕적인 취급을 받기까지 했을 정도로 그는 제도권 사회의 주변인이다.40) 하지만, 중생과 회심을 체험한 이후의 선교사 김자선은 자연인 김자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주변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중심(中心)에 서 있는 자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와 부활 생명을 매 순간 호흡하며 사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죽음도 불사하고 미전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강한 전사(戰士). 그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고 지역 사회에 총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 있는 지도자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고후 6:8-10).

 

2)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동행

김자선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움직이는 결정적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깊이이다. 그 차원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깊이이자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관련된다.41)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있음을 매 순간 경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다. 열등의식과 분노, 허물과 실수로 가득한 자신을 조건 없이 용납하시고 인격적으로 다루시는 그 사랑을 삶 속에서 몸소 경험하며 그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값비싼 향유를 깨트려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던 여인 마리아처럼, 선교사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도 이후 선교사역을 향한 모든 헌신도 그 사랑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행위로 나타난다. 그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는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적 삶의 방식이다. 그의 영적 스승 명향식이 그러했던 것처럼, 순간순간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음성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분과 교제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와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친구요, 연인이요, 그를 보호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요, 그를 위해 싸우는 사령관이자, 그의 힘과 방패요, 그가 무릎 꿇고 경배하는 왕이 된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깊이는 그의 삶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역 초기 선교지 선정을 놓고 그는 금식기도 중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네델(Nedel; Nazarite 헌신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받는다.42)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41:8)이 주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사람에게는 흔치 않은 사례다. 또한, 사역 도중 공산 반군(NPA) 게릴라의 공격을 받아 가까스로 사선(死線)을 통과한 후 하나님께 항의하듯 대들면서 기도하는 모습, 말씀으로 주님과 깊이 대화하는 모습도 우리의 시선을 끈다. 이후 기도 응답으로 캄캄한 밤 위험한 산길에서 천사의 에스코트를 받는 모습은43)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님과의 관계의 깊이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깊이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영혼 사랑의 깊이로 직결되어 나타난다. 미전도 지역인 산속 정글 라굼에 있는 3천 세대 영혼들을 발견했을 때, 그는 두려움과 흥분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내 심장의 뜨거운 불꽃을 보았다고 구령(救靈)의 열정을 토해낸다. 자기 목숨을 담보하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위험한 곳임에도 자기 목숨보다도 영혼들을 귀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고백이다. 이어서 그는 그곳의 영혼들이 예수 믿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그들의 사망유예를 하나님께 요청하며 기도한다.44)

 

하나님, 저 땅이 내게 주신 땅이라면 우선 저의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이 사람들을 죽음에 부치지 말아 주십시오. 대신 제가 이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부지런히 전도하겠습니다. 저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달마다 사흘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약속하겠사오니 저도 이들의 야만적인 행동에서 보호해 주세요.

 

이 기도는 소돔 성()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한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복음 전도가 불가능한, 지극히 위험하고 심령이 완악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이 김자선 선교사의 마음속에 그대로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그 기도는 응답되어 하나님은 7년 동안 이들을 죽음에 붙이지 않았고, 그의 전도로 그 지역의 수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 현재 14개 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사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신 것이다. 김 선교사의 36년 선교사역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통한 하나님과의 동행의 역사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 주변성을 지향하는 자기부정과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영성

김자선 선교사의 사역 전반에는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활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주변성이 곳곳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자기부정과 지사충성의 영성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매 순간 내 뜻을 내려놓고 성령이 이끄시는 방향을 선택하는 그 여정은 언제나 모험이 요구되는 위험한 길이요, 안전과 안정을 위협하는 길이요, ‘내가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낯선 이국(異國)땅에서, 그것도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제3국에서 안전은 선교사에게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이다. 독신 여자 선교사에게는 훨씬 더 민감한 사안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당시 현지 선교부가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Cebu)에서 함께 사역할 것을 권고했지만, 김자선 선교사는 그 제안을 뿌리치고 뚜게가라오를 선택한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곳임을 알고도 선택한다. 현장 답사 때 그곳은 온몸에 소름이 칼날처럼 돋을정도로 어둠의 영이 엄습한 곳이었고, 두려워 떨면서 주님, 여기는 싫습니다라고 울부짖었던 곳이었다. 그런 험지를 오랜 기도와 말씀, 금식, , 음성을 통해 주님이 보내신 선교지로 확신하고 그는 기꺼이 선택한다. 죽음을 각오한 자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행위다. 김자선 선교사에게 선교사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는 사람이며, 선교사의 소명은 사역지에 뼈를 묻는 것이다.45) 사선(死線)을 넘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 때 고신(高神)의 선배들이 보였던 일사각오(一死覺悟),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영성과 그대로 맥을 같이한다.46)

사역지에서 전도할 곳을 선택할 때도, 말씀을 전할 때도 그는 언제나 자기 뜻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순종한다. 뚜게가라오 지역만으로도 선교지로서 충분한데, 그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그분이 예비하신 영혼을 계속 찾아간다. 깊은 산속 정글의 미전도 지역 라굼과 따북이 그런 곳이다. 공산반군 게릴라의 공격과 원주민의 살해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는 계속 복음의 씨를 뿌렸고, 그 과정에서 수차례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다. 강의 위험, 총과 칼의 위험,47) 태풍, 홍수, 폭염 등 자연재해의 위험, 사고와 질병의 위험, 거짓말, 이간과 배신 등 사역 중 그가 겪은 위험은 사도 바울이 겪은 위험과 방불하다(고후 11;26). 그런데 이런 위험 상황을 통과하면서 사역지 교회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장한다.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 일어난 현지상황은 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온라인 예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예배를 사수(死守)하기 위해 준전시(準戰時)와도 같은 곳곳의 감시와 봉쇄망을 뚫고 예배를 계속하고, 부활절에 모든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 코로나 기간에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은48) 오늘의 한국교회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김자선 선교사 사역에 나타난 주변성은 후원금 문제와 관련하여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는 그의 Faith Mission49) 원칙에도 나타난다. 이 원칙 때문에 본인의 의식주 생활에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고, 교회의 기도와 재정후원을 받기 위해 선교현장을 가능한 한 빨리 개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지가 완전정착하기까지 선교지 미개방 원칙을 고수했다. 또한, 그 정신으로 사역에 임해 영혼 구원의 열매를 거두었기에 그는 교회당 건물을 먼저 짓고 사람을 모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돈이 없어도 선교가 가능했고,” “예배당이 없어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만 있으면 가능했다”50)

