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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 어떻게 볼 것인가? (1)-국내로 들어온 ‘문화다양성’의 위험

[‘문화다양성’에 대한 문제 인식]

김동진 목사(일산하나교회 담임, 목동TV 대표)

2019년 8월, 경기도 성평등 조례에 반대하는 규탄대회가 경기도청 앞에서 있었다. 성평등 조례의 독소조항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 날 집회에 3만여 인파가 모여 반성경적인 법제화에 대해 반대하였다. 교회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성평등조례 등 이름만 바꿔서 교묘하고 치밀하게 법과 제도를 개정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우리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법안이 바로 ‘문화다양성’이라 하겠다. 상대적으로 아직 교계에 ‘문화다양성’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듯하다. 최근 청주시의회에서 ‘문화다양성’조례를 발의하여 이슈가 되었는데 앞으로 성평등,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문화다양성’이라는 법안을 더 자주 듣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면을 통해서는 ‘문화다양성’이 들어온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기를 원하며 앞으로 두 번에 걸쳐서 위기에 대해 어떠한 대처가 필요한지 다뤄질 예정이다.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 등장과 변화]

‘문화다양성’에 대해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등장과 전개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문화다양성’은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자는 개념으로서 언어나 의상, 전통,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 도덕과 종교에 대한 관념, 주변과의 상호작용 등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즉 계급, 성별, 연령, 직업 등을 초월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개인과 집단이 살아가는 모든 형태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존중하자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시기마다 그 강조점이 변해왔다. 1945년 유엔이 창설된 직후, 문화다양성의 논의는 교육과 지식에 강조를 두었다. 교육과 지식을 통해서 사람들 간의 의심과 불신을 없애고 도덕적이고 인본적인 사람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탈 식민지화로 인한 독립 국가들이 생겨나면서 문화 다양성이 국가의 독립성과 정체성과 결부되어 국가 간의 차별화된 가치가 강조되었다. 또한, 70~80년대에는 제도적 차원의 문화정책 강조와 개인의 ‘문화권’이 강조되었고, 90년대에서 현재까지는 문화와 민주주의가 연결되어 국가 간의 갈등뿐 아니라 국가 내의 문화 다양성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소수자의 권리 주장과 다문화적 상황 속에 있는 이주민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되었다.
이러한 ‘문화다양성’의 국제적인 흐름은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국제적 문화협력에서 문화정책으로서의 면모로 변화를 보이게 된다. 2001년에 31차 유네스코 총회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185개 회원국이 이를 채택하였고, 2005년 33차 총회에서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 2007년 발효되어 국제사회 전반에 ‘문화다양성’은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문화다양성’은 시기마다 강조점을 달리하여 보편적 가치를 통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각국에 인본주의적 메시지를 제시하는 기능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제 무역에서 미국과의 대립 속에서 문화적 예외론과 자유무역론이 충돌하는 역기능적 요소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현재 대한민국 안에서는 동성애와 난민이라는 이슈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보호, 증진되는 수단으로 ‘문화다양성’이 사용되고 있어 그 위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내 문화다양성의 전개 과정]

그렇다면 국내에 ‘문화다양성’은 어떻게 출발하였을까? 국내에서 문화다양성이 처음 언급된 것은 영화계를 통해서라 하겠다. 2006년 한미FTA가 협상 중인 시점에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때 영화계에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함에 따라 문화다양성이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한미FTA 체결로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결정되는 상황 속에서 영화계의 반발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영화계를 통해 문화다양성이 취급되던 것이 본격적으로 국내 중요 쟁점으로 뿌리내린 것은 2011년 상영한 영화 ‘완득이’ 이후 불거진 다문화가정,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2012년 이후 정부 행정기관에서는 앞다투어 다문화 관련 조사들을 벌였는데 2012년 여성가족부가 주도한 「국내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가 대체로 낮은 것으로 판단되면서 이에 대한 법제화가 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윤관석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2년 12월 발의, 강창일 前 민주통합당의원이 2013년 12월에 발의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2014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는 110번째 문화다양성 국회 비준국이 되었다. 이로 인해 국회 법안을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거나 진행 중인 것이다.

 

[국내 문화다양성의 주요 쟁점]

그렇다면 이렇게 빠르게 추진 중인 ‘문화다양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이래로 다양한 곳에서 문제적 이슈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문화다양성’의 범주에 ‘성적소수자’가 포함되기 용이한 점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으며 현 정부에서 매우 노골적으로 ‘성적소수자’를 ‘문화다양성’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성적소수자’에는 동성애자, 젠더퀴어가 허용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침투되던 동성애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허용되도록 만드는 위험 소요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은 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내가 엿보이는 법안이라 의심되고 있다. 또한 ‘사이비이단’이나 ‘이슬람’과 ‘난민’과 같이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요소들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보호, 증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이 우려스럽다.

이러한 우려는 현재 각 지자체를 통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데 2017년 경남교육청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 교육에 관한 조례」는 그 대상을 ‘성별, 계급, 성적소수자, 장애, 종교 등’으로 범주를 정하여 ‘성적소수자’나 ‘사이비이단’, ‘이슬람’, ‘난민’에 이르기까지 ‘문화다양성’이라는 틀 안에서 모두 허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법안을 기초로 2019년 6월, 부천 「문화다양성 보호증진」 조례안이 제정되려다 철회되었으며, 11월에는 대전시의회에서 동일한 법안으로 상정되었다가 유보된 상황이다.

또한, 눈여겨볼 것이 2014년 국회 비준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에는 문화다양성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위원회를 통해 성소수자나 동성애적 행위가 제도적으로 보호, 증진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서울대학교에서는 2016년에 대학 최초로 ‘소수자를 위한 다양성 위원회’를 설치하였고 현재까지 운영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각 시도에서 진행 중인 조례안에도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다양성’의 독소조항을 반대하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문화다양성’의 일련의 흐름들은 국제적이며 범사회적인 가치 추구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 자체는 여러 순기능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에서와 같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일부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음을 간과한다면 ‘문화다양성’의 기본취지가 왜곡될 것이고 제도적 혼란만 가중할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가 ‘동성애’를 문화로 인정하고 있으니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견해도 반대한다. 국제사회가 동성애를 지지한들 그것이 수용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을뿐더러 절대적 가치의 기준을 성경에 둔 교회라면 더더욱 진리에서 벗어난 왜곡된 법과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가 동성애를 문화로 치부한다면 이를 거부하는 문화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각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다양성’안에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만한 독소조항이 자명한데도 이를 삭제하지 못하고 부추기는 현재 상황을 눈여겨볼 때,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하는 자들의 의도가 충분히 있음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지면을 통해서 그 실체에 대해서 더 자세히 거론될 것이라 생각된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현실을 암흑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깨어있어야 하겠다. 다시금 이 땅에 성경적 법과 질서가 세워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코람데오닷컴 연구위원회 전문위원 김동진 목사

 
 

김동진  djk13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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