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목사입니다.
목사보다 부목사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합니다. 2003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10년 동안 불려진 호칭이니까요. 교회 밖에는 목사님이란 호칭을 듣습니다. 그런데 ‘부’가 빠진 목사님이란 호칭은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젠 담임하셔야 할 나이가 아닌가요?”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가셔서 막내아들이 담임목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답니다.
나는 목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목사는 당연히 담임목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사역지를 옮기면서, 이제는 부목사로 일할 교회를 찾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선임자가 삼십대이고, 어떤 교회는 사십대의 선임자가 있지만, 후임자로는 젊은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담임으로 가지 못하면, 개척교회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담임목회자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들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나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큰 부담입니다. 심지어 담임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담임목사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목회를 성공하겠지만, 은사가 없다면, 목회를 실패하고 교회와 목사 자신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청빙위원회는 교회를 잘 경영해줄 수 있는 목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담임목사가 되려는 안수 받은 목사들은 교회를 경영할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지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요?
1. 담임목사의 경험이 있는 사람
2.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었던 사람
3. 학력이 높은 사람 같은 조건이 필요 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학교 다니면서 개척교회의 소명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선교사로 나가기위해 신학교에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후보생은 부목사의 길을 걷습니다. 부목사로 사역할 수 있는 교회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담임목사청빙위원회가 바라는 경영능력을 배울 수 있는 교회는 더욱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들이 하나님의 소명에 헌신하는 것과 교회경영능력을 갖추는 것이 동일한 일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갖추어야 할 경영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많은 목사님들이 자신의 은사에 맞지 않는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힘들어하시는 것을 봅니다. 목사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힘들어합니다.
반면에 어떤 목사님들은 자신의 은사에 잘 맞는 사역을 하면서 행복해합니다. 어떤 담임목사는 자기가 부목사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닙니다. 예수님이 담임목사님이고 자신은 부목사라는 것이죠. 목사도 행복하고 성도도 행복한 교회는 부목사가 목회를 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평생 부목사로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로 저를 부르셨을 때, 당회장, 담임목사로 부르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반드시 담임목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실패하고 병들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세속적 가치로 보면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고 부요와 높음을 자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예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녔던 교회를 잊지 못합니다. 교회에 가면 숨통이 트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어떤 모습이라도 용납되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그 어떤 세속적 가치도 녹여버리는 강력한 예수님의 피가 흘렀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교회에는 세속적 성공신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당회에 소속되어 있고, 목사를 선택할 때, 세속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50통씩 들어오는 이력서와 목회계획서,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다 읽어줄 마음이 전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목사들의 삶과 비전들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들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보다 세속적 성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해, 내 친구는 이력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청빙위원들이 그를 담임목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이력서를 내고 담임목사로 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정말 이력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사역지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공공연히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왜 부목사는 안 되지?”
부목사의 사역을 평생 할 수 있도록 많은 제도와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단에서 부목사도 한 교회에 20년 이상 목사로 시무하면 원로목사 자격을 주자는 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원로목사가 되고 싶거나, 원로목사 급여를 받아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의식이 달라질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부목사로 은퇴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대변해 줄 법안 말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나는 교단 법대로 부목사로 은퇴할거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이는 다음 교회(Next Church)도 없습니다. 부목사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사역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사역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회는 다양화,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역을 감당할 목사, 부목사들이 필요합니다.
총회선교사, 총회교육위원회간사, SFC간사, 찬양사역자, 이주민지원, 장애인목회, 노숙자지원, 도시빈민사역,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 개척교회지원, 기독교문화사역자 등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의 사역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역은 한 사람이 10년, 그리고 20년 이상 전문적 사역을 감당해야만 어느 정도 전문화된 사역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국가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법 밖에서 보호해주기를 바랍니다. 국가의 법은 언제나 강한 사람들에 의하여 제정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으로 보호될 수 없는 약자가 항상 존재합니다. 이 약자들은 교회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강자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 밖, 세상이 더욱 교회를 향하여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제발 교회만은 세속적이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교회를 향하여 목숨을 걸고 비난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의 중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교회는 국가처럼 사회적 약자와 성도들과 목사들을 교회 법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됩니다. 교회법은 달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왕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교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담임목사가 있으면 얼마나 신앙생활하는 것이 편하고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어려움, 세상에서 거룩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잊어버리고 살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담임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되어질 수 있도록 쓰임을 받으면 됩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용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교회를 조직화하면 안 됩니다. 목사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면 목사도 교회도 함께 불법과 악행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많은 목사들이 이 정도의 보상은 받아도 될 만큼 나는 수고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국 범법자요, 악행자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담임목사가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다음교회를 꿈꾼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교회조직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부목사로 있는 사람이 담임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 속 열정과 생각을 감추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청빙위원회는 후보의 목회계획서에서 새로운 의식과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이것을 위험한 요소로 인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목사는 목사의 기본적 소양을 모두 감추고, 오직 담임목사에게 맞추는 습관을 10년 이상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더 오랫동안 부목사로 있었던 사람이 더 순종적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위험한 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요?