 

4) 하나님 말씀에의 경외심과 금식기도

김자선 선교사는 말씀의 사람이다. 앞서 3장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말씀을 통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을 중개하는 말씀의 중개자요, 그의 선교사역은 말씀의 중개 사역이다. 중생과 회심을 통해 그에게 말씀의 세계가 열렸고, 이후 말씀은 그의 삶과 선교현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51)

 

그러나 내게 인간적인 세계에서 정을 떼게 한 것 또한 말씀이었다. 예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만난 이후, 나는 그분의 말씀에 녹았고 그분의 인격에 매일 감동받고. 그분의 세계가 나를 번번이 매료시켰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 이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본 적도 없다. 목마를 때 그 말씀이 나에게 생수가 되어주었고, 또 한편 배가 고플 때 말씀의 역사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경으로 이 끌었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그 말씀은 살아서 역사했고, 자신의 삶과 사역 현장에서 사건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설교할 때 회중의 숨은 죄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해 설교하면 교인들 가운데서 초상이 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52) 이를 통해 교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선교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때때로 그 말씀은 전혀 뜻밖의 책망으로 자신에게 임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는 말씀의 권위 앞에 겸손히 무릎 꿇었다. 심지어 자신의 자랑스러운 사역의 열매에 대해서 무섭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벌 떨면서 오랫동안 엎드려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53) 그 과정에서 말씀 없는 보호, 말씀 없는 축복,” “하나님 떠난 성공, 하나님 떠난 부요함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절감한다.

김자선 선교사는 종종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다. 금식기도는 그의 영적 스승 명향식이 자주 수행한 영성 수련의 방편이었고, 예수를 믿자마자 자신도 강한 금식훈련을 받았다.54) 금식기도는 영혼의 굶주림을 몸으로 표현하는 몸의 언어이며, 금식기도를 통해 육적인 성향이 죽고 영이 맑아지면서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는 은혜의 방편이다. 이 때문에 뚜게가라오 선교지는 매월 첫 주 모든 현지 사역자와 교회 직원 그리고 자원하는 성도들이 모여 3일간 금식을 한다.55) 이 일은 어떤 행사보다도 최우선 순위로 지켜오고 있는 그곳 선교지 고유의 영성훈련 장()이자 교회 전통이다. 금식기도뿐만 아니라, 김선교사에게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는데 가장 큰 효과를 경험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을 붙들고 일관되게 기도한다.56) 김자선 선교사에게 말씀과 기도는 하나이다. 그는 말씀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며57) 또한, 성령의 사람이다.

 

 

5) 성령론적 소통과정으로서의 설교관

김자선 선교사에게 설교는 성령이 주도하는 말씀의 프락시스이다. 여기에는 성령께서 친히 본문(text)의 내용은 물론 설교자 및 청중과 소통하시며 그들의 삶까지 해석에 관여하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설교자에게 성령은 그의 기도와 함께 역사한다. 김자선 선교사의 설교에 성령의 임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뚜게가라오 현지인 침례교 목사 Bert Martinez는 김자선 선교사의 설교와 기도에 대해 자신이 느낀 점을 이렇게 말한다.58)

 

비록 김선교사의 기도와 메시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에 그의 기도의 엄청난 감화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도는 내게 주님께 더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새벽기도회 참석은 나의 매일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의 설교에서 성령은 언어적 한계를 초월해 역사함을 보여준다. 이 점에 대해 김선교사 자신은 이렇게 고백한다.59)

 

말씀의 역사가 놀라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하다보면 나 역시 말씀의 역사를 느낀다.

비록 어눌하고 부족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셈이며, 예배를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긴장할 때 내 영혼도 새로워지는 느낌이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그의 설교에서 성령은 청중과도 소통한다. 설교자가 마치 그들의 삶을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60)

 

그들은 말씀의 역사를 두려워했다. 아무도 선교사에게 말하지 않는데 선교사는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죽음이나, 방화, 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교사가 말하는 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설교자로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전하기를 늘 갈망한다.61) 설교를 인간의 기교나 방법이 아닌, 성령이 주도하는 프락시스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자선 선교사는 자신이 전할 메시지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 이러한 그의 설교관은 평소 설교에 임하는 그의 태도에 잘 나타난다. 김자선 선교사의 지난주 설교를 주보에 게재하기 위해 영어로 요약, 정리하는 일을 돕는 Mangoma Victor는 이에 관해 다음 두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두려움으로 대하는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가능한 모두가 이해하도록 집요하게 애쓰는 모습이다.62)

 

