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동성 커플 축복'에 곤혹스러운 아프리카

동성애 금기시하는 분위기 속 교세 확장에 '찬물'

2021년5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린 독일의 한 가톨릭 교회 벽면[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2021년5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린 독일의 한 가톨릭 교회 벽면[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것을 두고 가톨릭교회 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가톨릭의 미래'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7(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일부 주교들은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에 대해 "아프리카의 문화와 가치에 맞지 않는다"며 신자들이 겪을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교세 확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 아프리카 지역 사제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3억명 가운데 23600만명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전 세계 신규 가톨릭 신자 1620만명 중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 신자들이다.

AP 통신도 가톨릭교회 등이 지난 수십년 동안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인 지역이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아프리카라고 짚었다.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정치학 교수이자 침례교 목사인 라이언 버지는 "아프리카 주교들이 '탄약'(신자들)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서방에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AP 통신에 말했다.

앞서 지난달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교리 선언문을 통해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고 밝혔다. 이 선언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비록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이 교회의 정규 의식 또는 미사에 포함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혼인 성사와 유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결혼은 남녀 간 불가분의 결합"이라며 동성 결혼에 반대해온 가톨릭교회의 전통과는 다른 역사적 결정으로 평가됐다.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제한적이나마 허용한 교황청의 입장 변화는 일부 주교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프리카 일부 주교들은 이에 따르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말라위와 잠비아의 주교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성직자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프리카 가톨릭교회 사이의 균열로 번질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수회 관련 단체 책임자인 러셀 폴리트 신부는 아프리카 주교들의 반응을 언급하며 "'우리는 이것(동성 커플 축복)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반란'이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NYT에 말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인근 교구의 존 오발라 주교는 동성 커플 축복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으면 감리교로 개종하겠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한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오발라 주교는 "아프리카의 많은 교구에선 활기가 넘친다""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보호해야 한다"NYT에 말했다.

그는 동성 커플이 동성 결합(same-sex union)을 그만두기 위해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경우에만 축복을 주라고 사제들에게 조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만약 동성 커플이 단지 축복만 원하고 계속 그대로 살 작정이라면, 이들을 축복할 경우 동성 커플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다른 신자의 신앙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사제들에게 축복하지 말라고 조언할 것이라고 오발라 주교는 덧붙였다.

나이지리아 주교회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교황청의 이번 결정으로 동성애는 죄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신자들을 동요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동성애자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를 두고 아프리카 가톨릭교회 내 긴장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짚었다.

말라위의 한 가톨릭 신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기를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교황이 너무 늙었을지도 모르겠다"며 교황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축복을 요청하는 동성 커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별다른 충돌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NYT는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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