부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자신의 전문적인 분야에 철저한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음교회는 더 다양하고 전문적인 목회자를 요구할 것입니다. 교회경영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역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전문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교회와 신학교와 교단이 함께 담임목사 사역만을 생각하지 않고 더 다양하고 전문화된 분야별 사역을 개발하고 인정해 주어서 평생 한 분야에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전문 부목사의 탄생을 기대해 봅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서 부목사를 견디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이 사역만 감당해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는 부목사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용기있는 부목사님의 글 공감합니다.
담임목사님들께서는 잘 모르실 수 있는
부목사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이렇게 글이 올라 간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부목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첫째, 나이 40 넘는 부목사를 교회서 거의 찾지 않는다는 현실입니다.
부목사들이 40 넘으면 교회에서는 빨리 담임자리 안 찾아 가는지 생각하고...
사역지를 옮기려 하지만, 담임자리는 없고, 부교역자로 가자니
기존 교회에서는 40넘는 부목사를 원하지 않지요.
대부분 교회는 강도사나 목사 초년차를 찾습니다.
그래서 40넘은 부목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교회 눈치만 자꾸 보이고, 나이는 들어 가고...
제안) 1. 부담임목사 뭐 이런 제도는 어떻습니까?
(부목사의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된다면...)
부목사의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고 법이 정해 져 있습니다.
모든 목사들이 담임이 되려 하니까 이게 힘이 드는 것이지요.
회사에 입사한 사람 모두가 사장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목사로 부름 받은 모든 이가 담임이 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담임리더로서 은사와 부르심이 있는 분이 담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부교역자들이 자신의 은사에 따라 부사역자로서 주어진 은사에 따라
소신껏 일 할 수 있도록 부교역자의 신분이 임시직이 아닌
(교회 필요에 따라) 책임 있는 직분을 주시면
더 소신 껏 안정되게 부사역자로 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목사로서 자기 역할 충실히 하다가 은퇴해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제안2) 농어촌, 미자립 교회 문제
농어촌, 미자립교회는 담임목사들이 가려고 하지 않지요?
일전에 시골교회 담임청빙 자격에 나이 50이상 이라는 청빙광고를 보았습니다.
목사님들이 연세가 들어 자녀들 양육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분들은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들기에
나이 많은 목사님을 우선 청빙하려는 것 같습니다.
70%가 미자립교회라고 들었습니다.
농어촌,도시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생활 수준은
죄송한 표현이지만,
노숙자들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 하잖아요.
진짜 끼니 걱정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과거 어려운 시절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어제들은 이야기 입니다.
어느 시골교회 담임목사님의 한 달 생활비가 20만원도 안된다는 사연을요...
젊은 목사들이 농어촌, 미자립교회 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녀 양육과 기본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젊어서 아직 재정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해요^^)
우리가 목회자이지만,
아비로서 자녀들에게는 기본적인 생활은 하도록 해 주어야 되는데,
그게 안되잖아요.
돈 있는 사람들처럼 유학은 못 보내더라도...
정말 기본적인 것은 해 주어야 하는데..
자녀들에게까지 고생시키고자 하는 용기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의 노동자의 2012년 최저 임금은 1,035,080원입니다.
한 달 103만원 입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지금이라도(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공장에 일하러 가면 한 달에 최소 2백만이상은 번다는 것입니다.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 중 최저 생계가 안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안) 교단적으로 목회자들의 최저 생활비가 제도적으로 뒷받침 된다면
미자립교회 농어촌 교회 못 갈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개척을 해 볼까 하다가도
기본 생계에 대한 대책이 없으니..
교회 사역에만 올인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위 30%의 교회 들이 70% 작은 교회들을 생각한다면
누린 분들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고아와 과부들(빈궁한 형제들) 책임지라고 하시 잖아요?
몇년 전 총회 사회부인가(?)에서
각 교회의 미자립교회 지원금 창구를 일원화
해 공평하게 미자립 교회 지원하고자는 하는 계획만 제대로 된다면...
그리고 각 노회에서 큰 교회 들이 더 많이 재정 부담을 해
노회 안에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의 기본 생활비 지원을 책임지는 것
아니면 총회가 목회자 최저 생계비 기준을 정하는 것
뭐 이렇게 만 된다면
미자립교회에서 교인이 1명 뿐 이라도,
진짜 돈 걱정 안하고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즐겁게 사역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런 글들을 계기로 교단의 미래를 위해
젊은 후배 목회자들의 아픔과 고민을 이해 해 주시는
가슴 넓으신 어르신들이 많을 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