내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대하지 않고 두려움으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강조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만왕의 왕의 말씀(the Word of the King of Kings)이 며, 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와 직결됨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설교문 수정작 업이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계속 성경으로 돌아가 그 뜻을 재확인했고, 때로는 다른 역 본을 참조했다. 한편으로, 김선교사는 청중이 그의 설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 했다. 그는 반복해서 내게 묻곤 했다. “청중이 그 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 여기에 사용된 용어가 그들의 마음에 은혜로 다가갈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나의 대답이 부정적일 경우 우리는 계속 다른 표현과 예화를 찾았고, 이 작 업은 새벽까지 갈 때도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난 후에도 그는 나에게 수정과 보완을 요청했다. 이런 요소들, 특별히 그의 매일의 기도의 삶이 어우러져 설교가 만들어졌고, 그 설교는 우리의 죄와 부주의한 삶에 대한 애통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살도 록 결단하게 했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Michael Orpilla는 김선교사의 설교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63)

 

김 선교사의 설교는 보통 3시간 지속한다. 핵심 내용은 1시간으로 족하지만, 청중 가운데 한 사 람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요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는 또한,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 의 말씀에 청중들이 기도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영적 권위로 설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 다. 그는 비록 영어는 유창하게 못 하지만, 그의 권위는 다른 목사들과는 근본적으로 차별성이 있다. .... 그는 우리에게 기도할 때 온몸으로 기도하라. 야베스의 기도처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언제나 말한다.

 

김자선 선교사의 설교 메시지 내용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기도의 중요성, 하나님 말씀의 보화,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대가로서의 고난과 영광이었고,64) 예배가 끝나면 모든 회중은 선포된 말씀 앞에 엎드려 눈물과 회개의 기도로 응답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다. 이 모습은 1950~60년대 한국의 초창기 고신교회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65)

 

6) 자기희생과 사랑, 성결의 리더십

현지 사역자와 성도들에게 김자선 선교사는 여러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선한 목자이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자기희생적 헌신과 사랑의 모습을 그들은 공통으로 증언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그는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많은 선교사와 주의 종들이 그들의 양들을 떠나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는 우리를 떠날 생각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 의료 검진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들을 돌보기 위해 그 필 요조차 무시했다. 그의 기도와 희생 때문에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지 않 았다. 모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며 그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의 참된 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생명 줄이었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결코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 그리고 정규기도 모임을 멈추지 않았다(볼드 이텔릭체 첨가).66)

 

나는 그가 주님이 맡기신 선교지에서 어떻게 자신의 모든 시간과 힘과 삶을 선교를 위해 바치는지를 보았다. 질병, 자연재해(태풍과 홍수), 박해 때문에 거의 죽음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따가로그어로 “Patay kung patay(죽으면 죽으리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우리에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임을 보여주는 산 모범이었다. .... 그는 우리에게 단지 말이나 교회 행정으로 우리를 가르치지 않았고, 자신의 희생적인 삶과 눈물, 그리고 땀과 고난을 견디는 인내로 가르쳤다. .... 그를 통해 우리는 성경 지식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진리를 배웠다. .... 그는 우리를 자기 제자로 만들지 않고, 예수 그리 스도의 제자로 만들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바르고 거룩한 삶의 길을 보여주었고, 바울처럼 우 리에게 모범이 되었다(고전 11:1)(볼드 이텔릭체 첨가).67)

 

영적 지도자로서 그의 리더십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따뜻한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 외형적으로는 부성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성적 사랑이 깊이 느껴진다. 이런 모습 역시 가까이서 김자선 선교사를 겪은 현지인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호랑이지만, 속에는 정말 부드럽고 깊은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도 그는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는 항상 내가 다시 일어나 새롭게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는 내게 어머니와 같은 분이다. 내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아들이 큰 인물이 되기를 기대한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68)

 

처음에 나는 그가 매우 엄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그를 매우 무서워했다. 그가 나를 부를 때면 야단을 맞을까 봐 벌벌 떨었다. 심지어 테이블 아래 숨기도 했다. .... 그를 더 많이 알아갈수록 그 두려움은 사랑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 강한 개성 배후에 사랑과 긍휼로 가득 한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무조건적 사랑을 지닌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항상 나 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을 하라고 가르쳤다(볼드 이텔릭체 첨가).69)

 

김선교사가 이곳에 오랜 세월 머물며 우리를 위해 행한 헌신과 섬김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의 영적 지도자로, 영적 어머니로, 그리고 영적 조언자로 기름부어 세우셨다(볼드 이텔릭체 첨가).70)

 

많은 사람이 김선교사를 엄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무서워한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열고 그분과 대화하면 마치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지혜와 분별력으로 인해 대화 후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에 큰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볼드 이텔릭체 첨가).71)

 

또한, 김자선 선교사가 영적 지도자로서 성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이다. 강단에서 회개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개를 통해 죄에 대해 죽고 성화에 이르기 때문이다.72) 특별히 성적으로 문란한 필리핀에서 그는 혼전순결을 강조하며, 그것을 지킨 남녀에게만 교회당에서 결혼식 주례를 시행한다.

