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목사입니다.


▲ 장상돈 목사(대구동산교회 부목사) 현)외국인 근로자와 새터민을 섬기는 말씀서광교회를 2015년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목사보다 부목사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합니다. 2003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10년 동안 불려진 호칭이니까요. 교회 밖에는 목사님이란 호칭을 듣습니다. 그런데 ‘부’가 빠진 목사님이란 호칭은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젠 담임하셔야 할 나이가 아닌가요?”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가셔서 막내아들이 담임목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답니다.

 

나는 목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목사는 당연히 담임목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사역지를 옮기면서, 이제는 부목사로 일할 교회를 찾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선임자가 삼십대이고, 어떤 교회는 사십대의 선임자가 있지만, 후임자로는 젊은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담임으로 가지 못하면, 개척교회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담임목회자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들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나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큰 부담입니다. 심지어 담임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담임목사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목회를 성공하겠지만, 은사가 없다면, 목회를 실패하고 교회와 목사 자신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청빙위원회는 교회를 잘 경영해줄 수 있는 목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담임목사가 되려는 안수 받은 목사들은 교회를 경영할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지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요?

1. 담임목사의 경험이 있는 사람

2.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었던 사람

3. 학력이 높은 사람 같은 조건이 필요 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학교 다니면서 개척교회의 소명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선교사로 나가기위해 신학교에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후보생은 부목사의 길을 걷습니다. 부목사로 사역할 수 있는 교회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담임목사청빙위원회가 바라는 경영능력을 배울 수 있는 교회는 더욱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들이 하나님의 소명에 헌신하는 것과 교회경영능력을 갖추는 것이 동일한 일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갖추어야 할 경영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많은 목사님들이 자신의 은사에 맞지 않는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힘들어하시는 것을 봅니다. 목사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힘들어합니다.

 

반면에 어떤 목사님들은 자신의 은사에 잘 맞는 사역을 하면서 행복해합니다. 어떤 담임목사는 자기가 부목사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닙니다. 예수님이 담임목사님이고 자신은 부목사라는 것이죠. 목사도 행복하고 성도도 행복한 교회는 부목사가 목회를 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평생 부목사로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로 저를 부르셨을 때, 당회장, 담임목사로 부르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반드시 담임목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실패하고 병들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세속적 가치로 보면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고 부요와 높음을 자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예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녔던 교회를 잊지 못합니다. 교회에 가면 숨통이 트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어떤 모습이라도 용납되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그 어떤 세속적 가치도 녹여버리는 강력한 예수님의 피가 흘렀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교회에는 세속적 성공신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당회에 소속되어 있고, 목사를 선택할 때, 세속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50통씩 들어오는 이력서와 목회계획서,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다 읽어줄 마음이 전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목사들의 삶과 비전들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들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보다 세속적 성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해, 내 친구는 이력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청빙위원들이 그를 담임목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이력서를 내고 담임목사로 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정말 이력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사역지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공공연히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왜 부목사는 안 되지?

부목사의 사역을 평생 할 수 있도록 많은 제도와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단에서 부목사도 한 교회에 20년 이상 목사로 시무하면 원로목사 자격을 주자는 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원로목사가 되고 싶거나, 원로목사 급여를 받아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의식이 달라질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부목사로 은퇴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대변해 줄 법안 말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나는 교단 법대로 부목사로 은퇴할거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이는 다음 교회(Next Church)도 없습니다. 부목사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사역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사역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회는 다양화,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역을 감당할 목사, 부목사들이 필요합니다.

 

총회선교사, 총회교육위원회간사, SFC간사, 찬양사역자, 이주민지원, 장애인목회, 노숙자지원, 도시빈민사역,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 개척교회지원, 기독교문화사역자 등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의 사역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역은 한 사람이 10, 그리고 20년 이상 전문적 사역을 감당해야만 어느 정도 전문화된 사역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국가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법 밖에서 보호해주기를 바랍니다. 국가의 법은 언제나 강한 사람들에 의하여 제정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으로 보호될 수 없는 약자가 항상 존재합니다. 이 약자들은 교회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강자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 밖, 세상이 더욱 교회를 향하여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제발 교회만은 세속적이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교회를 향하여 목숨을 걸고 비난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의 중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교회는 국가처럼 사회적 약자와 성도들과 목사들을 교회 법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됩니다. 교회법은 달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왕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교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담임목사가 있으면 얼마나 신앙생활하는 것이 편하고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어려움, 세상에서 거룩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잊어버리고 살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담임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되어질 수 있도록 쓰임을 받으면 됩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용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교회를 조직화하면 안 됩니다. 목사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면 목사도 교회도 함께 불법과 악행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많은 목사들이 이 정도의 보상은 받아도 될 만큼 나는 수고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국 범법자요, 악행자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담임목사가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다음교회를 꿈꾼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교회조직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부목사로 있는 사람이 담임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 속 열정과 생각을 감추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청빙위원회는 후보의 목회계획서에서 새로운 의식과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이것을 위험한 요소로 인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목사는 목사의 기본적 소양을 모두 감추고, 오직 담임목사에게 맞추는 습관을 10년 이상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더 오랫동안 부목사로 있었던 사람이 더 순종적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위험한 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요?

 

부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자신의 전문적인 분야에 철저한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음교회는 더 다양하고 전문적인 목회자를 요구할 것입니다. 교회경영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역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전문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교회와 신학교와 교단이 함께 담임목사 사역만을 생각하지 않고 더 다양하고 전문화된 분야별 사역을 개발하고 인정해 주어서 평생 한 분야에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전문 부목사의 탄생을 기대해 봅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서 부목사를 견디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이 사역만 감당해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는 부목사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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