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고통에 대한 교회적 응답

28일 미포가 열리고 있는 천안교회 예배당 
28일 미포가 열리고 있는 천안교회 예배당 

2021년 미래교회포럼(대표 오병욱 목사) 제 2차 포럼이 "보편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28일 천안교회(담임 이재황 목사) 예배당에서 열린 가운데 두번째 발제자로 김민석 박사(한국공공신학연구소 소장, Beyers Naudé 공공신학센터 선임연구원)이 나섰다. 

논찬하는 배정환 목사
논찬하는 배정환 목사

발제 후에 배정환 목사(대전서교회)가 논찬하고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다음은 김민석 박사 발제 전문. 

미래교회포럼 참석자들
미래교회포럼 참석자들

 


보편적 고통에 대한 교회적 응답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시대적 고통에 공감하는 교회인가?

발제하는 김민석 소장(한국공공신학연구소 소장, Beyers Naudé 공공신학센터 선임연구원)
발제하는 김민석 소장(한국공공신학연구소 소장, Beyers Naudé 공공신학센터 선임연구원)

 

I. 들어가는 글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이하 코로나19)이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회사에서 백신을 개발 하였고, 실제로 접종이 시작 되었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몇 몇 백신 제조국과 선진국을 제외한 그 밖의 국가에서는 접종이 더디고, 백신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도 많은 국가들에서는 대유행(pandemic)에 대한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의 특성 상, 전파를 막기 위해 필수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비대면 생활을 원칙으로 한지 1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업이 발달한 국가들과 관광이 주요 수입원인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은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이다. 이러한 고통은 저개발 국가일수록 더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심각한 육체적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비대면 원칙하에 만남과 교제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여전히 그 고통 속에 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 침체가 심각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어느 때보다도 많고, 실업률이 증가하며, 가계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실시된 ‘5인 이상 집합 금지의 계속된 연장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적 피로감은 점점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경제 침체로 시작된 우울감이 사람을 만나지 못함으로 인해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3차 유행이라 일컬을 만큼 확진자의 숫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더 큰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조금만 버티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 대신 어쩌면 앞으로 계속 바이러스와 함께 이러한 생활을 지속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는 느낌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한국 교회는 이 시대적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가? 지난 1년간 교회는 한국 사회에 공감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국가적 재난과 같은 시기에 온 국민들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국가의 방역 방침에 적극 동참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교회는 대면 모임을 강행하여 집단 확진자를 만들어 내는 매우 이기적인 단체의 모습으로 세상에 비쳐졌다. 물론 방송 매체들이 일부 교회의 문제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했다거나, 교회들의 결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교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화와 협의보다는 정부와 대결하는 구도의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 극우적 정치 행위를 하는 기독교인들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대화와 협의를 애쓴 교회도 많이 있지만, 이런 부분은 심지어 기독교 매체에서조차도 충분히 보도하지 못했다. 사회에 비친 기독교의 부정적인 인식은 이러한 상황들의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이다. 20206월 초에 실시된 종교인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매우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서 답변자들은 불교 신자에 대하여 온화한(40.9%), 절제하는(32.0%), 따뜻한(27.6%) 이미지, 천주교 신자에 대하여 온화한(34.1%), 따뜻한(29.7%), 윤리적인(23.0%) 이미지라고 각각 대답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 이미지라고 대답하여 사람들 인식 속에 기독교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독교는 왜 인식 변화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하였을까? 먼저, 기독교인들은 그동안 현실 인식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 그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 한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인식에 신경 쓰는 것조차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반대로 세상이 뭐라고 하던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신실한 것으로 여긴다. 기독교인의 이러한 현실 인식 부족 문제는 각종 조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20214월 장신대에서 열린 코로나19와 한국교회에 대한 연구발표회에서 공유된 코로나19 관련 주요 집단별 개신교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목회자 그룹의 79.7%, 개신교인 그룹의 58.6%전체적으로 교회는 코로나19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반면에 비개신교인(12.0%)과 언론인(24.5%)은 정반대의 대답을 내 놓았다.2) 이처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는 매우 큰 인식의 차이가 있다.