 

7) 통전적 변혁을 지향하는 전인선교(holistic mission)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자선 선교사의 선교 열매는 규모 면에서 방대하다. 4개 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총 38개 교회개척, 장년 출석교인 2,363, 주일학교 3,208명이라는 통계가 그것을 보여준다. 잠재적 교회인 40곳의 전도소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주목할 것은 외적인 규모보다 사역의 내용과 질이다. 그의 선교는 단지 교회개척을 넘어 통전적 선교모델을 지향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말씀 중심의 그의 선교사역은 복음과 빵’, 즉 영혼과 육체의 전인적 필요를 함께 채워주는 전인적 구원 사역이다. 선포된 복음이 그들을 미신과 우상, 무지와 가난, 질병으로부터 해방하여 개인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여기서 나아가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그 도덕적, 영적 영향력이 지역과 사회로 확장된다. 개인과 공동체, 교회와 지역사회가 총체적 변혁을 경험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그곳 선교지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라굼이다. 미전도지역으로 3천 세대(6개 부락, 29개 마을)의 토착 원주민이 산속 정글 곳곳에 흩어져 사는 라굼은 옥수수가 주식이며 교통수단이 말과 물소, 나룻배로 전기 등 문명의 혜택이 전무한 곳이다. 이곳에 복음이 전파된 지 26년이 지난 지금, 14개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고, 도덕적, 윤리의식의 변화는 물론 곳곳에 도로와 교량이 건설되고 전기도 들어오는 등 문명의 발전과 함께 삶의 질이 현저히 향상되었다.73) 복음이 전파되기 전 그곳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김자선, 강정인 선교사가 복음을 전한 이후의 모습에 대해 Bert Martinez 목사는 이렇게 증언한다.74)

 

1970년대 내가 비즈니스맨으로 라굼을 자주 방문했었는데, 그 지역은 밀매업자들이 그곳에서 불법으로 벌목한 최고급 목재를 숨겨두는 은닉처였다. 그곳 사람들은 라굼의 거대한 자연과 숲 에서 채취한 목재와 다른 많은 자원을 밀매하여 돈을 벌었다. 밀매와 불법 무역으로 돈을 쉽게 벌었기에 그 지역 사람들과 정상적이고 정직한 거래를 하기가 어려웠다. ..... 지난 20년을 미국에서 보내고 다시 돌아와, 라굼의 비즈니스 업계와 공동체 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획기적인 변화를 그곳에서 목격하고 너무도 놀랐다. 라굼은 더 이상 불의하고 부정직한 사업을 하는 자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정직한 사업과 무역이 실천되는 공동체로 꽃피우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의사, 엔지니어, 교사와 같은 전문직이 활동하는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라굼 안에 모든 공동체로 힘있게 확장하는 11개 장로교회[202212월 현재 14개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김자선 선교사의 사역의 결과로, 기독교 공동체의 현존이 어떻게 라굼 지역 전체에 변화의 영향력을 일으키는 엄청난 요인이 되었는지를 실로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였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라굼 지역 전체의 평균 95%가 복음화되었고 교회가 처음 개척된 1라굼(Alitontong)99%가 복음화되었다.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교인이며 Cagayan 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Jay Emmanuel Asuncion는 이렇게 기술한다.75)

 

강정인 선교사와 함께 김자선 선교사의 희생과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복음전파를 향한 헌신으로 수많은 생명이 변화되었다. 특별히 라굼의 한 부락인 밤방(Bambang)술주정꾼들, 도박꾼들, 사고뭉치들로 가득했고, 높은 범죄율과 폭력이 난무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곳은 평화로운 곳이 되었다. 한편으로, 뚜게가라오 장로교회와 자매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상당수가 전문직업인들이다. 이런 변화는 복음을 통한 부흥(revival)의 명백한 증거이다. 모든 교회 성도들은 두 분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삶과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볼드 이텔릭체 첨가).

 

J. E. Asuncion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김자선, 강정인 두 선교사의 사역을 통해 변화된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9명의 전임사역자의 삶의 경험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서 일어난 선교사역의 열매를 부흥(revival)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부흥이란, 단지 교인수의 증가를 뜻하는 양적 부흥이 아니다. 청교도 전통의 로이드 존스(Martin Lloyd Jones)가 말한 개인의 내적 변화와 동시에 외적으로 사회적 변화의 영향력을 수반하는 신앙공동체의 삶의 질적 변화를 뜻한다. 그의 논문에서 그는 뚜게가라오와 라굼의 선교사역을 무지, 가난, 폭력, 불의로 신음하는 필리핀 상황에서 진정한 부흥의 모델로 평가, 제시한다.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전임사역자들이 그 중심에 있었고 그들을 통해 교회와 지역 공동체에 부흥이 확산되었다고 기술한다.

 

오늘날 [필리핀] 교회들이 사회 속에서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들이 불신자들에게 비난받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과 교인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영역에 영향을 미칠 힘이 교회 안에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연구한 뚜게가라오 전임사역자들에게 내적 변화가 일어났고 그 변화가 그들에게 교회를 더 열정적으로 섬기게 했고, 그들의 신앙과 경건에 더욱 열심을 내게 했다. 그들은 지역교회와 더 확장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변화를 일으키는 핵심 인물들이 되었다.76)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전임사역자와 나의 경우, 우리의 주()요 구주(救主)이신 예수 안에서 발견한 소망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았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신앙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고, 이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난하고 문제 많은 가정에서 성장한 우리의 삶은 실로 엄청나게 변화되었고 완전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복음 전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소유한 내적 변화의 결과이다. 특별히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전임사역자들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가난하고 지친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 속사람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재능, 능력, 기술과 모든 힘을 사용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긍휼과 친절, 관용을 베풀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눈다. 소망이 없던 사람에서 변화된 사람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교회와 지역 공동체 사람들의 삶에 창조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들은 살아있는 간증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창조적 간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볼드 이텔릭체 첨가).77)

 

한편으로 J. E. Asuncion은 뚜게가라오 교인들이 그들이 받은 복음을 통해 가난과 무지에서 해방되어 사회적 신분 상승과 함께 영적, 사회적 변화와 부흥의 창조적 주역이 되었음을 논증하면서도 그의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게 강조한다.

