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서 마약거래에 필요한 주민번호 수십개씩 제공
비대면으로 상선에게서 마약 받아 '드라퍼'에 넘길 수 있어 고교생도 마약판매

최근에 만난 청소년 전문 사역자에 의하면 교회 아이들도 마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교회가 달라진 십대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교회가 MZ세대에게 차단당했다"는 표현이 너무 충격적 이었다. 이에 코닷은 현재의 청소년 사역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먼저 청소년 마약문제에 대한 제휴사의 심층기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부

 

(서울=연합뉴스) 이슈팀 = 온라인에서 마약 구매는 한마디로 '원스톱 쇼핑'과 같았다. 약간의 의지와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가능한 구조였다. 구매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약 판매상들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제공해줬다.

연합뉴스 이슈팀은 온라인에서 마약 거래가 얼마나 손쉬운지 알아보기 위해 낮 시간대에 스마트폰으로 10여차례 마약 구매 시도를 했다.

그 결과 마약 판매상 검색에서 구매 상담 완료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판매상들 대부분이 구매 문의에 즉시 응답했고, 10여분 후에 답한 경우는 한두차례에 불과했다.

텔레그램 마약판매상이 알려준 주민등록번호들[이건희 인턴기자 촬영]
텔레그램 마약판매상이 알려준 주민등록번호들[이건희 인턴기자 촬영]

구매 상담은 모두 텔레그램에서 진행됐다. 구글링을 통해 알게 된 판매상의 텔레그램 아이디로 해당 대화방에 들어가 대화를 시도하면 판매자들은 비밀대화로 유도했다.

실제 거래 전에 판매자가 '사용자 인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판매상과 거래한 내역이나 현재 소지한 마약 또는 마약 기구를 촬영해 올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증을 요구하지 않는 판매상이 더 많았다. 현재 있는 곳, 원하는 마약 종류와 수량을 말하면 판매상은 가격을 알려주고 대금은 비트코인으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비트코인이 없어도 구매가 가능하다. 판매상이 가상화폐 구매대행업체를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구매대행업체로부터 가상화폐를 사려면 대금을 무통장 입금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도 마약 판매상이 알려준다.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무통장 입금을 하려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판매상이 건넨 주민등록번호는 보통 서너개에서 10개 안팎이지만 70여개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들은 같은 연도의 생년월일 순으로 나열돼 있어 특정 데이터베이스(DB)를 해킹해 일괄적으로 취득한 정보로 추측된다. 마약 거래라는 불법행위에 불법 개인정보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판매상들이 복수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준 덕분에 무통장 입금의 1회 거래 한도(은행별로 100만원 또는 50만원)를 넘어 고액의 가상화폐를 살 수 있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다른 곳에 활용할 수도 있다.

판매상들의 텔레그램 방에는 마약의 시세가 종류별로 게시돼 있기도 하다. 마약 가격은 대부분 같지만 일부 품목에선 차이가 난다. 쇼핑몰을 돌아다니듯 '최저가 마약'을 골라 살 수 있다.

압수된 마약류[연합뉴스=자료사진]
압수된 마약류[연합뉴스=자료사진]

판매상 상당수는 마약별 사용법과 효능도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마약 검사에서 걸리지 않는 방법까지 소개한 곳도 있다.

실제 마약은 '던지기' 수법을 통해 받는다.

던지기는 우편함, 단자함, 배관, 에어컨 실외기 등 특정 장소에 마약을 미리 숨겨두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마약이 은닉된 곳을 '좌표'라고 한다. 구매자는 판매자가 불러주는 좌표로 가 마약을 찾아가면 된다.

결국 텔레그램에서의 구매 상담과 던지기가 결합한 마약매매 과정에서 마약 구매자든 판매자든 신원이 드러날 여지는 사실상 없다.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고 실제 마약상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마약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셈이다. 전문가들이 마약 매매의 심리적 장벽이 대폭 낮아졌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동대문 여중생 마약투약 사건이 그 대표 사례다.

지난 3월 동대문구에서 사는 중학생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산 필로폰을 자기 집에서 흡입했다. 어머니의 신고로 투약 사실이 밝혀졌다.

하동진 서울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은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마약근절 및 예방 대책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와 이 사건을 접하고서 소위 "'현타'(현실자각타임의 준말)가 왔다"고 말했다.

하 계장은 이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그 이유에 대해 "기성의 매개체 없이 14세의 여학생이 호기심에 마약을 사서 사용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은 대개 성인이나 또래 친구들의 권유로 마약에 접한다. 매개자가 있다는 것이다. 투약 장소는 클럽과 같은 유흥시설이나 모텔 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중생은 이전에 마약을 한 경험도 없었음에도 순수 호기심에 마약을 구매할 수 있었고 집에서 투약했다. 게다가 이 여중생이 마약 판매상과 대화에서 마약 수령까지 40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범죄(CG)[연합뉴스TV 제공]
온라인범죄(CG)[연합뉴스TV 제공]

이렇게 된 데에는 마약거래가 비대면으로 진행된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과거에는 마약 판매상을 직접 만나야 구매할 수 있었다면 이제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 세대가 더 마약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 매매의 비대면으로의 진화로 청소년들이 구매자로서뿐만 아니라 판매자로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 청소년들이 온라인으로 마약을 판매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다.

인천지방검찰청이 지난 5월 발표한 고교생 마약 유통 사건이 그 사례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는 대학생인 3명은 고교 23학년이던 202110월부터 20227월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소매가 기준 27천만원 상당의 마약을 판매·소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 한명이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판매상으로부터 마약 판매 수법을 배운 뒤 온라인으로 나머지 2명을 포섭,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약을 좌표에 던지기를 해 줄 성인 '드라퍼'(운반책) 6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이들이 마약을 사기 위해 상선을 직접 만날 일도 없었고, 마약을 운반해 줄 드라퍼와 대면할 필요도 없었다.

하동진 계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이 거래되고 있어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공급자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이제는 마약 수요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출신인 정희선 교수는 "지금은 마약 예방 교육에 공통된 목적성과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일원화되고 체계적인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 억제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공급을 차단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을 지낸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하다""수사기관이 여러 곳으로 나뉘었는데 국무총리 산하의 마약청으로 단일화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이 공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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