사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하여 모든 교회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점점 많은 교회들이 최근 한국 교회의 문제로 교회의 공공성을 잃었다거나, ‘복음의 공적 능력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을 지적하며 공공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보수 개혁주의 교단(합동, 고신, 백석 등)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활발하게 공공신학 강의를 개설하거나 참여하고 있다.3) 미래교회포럼이 2021복음과 보편적 고통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논의를 갖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이다. 지난 2월 제 1차 포럼에서는 권수경 교수가 고통의 신학적 의미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그는 보편적 고통을 어떤 특정한 고통이 모두에게 미친다는 의미와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는 의미로 구분하여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보편적 고통은 결국 복음으로 설명되어야 하며, 복음으로부터 해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최승락 교수도 고통의 문제를 신약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는데 권수경 교수의 그것과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이러한 분석은 보편적 고통에 대한 공공신학적 접근을 위한 선행 연구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념 규정을 통해 고통당하는 자를 특정할 수 있으며, 그 해결책이 복음안에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한계선을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통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바로 알아야 고통 받는 자들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신학적 담론은 이렇게 신학에서 출발하고 신학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만 공공신학은 고통에 대한 신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고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따라서 본 발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고통의 문제 중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경제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에 대해 기독교가 또는 교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고민해 본다.

 

II. 공공신학적 접근법

보편적 고통의 문제에 대한 공공신학적 접근을 위해서는 공공신학의 특징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공공신학자들이 공공신학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정리하였고 특징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서 특히 저명한 공공신학자이자 독일개신교협의회(EKD)의 의장인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Heinrich Bedford-Strohm)이 제시한 공공신학의 여섯 가지 특징은 매우 탁월하다. 그것은 성경적-신학적 특징, 이중 언어 능력, 간학문적 특징,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예언자적 속성, 그리고 상호 맥락적 본질이다.4) 이 특징들을 종합하면, 공공신학은 결국 교회가 공론장에 참여하여 세상을 향해 선지자적 목소리를 발하고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성경적-신학적 전통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소통 합리성이 전제되는 공론장에 교회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언어를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번역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교회가 굳이 공론장에 참여해야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지만,5) 복음의 메시지가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몇 명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온 세계를 위한 것이기에, 복음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공공신학은 복음에 기초를 두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성경적-신학적 언어와 번역된 세상의 언어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언어 능력을 요구한다. 또한 그 번역의 과정에서 일반 학문 분과의 전문 지식을 인용할 때, 비기독교인에게 신뢰감을 주고 설득력이 있다. ,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귀 기울에 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이 경제학적, 법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의학적, 정치학적인 지식에 비추어 보아도 여전히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때, 기독교 신앙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며, 교회가 공론장에서 시민사회와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다. 베드포드-슈트롬은 기독교 신앙과 합리성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6)

교회는 항상 공적 교회였으며, 사회를 향한 교회의 공적 발언은 교회가 가진 사명의 핵심이다.7) 예수님과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이 한 일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공론장에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고, 시민사회를 위한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맥스 스택하우스(Max Stackhouse)도 공공신학이 공적 삶의 구조와 정책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공신학을 공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다원주의 사회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에9), 기독교는 복음으로부터 도출된 지혜에 근거하여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의 논의에 기여해야 한다.10) 공론장에서 윤리적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교회가 조언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공공신학은 특정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려하거나 공적 영역에서 복음을 날 것으로 선포하려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공동체의 삶 속에 있는 기독교 신앙의 특별한 비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소통하기를 목표한다는 것을 주의해야한다.11) 공공신학은 또한 늘 개혁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권력자의 부당한 행위를 옹호하는 어용신학이 될 수 없다. 공공신학은 사회의 시스템이 철저하게 악하고 따라서 이것들을 붕괴하고 혁명적인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현재의 시스템이 안고 있는 부족함을 인식하며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개혁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공공신학은 선지자적이다.

이러한 공공신학적 연구는 그 청자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형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공공신학은 세상을 향해 발화하므로, 신학적인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결과는 성경적이되 표현은 세상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공공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신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향해 공공신학을 하려면, 먼저 교회 안에 공공신학의 개념과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이해가 필요한데 이것이 두 번째 형태이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다.12) 오늘 본 발제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보편적 고통을 보는 공공신학적 시선을 소개하고 고민하는 자리이므로 두 번째 형식을 주로 취하되 필요한 부분에서는 첫 번째 형식도 취할 것이다. 또한 제 1차 포럼에서 보편적 고통에 대한 개념과 원인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이번 포럼에서는 이미 발생한 고통의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목회적으로 접근하여 다루어야 할지에 중점을 둔다.