 

뚜게가라오 장로교회는 교인들의 사회적 신분 상승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회의 민초(民草)들을 향해 그 사명을 항상 수행해야 한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사회적 약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복음 선교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78)

 

뚜게가라오 선교지 교회는 물론 오늘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주목하고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필리핀 사회는 여전히 부정, 부패와 불의가 난무하고 있고, 대다수 국민이 가난과 무지에 시달리고 있다. “세상의 빛으로, “산 위에 세운 동네, 필리핀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며 뚜게가라오와 라굼 선교지에 꽃피운 김자선 선교사의 통전적 선교사역의 열매는 이 점에서 완료형이 아니라 계속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한다.79)

 

 

. 나가는 글

지금까지 김자선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의 의의를 실천신학적으로 고찰, 평가하였다. 그의 삶과 사역의 근본 동력인 영성과 사역원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변성을 지향하는 자기부정의 영성과 말씀선교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영성이 하나님 경외(코람데오)와 회개에 대한 강조와 함께 일사각오(一死覺悟), 지사충성(至死忠誠), 여주동행(與主同行)으로 표현되는 초창기 고신 영성의 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김자선 선교사의 영성과 뚜게가라오 선교현장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실로 의미심장하고 강력하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교회와 복음 사역자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곳은 내가 철저히 죽는 자리,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자리이다. 오직 그곳에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내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역동적으로 임한다는 것을 김선교사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통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나아가, 그의 영성과 삶은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해 회개의 시급성을 촉구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력이 권력으로, 소명이 직업으로 변질된 오늘의 목사와 선교사들, 신앙이 사사화(私事化)되고 게토(ghetto)화 되어버린 오늘의 한국교회, 그 결과 사회를 향한 영향력을 상실한 채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속히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돌이킬 것을 경고한다. 이 회개는 김자선 선교사를 파송한 고신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80년 전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로 신앙과 영성이 변질, 타락되고 비틀거릴 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정통신앙과 고신 영성의 불씨가 오늘 우리 안에 되살아나야 한다. 그리하여 그 신앙과 영성이 한국 땅에 그리고 선교지 곳곳에 부흥의 불씨가 되어 확산하여야 한다. 이는 미래 한국교회와 선교지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에 소망의 빛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때 필리핀 변방에 고신 영성의 불씨를 남겨두시고, 가장 약하고 작은 자를 통해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신비의 하나님을 무릎 꿇어 경배하며, 김자선 선교사의 지난날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미주

1) ,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Th.D), 신대원장 역임.

2) 1991년도 이후부터 같은 독신 여성 선교사인 강정인 선교사(1963년생, BTh, 고신교단 파송 2호 여성 선교사)와 함께 동역하고 있다. 강정인 선교사는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에서 만나 그때부터 서로 교제한 사이이며, 언니와 동생으로, 그리고 바늘과 실처럼 분리될 수 없는 동역 관계이다. 김선교사 곁에는 강선교사가 그림자처럼 늘 동행해 왔기에 강선교사를 떠나서 김선교사의 사역을 논할 수 없다.

3) 김자선 선교사 사역에 관한 문헌 자료는 몇몇 기고문과 15년 전 본인이 저술한 자서전 형식의 책 한 권이 전부이다. 김자선,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서울: 중앙 m&b, 2007). 앞으로 최근까지의 사역내용을 보완하여 국내는 물론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교회와 그 내용을 공유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사료된다. 그 외에 학술논문이 한편 있는데 필리핀 현지 Cagayan 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Jay Emmanuel Asuncion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Jay Emmanuel Asuncion, "The Journeys of Evangelizing Mission by Tuguegarao Presbyterian Fulltime Workers Toward Transformation." (Ph.D. dissertation, Asian Social Institute of the Philippines, June 2019). Asuncion 교수는 필리핀 현지에서 김선교사에게 전도받은 Tuguegarao 장로교회 교인이며, 이 논문 은 김선교사의 선교사역이 필리핀 지역 사회에 어떤 변혁을 일으켰는지를 인류학 관점에서 연구한 논 문이다.

4) 본 장의 내용은 김자선 선교사와 두 번에 걸친 대면 인터뷰와 문서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된 것이다.

5) 호적상의 연도이며 실제 출생연도는 이보다 2년 앞선 1950년이다.

6) 일제강점기에 전매서에서 근무했고 광복 이후 경남 진영읍 의회에서 초대의원을 지냈다. 이어서 당시 종합 일간지 자유신문 국내 특파원, 기자단 단장(금창지구), 부산 동성학원 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5.16 군정 이후 김해 생림면 무척산 중턱 과수원으로 이주하여 말년을 보냈다.

7) 무척산 기도원은 1953년 당시 여성 부흥사였던 명향식 전도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경남 김해군 생림면 생철리 산 211번지(마사로 36-186) 무척산(無隻山)에 버려진 절간을 보수하여 20평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한 것이 무척산 기도원의 시작이었다. 참고. 이상규, “고신교회의 여성지도자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7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 70년사 편찬위원회(서울: 총회출판국, 2022), 418.

8) 이상규, 위의 책, 416. 북한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추종하다가 실망하고 월남하여 성령을 체험하고 부흥강사로 활동하던 명향식 전도사는 1953년 한상동 목사의 초청을 받고 부산 삼일교회에서 한 주간 집회를 인도하면서 고신교회를 알게 되어 고신교단(1952. 9. 11 창립)에 적을 두게 되었고, 이후 고신의 여성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책, 417.

9) 명향식은 김자선을 전도하고 3년 후 소천했다. 비록 3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자선은 그를 통해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았다.

