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3개월째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국내 최장수 사형수 원언식 씨의 희망 이야기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와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283개월째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국내 최장수 사형수 원언식 씨가 회심했다는 소식을 듣고 옥중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면 교도소 측에서 출력해 원 씨에게 전달하고 원 씨의 손편지를 우편으로 받았다. 2월 8일자 소인이 찍힌  편지에서 원 씨는 그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울적했다고 전했다. 원 씨는 사실 당시 상황을 잘 모른다고 했다. 술에 만취 되어 어떻게 들어갔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중간중간 생각날 뿐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원 씨는 당시 판결문을 다시 읽으면서 퍼즐을 맞추듯 기억을 떠올리며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옥중 인터뷰를 위해 원 씨를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던 박은조 목사가 도움을 주었다. - 편집장 주

햇수로 29년 전 1992104일 오후 230분쯤. 한국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이었던 원언식 씨(당시 36)는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의 어느 건물 2층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예배당에는 90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신도들이 순회 강사의 성경 강해를 듣고 있었다.

모든 가정불화의 원인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한 원 씨는 다짜고짜 내 마누라 안 내놓으면 불을 지르겠다며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원 씨의 아내는 예배당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신도들은 부인은 여기 오지 않았다며 둘러댔다. 그러자 격분한 원 씨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휘발유 통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신도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원 씨는 끝내 아내를 내놓지 않으면 교회를 불태워버리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라이터를 켰다. 그 순간 불은 붙어 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화재 발생 10분 후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불길이 워낙 맹렬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불은 40여 분 만에 간신히 진화됐다. 최종 집계된 사망자는 14(수혈을 거부해 사망한 사람까지 총 15), 그리고 25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원 씨는 우산동 파출소 쪽으로 달아난 뒤 바로 자수했다.

원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31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복역하던 중 20059월에는 간암 말기 판단을 받고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1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200610월에 간 12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예후가 좋으면 5년 정도는 더 산다고 했지만 수술 후 15년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83개월째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국내 최장수 사형수이다.

가정과 아내의 문제가 모두 왕국회관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술에 만취되어 예배당에 불을 지르고 살인자가 되어버렸다. 원 씨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원 씨와 옥중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언식 씨 최근 모습/ 교도소 측은 1년에 한 번 자비 부담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늘 여름에 실내에서 배경 그림을 붙여 놓고 찍어주는 사진으로 2020년 8월 사진이니 가장 최근 사진이다.
원언식 씨 최근 모습/ 교도소 측은 1년에 한 번 자비 부담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늘 여름에 실내에서 배경 그림을 붙여 놓고 찍어주는 사진으로 2020년 8월 사진이니 가장 최근 사진이다.

간암 수술 이후 요즈음 건강은 어떠신지요? 교도소 내에 모범수로 소문이 나 있던데 교도소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도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했는데 그때가 20057월이었어요. 어떤 자각증상도 없었기에 당연히 건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도 못 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간종양 표지자 검사 결과 양성 반응 소견, 정밀 검사 요합니다.”라는 한 줄의 건강검진 소견이 나왔어요.

혈액을 다시 채혈해서 외부 대학병원에 검사의뢰를 했는데 정상 수치가 0~7되는 간 수치가 10,000 이상으로 나왔어요. 외부 병원에 나가서 정밀 검사를 했는데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수술할 수 없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다른 치료 방법은 없고 간동맥 색전술을 통해서 암 덩어리를 조금씩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색전술 치료 중 악화하여 죽을 수도 있으니 본인이 결정하라고 해서 치료받기로 했습니다. 1년 동안 4회 색전술 항암 치료를 받고 2006108시간의 수술을 받고 현재 살고 있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사형확정자로 살던 중 본인이 작업을 원한다고 청원작업 신청을 하면 법무부에서 심사하여 교도소로 이송되어 일반수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을 했습니다. 합격이 되어 2008519일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어 현재 종이 쇼핑백을 접는 공장에 출역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 810분쯤 공장에 나갔다가, 오후 5시에 입방하고 월급은 평균 12만 원 정도가 되지 싶습니다. 제가 모범수로 소문이 났다고요? 글쎄요.

서면 인터뷰를 위한 원언식 씨의 자필 편지
서면 인터뷰를 위한 원언식 씨의 자필 편지

사형선고를 받고 국내 최장기 수감자로 살고 계십니다. ‘사형선고 받은 최장기 수감자라는 말속에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이런저런 의견이 많던데 정작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최장기 사형수라는 부끄러운 호칭에 무슨 큰일만 있으면 제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지금은 사형집행을 당하지 않은 지 24년째가 되었네요. 재판이 끝나고 3년쯤 되었을 때부터 늘 집행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 생각이 지속되면서 억눌린 육신에 암세포가 자랐지, 싶습니다. 지금도 하루아침에 집행한다고 하면 제가 제일 먼저 집행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고 당시부터 죽은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왔기에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을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죽어서야 나갈 수 있는 절대 종신형으로 대체 하자는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바꾸느니 차라리 지금의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절대적 종신형은 그 어떤 희망없이 죽어서야 나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희망 없는 내일을 살게 하느니 차라리 사형제도가 낳을 것 같습니다. 희망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고 지치게도 하지만, 바늘구멍 같은 희망이 사람을 살게도 하기 때문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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