 

III. 경제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접근

현대사회에서 경제적인 문제는 삶과 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의 질이 좌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경제 문제에 예민하며, 실제적으로 경제 문제를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로 여기기도 한다. , 일상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느 쪽이 더 많은 경제적 유익을 가져다주는가의 문제이다. 과거 몇 차례의 중요한 선거에서 후보자 또는 정당의 경제 정책이 당락을 결정하였다는 평가가 이를 지지해준다. 경제적 부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후보와 정당이라면 윤리적인 면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하여서 이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일수록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선호하며 부의 축적을 덕 또는 복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이다. 기독교인들이 경제 사범에 대하여는 비교적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막스 베버는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빈주의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13) 이처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인 경제에 대하여, 특히 물질 만능주의를 주의할 수 있도록 경제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제공해 주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다.

그러나 만약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고통 문제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면, ‘물질 만능 주의성경적 부의 축적문제는 다소 시의성이 떨어진다. 지금은 부의 축적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생 경제의 지표인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그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자영업자들의 지난해 신규 대출액이 120조원 가량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9년 증가액의 2배 수준이다.14) 이렇게 가계 소득 상위층을 제외한 서민들이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예언자적 목소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촉구

교회는 정부를 향하여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 중이다. 재난 지원금 지급, 긴급 생계비 지원, 저리 대출 제공 등의 정책을 통해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돕고 있다. 그러나 한 때 긴급재난지원금의 효용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강하면 정부는 지원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서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는 곧 저소득층의 생계 위협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교회는 정부가 이러한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 할 수 있도록 지지하며 촉구해야한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이 개별 가구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주목할 때 이 당위성은 더욱 뚜렷해진다.15) 이 연구에 의하면 소득 5분위와 비교해 긴급재난지원금에 의해 소득 1분위와 2분위의 저소득 집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전체 소비 증가가 나타났다.” 그리고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구 소비 지출에 미치는 영향을 소비 유형별로 살펴보면,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교통, 음식 및 숙박 지출 영역에서 소득 5분위에 비해 1분위에서 유의미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긴급재난지원금이 과소비를 부추기거나 유흥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염려와 달리 서민 생활의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을 중산층 이상의 시선으로 본다면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다. 각종 지원 정책에는 국가 재원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이는 국가 재정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 정책이 꼭 국가 재정의 불건전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진작하여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국가예산정책처는 기급재난지원금이 최대 1.8배의 생산유발효과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16)

나아가 지금 이 시기는 말 그대로 비상한 시기임을 기억하여 경제적 약자와 소외된 자의 입장에서 더욱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나그네였던 때를 기억하며 약자를 보살필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신다. 예수님 또한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돌보는 것이 믿음의 행위임을 강조하셨다.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산술적인 계산에 입각하여 약자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전체 경제 성장을 이루려는 시도를 하려 할 때, 반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기독교 경제 윤리적 차원의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사회는 교회를 향하여 이러한 기여를 기대하고 있으며, 교회는 세상의 이익 단체와 다른 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마저 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으며, 교회가 여느 이익단체와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할 때, 이러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에 교회와 기독교인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공론장에 적극 참여하여 기독교 경제 윤리적 차원에서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어야한다.

칼빈도 그의 제네바 목회 시절 이러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는 일생을 통해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그리고 망명자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었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제도 마련에 힘썼다. 그는 정부를 향하여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제공할 것과 빵과 고기, 와인과 같은 생필품의 가격을 정부가 적정하게 통제할 것, 그리고 노동시간 규제와 임금인상, 실직자의 재교육을 위한 조례를 제정할 것을 꾸준히 요청하였다.17) 그는 제네바 목사회의 리더로서 목사회의 의견을 시의회에 전달하였으며, 컨시스토리움에 꾸준히 참여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빈은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예배를 드리고 교회 안에서 양육되어진 성도들이 세상에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라며 그는 예배를 마친 후 교회 문을 걸어 잠갔다.18) 이와 같이 교회는 경제적으로 빈곤하여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도록 공론장에서 번역된 언어를 통하여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2. 디아코니아: 지역 사회 속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교회의 섬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가 정책 결정 과정이나 공론장에서 기독교 윤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교회가 위치한 지역 사회 내에서 직접적으로 봉사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지원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서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는 이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인력의 한계로 인해 누락된 대상을 일일이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사후적으로 구제 받기도 쉽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이의 신청절차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구제를 신청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의 주민들이 출석하는 교회 공동체는 훌륭한 인프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성도들은 이웃을 잘 살펴보아 지원을 받아야할 형편에도 불구하고 지원 대상에서 누락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 이웃을 도와 사후에 구제를 받도록 도울 수 있다.