10) 김자선,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서울: 중앙 m&b, 2010), 199-203. 명향식의 권유로 3일간 금식을 하면서 이전에 몰랐던 세계를 환상으로 보았고, 진리를 확신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11)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는 20세기 초 미국 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장로교 신학교와 감리교 선교사가 세운 감리교 신학교가 통합하여 설립된 필리핀의 개신교 초교파 독립신학교이다. 김자선은 아시아 지역 연합신학교의 위탁을 받아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석사(ThM) 과정을 수학했다.

12) 김자선,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05-216. 본서에서 저자는 자신의 영적 체험을 중생 체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체험은 회심을 포함하고 있다. 칼빈에게 중생은 회심과 성화를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지만, 이후 청교도 신학자들은 중생은 하나님 편에서 일하심으로써 일어나는 영혼의 수동적 변화의 측면을 나타내고, 회심은 인간 편에서의 반응으로써 영혼의 능동적 변화의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분했다. 참고. William Ames, The Marrow of Sacred Divinity 신학의 정수서원모 옮김(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212-213. 김자선의 영적 체험에는 하나님 주도의 중생 체험과 함께 이에 대한 김자선의 능동적 반응으로서의 회심의 체험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반되고 있다.

13) 중생과 회심 체험 과정에서 투시의 능력과 꿈, 환상 등 여러 가지 신비한 영적 은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자선은 그의 스승 명향식이 걸었던 길, 즉 자신이 받은 신유의 은사를 스스로 포기하고 오직 말씀의 은사만을 사모했던 길을 그대로 쫓아, 신비한 은사에 경도되지 않고 오직 말씀 속에 숨겨진 영적 비밀과 보화에만 집중했다. 참고로 명향식은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그의 설교를 들은 박윤선 교수가 나보다 더 개혁주의라고 평가했다. 김자선 역시 신비한 성령의 은사를 누구보다도 다양하게 깊이 체험한 자이면서도 신학적으로 철저히 말씀 중심의 개혁주의 신학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4) Tuguegarao는 현지원주민 이바낙(Ibanag)어로 불로 파서 조각된 곳이라는 뜻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기온이 42도까지 올라가는, 필리핀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이며 이 때문에 선교사들이 기피하는 지역이다. 참고. Asuncion, Jay Emmanuel, 박사학위 논문, 25.

15) Cagayan주 내지(內地)13 교회(Tuguegarao. Aparri, Basi, Dassun, Natappian, Cordova, Iraga, Lanna, Roma, Alibago, San Antonio, Cadaanan, Liwan), Cagayan주 산지 및 정글 지역에 22 교회(Callao, Sisim, Bugatay, Capstone, Parabba, Cunig, Cabasan, Bayan, 1st~14th Lagum), Kalinga주 산지에 2 교회(1st, 2nd Tabuk), Isabela주에 1 교회(San Pablo) 38개 교회이며, 김자선, 강정인 두 선교사와 13명의 현지 교역자들이 순회하며 예배 인도와 심방을 하고 있다. Apayao주에는 아직 교회가 개척되지 않았고 2022년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뉴기니섬에 걸쳐 사는 소수족으로 차별받는 원주민 네그리토(Negrito)족에게도 복음을 전해 성경공부반을 인도하고 있다.

16) 미국 남침례교에서 발간한 교재이다.

17) 229월 현재 40곳의 전도소가 있다.

18)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31f. 김선교사는 돈으로 교회당을 먼저 지어주고 그곳에 사람을 불러 모으는 선교방식을 따르지 않고, 사도행전의 방식대로 오직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이 보내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쳤고 그 결과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19) 출석 교인이 359여 명(202212월 현재)이며 그중 교수가 9, 의사 3, 치과의사 1, 회계사 2, 변호사 1, 초중고 교사가 23, 그리고 토목, 전기, 전자공학분야 엔지니어가 10명으로 모두가 청소년사역(SFC)을 통해 배출되었다.

20) 그들이 사용하는 부족 언어가 이바낙(Ibanag), 이따위스(Itawis), 일로카노(Ilocano) 3가지이며 예배할 때는 필리핀 공식어인 영어와 따가로그(Tagalog)가 사용된다.

21) Edward Farley에 의하면 상황이란 주어진 환경 속에 여러 다양한 소문거리들(items), 권세들(powers), 사건들(events)이 참여자들로부터 반응을 요구하기 위해 함께 모여 있는 방식이다. 신자 개인과 공동체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황적 요소들, 예를 들어,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 국제 질서 등에 대해 신앙적으로 반응하며 해석한다. ,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해석은 신앙공동체가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해석과정과 함께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여기에 왜곡, 변질의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따라서 바른 신앙형성에 있어서 성경해석 외에 상황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참고. Edward Farley, “Interpreting Situations: An Inquiry into the nature of Practical Theology”, Lewis S. Mudge & James N. Poling (eds): Formation and Reflection, The Promise of Practical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8-11.

22) Jung Young Lee,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31 & 107.

23) D.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Eine Dog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 (ed) J. van Soosten, Dietrich Bonhoeffer Werke (DBW) 1, (Munich, 1986), 142

24) D. Bonhoeffer, Gesammelte Schriften vol. III, Bethge, E (ed). (Munich, 1966), 442.

25) Jung Young Lee, 위의 책, pp. 96-99. Douglas J. Hall이 세상 속의 교회를 가리켜 십자가의 공동체”(ecclesia crucis)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Douglas J. Hall, “Ecclesia Crucis: The Theology of Christian Awkwardness", in The Church between Gospel and Culture: The Emerging Mission in North America, eds. by G R Hunsburger & C Van Gelder (Grand Rapids: Eerdmans, 1996a), 198-213.

26) Jung Young Lee, Marginality. 71.

27) Kenneth Leech, The Eye of the Storm: Spiritual Resouces for the Persuit of Justice (London: Darton, Longman and Todd, 1992). 28.

28) 주변성을 단지 장소적, 지리적 개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주변성은 신학적, 영적 개념으로서 중심성을 지향하는 타락한 세상 권세에 대한 부정 및 자기부정의 자리이자,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역사에 대한 긍정의 자리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는 곧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조건과 직결된다. 참고. Jung Young Lee, Marginality. 116-119.

29) Daniël J Louw, A Pastoral Hermeneutics of Care and Encounter (Cape Town: Lux Verbi, 1998), 15.

30) 하나님의 말씀은 사역자의 인격과 영성을 통해 청자에게 전달된다.

31) 선교사(목사)의 말씀의 중개역할과 관련하여, Firet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이 항상 인간의 중개를 요한다는 뜻이 아니며, 선교사(목사)의 역할 수행이 중개 행위 속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참고, Jacob Firet, Dynamics in Pastoring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6), 40.

32) Firet, Dynamics in Pastoring, 100.

33) Firet, Dynamics in Pastoring, 99-101.

34) 기도의 책인 시편에는 기도자의 영의 상태와 자세를 갈급하다, 갈망하다, 사모하다, 바라보다, 구하다, 찾다 부르짖다, 기다리다 등 다양한 동사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능동적 수동성(an active passivity)”으로서의 기도의 성격과 원리를 보여준다. 참고. Urban T. Holmes III, The Future Shape of Ministry: A Theological Projection (New York: Seabury, 1971), 16.

35) 로마 카톨릭 전통의 필리핀에서는 모든 유아가 태어나면서 성당에서 영세를 받아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세례증서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이 때문에 필리핀에서 세례권은 선교사의 위상과 직결된다. 또한, 필리핀 현지에서는 여성 목사안수가 교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신의 전국 여전도회가 선교지의 이런 형편과 필요를 교단 선교부와 노회에 계속 호소했지만, 김자선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는 차치하고 세례권 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참고로 합동 교단에서는 수년 전부터 여성 선교사에게 세례권을 부여하고 있다.

36)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84f.

37) 고신대학 졸업 후 고려신학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납득하기 힘든 사유로 입학하지 못했고,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에서도 중생과 회심 체험에 몰두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학위(ThM)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이후 선교사로 사역 중 20069, 필리핀 선교 및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고신대학교로부터 '자랑스러운 고신인 상'을 받았으며, 20078월에는 명예박사(교육학) 학위를 받았다.

38)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86. 자신을 구멍가게도 못 끌어갈 사람”, “학급의 분단장도 못 할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할 정도로 그에게는 사회성이나 리더십이 없다.

39)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87.

40) 같은 책, 284ff. 불출(不出)이란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41)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핵심 사상이다. 그리스도와의 결혼에 비유되는 이 연합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갖는 신비한 교제에 관한 엄청난 말씀으로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이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적인 것이며, 영적인 경이에 속한다. 참고. 기독교 강요III.1.3.

42)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19. 선교사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그의 결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친히 주신 이름이다.

43) 같은 책, 27f. 이 모습은 구약에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귀향할 때 길에서 만난 하나님의 군대(천사들)와 신약에서 베드로가 옥중에서 사슬에 매여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난 주의 사자(천사)를 그대로 연상케 한다.

44)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34f.

45)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4 & 13.

46) 주기철 목사의 일일사각오(一死覺悟), 주남선 목사의 지사충성(至死忠誠)은 한상동 목사의 여주동행(與主同行)과 함께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에 죽음으로 저항한 고신(高神) 영성의 특징이다. 참고로 고신 영성은 고신교단의 영성이 아니라,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인의 신앙과 정서로 꽃피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성경적인 한국적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이다. 참고. 김순성, “한국장로교내() 소수파 영성으로서의 고려파 영성의 특징과 평가”,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vol.42 (2017): 83.

47) 귀가 중 깊은 밤 따북 산길에서 공산 반군들의 검문에 걸려 도주하다가 총 세례를 받기도 했고, 라굼에서는 지역 산림청 관리가 그곳에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김선교사를 원주민들이 쓰는 긴 칼(bolo)로 위협했다. 김선교사를 계속 괴롭힌 그 관리는 1라굼교회 건축에 적법하게 사용한 목재에 대해 억지 혐의를 씌워 체포영장까지 발부했으나, 이후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4f, 94-98, 181-186.

48)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불안에 떨었던 교회 밖 주민들의 모습과 달리, 뚜게가라오와 자매교회 성도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진짜 교회라고 이웃들이 말했다고 한다. 202111월 뚜게가라오 사역보고에 따르면, 뚜게가라오 장로교회의 경우 새벽기도회 참석 교인이 배로 증가했고, 거의 모든 자매교회들의 교인수가 이전보다 30-90% 수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두 교회가 개척되었고, 10개의 전도소가 개척되었다.

49) 이 원칙을 따랐던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창설자 허드슨 테일러, 조지 뮬러, 짐 엘리엇 등이 있고, 선교단체로는 WEC, OMF 선교회 등이 있다.

50) 같은 책, 232.

51)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137f.

52) 같은 책, 122f.

53) 안식년이 끝나갈 무렵 예레미야서 50-51장의 말씀을 통해 네 안에도 바벨론이 있다. 네가 키운 SFC 출신 청년들이 바벨론이다!”라는 말씀이 돌직구처럼 임했고, 이후 영적으로 큰 시련의 시간을 통과했다. 참고. 2014. 9. 12 “뚜게가라오 김자선, 강정인 선교사 기도편지

54) 명향식은 평생 서른 번에 걸쳐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김자선, “여성선교사와 교회개척”, 한국선교 KMQ, 74(19/4), (2020년 여름호): 33. 명향식의 권유로 김자선은 예수를 영접하고 이듬해 고신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두 번의 10일 금식과 네다섯 번의 3~5일 금식 그리고 20일간 금식을 했고,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후 7년 만에 가진 첫 안식년 때 40일 금식기도를 한번 하였다. 참고.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203.