정부가 그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는 각 개인의 형편을 일일이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정량적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때때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많은 뉴스 매체들이 보도하듯이 실제적으로는 독거노인이지만 주민등록상 자녀가 동거인으로 되어있어 그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 부모로부터 소식이 끊긴지 오래이지만 부모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여겨져 그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 등 수많은 이웃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때로는 정부의 지원을 받더라도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최근 이런 이웃들이 아사하거나, 동사하거나, 고독사한다는 기사를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실 이러한 특별한 사정들은 가까운 이웃이 아니라면 알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이웃들은 지역의 교회에서 돌보아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교회들이 교회 재정으로 재난 지원금을 조성하여 지역 사회의 이웃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이런 섬김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한 것이며, 지역 사회를 위해 특별히 기여하는 공적 교회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나친 개인주의로 이웃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시대에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것은 교회 공동체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는 예배를 통하여 한 가족이 되고, 함께 떡을 떼며 삶을 나눈다. 소그룹 모임을 통해 지역 사회의 현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고, 지역 사회에서 섬길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공급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로버트 우스노우(Robert Wuthnow)는 자발적 결사체인 시민사회에서 기독교가 아직도 사회적 자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9) 한국 교회 또한 시민사회에서의 공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IV. 심리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접근

바이러스의 전염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실시한지 벌써 수개월이 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곧 종식되리라는 믿음으로 버텨왔던 사람들은 유행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울함이나 극단적 선택 생각 등의 지표가 크게 증가했다. 응답자의 우울 평균 점수는 2018년 조사 결과에 비해 2배 이상 높았고, 우울 위험군 비율도 약 6배 증가했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 우울 평균 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 연령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20) 코로나19의 스트레스 수준을 과거의 재난과 비교해 보면, 메르스의 1.5, 경주/포항 지진의 1.4배로 나타났고 세월호 사건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1) 이러한 정신 건강의 악화는 개인과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위험도를 체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대책의 수립이나 지원 행정이 종종 후순위로 밀리곤 한다. 따라서 교회는 계속해서 사회와 정부를 향하여 개인의 정신 건강 악화의 중요성을 언급해야 하며,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촉구하고, 나아가 교회가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1. 하나님 나라 소망: 사회의 평안을 구하는 교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규모 신종 전염병이 발발하면 개인은 신종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받는데, 특히 아직 그 질병에 대하여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을 경우 실제의 위험보다 더 큰 위험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때,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 디스트레스 수준을 증가시킨다. 이 공포가 만성화되면 불안장애를 야기하고, 심각한 경우 파괴적 집단행동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22) , 위험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불확실성, 위험성 등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 가짜 뉴스나 부정확하고 자극적인 정보가 빠르게 유통됨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혼란 그리고 공포를 불러온다.23) 이는 특별히 전문적 지식을 통하지 않고서도 우리 주변의 일들을 유심히 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공식 뉴스 매체들은 계속해서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다. 물론, 경각심을 갖고 더 조심하도록 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전달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최근 뉴스 보도를 보면 너무 부정적이어서 이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더욱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형편이다. 이런 환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한부 종말론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도록 하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

기독교는 이런 사회적 현실 속에서 과연 희망을 전하고 있나? 안타깝게도 기독교 또한 사회의 불안을 확대시키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이미 많은 매체들이 보도하였듯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카톡이나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를 공유한다던지,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불확실한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모르고 하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전하는 기독교의 특징과 정확히 반대된다.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검증되지 않는 정보를, 특히 부정적인 정보인 경우 더욱 조심하여, 무분별하게 전파하는 것을 주의하도록 교육해야한다. 성도들이 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목회자들은 그 분야 전문가에게 문의하여야 한다. 인터넷상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많으므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의 정보를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저명한 학술 논문이나 신뢰할 수 있는 공식 발표를 참조해야한다.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는 이 시기가 어쩌면 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인지 모른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사회가 불안하고 핍박이 심할 때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조선말 비인격적인 대우와 배고픔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하늘 소망을 전하고 그들의 아픔을 복음으로 달래주었다. 선교사들은 민주주의적 요소들과 인권에 대한 신지식을 교육을 통해 전해주었다. 여성의 인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때 여학교를 세운 것도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해방의 소망을 품는 것에도 기여했다. 임시정부의 다수가, 3.1 만세 운동의 주요인물들 중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암흑의 시기에 기독교는 희망을 보여주고,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 현재 교회는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나 고민해 보아야할 때이다. 불안해하며, 우울해하며, 참된 평안을 찾아 헤매는 이웃들에게 기독교가 가진 참 평안으로 초대해야한다.

 

2. 코이노니아: 사귐의 공동체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게임 등의 사이버 공간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국내 사용자들의 이용 시간이 20191~45518만 시간에서 2020년 같은 기간 15791만 시간으로 무려 186%나 증가했다.24) 이러한 디지털의 영향력은 코로나19 이후로도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이전에도 인터넷 사용은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상승했다. 온라인 사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감소하면서 이제는 뉴노멀 시대이기에 온라인 사용을 향한 부정적인 태도는 진부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온라인 사용 환경이 온라인상에서의 다른 사람과의 상호 소통보다는 동영상 시청이나 웹 서핑 같은 개인적 활동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 문제에 교회가 목회적으로 접근하려고 할 때, 우선은 이들이 왜 온라인을 지나치게 의지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의 조사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다른 곳에서는 위로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무작정 온라인 중독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현실적 만남이나 온라인상에서의 타인과의 대화가 심각하게 줄어든 상황 속에서 교회는 계속적으로 사람간의 인격적 소통의 중요성을 사회를 향해 강조하며, 나아가 실제적으로 이것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한다. 교회 공동체는 예배 공통체이면서 동시에 사귐의 공동체이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의 다양한 소그룹 활동을 통해 고민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타인으로부터 얻는 공감과 격려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의 사역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웃으로까지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 대면 또는 비대면의 방식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협조하며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대면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개별적 만남을 통해 고충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필요도 채워줄 수 있다. 대면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영상 통화, 음성 통화, 문자 등을 통해 안부를 묻고, 심리 상태를 확인하여 필요한 경우 정부의 상담 지원을 대신 요청해 줄 수 있다.

정부가 교회의 예배와 모임을 금지시켰을 때, 교회는 정부와 사회를 향해 예배의 중요성을 이유로 들어 저항의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이 이유는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에게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비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면서도 예배를 고집하는 매우 이기적인 단체로 보였을 것이다. 오히려 비기독교인들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왜 예배를 멈추는 것이 사랑의 행위인지 설득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때 예배의 중요성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며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평안을 선물하고 위로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이 모든 사역이 예배를 통해 제공된다는 것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므로 예배를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방역 수칙 하에 모일 수 있도록 하여 자칫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항변했으면 어땠을까?

 

V. 나가는 글

교회는 그 사용하는 언어를 듣는 대상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전문적인 신앙의 언어, 성경의 언어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회와의 대화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설득되지도 않고 결국 대화는 그대로 종결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비기독교인을 포함한 사회와 대화 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한다. 이것이 공공신학이 추구하는 지점이다. , 공공신학은 기독교 전통과 교리를 다른 학문 분과의 지식과 논리체계를 사용하여 비기독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고 설득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이는 기독교가 바로 공적 종교이며, 교회는 항상 공적 교회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세상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세상을 더욱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게 변화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교회는 매우 개혁적이며, 선지자적이다. 방향을 잃은 세상을 향해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길을 제시해준다. 현대 사회는 매우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에 교회가 참여하여야 한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특별히 경제적, 심리적 고통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공공신학적 논의이다. 교회는 경제적 약자들의 생명 담보를 위해 국가에 호소해야하며, 나아가 교회의 재정을 통해 직접 도움을 주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가진 특별한 사귐의 은사를 통해 우울과 고독에 빠진 우리의 이웃을 돌보아야한다. 하늘 소망을 전해 주어야한다. 이것이 현대 사회가 교회에 바라는 점이며,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미주

1) “종교()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 조사,”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0, 2021410일 접속,

https://www.trendmonitor.co.kr/tmweb/trend/allTrend/detail.do?bIdx=1949&code=0404&trendType=CKOREA&prevMonth=&currentPage=3

2) “교회가 코로나 대응 잘했냐고 묻자 ... 교계 안팎 인식차 6,” 연합뉴스, 2021 수정, 2021420일 접속,

https://www.yna.co.kr/view/AKR20210414137200005?input=1195m

3) 개혁파 공공신학 연구의 기초를 위해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김민석,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본 존 칼빈의 신학,” 한국개혁신학69 (2021): 24-60.