55) 평균 20-30명이 모이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180여 명까지 모였다. 매일 예배와 기도회가 중심이며, 나머지 시간은 성경읽기, 성경쓰기, 개인기도 시간으로 진행된다. 개인이 원하는 바에 따라 5일 또는 7일 금식을 하기도 한다.

56) 같은 책, 213.

57) 그에게 기도 없는 사역은 생각할 수 없으며(No prayer done, no work done), 매일 강단에서 4시간 정도 기도하며 모든 문제를 기도로 계획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고, 기도로 해결했다. 참고. Joy Calubaquib & Allan Vinluan, “The Missionary Kim I know(내가 아는 김자선 선교사)” .

58) Bert Martinez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California에서 15년 목회 생활을 한 후, 2009년도에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Lagumfiesta 축제에 초대받아 그곳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친구를 통해 그 동네 악명높은 사람이 김자선 선교사의 기도를 통해 기적같이 변화된 간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김선교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새벽기도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이후 10여 년간 자원해서 김선교사의 사역에 협력했다. 참고, 김자선 선교사 은퇴를 앞두고 그가 보내온 글 “Missionary Kim: Her Closeness with God that Continues to Be an Inspiration to Many(김선교사: 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영감이 되는 그의 하나님과의 친밀함)” 중에서 인용.

59) 그 왕을 위하여: Pro Rege, 123.

60) 같은 책, 122.

61) 가끔 준비한 설교 본문과 메시지가 집을 나서기 직전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는 물론 특별한 경우이지만 자기 생각과 뜻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성령의 주도적 역사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려는 그의 삶의 태도에 기인한다.

62) M. Victor,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Victor는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집사이며, 회계학 교수이다.

63) Michael Orpilla.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Michael은 전기공학 교수로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집사이며, 따북(Tabuk)1, 2 교회에서 일루카노 설교로 봉사하고 있다.

64) M. Victor, 위의 글 중에서.

65) 고신교회 출범 전 초창기 고려파 진리 운동은 종종 회개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고려파 영성을 사모하며 추구했던 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회개의 눈물이 있었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 때문에 울지 않았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었고, 성결을 사모하여 자신과 한국교회의 죄 때문에 애통했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의 역사를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참고. 김순성, “한국장로교내() 소수파 영성으로서의 고려파 영성의 특징과 평가”,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vol.42 (2017): 91.

66) Joy Calubaquib, 같은 글 중에서 인용. 참고로 김자선 선교사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매일 3-4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67) Allan Vinuan,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Allan은 고신대 목회학 석사(MDiv.)를 졸업한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교역자이다.

68) Allan Vinuan, 위의 글 중에서 인용.

69) Joy Calubaquib, 같은 글 중에서 인용.

70) Lesie Bangayan,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LesieLagum 1 & 2 교회 교역자이다.

71) Emily Lopez,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Emily는 치과 의사이며 설교 통역을 돕고 있다.

72) 회개는 죽음과 삶의 두 요소를 포함한다. 자신과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는 사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분리되지 않는다. 오직 참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사심에 연합함으로써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회심(悔心, conversio)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기독교 강요III.3.1.

73) 라굼 지역은 땅이 척박하여 벼농사가 안되는 곳이다. 옥수수조차도 수확이 적어 예전에는 제대로 못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농사가 잘 되어 그것을 팔아 쌀을 사서 주식으로 하고 있다. 본래 라굼 원주민들은 정부로부터 버려진 지역이었는데, 그 지역을 관할하는 시장(市長)이 김자선 선교사의 사역을 통해 주민들의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진짜 크리스찬들이라고 감동을 표했다고 한다. 이후 곳곳에 교회로 향하는 도로가 건설되고 전기가 공급되었다.

74) Bert Martinez, “Missionary Kim: Her Closeness with God that Continues to Be an Inspiration to Many” 중에서 인용.

75) Jay Emmanuel Asuncion, “The Missionary Kim I know” 글 중에서 인용.

76) J. E. Asuncion, "The Journeys of Evangelizing Mission by Tuguegarao Presbyterian Fulltime Workers Toward Transformation." (Ph.D. dissertation, Asian Social Institute of the Philippines, June 2019). 136.

77) J. E. Asuncion, 162. 흥미롭게도 뚜게가라오 장로교회 앞길 도로명이 청교도길(puritan street)이다. 대부분의 지명이 카톨릭 성자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필리핀에서 생뚱맞은 거리명이다. 교회가 위치한 곳이 도시 중심가에서 3-5km 떨어진 외곽지역으로 교회 앞 골목길은 원래 도로명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도로명이 생기게 되면서 동장(洞長)이 교회 앞으로 도로명을 지어달라고 요청해 와서 청교도길로 명명한 것이다. 청교도 신앙과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교회의 뜻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

78) 같은 논문, 187.

79) 최근(202211) 뚜게가라오 신학교에서 강의 도중, 필자는 라굼에서 목회하는 한 교역자로부터 현재 그곳 교회가 처한 변화된 상황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선거 때 시장(市長)이 평소 자행한 부정, 부패에 대해 라굼지역 교인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그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는 말이 그 시장에게 전해지면서, 지금까지 교회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그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교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의 질문이었다. 이 문제는 그곳 교회들이 그 사회 속에서 앞으로 직면해야 할 민감하고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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