4) “Sechs Charakteristika können also für die inhaltliche Bestimmung des Begriffs der Öffentlichen Theologie festgehalten werden: ihr biblisch-theologisches Profil, ihre Zweisprachigkeit, ihre Interdisziplinarität, ihre Politikberatungskompetenz, ihre prophetische Qualität und ihre Interkontextualität.” Heinrich Bedford-Strohm, “Engagement für die Demokratie,” in Position beziehen: Perspektiven einer Öffentlichen Theologie (München: Claudius Verlag, 2012), 122.

5)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와 고백교회전통이 그러한 자세를 취한다.

6) Heinrich Bedford-Strohm, “Food Justice and Christian Ethics,” in Liberation Theology for a Democratic Society: Essays in Public Theology, eds. Michael Mädler and Andrea Wagner-Pinggera (Zürich: LIT Verlag, 2018), 177.

7) Heinrich Bedford-Strohm, “Klar und verständich,” in Position beziehen: Perspektiven einer Öffentlichen Theologie (München: Claudius Verlag, 2012), 47.

8) Max L. Stackhouse, Public Theology and Political Economy: Christian Stewardship in Modern Society (Grand Rapids: W. B. Eerdmans, 1987), xi.

9) Heinrich Bedford-Strohm, “Kompass Für Die Gesellschaft,” in Position Beziehen: Perspektiven Einer Öffentlichen Theologie (München: Claudius Verlag, 2012), 91.

10) Heinrich Bedford-Strohm, “Reformation. Freeing the Church for Authentic Public Witness,” in Liberation Theology for a Democratic Society: Essays in Public Theology, eds. Michael Mädler and Andrea Wagner-Pinggera (Zürich: LIT Verlag, 2018), 107.

11) 더 자세한 논의를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Rowan Williams, Faith in the Public Square (London: Bloomsbury, 2012).

12) 공공신학자들이 공공신학의 자리가 교회, 학계, 사회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David Tracy, The Analogical Imagination: Christian Theology and the Culture of Pluralism (London: SCM, 1981), 35.; Gavin D’Costa, Theology in the Public Square: Church, Academy, and Nation (Oxford: Blackwell, 2005).

13) 막스 베버/박성수 역,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문예출판사, 2021).

14) “지난해 자영업자 대출 빚 120조원 ... 코로나191년만에 2배 증가,” 경향신문, 2021 수정, 202153일 접속,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290836001&code=910402

15) 자세한 논의를 위해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남재현, 이래혁 공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구 소비에 미치는 영향,” 사회복지정책48/1 (2021): 63-95.

16) “국회예산정책처 1차 재난지원금, 생산유발효과 최대 1.8,” 조선일보, 2020 수정, 2021424일 접속,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25/2020112501815.html#:~:text=25%EC%9D%BC

%20%EA%B5%AD%EB%AF%BC%EC%9D%98%ED%9E%98,%EB%B0%B0%20%ED%9A%A8%EA%B3%BC%EA%B0%80%20%EB%82%98%ED%83%80%EB%82%9C%20%EA%B2%83%EC%9D%B4%EB%8B%A4.

17) Dolf Britz, “Politics and Social Life,” in The Calvin Handbook, 김귀탁 역, 칼빈 핸드북(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854.

18) Stephen J. Nichols, The Reformation: How a Monk and a Mallet Changed the World (Wheaton, Ill.: Crossway, 2007), 79.

19) 다음을 참조하라. 로버트 우스노우/정재영, 이승훈 공역, 기독교와 시민사회(서울: CLC, 2014).

20)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2021 수정, 202156일 접속,

http://www.mohw.

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CONT_SEQ=365582

21) “코로나19 세대, 정신건강 안녕한가?,” 경기연구원, 2020 수정, 202154일 접속, https://www.

gri.re.kr/%EC%9D%B4%EC%8A%88-%EC%A7%84%EB%8B%A8/?brno=14489&prno=20200231

22) 이동훈 외 5,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감염에 대한 일반대중의 두려움과 심리, 사회적 경험이 우울, 불안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32/4 (2020): 2121.

23) 남은우, “COVID-19와 관련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극복을 위한 사회적 처방제도,” 교육건강증진학회지37/1 (2020): 113-116.

24) “코로나 1년의 변화,” 디지털타임즈, 2021 수정, 202154일 접속, http://www.dt.co.kr/contents. html?article_no=2021043002109931650001&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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